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미국 경영학은 가라!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입력2008-12-08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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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든 챔피언들은 좋은 경영이란 한 가지 큰 일을 탁월하게 해결하는 게 아니라, 많지만 세부적인 일들을 경쟁자보다 더 잘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내가 히든 챔피언의 사장들로부터 항상 듣는 말은 그들은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위대하고, 기적 같은 공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약간 더 우월한 점들의 합이 결국 성공으로 이끌어준다.
    • -본문 중에서
    미국 경영학은 가라!

    <b>히든 챔피언</b><br>헤르만 지몬 지음 이미옥 옮김 흐름출판

    독일 경영학, 만만찮은 학문이야. 미국 경영학이 전부는 아니라고.”1970년대 서울대 경영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한희영 교수와 최종태 교수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독일어권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박사학위를 받은 그들은 미국 경영학 일색인 한국 경영학 풍토에 대해 개탄했다. 덕분에 학생들은 시야를 넓혔고 경영학 관련 독일어도 몇 개 익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독일 경영학은 퇴조했다. 미국 경영학의 도도한 물결을 당해내지 못했다. 프랑스도 20세기 초반엔 유명한 관리학자 페이욜을 필두로 한 독자적인 경영학 체계를 가졌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미국 경영학에 잠식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명문 경영학 학교인 ‘엥세아드’에서는 대부분 미국 경영학 교재로 강의한다. 영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국은 경영학이라는 신생 학문에서 난공불락의 패권을 잡았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주요 기업들의 성공 신화가 있었다. 특히 초국적 기업은 글로벌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영학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적격이었다. 또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은 경영학 석사(MBA)가 입사하고픈 ‘로망’의 대상이어서 ‘미국 경영학=MBA=월스트리트’라는 등식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러나 2007년부터 불거진 월스트리트발(發) 금융위기 탓에 미국 경영학의 신화는 퇴색했다. ‘미국에서 배운 경영학대로 따라 하다가는 기업이 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길 만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저명한 경영학자가 쓴 ‘히든 챔피언’은 유럽 시각에서 추출한 신선한 아이디어를 독자에게 듬뿍 안겨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빛난다. 연구실에 앉아 자료만 분석해서 쓴 책이 아니다. 저자가 20년 동안 해당 기업을 직접 방문해 관련자를 만나고 성공 요인을 세심히 관찰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베개만큼 두툼한 이 책을 독파하고 나면 저자의 깊은 내공을 느끼리라. ‘유럽 경영학계의 자존심’이라는 칭호를 들을 만한 학자라는 점에 동의하리라. 주로 대기업을 다루며 대기업에서 배우는 것만이 정답인 듯 여기는 미국 경영학에 대해 반기(叛旗)를 든 기개와 통찰력이 돋보인다. 이 책이 미국에 소개됐을 때 미국 독자 역시 좋은 반응을 보였다. 15개 언어로 번역 출판됐다.



    ▼ Abstract ’’’

    이 책을 읽으면 독일 경영학 르네상스의 견인차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전문 학술서적은 아니다. 우량 중견기업의 성공요인을 분석한 이 책엔 ‘세계시장을 제패한 숨은 1등 기업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저자는 ‘히든 챔피언’을 고를 때 △세계시장에서 1~2위 또는 소속 대륙에서 1위 △매출액 40억달러(한화 기준 5200억원) 이하 △대중에게 덜 알려진 기업 등 3개 기준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찾은 2000여 개 글로벌 기업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이들의 공통점으로 △세계시장 지배 △성장세 뚜렷 △생존 능력 탁월 △대중에게 알져지지 않은 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 △진정한 의미에서 다국적 기업과 경쟁 △결코 우연이나 기적으로 성공을 이루지 않았음 등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 상위 500개 기업의 성공 요인을 집중 분석했다.

