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직접 만나본 일진회 아이들

청부폭행, 性상납, 남자후배 윤간… 폭력과 섹스는 일상사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5-03-23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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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진회 서울 6만명, 전국 40만명 추산
    • ‘얼짱’ ‘몸짱’ ‘공부짱’ 발탁
    • ‘알 따먹기’ ‘터치’ ‘딸키’…
    • 록카페서 대규모 연합 모임 “못할 것이 없다”
    • ‘오토바이 따는 법’‘향수 훔치는 법’ 등 인터넷으로 전수
    • 주민증 위조해주고 술 파는 파렴치한 어른들
    • 경찰 단속하면 또 다른 조직 만든다
    직접 만나본 일진회 아이들
    눈이 유난히 커 보이는 김선희(기사에서 언급되는 모든 학생의 이름은 가명이다. 비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선배나 친구들에게 보복당할 수 있어서다)양은 중학교 3학년이다. 어른들에겐 귀염성 있게 보이는데, 일진회 선배들과 친구들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얼굴과 몸매가 통통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선희가 일진회 멤버가 된 뒤 선배 언니들로부터 자주 매를 맞은 것은 커다란 눈 때문이다. ‘노려본다’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 그가 생활지도부 교사에게 일진회 활동을 진술한 내용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만약 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텐데 이젠 후회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선희는 어느날 친구들과 한강 둔치에 놀러갔다. 그곳에서 여중생 몇 명을 만났다. 이들은 선희에게 다짜고짜 “너 놀거냐?”고 물었다. 뱀처럼 매서운 눈매, 생전 못 들어본 욕설에 기가 죽어 마지못해 “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일진회 멤버가 됐다.

    초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여름방학, 선희에겐 무시무시한 통과의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터치’라고 불리는 일종의 신고식이었다. 집이 빈 한 선배의 집으로 선희와 친구 몇 명이 불려갔다. 그곳에서 한 언니로부터 따귀 세 대를 맞았다. “선배들에게 깍듯이 인사하지 않은 죄”라고 했다. 이렇게 맞는 매는 ‘감정빵(감정을 상하게 만들어 맞는 매)’이라고도 했다. 분위기가 워낙 험악해 아픈 줄도 몰랐다.



    신고식은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선배들은 같이 온 친구들과 싸움을 하라고 했다. 마치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려내듯 싸움에서 이긴 학생이 또 다른 학생과 싸웠다. 얼떨결에 친구들과 싸운 선희는 언니들 표현으로 ‘짱’이 됐다. 선희에게 맞은 친구들은 구석에서 훌쩍거리며 울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자 선배들에게 돈 상납까지 해야 했다. 선희는 “맞고, 돈 모으고, 인사하고, 이런 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선배들이 요구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에게서 돈을 뜯었다. 처음이 어려웠지, 몇 번 하니까 요령이 생겼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 한 친구는 망을 보고, 한 친구는 초등학생을 골목으로 유인했다. 겁에 질린 아이에게 “너 얼마 있어?” 하고 묻는다. 대답을 망설이면 “뒤져서 나오면 죽는다”고 윽박지른다. 그러면 대개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놓는다. 선배가 요구하는 돈은 3만~4만원. 모자라면 매를 맞아야 한다.

    “그럼, 몇 대 맞을래?”

    시키는 대로 했지만, 선희는 자주 붙들려 가서 맞았다. 선배들을 노려본다는 이유에서다. 하루는 학교 근처 노래방으로 모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또 맞는구나’ 싶었다. 선생님께 털어놓을까도 했지만 그러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얘기해봤자 문제가 되는 학생 몇 명이 하루쯤 혼나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지만 선희는 끊임없이 시달려야 한다. 졸업하려면 2년이나 남았고, 전학을 가도 보복은 피할 수 없다. 언니들은 서울 시내 거의 모든 학교에서 논다는 친구들을 사귀는 것 같았다. 소문이 퍼지면 선희는 숨을 곳이 없어진다. 하는 수 없이 노래방으로 갔다.

