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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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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사상은 과거의 사상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사상입니다.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뛰어난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전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어쩌면 오늘날처럼 속도가 요구되는 환경에서 너무나 한가롭고 우원(迂遠)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가 쌓아가고 있는 모순과 위기 구조는 근본 담론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에서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b>강의</b><br>신영복 지음 돌베개

신영복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감옥과 바깥 세상에서 각각 20년을 살았는데,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정보가 전혀 없는 감옥 안에서는 철저히 이론적인 추리, 자기 성찰적인 사고가 가능했다. 출소 이후 정보는 넘쳐나지만 오히려 혼란스러워 과거 논리적 사고가 더 절실해졌다.”

‘강의’는 그가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 강독’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강의를 녹취해서 인터넷 신문에 연재한 뒤, 그것을 다시 정리해서 펴낸 책이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고전 읽기의 단초를 제공한 20년 옥살이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방에 앉아서 생각한 것이 동양고전 다시 읽기였다고 한다. 이처럼 20년을 곰삭은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은 출간되자마자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고전의 내용을 강의하기보다 오늘날의 여러 당면 과제를 고전을 통해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신 교수는 책을 출판하면서 ‘저자’라는 호칭에 대한 부담도 토로했다.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바탕으로 역대의 뛰어난 주석과 해설에서 견해를 취해 풀이(述)했을 뿐 무엇 하나 지은(作)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겸손일 뿐이다. 신 교수는 ‘관계론(關係論)’을 화두로 삼아,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법가’를 차례로 훑어나가며 그 속에 담긴 뜻과 현실 문제를 연결 짓는 새로운 고전 독법을 보여준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존재론(存在論)’에 있다면, 동양 사회의 그것은 ‘관계론’이라는 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이다. 여기서는 인간(人間)을 인(人)과 인(人)의 관계로 이해하고, 한 개인이 맺고 있는 여러 층위의 인간관계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인성(人性)이라고 말한다. ‘논어’에서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라고 한 것이 바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성을 가리킨다. 인간을 기본적으로 사회적 인간이라 보았을 때 사회성은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된다. 동양 사회는 이러한 인성을 고양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동양 사상의 특징인 인간주의다.

▼ Abstract

저자의 긴 서론 다음엔 ‘시경’에 대한 해설이 이어진다. 3000여 년 전 중국의 시가 305편을 엮은 ‘시경’ 가운데 절반이 넘는 ‘국풍(國風)’은 각 제후국의 채시관(採詩官)들이 백성의 노래를 수집한 것이다. 이런 노래를 수집한 이유는 민심을 읽고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이 오래된 시에서 저자가 발견하고자 한 것은 사실성과 진정성이다. ‘여분(汝墳)’이라는 시에는 은나라 말기 전쟁터나 건설 등의 사역에 동원되었다가 몇 년째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가난한 여인의 모습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거짓 없는 생각이 시의 정신’이라는 저자의 해설에 귀 기울여 보다 보면 어느새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정호승의 ‘종이학’, 임화의 시 앞에 다다른다. 저자가 굳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으로 ‘강의’를 시작한 까닭은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며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방대하고 난해한 책으로 유명한 ‘주역’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저자는 ‘주역’에 담긴 사상을 ‘손때 묻은 오래된 그릇’에 비유한다. ‘주역’은 분명히 점을 치기 위해 만든 책이지만, 수천수만년에 걸친 경험의 누적이 만들어낸 일종의 ‘법칙성’이라고 봐야 한다. 왜 춘추전국시대에 이러한 책이 쓰였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기까지의 혼란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불변의 진리를 갈구한다. 바로 그러한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을 정리한 책이 ‘주역’이다. 여기서는 ‘주역’ 그 자체를 읽기보다는 기초 개념 등 ‘주역’을 읽기 위한 준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이데올로기로 군림해온 사상이 유학이라면 그 중심에는 공자의 ‘논어’가 있다. ‘논어’는 춘추전국시대에 수많은 담론이 경쟁을 벌일 때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에 두고 설명한 것이 특징이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가 사회의 근본이라는 덕치(德治)의 논리는 당시 매우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맹자’는 연목구어(緣木求魚),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호연지기(浩然之氣)와 같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숙어의 출전이기도 하다. 또한 ‘맹자’는 농가, 병가, 종횡가 등 당시의 다른 사상을 많이 소개하고 비판하고 있어 제자백가의 사상을 가장 폭넓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맹자의 글은 매우 논리적이어서 한문 문학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맹자가 공자를 잇는 사상가냐, 공자에 대한 최대의 이단자냐는 상반된 견해를 염두에 두고 ‘논어’와 ‘맹자’를 비교해서 읽는 것도 흥미로운 고전 독법이 될 것이다.

저자는 ‘노자’가 ‘논어’보다 동양 사상의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유가 사상은 서구 사상과 마찬가지로 나아감 즉 ‘진(進)’의 사상인 데에 반해, 노자의 사상은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귀(歸)’의 사상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제자백가의 사상을 노자를 한 편으로 하고 여타 학파를 다른 한 편으로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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