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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웰빙

영상의학자 정태섭 - X선 작품 제작

“과학과 예술 사이에 경계선이 있나요?”

  • 글·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jikija@donga.com

영상의학자 정태섭 - X선 작품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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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학자 정태섭 - X선 작품 제작

언뜻 정신없어 보이는 그의 연구실 구석구석엔 언제든 ‘깜짝 선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갖가지 재료와 도구들이 자리잡고 있다.

“의사라면 환자는 물론 지역 주민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의사 자격만 갖고 연구에 소홀한 채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 매달린다면 그것도 한심한 일이다. 그래서 정 교수는 익히 갖고 있던 손재주를 활용하고,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전공 안에서 찾았다. 집도 병원에서 도보 10분 거리로 옮겼다. 남들이 골프클럽을 사고 필드에 나갈 때 그는 오늘날 X선 기기의 모태인 튜브며 1700~1800년대 현미경을 수집하고 과학사를 공부했다. 오늘날 병리학에 쓰이는 기기들이 과거 상류층의 고상한 취미에 사용됐음을 알고, ‘예술 하는’ 기분으로 그것들을 조작해보면 이골이 난 자신의 전공분야가 예술적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실제로 X선 기기의 원조 격인 호리병 모양의 튜브 안엔 꽃 모양의 형광물질이 있어 튜브 밖에서 전기를 통하게 하니 화려한 불빛이 만들어졌다. 또 수백년 된 현미경으로 당시 만들어진 슬라이드를 들여다보니 사방 1mm도 안 되는 작은 이물질의 정체가 한 가족의 초상화였다. 정 교수는 이런 재미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오는 가을, 대한영상의학회에서 ‘뢴트겐 역사과학교실’을 연다.

그의 책상 앞에 걸린 ‘다정한 해골사진’은 X선으로 촬영한 그의 가족사진이다. 사진 판독이 주업인 그는 10년 전쯤 CT 사진을 정리하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뇌 단면에 하트 모양이 자리잡고 있고, 척추 단면은 마치 돼지머리를 찍은 것 같은 모양새였던 것. 무심코 보면 골치 아픈 암 덩어리이고, 흔하디흔한 척추뼈일 뿐인데 하트며 돼지코로 보기 시작하니 같은 사진도 더 열심히 들여다보고, 이미 본 것도 다시 보게 됐다. 신기한 발견은 환자들에게도 웃음을 줬다.

불현듯 ‘작품’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틈날 때마다 진단장비로 나뭇잎이며 과일, 카메라 등을 찍었다. 일반 카메라로 촬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그러다 네 식구가 X선 기기 앞에 섰다. 정 교수는 가족해골사진에 가족과 사회, 전공 등 자신이 애정을 품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아마 환자 대신 사물을 찍는 독특한 취미가 없었다면 고된 의사 생활을 버텨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정 교수는 “오는 3월, 작가가 된다”며 으쓱해했다. 그동안 만들어놓은 X선 작품 사진을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하게 된 것. 후배 의사에게 부탁해 입에 브로치를 물게 한 뒤 X선으로 촬영한 사진(기형도 시인의 대표작 ‘입속의 검은 잎’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등을 선보인다.



정 교수는 “예술과 과학이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창의적이고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점에서 결국 같다”고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다.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는 아마도 과학적이면서 예술적인 감성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의술이 단순히 죽음을 지연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니까.

신동아 200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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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jik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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