    이미 한 선배가 20명이 들어갈 만한 방을 잡아놓았다. 2, 3학년 선배들 10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2학년 선배 하나가 “노래방 주인이 기웃거리면 그냥 노래 부르는 척해라”고 주의를 줬다.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3학년 선배 중에서도 가장 싸움을 잘한다는 언니가 일어나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평소에 인사를 잘 하지 않고, 돈을 제대로 모으지 못해 불렀다. 무릎 꿇고, 손은 뒤로 하고 앉아라.”

    그러더니 바닥에 침을 뱉고는 그 위에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선희의 교복이 침과 담뱃재로 얼룩졌다. 그래도 눈을 꼭 감았다. 눈을 뜨면 더 맞는다.

    “선희, 너, 잘못한 게 뭐야?”

    “돈도 못 모으고, 인사도 안 하고…”

    2학년 선배 하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맞는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 같았다. 3학년 선배가 말했다.

    “그럼, 몇 대 맞을래?”

    “…30대.”

    그러자 2학년 선배들이 집단으로 선희를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따귀를 때리다가 강도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배까지 걷어찼다.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노래책, 마이크, 탬버린으로 맞은 것 같기도 했다.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마치 생리하는 것처럼 배가 아프고 하혈이 있었다. 하혈은 6주 동안 계속됐다.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서야 겨우 하혈이 그쳤다. 선희는 생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사는 “자궁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배를 맞은 것이 원인이었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다그쳤지만, 아무런 얘기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맞았지만 학교생활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선배들이 조직적으로 선희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학생부 교사에게 일진회 활동 일부를 폭로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소문이 나면 ‘사실’이 됐다. 교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조용히 살아라. 나대면(나가서 비밀을 폭로하면) 까버린다’는 휴대전화 메시지가 수없이 들어왔다.

    서울 17개 區 연합 결성

    견디다 못한 선희는 한 달 동안 결석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교사의 도움으로 그간의 일이 드러났다. 선희의 부모는 학교를 찾아와 가해 학생들을 모두 만났다. 마음 같아선 모두 고소하고 싶었지만, 딸의 장래를 위해 용서해주기로 했다. 선희는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제 막 어린아이 티를 벗은 선희는 마치 남의 얘기하듯 지난 일을 털어놓지만 언제 어느 때 악몽 같은 기억이 선희를 옥죌지 모른다. 속으로 멍든 상처가 쉽게 지워질리 있겠는가.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정세영 교사는 5년 동안 일진회를 추적하면서 160개 학교에 다니는 1000여명의 학생들을 지도했다. 이들에게서 받은 진술서만 700여 쪽에 달한다. 그는 확보한 진술서에 이름이 올라 있는 학생들을 서울과 경기도 소재 학교로 찾아가 만나 붙잡고 설득했다. 시간만 나면 인터넷에 접속해 일진회 사이트를 찾아다녔다. 성인 동영상을 올리고, 일탈을 모의하는 사이트를 발견하면 사이트를 운영하는 학생을 찾아가 ‘마스터’의 지위를 넘겨받았다. 사이트의 마스터가 되면 성인 동영상을 삭제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 일진 활동을 그만두라는 글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진회의 심각성은 돈과 폭력, 그리고 섹스의 문화가 선배로부터 후배들에게, 한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파급되면서 점점 강화·확장된다는 데 있다. 2000년 교육정보화사업이 마무리되면서 모든 학교에 인터넷망이 깔렸고, 학생들은 인터넷 이용방법뿐 아니라 홈페이지 만드는 기술까지 익히고 있다. 2003년 초등학교와 중학교 일진을 대상으로 ‘서울연합’이란 홈페이지를 만든 조혜진(현재 중3)양처럼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학교 일진회 사이트를 만들었다.

