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세준의 기업 뽀개기 21번째 시간입니다. 이번에는 8월 29일 다뤘던 우마무스메 이야기(‘[박세준의 기업 뽀개기⑲] 이용자 불만 폭발, 카카오게임즈 사옥 앞 마차시위 예고’ 기사 참고)를 다시 한 번 다뤄볼까 합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습니다. 8월 29일 일부 이용자들이 카카오게임즈 사옥 앞에 마차를 보냈습니다. 우마무스메 운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벌인 일종의 시위(이하 마차시위)였죠. 그런데 9월 23일 마차시위는 게임 내 유료재화를 환불해 달라는 손해배상 소송으로 번졌습니다. 환불 요구 액수만 100억 원에 달합니다.
60만 원이 하루아침에 1200원 된 날
사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카카오게임즈와 우마무스메 이용자 간 갈등을 간단하게 요약하겠습니다. 우마무스메 운영사인 카카오게임즈의 운영방식 때문에 지금의 문제가 발생했는데요. 우마무스메 일본판과 한국판의 유료재화 지급 건수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외에도 번역 문제, 게임 몰입을 돕는 요소들의 미구현 등으로 유저들의 불만이 쌓여가는 상황이었습니다.불을 붙인 게 ‘SSR 키타산 블랙 픽업 이벤트’ 사태(이하 키타산 블랙 사태)입니다. SSR키타산 블랙은 성능이 몹시 좋은 게임 내 아이템 이름인데요. 게임을 원활히(!) 진행하려면 이 아이템은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성능이 좋은 만큼 입수가 어려웠는데요. 7월 26일~8월 10일 자정까지 아이템을 일정 기간 높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이벤트 기간에 유료 아이템을 뽑을 때마다 포인트가 쌓입니다. 이 포인트를 모으면 키타산 블랙을 확정적으로 받을 수 있죠.
꽤 많은 유저들이 SSR 키타산 블랙을 노리고 돈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이벤트 기간을 카카오게임즈가 갑작스레 변경해 버렸습니다. 당초 약속된 시간보다 세 시간 일찍 닫았습니다. 조기 종료 공지는 당일 이뤄졌습니다. 이벤트 기간이 지나면 포인트는 1200원짜리 1회 아이템 뽑기권으로 변합니다. 공지를 확인하지 못한 유저들은 포인트를 사실상 날린 셈입니다.
원하는 아이템을 골라 얻을 수 있는 유료재화의 가격은 약 60만 원. 이게 1200원짜리 한 번 뽑기가 된 거죠. 한 주에 60만 원 하던 주식이 1200원이 돼 버린 셈입니다.
그래서 마차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카카오게임즈는 8월 24일, 9월 3일, 9월 15일 각각 사과문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불만은 여전했습니다. 게임 운영상 실수에 대한 사과도 없었고 키타산 블랙 사태에 대해서도 직접적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 이용자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결국 환불 소송까지 벌어졌는데요. 추석 연휴 전까지 8000여 명이 모였고, 환불 요청액만 80억 원에 달했습니다.
번역기 돌린 듯한 개발사 입장문
이 게임은 출시한 지 반년도 안 된 그 나름 신작입니다. 환불 소송까지 일어나니 카카오게임즈는 당황했겠죠. 결국 이를 해결하고자 9월 17일 카카오게임즈가 유저 간담회를 열었습니다.간담회는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됐고요. 이 간담회를 지켜본 게임 이용자만 34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간담회 시간이 짧지도 않습니다. 무려 8시간이나 진행됐습니다.
카카오게임즈가 간담회를 연 목적이 유저들을 달래는 것이었다면 이 간담회는 실패했습니다. 간담회 직후 유저들의 불만이 더 커졌거든요. 환불 시위 규모도 간담회를 기점으로 20억 원 늘어 100억 원대 환불 소송으로 번졌습니다.
이용자들의 불만이 집중되는 부분에 대해 카카오게임즈는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카카오게임즈는 이 날 우마무스메 개발사인 사이게임즈를 계속 언급했습니다. 카카오게임즈 측은 이날 간담회에서 “사이게임즈와 협의해 게임을 운영해야 하는 만큼 이벤트 기간, 운영 방식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사이게임즈 측에서도 9월 15일 한국 유저들에 대한 메시지를 공개했습니다. 사이게임즈의 감수 체계에 미흡한 점이 있고 카카오게임즈 연계에도 부족한 부분이 발생해 작금의 사태가 초래됐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두고도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해명문의 문장이 이상하다는 지적이 나왔는데요.