    히든 챔피언들의 공통점은 다른 기업이 모방하기 어려운 혁신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만든 제품을 당당하게 제값을 받고 판다. 풍력발전에 쓰이는 회전날개 생산업체 에네르콘의 사례를 보자. 창업자 알로이스 보벤은 회사를 세운 1984년 이후 기술 혁신에 집중했다. 임직원 수가 1만명으로 늘었는데도 보벤은 품질 향상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한다. 에네르콘은 이 분야 세계 특허의 40% 이상을 가졌다. 거대 기업인 지멘스도 에네르콘에 로열티를 내야 한다. 풍력발전 분야에서 에네르콘은 ‘메르세데스 벤츠’로 불린다. 에네르콘은 자사 제품을 운반할 특수선박을 제작하는 조선회사에도 독자적인 기술을 제공한다.

    ‘글로벌 전략’이라는 말은 현대적이며 듣기 좋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려면 국제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임직원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정신적, 문화적 세계화는 글로벌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는 데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다. 히든 챔피언 기업들의 여러 베스트 프랙티스를 분야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성장과 시장지배력= 히든 챔피언의 목표는 ‘성장’과 ‘시장지배력’이다. 지난 10년간 히든챔피언들의 매출액은 2배 이상 늘었는데 놀랍게도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비슷한 성장률을 보였다. 시장지배력은 점유율만 늘리면 되는 게 아니라 혁신, 품질, 신망 등과 같은 요소와 어우러져야 한다.

    히든 챔피언의 주요 지수
    매출액
    평균 4억3400만달러(약 4770억원)
    연매출액 7000만달러 이하 24.8%
    연매출액 7000만~2억달러 27.4%
    연매출액 2억~7억달러 29.9%
    연매출액 7억달러 이상 17.9%
    직원 수
    평균 2037명
    직원 수 200명 이하 21.6%
    200~1000명 32.0%
    1000~3000명 25.6%
    3000명 20.8%
    제품의 종류
    산업재 69.1%
    소비재 20.1%
    서비스 10.8%
    수출비율 61.5%
    자기자본비율 41.9%
    세전 투자수익률 13.6%


    ▲시장과 집중= 히든 챔피언들은 자신의 시장을 보통 좁게 정의하며 이 시장에서 강력한 위치를 구축한다. 이 시장은 놀라울 정도로 확대됐다. 지난 10년간 평균 2배 이상 커졌다. 시장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지만 히든 챔피언은 자신의 시장에 대해 잘 파악한다. 하나의 시장을 선택했다면 지극히 충실하게 오랫동안 몰입한다.

    ▲세계화= 세계화는 좁은 시장을 넓게 만든다. 세계화는 히든 챔피언을 성장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혼자 힘으로 가는 것을 선호한다. 개척자로서의 장점을 누리고 자체적으로 세운 자회사를 통해 고객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가 중국에 진출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인도가 진출할 만한 시장으로 부상한다.

    ▲고객과 서비스= 히든 챔피언은 고객과 매우 친밀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정기적으로 고객과 접촉하는 직원은 대기업과 비교할 때 대략 5배다. 반면 그들은 대기업 직원과는 달리 마케팅 전문가는 아니다. 서비스는 철저하게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진다. 제품은 상당히 높은 기술 수준으로 생산된다.

    ▲혁신= 혁신은 고객에게 매우 유용한 가치를 제공하거나 원가를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대단한 혁신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히든 챔피언은 사소하지만 단계적으로 혁신을 실행함으로써 성공을 거둔다. 혁신을 성공시키려면 예산보다 그것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

    ▲경쟁= 히든 챔피언의 시장은 대부분 소수 독점시장이라는 구조를 가진다. 세계적으로 맞붙는 경쟁사는 평균 6개다. 경쟁구조와 경쟁태도는 대체로 안정적이다. 마이클 포터의 ‘다섯 가지 경쟁’으로 조명해보면 대부분 히든 챔피언의 상황은 유리하다. 히든 챔피언 기업에서 새로 나타난 경쟁력 분야는 컨설팅과 시스템 통합이다.