    새로운 기술은 일진회 학생들을 단결시키고, 못된 버릇을 전파하는 쪽으로 악용됐다.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 동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범죄수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주로 물건 훔치는 법과 훔칠 때 망보는 법을 공유했고, 남학생들은 싸움하는 법이나 오토바이 훔치는 법을 공유했다. 중학교 2학년 최동훈군의 말이다.

    “오토바이 따는 열쇠를 ‘딸키’라고 불러요. 만능열쇠 같은 거죠. 선배들이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줘요. 만들기 쉬워요. 여자애들은 주로 큰 서점에서 향수 훔치는 법을 배워요. 훔칠 때는 후배들과 꼭 함께 훔친대요.”

    폭력과 섹스는 동전의 앞뒤

    정 교사는 일진회 학생수가 서울 6만명, 수도권까지 넓히면 20만명이고, 전국적으로는 4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우려스런 것은 이들이 연합을 결성한다는 사실이다. 서울연합은 2002년에 만들어졌다. 강동구·용산구·광진구 등 3개 구내 학교의 일진 연합으로 출발한 서울연합은 2003년 6개 구로 확장되고, 현재는 17개 구 일진 연합으로 확대됐다고 한다. 여학생 연합 역시 17개 구의 일진들이 모여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연합이 결성됐다는 증거는 없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아직 사회의 규범을 잘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어떤 일을 도모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아이들은 모여서 오토바이를 타고, 디스코텍에 춤을 추러 간다. 때론 여관을 잡아놓고 밤새 술을 마시기도 한다. 이러면서 섹스가 시작된다. 일진이란 조직을 만든 주요한 이유도 이성교제 때문이다. 놀다 보니 돈이 필요하고, 돈을 얻기 위해 폭력을 쓰고 후배를 시켜 돈을 빼앗는다. 학생들에게 폭력과 섹스는 동전의 앞뒤처럼 뗄 수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김세준군은 중학교 2학년 때 일진회에서 여학생을 사귀었다. 이성교제가 시작되면 선배와 후배들에게 신고식을 해야 한다. 이를 ‘깔식’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약혼식이다. 세준이도 노래방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8초 정도 키스를 한 것 같아요. 나쁜 짓은 안 했어요. 그뒤엔 홈페이지에 우리 관계를 알렸죠. ‘터치’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여자친구가 질투를 하면서 일이 벌어졌다. 세준이에게 새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착각한 여학생은 노골적으로 그 여학생을 해코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친하게 지내던 일진 남학생에게 청부 폭력을 부탁했고, 여자친구로 오인받은 여학생은 성폭행까지 당했다.

    직접 만나본 일진회 아이들

    교실 내 폭력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교사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남학생만 성폭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여학생들은 예쁘장하게 생긴 후배 남학생을 집으로 끌어들인다. 한 여학생이 강제로 발기시키고, 돌아가면서 섹스를 시킨다. 이를 ‘알 따먹기’라고 부른다. 때론 후배들이 알아서 남자와 여자 선배들에게 ‘성 상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조폭을 연상케 하는 이들의 성폭행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이들에게 연애란 ‘평생 변하지 말아야 하는 약속’ 같은 것이다. ‘깔식’을 하고 난 뒤엔 부부처럼 행동하고 잠자리를 같이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학생들은 애정 관계에 싫증을 낸다. 여학생에게 남학생은 그저 잠시 들렀다 가는 정거장이다. 그러면 남학생들은 상처를 입는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학생들은 종종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신지은양은 1년 전 일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게 털어놓았다.

    “남자는 서울의 한 공업고교에 다니는 오빠였고, 여자는 제 친구의 친구였어요. 골목길에서 그 오빠가 여학생에게 무릎을 꿇고 빌고 있는 것을 제 친구들이 봤대요. 들어보니까 ‘다시 만나달라’고 하더래요. 가뜩이나 창피한데 후배들이 보고 있으니까 갑자기 달려오더니 제 친구를 때렸어요. 그런데 친구의 머리가 땅에 부딪혔고, 움직이질 못하는 거예요. 그걸 보고 오빠 친구들이 ‘죽은 것처럼 연기한다’고 더 때렸대요. 결국 친구는 죽었어요. 웃기는 건 장례식장에 때린 오빠가 왔다는 거죠. 그 오빠 아버지가 높은 사람이라는데, 며칠 감옥살이하다가 아버지가 힘써서 나왔대요.”

