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이 윤동주 연구의 원전으로 취급되어온 저간의 사정에는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은 시인 자신의 손에 의해 발표된 것이 아니라 모두 ‘유작(遺作)’ 형태로 유가족을 통해 공개됐다. 사정이 이렇다면 윤동주 연구자 중 누구라도 원본에 접근해 한 번쯤 유작으로서의 자격을 검증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럴 만한 사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시집의 편집과정에 줄곧 고 정병욱 교수가 깊숙이 관여한 점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병욱 교수가 누구인가. 그는 윤동주가 생전에 육필로 된 자선 시고집(詩稿集)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편 수록) 중 하나를 넘겨줬을 만큼 연희전문 시절 아주 가까웠던 친구였다. 더구나 그는 국문학자다.
하지만 인문학 연구의 경우 원전 확정 문제는 결코 비켜갈 수 없는 기본 요건이다. 뿐만 아니라 고 정병욱 교수의 누이는 윤동주의 동생인 고 윤일주 교수와 결혼했다. 따라서 정병욱 교수는 윤동주 사후 그 유가족과 가족관계가 된 것이다.
일반 독자가 아닌 전문 연구자라면 애당초 원전 확정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이미 시인이 타계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시점임에도 ‘유작(遺作)’들이 자꾸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랬어야 했다.
실제로 윤동주의 유작은 1948년 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의 경우 31편이 수록됐는데, 1955년 중판에서는 그 수가 3배인 93편으로 늘어났다. 1976년 3판에서는 116편이 됐다. 진지한 연구자라면 이제 어느 판본을 ‘윤동주 연구’의 원전으로 삼아야 할지 고민해야 할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육필 시고에 접근하려 나선 연구자는 없었다는 것이 유가족의 증언이다.
이러한 기현상을 답답해한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연구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유가족이었다. 그들은 윤동주 연구의 새 장을 열기 위하여 용단을 내렸다. 윤동주가 생전에 남긴 모든 육필 초고를 사진 자료로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1999년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이 발간된 직후 이를 입수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면밀하게 대조했고, 그 결과 그동안 원전 노릇을 해온 이 유고 시집을 원전으로 보기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나는 줄곧 원전 확정 작업에 매달려왔다. 내가 윤동주 시들의 원전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사진판’의 1차 자료에 나타난 어휘에 덧붙인 교정, 해설만도 1700여 항목에 달한다. 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텍스트의 어휘 중 1차 자료와 차이를 보이는 것이 무려 570여 곳이었다. ]
홍장학 교사는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지난 5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지난해 7월 ‘정본 윤동주 전집’ ‘정본 윤동주 전집 원전연구’ 두 권을 펴냈다. KBS의 ‘TV, 책을 말하다’는 이 책들을 ‘2004년 올해의 도서’로 선정했다.
세 가지 버전, ‘오줌싸개 지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린 ‘윤동주 시인 60주기 추모행사’를 취재하던 필자는 뜻밖의 소득을 얻었다. 윤동주 시인의 친척인 김태균(85·전 경기대학교 교수)씨와 연결이 된 것. 1986년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현재 토론토에 살고 있는 그는 은진중학교에 다닐 때 외5촌 조카인 윤동주 시인의 집에서 살았는데, 그것도 한방에서 2년 동안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1936년 당시 윤동주 시인의 시 창작 과정을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나중에 시집에 실린 것을 보니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김태균씨는 그 증거로 필자에게 ‘오줌싸개 지도’라는 동시를 두 가지 형태로 암송해줬다.
그러나 김태균씨는 홍장학 교사의 원전연구를 통해 제3의 ‘오줌싸개 지도’가 나타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필자가 그 시를 읽어주자 김태균씨는 “참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 세 개 중 내가 윤동주 시인과 함께 지내던 방에서 접한, 맨 처음의 ‘오줌싸개 지도’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윤동주의 시 창작과정을 ‘신동아’에 최초로 들려줬다. 그는 “내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윤동주 시인이다. 내가 국문학자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하면서 “암 투병으로 불편한 몸이지만, 내가 아는 윤동주의 한때를 늦게나마 증언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가 보내온 ‘김태균의 윤동주’ 중에서 일부를 원문대로 옮긴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