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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의 작가 열전

떠도는 영혼을 지닌 작가 윤후명

“문학은 패자(敗者)에게 피어나는 연꽃, 난 죽어도 써요”

  •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떠도는 영혼을 지닌 작가 윤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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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의 그림자

떠도는 영혼을 지닌 작가 윤후명
윤후명 선생은 요즘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헤르만 헤세는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황지우 시인의 조각 솜씨는 대단히 뛰어나다. 문인이 문학의 주변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직접 붓을 든다는 것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다. 육순을 넘긴 선생의 마음자리에 원고지말고도 큰 캔버스가 펼쳐졌다. 그것은 이제 서서히 예술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는 전조로 보였다.

선생의 그림 중에 한 점이 최근 출간한 소설집 ‘새의 말을 듣다’ 표지화로 장식되어 있다. 두 산 봉우리 사이로 새가 날고 있는 모습인데, 새는 섬새이고, 산 봉우리처럼 보이는 것은 동도와 서도, 2개의 섬으로 된 독도를 의미한다. ‘새의 말을 듣다’라는 제목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표지에 씌인 ‘그림 윤후명’을 보고, 동명이인의 화가가 있나 싶어 여쭸더니, 그림도 그린다면서 “나 요즘 이렇게 살고 있소” 한다. 선생의 그림은 그간 쓴 소설에 그 뿌리가 있다. 글로 써내기만 해서 마음속에 잔영으로 찍힌 이미지를 화폭으로 옮기는 것이다.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훈련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은 수년 전부터 관심이 있어 어떤 화가에게 사사했는데, 그분이 남을 전혀 가르쳐본 적이 없어 ‘그냥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라’는 참으로 어려운 말을 해서,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꼼꼼하게 선 하나 긋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기초를 다지고 다시 그 화가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림을 시작한 지 이미 수년이 지났다.



“그림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고 아마추어 때는 쉽고 재미있지만, 점점 그것을 알아가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고뇌도 생기게 마련이라 만만치가 않아요. 하지만 그림에는 특별한 욕심이 없어서 그냥 나 좋은 대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있겠다 싶지요. 특히 문학과 미술은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문학은 글로 쓰고, 그림은 그려서 보여주는 것이잖아요.”

음악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해, 즉 음(音)을 통해 뭔가를 보여준다면 그림과 문학은 보이는 것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의 그림자를 내리는 것이지 싶었다. 선생은 요즘 그림을 많이 그린다.

진짜 술꾼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다가, 42세에 요절한 박정만 시인 얘기가 나왔다. 선생은 자신과 박정만을 술꾼이라고 한다. 진짜 술꾼이 사라진 요즘 선생의 술 이야기에 일단 구미가 당겼다.

“지금은 몸 때문에 맥주를 먹지만, 한때는 맥주를 술로 보지도 않았지요. 그런 내가 대적한 진짜 술꾼은 박정만이에요. 그 사람, 아마 술 때문에 저 세상으로 간 걸 거야. 정만이는 25일 연속으로 마신 적이 있고, 나는 보름이 최고 기록입니다. 그러고는 소설가 이문열 정도가 술꾼이지.”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그때 술만 그렇게 드셨나요.”

선생은 빙그레 웃으면서 답했다.

“곡기는 다 넘어와. 다른 음식은 다 토하고, 술을 그 자리에다 넣는 거지. 매일 소주 7병을 먹었지. 소주(알코올 도수)가 30도 혹은 25도 하던 시절이야. 요즘 소주는 20도 안 되지. 그거 술 아니야.”

이야기가 술로 시작된다. 보통 처음에는 차를 마시고 다음에 술로 넘어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지 하고 생각하며 맥주잔을 들었다.

이 글이 더 취하기 전에 일단 선생의 이력부터 더듬어본다. 선생은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69년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는데, 대학 다니던 1967년 ‘경향신문’에 시가 당선됐고, 1979년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됐다. 시집으로 1977년에 낸 ‘명궁’과 1992년에 낸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등이 있고, 소설집 ‘둔황의 사랑’ 이외에 다수, 장편소설 ‘별까지 우리가’, 산문집 ‘꽃’, 장편동화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등이 있다. 녹원문학상, 이수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선생은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까지 살았다. 강릉 임당동에서 어머니는 담배장사를 하셨다고 했다. 담배장사라,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쟁 중이었고, 선생의 고향은 바다가 가까운 마을이 아니어서 농업이나 어업 같은 생활수단도 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닷가까지 걸어가려면 어린 걸음으로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몇 번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고즈넉한 시골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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