    지은이도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한 명은 선배였고, 한 명은 같은 또래였다. 선배는 공부도, 싸움도 잘했다고 한다. 또래 친구는 인간성이 좋아서 사귀었다. 지금은 둘 다 헤어졌지만, 또래와 헤어질 때는 힘들었다. 헤어지자는 말에 남자친구는 칼을 꺼내들고는 지은이의 목에 대려고 했다. 다행히 옆에 있던 친구들이 말려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지은이는 그 남자친구가 또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일진회 선배 중 그 친구보다 싸움을 잘하는 선배와 사귀었다.

    중학교 2학년 최홍서군. 말은 어눌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싸움을 잘하게 생겼다. “홍서가 짱이라며?” 하고 물어보니 “제가 그렇게 보이세요?” 하면서 얼굴이 환해졌다. 아이들에게 짱은, 군인으로 치면 별을 단 것과 같다. 누구도 그 앞에서 대들지 못한다. 학급에선 왕 대접을 받는다. 친구의 옷이 마음에 들면 자신의 옷과 바꿔입는다. 그래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만큼 뿌듯한 것이 없다. 일진에 들어가는 것도 반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홍서는 주먹이 빨라 인근 학교에까지 소문이 자자하다. 3학년 선배들의 권유로 근처 4개 학교의 ‘짱’과 붙어 모두 눌렀다. 싸움은 신사적인 싸움과 지저분한 싸움으로 나뉜다. 주먹으로만 승부를 내는 것이 신사적 싸움이라면, 돌이든 막대기든 무기를 써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지저분한 싸움이다. 신사적으로 끝내는 것이 보통이다. 홍서는 주먹으로 강동구 일대 학교의 ‘선수’들을 물리쳤다. 결국 3학년 선배들이 만장일치로 홍서에게 “네가 일짱 먹어라” “너밖에 인물이 없다”고 인정해줬다.

    이후 홍서는 강동구 연합모임에서 2학년 대표 리더가 됐다. 연합에서 ‘짱’은 ‘리더’로 불리면서 지위가 격상된다. 연합 리더가 다른 학교에 가면 그 학교 일진 학생들은 리더에게 ‘굽실거린다’고 한다.

    홍서는 리더가 됐지만 싸움질에 싫증이 났다. 일진에서 나가려고 했지만 “학교 성적이 평균 90점은 넘어야 빠질 수 있다”는 말에 낙담했다. 공부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예팅’과 키스 게임

    중학교 3학년 이수경양은 서울에서 일진회 멤버였을 때 놀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선배들의 폭력 때문에 경기도의 한 중학교로 전학왔지만 서울 신촌의 한 콜라텍(학생들이 주로 가는 디스코텍. 술을 팔지 않는다)에서 놀던 것만큼은 다시 해보고 싶다.

    “가끔 서울 친구들이 ‘일콜(하루 콜라텍을 빌려 노는 것)’ ‘일락(하루 록카페를 빌려 노는 것)’한다고 알려주면 정말 가보고 싶어요. 여기는 너무 심심해요.”

    중학교 1학년 때 수경이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연합 모임에 따라간 적이 있다. 장소는 신촌의 한 록카페. 서울은 물론 경기 구리시에서도 학생들이 왔다는데, 500명쯤은 되는 것 같았다. 오전 10시부터 놀기 시작해 오후 3시까지 야한 게임을 즐기면서 신나게 놀았다.

