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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쓰마의 도자기 핏줄 심수관家 (상)

“그릇을 굽다가도, 꿈을 꾸다가도 불현듯 떠오르는 게 고향이더이다”

사쓰마의 도자기 핏줄 심수관家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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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의 도공(陶工)들. 돌무더기보다 조금 나은 ‘인간더미’가 되어 이름도 알 수 없는 땅에 표류한 지 400년. 대를 이어 조선의 옷을 입고 조선의 말을 쓰며 조선의 풍속을 지키며 조선을 그리워하던, 나에시로가와 도공 후손들의 못다 부른 망향가.
사쓰마의 도자기 핏줄 심수관家 (상)

도기 굽는 가마 앞에 선 심수관 14대. 가마 일은 선대 이래로 늘 25명이 팀을 이루어 해왔다고 한다.

가고시마의 조선 도공 핏줄인 심수관(沈壽官) 14대.

그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시바 료타로의 소설 때문이었다. ‘고향을 어찌 잊으리’라는 역사소설을 통해 사쓰마 도자기에 얽힌 드라마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게 벌써 20년 전 일이다.

시바의 소설은 곳곳에 일본 옛 문헌과 고어를 인용하고 있어 일부 이해하기 어렵거나 알 수 없는 대목도 있지만, 전편에 흐르는 조선 핏줄들의 기막힌 운명과 애환의 드라마는 가슴을 울리는 데가 있었다.

그 심씨를 참으로 우연히 마주친 것은 2002한일월드컵 직전 도쿄의 뉴오타니 호텔에서였다. 일본의 오부치 유코(小淵優子) 자민당 중의원 등과 함께한 식사자리였는데, 심씨와 나는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한번 만나서 긴 이야기 듣고 싶었다”고 이야기를 건넸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긴자(銀座)의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도자기 개인전을 열었는데, 200점도 넘는 작품이 모두 팔렸어요!”



심씨는 유쾌한 듯 자랑했다. 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에서 비싸기로 유명한 예술품인 심수관 도자기가 일거에 매진됐다는 것은 확실히 얘깃거리다. 그렇지만 수인사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쩐지 상업적 가치를 중시하는 ‘일본적’인 느낌을 풍긴다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이제 그를 만나러 간다니 그 느낌이 새롭다.

‘틀림없는 조선의 산하’

가고시마 공항에서 렌터카를 타고 가고시마현 히오키군 히가시 이치키 미야마(鹿兒島縣 日置郡 東市來町 美山)로 향했다. 그는 뉴오타니 호텔에서 만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2월의 아침, 날씨는 아직 쌀쌀하지만 햇살은 눈이 부시다. 어제 뿌린 비에 젖은 산하는 아침햇살에 점차 말라가면서 한결 부드럽고 안온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국에서라면 2월에 이렇듯 봄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미야마는 원래 나에시로가와(苗代川)였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국 제일주의 바람을 타고 마을 사람들이 단군신을 모시지 못하게 하는 조치와 함께 미야마로 이름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미야마 입구. 시바의 소설가다운 묘사가 아름답다.

‘낮은 능선 위로 하늘은 활짝 트이고, 그 밑에 바다가 숨어 있는지 일대는 온통 바닷물의 반사로 눈이 부셨다. 길은 화산재 때문인지 바랜 것처럼 하얗고, 나무란 나무는 일부러 그런 것처럼 엷은 연록색을 띠고 있다. 틀림없는 조선의 산하였다.

마을 자체가 일품이구나!

전에 이곳을 찾은 어느 고명한 도예가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집집마다 그렇듯 바랜 것처럼 하얀 길 양편에 사쓰마 특유의 푸른빛 감도는 돌담을 쌓아올렸고 그 위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대부분 가는 대나무나 나한송(羅漢松)으로 이루어진 생울타리는 숨은 마을이라고 해도 좋을 촌락의 풍경에 한결 가벼운 멋을 더한다. 거기 무사의 집 모양의 대문에 문패가 보였다. 심수관.’

그 사이 하늘은 다시 흐려져 빗방울을 뿌린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와이퍼 때문인지 시바의 묘사에 나오는 정경을 실감할 수가 없다. 더욱이 초행길이라 네비게이터(위성 지리 안내 시스템)에 집중하는 사이 차는 그의 집 대문 앞에 가 닿고 말았다.

일본식 가격표의 ‘정성스러움’

‘심수관요(窯)’는 찾기 쉬웠다. 간판이 또렷하다. ‘대한민국명예총영사관’이라는 문패도 걸려 있다. 아예 손님 주차장도 따로 있다. 승용차 30대는 족히 세울 수 있으리라.

‘대문을 들어섰다. 문을 지나 몇 발자국 가자 조그만 돌무더기가 눈에 띈다. 지금은 사라졌다고 들었지만 이 돌무더기는 과거 사쓰마 지역 무사가 살던 집의 특징이다. 적이 문 안으로 쳐들어왔을 때 이 돌무더기를 방패삼아 한번 더 싸운다고 했다. 뜰 오른쪽에는 아직 어린 벚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고 그 밑 닭장에는 날개가 꽤나 고운 사쓰마 닭이 들어 있다.

왼쪽 작은 문에 들어서자 안뜰에는 매화(臥龍梅) 한 그루가 땅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현관은 없고 손님은 안뜰 댓돌에서 바로 마루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14대 심수관씨가 근시안경을 낀 채 커다란 몸을 앞뒤로 흔들며 맞이해주었다.’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 일부)

하지만 내가 들어설 때는 이미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었으므로 매화고 벚꽃이고 현관이고 눈여겨볼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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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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