    ▲자금 조달, 조직과 주변환경= 히든 챔피언은 가파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자금 조달 내역이 건실하다. 이는 지급 능력과 자금 조달 비용에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수익성에도 기여한다. 가장 중요한 자금원은 자기자금이다. ‘제품 하나에 시장 하나’를 가진 기업 형태는 히든 챔피언의 전형적인 모습인데 기능 중심적 조직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산업 클러스터는 경제 서적들이 추정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 7개 기업 가운데 1개만이 산업 클러스터에 속해 있다.

    ▲직원= 성장은 직원 자질을 높이 끌어올린다. 대학졸업자가 갑절가량 늘었고 절대 수치로 보면 4배가 됐다. 직원들의 충성심, 전문능력 등이 장점이다. 병가율이나 이직률이 매우 낮다. 한 직원에게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게 하는 사례가 대기업보다 두드러진다.

    ▲리더십= 히든 챔피언 가운데 3분의 2는 가족기업이지만, 가족이 후계자로 지목되는 경우가 점차 줄고 있다. 가족 가운데 여성이 승계하면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리더십 스타일은 다양해서 어느 것이 낫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진단과 전략개발= 히든 챔피언의 주요 정성적 전략진단은 회사의 교훈을 준수하는지를 검사하고 그런 방식을 통해 방향을 찾는 것이다. 전략개발은 한번 결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과정이며 상의하달식은 물론 상향식으로도 가능하다.

    ▼ About the author ’’’

    유럽의 피터 드러커, 경영학계의 석학, 독일이 낳은 초일류 경영학자…. 이 책을 감수한 유필화 성균관대 교수가 저자에게 그런 칭호를 붙였다. 유 교수에 따르면 저자는 독일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라고 한다.

    저자는 1995년까지 독일 마인츠 대학 등에서 경영학을 가르쳤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스탠퍼드 대학교 등에서 객원교수로 강의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파이낸셜 타임스’ 등 유수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지몬 쿠퍼&파트너스를 설립해서 경영자로 활약하고 있다. ‘이익 창조의 기술’ ‘생각하라!’ 등 저서 30여 권을 냈다.

    ▼ Impact of the book ’’’

    국내 일간지 출판면에 크게 소개됐다. 출판사에서도 책 광고를 대대적으로 냈다. 저자가 한국 독자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한도 공개됐다. 이상경 현대리서치연구소 대표는 “20여 년간 기업을 운영해왔지만 미처 몰랐던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 책”이라면서 “가장 큰 선물은 내수시장으로 한정하고 있던 내게 글로벌시장이라는 큰 눈을 뜨게 해준 것”이라 말했다.

    ▼ Impression of the book ’’’

    저자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훌륭한 책이다. 아쉬운 점은 좋은 내용에 비해 전개 방식이 조금 밋밋하다는 점. 그래서 흥미가 반감된다. 미국의 경영학 구루(guru)가 집필했다면 윤문가가 집필에 참여해 박진감 있게 구성했을 것이다. 저자가 방문한 기업에 대해 르포 스타일로 글을 썼다면 훨씬 강력한 흡인력이 있었을 것이다.

    Tips for further study

    미국 경영학은 가라!
    한국에도 히든 챔피언인 강소(强小)기업이 적잖다. 독자적인 핵심 역량을 키워 세계 무대를 누비는 기업 말이다. ‘세계 최강 미니 기업’(동아일보 경제부 지음, 동아일보사·사진)은 이런 기업을 잘 발굴했다. 경제부 기자들이 12개국 20개 우량 기업을 탐방한 데 이어 국제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 20개를 방문, 성공 비결을 취재해 정리했다.

    이 책은 세계 최강 미니 기업 40개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결과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열정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했고 ▲고객의 신뢰를 가장 중시하며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간부들이 경쟁력을 높이려 헌신적으로 일한다는 공통점을 추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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