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여수가 폴란드의 브로츠와프, 모로코의 탕헤르와 경합을 벌이는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수 시민의 열망이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D-100일’을 일주일 앞둔 8월13일, 박람회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을 만나 막바지 준비상황을 들어봤다.
“세계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유라시아 대륙을 발판으로 당당히 서 있고, 여수와 남해는 태평양을 향하고 있습니다. 무역의존도가 국내총생산(GDP)의 70%가 넘고, 수입화물의 99%가 바다를 통해 들어오니 바다는 우리의 생명선이나 다름없습니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유치해 바다가 얼마나 보배로운지 깨닫는 기회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 지금까지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경쟁국에 대한 BIE(국제박람회기구) 실사와 6월 파리총회 이후 유치 경쟁이 훨씬 치열한 느낌입니다. 모로코는 국왕의 강력한 리더십과 왕실 외교를 바탕으로 유치교섭활동을 전개 중이고, 폴란드 또한 바웬사 전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워 회원국들에 지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범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BIE 회원국 대부분의 지지 결정이 142차 총회(11월26~27일) 직전에 이뤄지는 만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지난 4월에 있었던 BIE 실사 결과와 이번 총회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평가, 그리고 총회기간 중 유치교섭 활동성과 등을 고려할 때, 방심하지 않고 외교역량을 집중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 개최지 결정에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안정적인 박람회 개최능력, 인프라, 박람회 주제의 적합성, 박람회의 인류유산, 참가국 지원계획 등을 두루 평가하지만 무엇보다 회원국과 개최국의 외교관계가 중요합니다.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투표하는 스포츠 행사와 달리 회원국 정부대표가 정부의 결정대로 투표하는 방식이거든요.”
▼ 유치경쟁이 외교전이나 다름없는데, 모로코나 폴란드와 비교할 때 여수의 유리함 혹은 불림함이 있다면요.
“직접적인 유·불리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회원국 대상 외교공관 개설 등 수교현황을 비교해보면 우리가 다소 유리한 편입니다. 무엇보다 회원국들과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강점입니다.”
김재철 회장은 ‘회원국과의 긴밀한 우호협력관계’와 더불어 ‘개최능력과 주제’를 여수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세계 11위의 경제력과 88서울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2005부산APEC을 통해 검증된 국제행사 개최능력과 첨단기술 보유 등 객관적인 국가역량에서 우리가 경쟁국에 앞섭니다. 또한 ‘살아 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라는 주제가 최근 국제사회에서 이슈로 부각하고 있는 지구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과 부합합니다. 전 인류가 공동으로 직면한 위기상황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주제지요.”
▼ 세계박람회 하면, 1993년 대전엑스포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여수엑스포의 규모나 성격이 짐작될 듯한데요.
“대전엑스포와 여수엑스포는 BIE 공인 박람회로서 박람회 주제만 다를 뿐 전세계 100여 개 국가와 국제기구 및 기업들이 한곳에 모여 특정 주제에 대한 최첨단 기술을 전시한다는 면에서 그 성격과 규모가 유사합니다. 대전엑스포를 통해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듯이 여수세계박람회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서 지위를 확실히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남해안 관광벨트의 거점
▼ 지난 봄, BIE 실사단이 방문했을 때 여수 시민이 보여준 환대가 화제였습니다. 엑스포 유치를 통해 여수 시민이 기대하고 열망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요. 풍부한 해양개발 여건을 갖춘 남해안 일대는 세계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도로·철도·항만·공항 등을 확충할 경우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특히 여수항 일대가 관광·레저항만으로 거듭나면 남해안 관광벨트의 거점도시로 부상할 겁니다. 광양항을 기반으로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성장할 가능성도 높고요. 여수 시민은 여수 일대가 미래형 해양도시로 발전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 세계박람회를 유치했을 때의 파급효과가 여수에 국한되지는 않겠지요.
“여수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 세계 12위 수준의 국가 해양력을 2016년까지 세계 5위로 끌어올리고 21세기 해양선진국가 및 동북아의 허브로 발돋움하겠다는 국가경영전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의 ‘미래 국가해양전략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5위의 해양력 달성을 통해 37조원의 경제적 부가가치 및 150만개의 추가적인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역사상 바다를 지배한 민족이 세계를 지배했듯 바다의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개발할 줄 아는 국가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는 우리 국민에게 바다의 소중함과 가치를 새삼 일깨워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김 회장은 커다란 지구본을 놓고 “미주와 아시아를 잇는 최단 바닷길은 베링해협-쓰가루 해협(일본 혼슈와 홋카이도 사이)-ㅋ남해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부산항 광양항 목포항 등 항구가 많은 남해는 세계 무역항이 될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는 것. 1969년 배 한 척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해 그야말로 바다에서 성공을 건져 올린 김 회장은 우리의 무대는 좁은 반도가 아닌 넓은 바다임을 깨닫는 ‘발상의 전환’이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통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파리, 일본 오사카, 캐나다 밴쿠버, 포르투갈의 리스본은 세계박람회를 통해 세계적인 도시로 부상했다.
여수프로젝트, 여수선언
“프랑스 파리는 박람회 개최 덕을 톡톡히 본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1855년부터 1900년까지 5차례 세계박람회를 개최해 세계적인 관광·예술·패션·문화 중심지로 각인됐지요.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에펠탑은 1889년 열린 세계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임시 구조물이었습니다. 일본은 1970년 아시아 최초로 개최한 오사카박람회에서 하이테크산업을 집중 전시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가의 멍에를 벗고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요. 1986년 밴쿠버박람회는 1980년대 중반까지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캐나다 서부지역 발전을 앞당기고 밴쿠버가 태평양의 관문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1988년 포르투갈에서 개최된 리스본 박람회의 경우 정유회사, 도살장, 쓰레기 적치장 등으로 인한 기피 지역을 엑스포 부지로 활용함으로써 리스본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실패가 남긴 교훈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동계올림픽과 세계박람회는 개최지 선정 방식이 다르지만, 평창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부분은 있습니다.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때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지요. 지난 6월 파리총회에서 국왕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모로코의 탕헤르가 급부상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모로코와 2차 결선투표를 할 확률이 높습니다. 2차 투표로 갈 경우를 대비해 전략적으로 설득할 국가를 정하고 집중적인 유치교섭활동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 각국의 막판 총력전이 예상됩니다. 복안이 있다면.
“모로코는 아프리카·이슬람 최초 개최라는 명분을 강조하며 이 지역 표심(票心)을 자극하는 동시에 유럽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강조해 유럽의 표심도 공략하는 등 객관적인 논리보다 감성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EU 회원국으로서 BIE 회원국이 가장 많은 유럽지역 국가(36개국)들의 지지를 목표로 하고 있고요. 우리는 지구 환경 및 해양과제를 연구하는 ‘여수프로젝트’에 3000만달러를 지원하고, ‘여수선언’을 채택함으로써 지구 온난화와 환경파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 NGO들이 협력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그 어느 엑스포보다 많은 유산을 인류에게 남길 것임을 강조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