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환상과 실재 사이에 다리를 놓아라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입력2008-12-09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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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이라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공감각적이다. 종합지(綜合知:synosia)는 이러한 공감각의 지적 확장을 말하는데, 공감각이 미적 감수성의 가장 고급한 형태라면 종합지는 궁극적인 이해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앎과 느낌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통합한 것을 말한다.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고의 상태에 이른 종합지적인 사고의 모습이다. -본문 중에서
    환상과 실재 사이에                      다리를 놓아라

    <b>생각의 탄생</b><br>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지음 <br>박종성 옮김 에코의 서재<br>원제 : Sparks of Genious

    2007년 각종 베스트셀러 순위(인문교양 부문)를 장식했고 ‘올해의 책’ ‘한 권의 책’, 동아일보 선정 ‘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까지 온갖 추천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던 책이 ‘생각의 탄생’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스트라빈스키 등 너무나 유명하기에 더 이상 궁금할 것도 없는 천재들을 앞세운 이 책이 이토록 화제를 모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 땅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게 천재들의 업적에 감탄하고 박수치는 구경꾼 노릇에 머물지 않고 ‘13가지 생각도구’를 활용하면 창조적 발상법도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흔히 생각하듯이 ‘창조성’이란 하늘이 몇몇 사람에게 선택적으로 베푼 은혜가 아니라, 전인(全人)을 길러내는 통합교육(13가지 생각도구)을 통해 누구나 연마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또 그동안 전인을 기르는 인성교육보다는 언어습득과 논리적 사고, 분석력 등 지식교육에만 치중해온 한국 교육계에 반성과 변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이 주장하는 ‘전인을 위한 통합교육’이야말로 ‘신 르네상스인’(Renaissance Man)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왜 다시 ‘르네상스인간’인가. 이 책에 따르면 심리학자들의 오랜 관찰 결과, 혁신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비해 보다 광범위한 지식 활동에 참여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대부분 ‘박식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Abstract



    13가지 생각도구를 설명하기 전에, ‘무엇을 생각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전환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자. 세기의 천재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은 “연구 성과는 면밀한 의도나 계획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바로 나온다”고 했다.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영혼의 집’ ‘파울라’ 등을 쓴 칠레 작가)도 “책은 내 마음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뱃속 어딘가에서 떠오른다. 그것은 내가 접근하지 못한 대단히 어둡고 비밀스러운 장소에 숨겨져 있으며 내가 그저 모호한 느낌으로만 짐작하는 것, 아직 형태도 이름도 색깔도 목소리도 없는 그런 것이다”라고 했다.

    이들이 말하는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것, 뱃속 어딘가에서 떠오르는 것을 우리는 간단히 ‘초논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가장 근접한 개념이 ‘직관’이다. 수학자든 물리학자든 작가든 조각가든 창조적 작업을 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직관’이라는 생각의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왜 논리가 아닌 초논리이며, 이성이 아닌 직관인가. 19세기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논리와 직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했다.

    “우리가 뭔가를 증명할 때는 논리를 가지고 한다. 그러나 뭔가를 발견할 때는 직관을 가지고 한다. 논리학이라는 스승은 우리에게 장애물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애초에 원했던 목표 지점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 지점을 보아야 하는데, 이 목표 지점을 보라고 가르치는 스승은 논리학이 아니라 바로 직관이기 때문이다. 직관이 없는 기하학자는 문법에 통달했지만 사고는 빈약한 소설가처럼 될 것이다.”

    그러나 주입식 교육으로 대변되는 현대 교육의 문제점은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을 분리시키는 데 있다. 즉 이해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외워서 아는 데 그친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을 응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이와는 반대의 교육적 실패도 있다. 아이들은 시소놀이를 할 때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가 중심에 가깝게 앉고 적게 나가는 아이가 중심에서 멀리 나가야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을 배워서가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 안다. 하지만 ‘무게×거리’의 공식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시소놀이라는 ‘실재’는 있으나 이론이라는 ‘환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해졌다. ‘알기’와 ‘이해하기’ 그리고 ‘환상’과 ‘실재’가 하나가 되도록 결합하는 일이다. 환상과 실재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13가지 생각의 도구다.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13가지 생각의 도구를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으로 분류한다. 이들은 따로따로 작동하기보다 앞의 도구에 의지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처럼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유추는 패턴 인식과 패턴 형성에 의지하며, 패턴화는 다시 관찰에 의지한다. 놀이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모형 만들기와 같은 생각도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 13가지 도구를 자유자재로 사용한 한 천재의 사례를 보자.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된 홍지현(성균관대 약학과 재학). 세 살이 넘을 때까지 ‘으흥’과 ‘따’ 두 마디밖에 못하던 아이가, 네 살이 되면서 글을 깨치고 여섯 살에는 동화를 짓더니,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자신이 지은 창작동화를 들고 동화구연대회에 나갈 정도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 우연히 연극 서클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1년 만에 자신의 창작희곡으로 당당히 신춘문예에 당선했다. 습작을 포함해 세 편 만에 거둔 성과였다. 이후 홍 양은 전공인 약학에 푹 빠져 지낸다(‘동아일보’ 2007년 4월23일자 ‘21세기 신천재론’).