    눈에 번쩍 띄었던 게임은 학생들이 스테이지에 올라가 옷을 벗고 춤추는 것이었다. 가장 섹시하게 추는 참가자에게 상금 5만원과 담배 한 보루가 주어졌다. 이렇듯 늘 게임에는 보상이 뒤따른다.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없는 학생들에겐 ‘노예팅’의 기회가 주어진다. 참가자들이 앞으로 나오면 마치 물건을 경매하듯 가격을 불러 가장 높이 부른 학생에게 낙찰시킨다. 3만원에 낙찰되면 참가자는 1만원을 받고, 주최측은 2만원을 챙긴다. 그리고 주최측은 참가자들이 서로 사귈 수 있도록 한쪽에 테이블을 마련해준다.

    커플들의 키스 게임도 흥미진진했다. 누가 가장 뜨겁게 키스를 하고,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냐를 겨룬다. 역시 상품은 상금과 담배. 담배는 이들에게 빠지지 않는 품목이다. 술은 마시지 않아도 담배는 피운다. 심지어 담배 빨리 피우기 게임을 하기도 한다. 누가 먼저 불씨를 바닥에 떨어뜨리는지 내기를 하는데, 불씨가 떨어지려면 필터 끝까지 피워야 한다. 여학생들은 담배 피우기보다 요구르트 빨리 먹기 내기를 하면서 논다. 그래도 상품은 담배 세 갑.

    그 다음은 수경이가 가장 좋아하는 ‘베스트 드레서’를 뽑는 시간이다. ‘일락’에선 무조건 튀는 옷을 입어야 한다. 어떤 학생은 한복을 입고 오는가 하면 잠옷을 입고 오는 학생도 있다. 2003년 여름방학 ‘일락’ 때는 바닥까지 끌리는 긴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온 3학년 여중생이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됐다. 그는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드레스 앞에는 망사 레이스를, 등 뒤엔 커다란 모자를 달아 눈길을 끌었다. 일락에 오기 전 여학생들은 동대문 시장을 돌면서 입고 갈 옷을 산다. 유행을 고려해야 하고, 적당히 명품 냄새가 나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일락에서 보여준 아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일탈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조직폭력배들처럼 이권 다툼으로 번진다. 한 번 일락을 개최할 때마다 벌어들이는 250만~500만원의 입장료 수입 때문이다. 경쟁적으로 일락을 개최하다 보면 참가하는 학생들이 분산되기 때문에 일락 개최를 앞두고는 심심치 않게 싸움이 벌어진다.

    선배 참가비 벌려고 아르바이트

    ‘일락’ 참가비를 마련하기 위해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일주일씩 아르바이트를 한다. 선배들 참가비까지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경이도 피자집 전단지를 돌려 선배 두 명에게 2만원씩 상납했다. 200장의 광고 전단지를 돌리면 2000원을 받는 데 수경이는 일주일 동안 전단지를 돌렸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힘없는 후배들을 착취하는 방법을 배우고 또 전수한다.

    오후 3시 일락 행사가 끝나면 대부분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일부는 남아서 술집으로 향한다. 아직 미성년자이지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가장 흔한 방법이 위조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 인사동에 가면 학생들에게 주민등록증을 위조해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증명사진 한 장을 들고 가면 즉석에서 만들어준다는 것. 1만5000원만 있으면 된다.

    또 다른 방법은 화장을 짙게 하고 가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워낙 성숙해서 화장을 하면 몰라볼 정도로 어른 티가 난다. 번거롭게 주민증을 위조하거나 짙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술집도 얼마든지 있다. 불경기라 장사가 안 되다 보니 학생들에게 버젓이 술을 파는 업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들어가면 술집 주인은 문을 잠가버리고 단속에 대비한다.

    서울에만 6만여명이 있다는 일진회를 왜 학교 교사들은 막지 못하는 것일까. 우선 교사들은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대부분이 여교사들이라 아이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가늠조차 못한다. 또 조직을 만들고 어떻게 유지하는지 이해하는 여교사들도 많지 않다. 여교사들은 ‘설마 저렇게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그런 짓을 할 리가…’ 하면서 믿으려 들지 않는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교사들도 있다. 한 중학교 교사는 “매일 처리해야 하는 자잘한 업무가 너무 많다. 아이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들은 교사들의 이런 약점을 잘 안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사들 역시 잊힐 만하면 언론에서 교사들의 부정을 폭로하는 바람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자부심을 갖지 못한다. 이 틈을 타고 아이들은 교실을 장악한다.

