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 1984년 이후 金 70% 독식
양궁 성장 위해 물심양면 지원한 현대차그룹
한국 양궁 성장 DNA, 현대차가 키워내
현대차 기업 한국 양궁 키워가며 동반성장
현대자동차그룹과 대한양궁협회는 8월 10일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를 획득한 국가대표 선수단을 축하하는 대규모 온택트(Ontact) 환영 행사를 개최했다. 정의선 양궁협회장(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행사에 참석해 선수들을 격려하고 포상금을 전달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한국의 궁사들이 처음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이후 한국은 양궁 금메달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1984년 올림픽 이후 양궁에 걸린 금메달은 총 39개. 이 중 27개를 한국이 가져왔다. 전체 대회 중 한국 선수가 우승한 경기의 비율만 약 70%에 달한다.
대기록 뒤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의 지원이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37년간 전폭적으로 한국 양궁을 키워왔다. 우수 인재 발굴은 물론 첨단 훈련 장비 개발에도 힘쓰며 양궁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도왔다.
한국이 처음부터 양궁 강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압도적 성적이 무색하게 한국은 1970년대까지 올림픽에서 단 한 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했다. ‘양궁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진호 선수(현 한국체대 교수)가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긴 했으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다.
정몽구 명예회장부터 시작된 현대차 양궁지원
현대차그룹이 국가대표 양궁 선수들의 훈련을 위해 마련한 고정밀 슈팅머신.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이외에도 정 명예회장은 주요 경기가 있을 때마다 파티를 열어 선수들을 독려했다. 국제 대회가 있을 때면 해외에서 낯선 음식으로 고생하는 선수들을 위해 한국 음식을 보내기도 했다. 선수들의 기량을 높일 장비가 있다면 공수하거나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미국 출장 중이던 정 명예회장은 심박수 측정기, 시력 테스트기 등을 직접 사서 협회에 보냈다. 이후에는 자비 5000만 원을 들여 세계 최초의 양궁 연습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당시 현대정공이 만든 연습기는 활에 레이저 조준기가 부착된 형태로 활쏘기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도쿄 올림픽에서도 현대차그룹의 장비 지원은 빛을 발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지원한 최첨단 훈련 장비가 좋은 성적을 내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이 끝난 직후 현대차그룹은 고정밀 슈팅머신, 점수 자동 기록장치, 심박수 측정 장치, 인공지능 코치, 선수 맞춤형 그립 등을 개발해 국가대표 양궁 선수들의 훈련을 도왔다.
고정밀 슈팅머신은 기계로 화살을 쏴보는 장치다. 이를 통해 화살의 궤적을 확인해 최적의 화살을 찾을 수 있다. 점수 기록 장치, 심박수 측정 장치는 훈련마다 선수의 활쏘기 정확도와 신체 변화를 확인해 이를 빅데이터로 기록·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코치진은 훈련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이용해 각 선수의 불안 요인을 없앴다. 이외에도 AI 딥러닝 기술을 사용해 선수의 훈련 영상을 분석, 최적의 자세를 찾았다.
정의선 회장이 세운 대표팀 선발 공정 원칙
많은 사람이 한국 양궁이 강한 이유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인선이다. 통상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효자 종목’의 경우 지연·학연·파벌 논란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협회나 감독의 의사로 성적이 좋지 못한 선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진다. 하지만 양궁은 이 같은 논란에 휘말린 적이 없다. 양궁 국가대표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선발되기 때문이다.‘전 메달리스트’라는 명성도 국가대표 선발전 성적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한 기보배 선수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할 정도다. 양궁 선수들 사이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어렵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양궁협회장을 맡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금의 양궁 국가대표 선발 체계를 만든 주인공이다. 정 회장은 ‘한국 양궁 활성화 방안’ 연구를 통해 지금의 선발 체계를 만들었다. 이 체계에 따르면 선수가 아닌 코칭스태프마저 공개경쟁 채용 방식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된다.
정 회장은 평소 선수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하고 있다. 종종 선수들을 찾아가 격의 없이 식사하며 격려하는 것은 물론 주요 국제 경기마다 현지를 찾아 선수들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 준다. 사실상 대표팀의 보모와도 같은 역할을 맡아온 것. 이 같은 그의 노력 때문에 선수들도 정 회장에게 심적으로 의지하는 바가 크다. 7월 30일 올림픽 사상 첫 양궁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가 시상대에서 나와 정 회장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며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에서 안산이 러시아올림픽위원회의 옐레나 오시포바를 6-5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울고 있는 안산을 다독여주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양궁 지원하며 세계 최고 비결 배운 현대차
현대차그룹은 “대한민국 양궁과 현대차그룹은 37년간의 동행을 통해 세계 최고를 향한 DNA를 공유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상대방의 강점을 배우며 성장했다”고 밝혔다. 한국 양궁의 강점을 현대차그룹에도 적용. 세계 5위권의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다. 단적인 예로 첨단기술 도입을 들 수 있다. 양궁협회는 선수들의 기량을 높일 수 있다면 다양한 첨단 장비를 사용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성능이 좋은 차를 위해서라면 기술개발 등 모험을 꺼리지 않아왔다. 2013년에는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이하 수소차)의 양산에 성공, 세계 최고의 수소차 제조사로 자리 잡았다. 8월 2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2021년 상반기 전세계 수소차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이 기간 팔린 수소차는 총 9000대. 이 중 3700대가 현대차그룹의 제품이었다.
현대차그룹은 한국 양궁의 공정 경쟁 선발도 벤치마킹했다. 연공서열과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실력이 있는 인재라면 중용할 수 있는 기틀을 닦기 시작한 것. 2019년에는 승진연차 제도를 폐지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기존에는 한 직급이 4~5년차가 돼야 승진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능력만 있다면 나이의 구애 없이 임원으로 진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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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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