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히든 챔피언</b><br>헤르만 지몬 지음 이미옥 옮김 흐름출판
그러나 세월이 흘러 독일 경영학은 퇴조했다. 미국 경영학의 도도한 물결을 당해내지 못했다. 프랑스도 20세기 초반엔 유명한 관리학자 페이욜을 필두로 한 독자적인 경영학 체계를 가졌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미국 경영학에 잠식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명문 경영학 학교인 ‘엥세아드’에서는 대부분 미국 경영학 교재로 강의한다. 영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국은 경영학이라는 신생 학문에서 난공불락의 패권을 잡았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주요 기업들의 성공 신화가 있었다. 특히 초국적 기업은 글로벌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영학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적격이었다. 또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은 경영학 석사(MBA)가 입사하고픈 ‘로망’의 대상이어서 ‘미국 경영학=MBA=월스트리트’라는 등식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러나 2007년부터 불거진 월스트리트발(發) 금융위기 탓에 미국 경영학의 신화는 퇴색했다. ‘미국에서 배운 경영학대로 따라 하다가는 기업이 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길 만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저명한 경영학자가 쓴 ‘히든 챔피언’은 유럽 시각에서 추출한 신선한 아이디어를 독자에게 듬뿍 안겨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빛난다. 연구실에 앉아 자료만 분석해서 쓴 책이 아니다. 저자가 20년 동안 해당 기업을 직접 방문해 관련자를 만나고 성공 요인을 세심히 관찰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베개만큼 두툼한 이 책을 독파하고 나면 저자의 깊은 내공을 느끼리라. ‘유럽 경영학계의 자존심’이라는 칭호를 들을 만한 학자라는 점에 동의하리라. 주로 대기업을 다루며 대기업에서 배우는 것만이 정답인 듯 여기는 미국 경영학에 대해 반기(叛旗)를 든 기개와 통찰력이 돋보인다. 이 책이 미국에 소개됐을 때 미국 독자 역시 좋은 반응을 보였다. 15개 언어로 번역 출판됐다.
▼ Abstract ’’’
이 책을 읽으면 독일 경영학 르네상스의 견인차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전문 학술서적은 아니다. 우량 중견기업의 성공요인을 분석한 이 책엔 ‘세계시장을 제패한 숨은 1등 기업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저자는 ‘히든 챔피언’을 고를 때 △세계시장에서 1~2위 또는 소속 대륙에서 1위 △매출액 40억달러(한화 기준 5200억원) 이하 △대중에게 덜 알려진 기업 등 3개 기준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찾은 2000여 개 글로벌 기업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이들의 공통점으로 △세계시장 지배 △성장세 뚜렷 △생존 능력 탁월 △대중에게 알져지지 않은 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 △진정한 의미에서 다국적 기업과 경쟁 △결코 우연이나 기적으로 성공을 이루지 않았음 등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 상위 500개 기업의 성공 요인을 집중 분석했다.
히든 챔피언들의 공통점은 다른 기업이 모방하기 어려운 혁신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만든 제품을 당당하게 제값을 받고 판다. 풍력발전에 쓰이는 회전날개 생산업체 에네르콘의 사례를 보자. 창업자 알로이스 보벤은 회사를 세운 1984년 이후 기술 혁신에 집중했다. 임직원 수가 1만명으로 늘었는데도 보벤은 품질 향상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한다. 에네르콘은 이 분야 세계 특허의 40% 이상을 가졌다. 거대 기업인 지멘스도 에네르콘에 로열티를 내야 한다. 풍력발전 분야에서 에네르콘은 ‘메르세데스 벤츠’로 불린다. 에네르콘은 자사 제품을 운반할 특수선박을 제작하는 조선회사에도 독자적인 기술을 제공한다.
‘글로벌 전략’이라는 말은 현대적이며 듣기 좋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려면 국제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임직원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정신적, 문화적 세계화는 글로벌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는 데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다. 히든 챔피언 기업들의 여러 베스트 프랙티스를 분야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성장과 시장지배력= 히든 챔피언의 목표는 ‘성장’과 ‘시장지배력’이다. 지난 10년간 히든챔피언들의 매출액은 2배 이상 늘었는데 놀랍게도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비슷한 성장률을 보였다. 시장지배력은 점유율만 늘리면 되는 게 아니라 혁신, 품질, 신망 등과 같은 요소와 어우러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