    홍 양은 보통 사람보다 말과 행동이 느린 편이다. 대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포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취미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다(관찰). 연극에 심취했을 때는 1년간 한 달 평균 12편씩 144편의 연극을 보고 100여 편의 희곡을 읽었다. 그 속에서 수열의 법칙을 찾듯 규칙성을 발견했다(패턴 인식과 패턴 형성). 또 희곡을 읽으면 바로 대사가 귀에 들렸다(형상화).

    ▼ About the author

    이 책의 공동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미시간 주립대학 생리학과 교수이고, 부인 미셸은 역사학자이다. 특히 생리학은 생물의 기능이 나타나는 과정이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로, 최근 인간의 물리적· 정신적 세계를 총체적으로 구명(究明)하고자 하는 ‘뇌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심리학, 정신분석학, 신경학과 함께 주목받고 있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생각의 탄생’을 토대로 현대 교육시스템 개선을 주장하는 한편, 이를 기업 경영에 접목시키는 작업으로 ‘과학적 창조경영의 창시자’로 불리기도 한다.

    ▼ Impact of the book

    ‘생각의 탄생’이 탄생하게 된 주요 목적은 교육시스템 개선이었다. 그래서 이 책 마지막 장에 ‘전인(全人)’을 길러내는 통합교육의 8가지 기본 목표가 제시돼 있다.

    첫째, 학생들에게 보편적인 창조 과정을 가르칠 것. 둘째, 창조 과정에 필요한 직관적인 상상의 기술을 가르칠 것. 셋째, 예술 과목과 과학 과목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다학문적 교육을 수행할 것. 넷째, 혁신을 위해 공통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교과목을 통합할 것. 다섯째, 한 과목에서 배운 것을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할 것. 여섯째, 과목 간의 경계를 성공적으로 허문 사람들의 경험을 활용할 것. 일곱째, 모든 과목에서 해당 개념을 다양한 형태로 발표하는 법을 가르칠 것. 여덟째, 상상력이 풍부한 만능인을 양성할 것. 덧붙여 저자들은 “교육의 목적은 모든 학생이 화가이자 과학자로서, 음악가이자 수학자로서, 무용수와 공학자로서 사고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경영 분야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특히 그동안 추상적인 개념의 나열이나 일회성 구호에 그쳤던 ‘창조 경영’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창조 경영 방법론은 앞서 제시한 ‘전인(全人)’을 길러내는 통합교육의 8가지 기본 목표와 맥락을 같이한다.

    루트번스타인 교수가 특히 한국 기업에 성과와 혁신 창조 방법 중 하나로 제안한 것이 ‘놀이(열한 번째 생각 도구)’다. 그는 “놀이는 모순적이지만 가장 창의적인 생각의 도구”라며 “회사를 벗어난 곳에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3배가량 높아지는 점이 놀이의 효용성을 잘 보여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Impression of the book

    ‘생각의 탄생’은 조기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속성재배에만 몰두하는 한국 교육에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학문 간 높은 벽을 허물고 ‘학제적 연구’를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그 경계를 뛰어넘으려면 여전히 큰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우리 학계에도 왜 지식 대통합이 필요한지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궁극적 목표가 교육시스템 개선에 있는 만큼 기업이나 조직이 기대하는 창조 경영의 사례와 분석으로는 부족하다는 점도 밝혀둔다. ‘창조적 발상법’을 보다 넓은 영역에서 적용한 사례를 모으고 분석한 결과는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Tips for further study

    환상과 실재 사이에                      다리를 놓아라
    ‘통섭’(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사진)은 저명한 생물학자이며 과학저술가인 윌슨이 ‘consilience’라는 개념(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처음 사용한 용어)으로 학문의 미래를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을 번역한 최재천 교수는 ‘consilience’를 ‘통섭’이라고 옮겼다. 윌슨은 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으로 분화된 학문이 앞으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으로 양분되며 사회과학은 궁극적으로 인문학에 흡수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파편화된 학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과학과 인문학의 대통합을 주장한 책이다.

    ‘21세기 신천재들’(동아일보 문화부 지음, 동아일보사). ‘생각의 탄생’이 역사적 천재들의 창조적 발상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다면, 이 책은 8가지 다중지능 이론을 바탕으로 천재들을 분석한 책이다. 이 책 집필에 참여한 서울대 문용린 교수는, 신동이란 타고난 능력이 비범한 사람을 가리키고, 천재란 업적이 비범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구분한 뒤 신동을 천재로 키우려면 타고난 능력도 중요하지만 소질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 그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생업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정환 옮김, 청어람미디어)는 일본 최고 명문인 도쿄대생들의 지적 수준 하락이 망국적인 지경에 이르렀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지적 수준 하락을 막기 위해 교양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특히 현대 사회의 교양에 뇌과학, 생명과학, 정보과학과 같은 과학 분야가 동참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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