    학생들은 학교의 경계를 허물고 넘나들면서 노는데, 교사들은 재직하는 학교 안에서만 지도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교사들은 설사 자신이 담당하는 아이가 다른 학교 학생과 어울려 못된 짓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아도 다른 학교 학생을 교육시킬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 물론 상대 학교의 교사에게 사실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는 없다. 한번 나무라서 될 아이들이라면 이렇게 일진회가 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모와 나는 피만 섞였을 뿐!”

    최경진양은 일진 놀이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일진 놀이가 싫지 않았다. 반에서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는 것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 정문을 나서면 다른 학교 일진 친구들이 경진이를 기다렸고, 반 친구들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사귀는 경진이를 부러워했다. 무엇보다 싸움으로 경진이를 이기는 친구가 없었다.

    “1학년 때부터 싸움 잘한다는 소문이 나야 해요. 그러면 친구들은 내가 관리하는 홈페이지에 놀러와요. 예쁜 얼굴 사진을 올려놓고, 일기엔 명품 신발을 샀다는 얘기를 써요. 우리집 사진도 올려놓죠. 그러면 친구들이 ‘경진이는 싸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집도 부자’라고 소문을 내요. 그때부턴 친구들이 나를 우러러보죠. 공부는 좀 못해도 돼요. 공부말고 잘하는 것이 많으면 친구들이 더 좋아해요.”

    일진 생활을 즐기던 경진이는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곧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 가야 하는데 지금 실력으로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젠 일진 놀이가 싫어졌어요. 지금은 제가 친구들을 무시하고 있지만, 나중에 커서 다시 만날 때를 생각하면 좀 그래요. 친구들은 훌륭한 학생이 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 그때부턴 내가 무시당할 차례잖아요.”

    앞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할 거냐고 묻자 경진이는 이렇게 말했다.

    “일진 언니나 오빠들하고 상의했더니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해보라’고 했어요. 저는 신문기자, 아나운서 아니면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올해는 3개월씩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논술학원에 다니면서 글쓰기 연습하고, 그 다음 3개월은 웅변학원에 가서 아나운서 연습하고요. 나머지 3개월은 옷 디자인하는 학원에 다닐 생각이에요. 이중에서 질리지 않는 것을 찾고 싶어요.”

    부모와 상의했냐고 물었다.

    “부모와 저는 피는 섞였지만, 겪는 인생은 달라요. 엄마도 제게 조언을 해줄 수 있지만, 언니 오빠들의 조언이 더 마음에 들 때가 많아요.”

    네 자녀를 둔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이란 부모 몰래 얼마나 사고 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시도하는 세대”라고 말한다. 사고는 치는데 꼭 끼리끼리 한다는 것이 아이들의 특성이다. 동아리를 만들어 폐쇄적으로 운영하면서 그 안에서 어떤 것이든 시도한다.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서로 입단속을 한다. 어른들이 몰라야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게 청소년들이다.

    부모 노릇은 탐정처럼

    이런 자녀들을 부모가 현명하게 지도하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알아도 모르는 척해주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부모 중 한 사람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줘야 한다. 대화가 끊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부모는 사소한 단서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탐정처럼 아이들의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진이는 부모와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이지만, 언니 오빠들과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요즘엔 일진 놀이를 하는 대신 ‘잘 노는 아이들’의 모임에 참석한다고 한다. 예전처럼 짜릿한 맛은 없지만 그렇다고 경찰이 단속한다는 일진 놀이를 계속할 수는 없다.

    학생들은 일진회라는 이름은 버릴 수 있어도, 마음이 맞는 선후배와 친구들을 사귀고 어울리는 것만큼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사회에 충격을 주는 놀이문화로 변질이 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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