일본어 관련 유튜버들은 이 메시지가 일본어 문법상 어색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일본어 번역 및 통역 전문가 2명, 일본에서 2년 이상 일한 경험이 있는 외국계 회사원 2명에게 이 메시지를 보내봤는데요. 전부 이상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번역 전문가는 한국어로 내용을 적은 뒤 번역기를 돌려 만든 일본어 문장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나 어법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카카오게임즈 책임 없어… 유저들의 선택일 뿐”
그럼에도 이용자들은 카카오게임즈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메시지를 받고 나서 이틀 뒤에 열린 간담회에 수십만 명이 몰렸으니까요. 당시 간담회 온라인 중계를 봤다는 익명의 게임 이용자는 “사이게임즈와 카카오게임즈가 협업해 앞으로 게임을 제대로 운영하겠다는 확신을 줬다면 이용자들의 불만은 금방 해소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가장 큰 문제는 키타산 블랙 사태 해명 부분에서 불거졌습니다. 카카오게임즈는 이벤트 기간 사용자가 갑자기 늘어 서버에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벤트를 조기에 종료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카카오게임즈 측의 해명대로 접속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모바일 앱 시장 조사업체 모바일 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키타산 블랙이 출시된 7월 26일 일일 이용자 수는 안드로이드 기준 22만7421명으로 전일(15만3507명) 대비 7만3914명 늘었습니다. 우마무스메 국내 서비스 기간 중 일간 이용자 증가량이 가장 컸습니다.
그런데 7월 26일보다 이용자가 더 많이 늘어난 날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서버 오픈일입니다. 이 날에만 25만4103명이 이용했습니다. 0명에서 25만4103명으로 이용자가 늘어날 때는 멀쩡하던 서버가, 7만 명 늘었다고 터진 셈입니다.
여기까지도 이용자들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 오픈 때와 이벤트는 준비하는 규모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우마무스메가 수많은 이벤트를 해오면서 그 때처럼 갑자기 이용자가 늘어난 날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용자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카카오게임즈의 답변 때문입니다. 간담회에서 환불 소송을 진행하는 유저 대표가 키타산 블랙 사태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카카오게임즈의 운영 때문에 유저가 피해를 입은 것 아니냐는 거였죠.
이 질문에 대해 카카오게임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부분은 고객님 개별의 선택이었고, (카카오게임즈의 운영 때문에 생긴) 피해라고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용자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60만 원이 1200원 된 것도 속상한데 ‘게임 운영사의 책임은 없고 이용자들 선택의 결과일 뿐’이라며 책임을 전가해버린 꼴이니까요.
카카오게임즈가 이렇게 해명한 이유는 이해가 됩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환불 소송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겠죠. 법조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운영 때문에 유저가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소송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룹니다.
그래도 말이 과했습니다. 게임업계에서도 말실수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피해에 대해선 대답을 피하고, 그 나름의 보상책을 내놓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 질문이 들어왔을 때 “유저 분들의 불만에 대해서는 이해합니다, 저희가 사이게임즈와 논의해 유료재화 지급 이벤트를 한 번 더 열겠습니다” 등의 모범 답안이 있었다는 거죠.
보상 관련 법안 상임위도 통과 못 해
게임 커뮤니티 유저들과 게임 유튜버들은 이 사건을 두고 “고객을 이렇게 대하는 업계는 한국 게임사 뿐”이라고 열변을 토합니다.그도 그럴 것이 이와 비슷한 사건이 전에도 있었습니다. NC소프트의 리니지도 비슷한 사건에 휘말렸죠. 지난해 1월 NC소프트는 리니지 일부 캐릭터 강화 시스템의 과금을 낮추도록 구조를 개편했습니다. 이에 일부 최상위 유저들의 반발이 일어났죠. ‘내가 돈을 내 캐릭터를 강하게 키웠는데, 이제 와서 비용을 줄여버리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죠. NC소프트는 결국 개편한 시스템을 지난해 2월 원상 복구했습니다. 문제는 개편 시기에 강화 시스템에 돈을 쓴 사람들이었습니다. 돈을 내 강화한 캐릭터가 원상 복구됐으니 이를 환불해줘야 한다는 항의가 있었습니다. 이용자들은 현금 환불을 요청했으나 NC소프트 측은 현금 대신 게임 내 현금성 재화로 돌려줬습니다. 리니지 일부 유저들도 지난해 4월 시위를 벌였습니다. 결국 현금으로 환불을 받았을까요? 그럴 리가요.
이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고자 올해 3월 국회에서 입법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법의 주요 내용은 게임사가 운영상 게임 이용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이를 즉각 알리고 보상, 환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법안은 상임위원회 심사도 통과하지 못 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업계에 과도한 부담이 생길 수 있다며 입법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미 게임법상 유료콘텐츠 관련 표시 의무가 있다며 굳이 새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지적을 내놨죠.
게임 이용자들은 답답합니다. 비슷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할 방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으니까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게임사가 조금 더 배짱 영업을 할 수 있고, 점점 더 한국 게임 이용자들의 권익은 줄어든다”는 것이 유저들의 목소리입니다.
법조계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더니 이 법이 통과됐으면 우마무스메 유저들이 카카오게임즈로부터 환불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을 거랍니다. 그런데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피해 규모 산정 등 여러 부분 때문에 완벽한 승소, 그러니까 유저 분들이 원하는 전액 환불은 어려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소송은 의미가 있습니다. 일단 게임사에 이번 소란은 큰 손해입니다. 양대마켓 매출 순위 1위를 달성한 과거가 무색하게, 2022년 9월 기준 우마무스메 매출 순위는 100위권 바깥으로 밀려났습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게임사의 손해가 점차 커질 것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논란이 커지고 매출 순위가 떨어지는 상황이니 소송과는 무관하게 카카오게임즈가 그 나름의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과연 다음 달에는 우마무스메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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