출생 | 1952년 충남 청양
학력 | 용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경력 |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저서 | ‘민주와 통일의 길목에서’(1989)
취미 | 바둑
국민의당 소속 김한길 전 민주통합당 대표는 선거 닷새 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후보 쪽의 높은 분이 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한 말씀이 안철수 후보 쪽에 가 있던 보수 표를 분리해낸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자극받은 보수 성향 유권자가 홍준표 후보로 결집하면서 소위 2강이 2중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높은 분’이란 공동선대위원장이던 이해찬 의원이다.
그렇다면 이 의원은 지원 유세에서 의도된 말로 경쟁 후보를 멀찌감치 떨어뜨려놓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분석의 타당성은 따로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김 전 대표의 발언으로 한 가지 사실은 드러났다. 이 의원은 상대 진영을 두렵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중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돼 약 1년 복역했다. 1980년 복학했으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2년 6개월 수감생활을 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다.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수한 후보를 꺾고 당선된 이래 5회 연속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18대 총선을 건너뛴 그는 19대에는 관악을을 떠나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출마해 당선이 유력시되던 심대평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국회에 복귀했다. 20대 총선에서는 김종인 대표의 ‘정무적 판단’에 따른 공천 컷오프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하고 복당했다.국회의원선거에 도전해 한 번의 실패 없이 7전 전승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15대 대선에서 DJP연합을 이끌어냄으로써 주목을 받았었다.
정치에 뜻이 없던 문재인 대통령을 정치권에 끌어낸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대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자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투표일 전날 밤 광화문광장 유세에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저는 저기(정부청사에서) 근무하지 않겠다. 당에 남아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략가의 말엔 ‘지금 상황에서는’이라는 구절이 생략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