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회장은 현대아산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5년 10월 감사비리 파동으로 물러났다. 그가 퇴출당한 직후 북한 아태평화위(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담화를 통해 “북한과 현대의 신의를 저버린 처사”라며 현대측을 강력히 비판했다.
김 회장이 재기의 움직임을 보인 건 지난해 8월. 서울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내고 아천글로벌을 설립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이 회사는 대북사업의 선도기업인 현대아산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북한산 농수산물과 식료가공품의 육로 교역, 평양 시내 아파트·오피스텔 건축, 북한산(産) 모래의 부산항 반입, 북한 인력 중동 송출 등 아천글로벌이 북측과 합의했다고 발표한 사업은 하나같이 현대아산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7월19일 개성발 육로를 통해 북한산 농수산물을 들여온 아천글로벌은 “남북간 본격적인 육로 교역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에 앞서 6월21일엔 북에서 양식한 철갑상어를 동해쪽 육로로 들여와 눈길을 끌었다.
현대아산측은 통일부에 아천글로벌의 대북사업을 문제 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는가 하면 언론을 통해 ‘김윤규 때리기’에 나섰다. 8월2일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개인비리로 물러난 사람이 회사 영업 기밀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것은 도덕적,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김 회장을 비난했다.
“누구 것을 빼앗을 생각 없어”
김윤규 회장이 현대아산을 공격하는 발언을 삼가지 않았다면 인터뷰가 더욱 흥미로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김 회장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했다. 비록 ‘공격적 방어’이긴 했지만. 그는 대북 육로 교역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나는 육로로 교역한 것을 대단하게 여기는데 주변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아요.”
▼ 이미 개성공단 상품들이 육로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죠. 살아 있는 철갑상어가 육로로 넘어왔잖아요. 하긴 여러 사람이 ‘저놈 미쳤다’면 미친 거지. 나 혼자 대단하다고 해봐야…. 하여튼 난 자부심이 있어요. 어떤 회사에서는 남이 하려던 것을 빼앗은 게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누구 것을 빼앗을 생각이 없어요.”
▼ 현대아산 말이죠?
“현대아산은 자기네가 하려 한 것을 내가 바깥에 나가 자기네 아이디어로 하는 것 아니냐고 해요. 하지만 그 아이디어, 내가 (현대아산에 있을 때) 낸 거예요. 물론 아산도 하면 되지요. 모든 유통업자가 편하게 북측과 교역해야죠. 난 항상 아산이 중심이 돼 대북사업이 잘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현정은 회장에게 감정 없어요.”
서울대 공대를 나와 1969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그는 현대건설 사장, 현대아산 사장을 지내며 정주영·정몽헌 회장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다. 세간에서는 그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재수 전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일컬어 ‘가신(家臣) 3인방’이라 했다.
▼ 36년간 몸담았던 현대를 떠날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정주영 회장님 덕분에 나는 그다지 힘들게 살아온 것 같지 같아요. 지금도 날 지켜주시는 것 같고. 그분 아니면 조 기자가 나한테 인터뷰하자고 했겠어요? 다 그분의 영향력이죠. 정주영 마니아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분의 매력은 참 대단합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분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그분은 큰 사업을 할 때 계산을 하지 않았어요. 자동차를 처음 만들 때 이렇게 말씀했어요. ‘야, 일본놈도 하는데 우리라고 왜 엔진 못 만드냐, 미쓰비시에 가서 엔진 기술 따와라….’ 그렇게 배워 오늘날 현대를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로 만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