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호

이재명, 개딸 향한 “또금만 더 해두때여”에 담긴 깊은 뜻

[강준만의 회색지대] ‘만독불침 선생’ 이재명의 ‘정치팬덤’ 관리술③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3-07-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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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년 전 親文 팬덤 정치 답습한 李

    • 안방에서 적을 맞게 된 親文

    • ‘수박 금지령’에 개딸들 “X소리”라며 반발

    • 개딸 반발에 7명이던 친명계, 63명으로

    • ‘문재인 보유국’이라던 親文 다 어디에…

    • “개딸들 놀이터 될 것” 우려 현실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월 16일 경기 안성시 죽산면 농가에서 청년농업인 현장 간담회에 앞서 수박을 먹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월 16일 경기 안성시 죽산면 농가에서 청년농업인 현장 간담회에 앞서 수박을 먹고 있다. [뉴시스]

    2022년 6·1 지방선거는 윤석열 정권의 대승으로 끝났다. 민주당의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윤호중·박지현과 비대위원들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실질적으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이재명과 당내 친명 강경파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책임론’이 제기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8월 전당대회를 염두에 둔 권력 쟁탈전에만 매몰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경파 초선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김용민은 지방선거 패색이 짙어지던 6월 1일 저녁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개혁 세력일 때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이를 잊지 않을 것이고 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의 이유를 민주당이 ‘개혁 입법’을 충분히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것에서 찾으면서 기존의 당권 장악을 강화하겠다는 ‘적반하장 논법’이었다.

    문재인의 성공 흉내 낸 이재명

    이재명과 강경파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개딸’이었다. 6월 3일 민주당의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이재명을 옹호하는 글로 도배가 됐다. 작성자들은 이재명에게 선거 패배의 책임을 물은 진영을 겉과 속이 다른 ‘수박’으로 지칭하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3·9 대선 패배 직후 한꺼번에 가입한 20만 명에 가까운 권리당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개딸 등 이재명 지지자들의 공세였다.

    이는 11년 전 문재인과 친문그룹이 선보였던 민주당 장악 수법을 그대로 흉내 내 답습한 팬덤 정치의 결과였다. 즉 2011년부터 민주당이 ‘열린 정당’을 표방하면서 온라인 권리당원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키워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온라인 당원 가입이 허용되면서 2015년 친문 성향 지지자가 10만 명 이상이 입당했고, 이를 계기로 민주당의 색깔이 완전히 친문으로 변모했던 사건이 이제 이재명에 의해 재현된 것이다.(중앙일보 2022년 6월 3일, 8일자 기사 참고)

    당시 홍보 전문가로 영입돼 ‘10만 양병’의 가공할 마력을 지켜본 손혜원은 이제 이재명의 열혈 지지자가 됐다. 그는 이재명의 대선 패배 직후 “지지자 100만 명이 권리당원으로 가입해 전당대회 하지 말고 무투표로 (이재명을)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월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권을 정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 게 바로 이 모델이었다. 100만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문재인의 경우처럼 ‘10만 양병’이면 충분했지만, 매사에 용의주도한 이재명은 문재인보다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임으로써 ‘20만 양병’에 근접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현재의 민주당은 소수 강경파의 주장에 따라 매번 정체성을 바꾸는 ‘무(無)정체성 정당’에 가깝다”며 “강경파들에 좌우돼 정체성까지 무시하는 팬덤 정치로는 수권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적어도 당권을 장악하는 데엔 이런 팬덤 정치 모델보다 더 나은 방법은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대통령 탄핵처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정치적 대사건이 일어나면 문재인처럼 손쉽게 정권을 잡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재명에게도 그런 행운이 다시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은 취임 한 달 만에 지지율이 뒷걸음질친 최초의 대통령이 됐으니 말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긴 했다. 6·1 지방선거를 통해 방탄용 금배지는 달았을망정 교도소에 갇힐 수도 있는 위기에 직면한 이재명의 처지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이재명은 ‘민주당의 방탄화’와 더불어 ‘팬덤의 방탄화’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2022년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개표종합상황실에서 6·1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윤호중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앞줄 왼쪽부터) 등 지도부가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2022년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개표종합상황실에서 6·1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윤호중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앞줄 왼쪽부터) 등 지도부가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11년 전 스스로 판 무덤에 갇힌 親文

    민주당에선 날이 갈수록 이재명을 비판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친명 의원들의 반격이 가해지는 건 물론이고 지지자들의 거친 공격도 심해졌다. 민주당이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전락한 현실을 비판한 홍영표의 인천 부평구 지역구 사무실 출입구엔 6월 6일 ‘나잇값 못하는 노망난 할배’라고 적힌 대형 대자보까지 부착됐다. 사무실 문과 복도까지 이어진 3m가량의 대자보엔 “치매가 아닌지 걱정된다”는 문구와 함께 ‘중앙치매센터 상담’이라며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또 홍영표의 낮은 대중적 인지도를 언급하며 “시기, 질투에 눈 돌만 하다”는 내용의 메시지도 있었다.

    ‘대자보 테러’에도 불구하고 홍영표는 6월 8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하면서 이재명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에 대해 “당이 원해 출마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하루 2000여 통의 비난 문자를 받고 지역구 사무실 문을 봉쇄하는 대자보까지 붙었다”며 “이런 것들을 말리고 비판해야 할 영향력 있는 어떤 사람들이 ‘그냥 잘한다’는 식이니 폭력적 행태가 갈수록 심해진다”고 했다.

    사실 개딸들의 폭력적 배타성에 대한 증언은 민주당 주변에서 흘러넘쳤다. 이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선 “친문재인계가 지난 11년 동안 당원 권리는 극대화했지만, 책임은 지우지 않는 형태로 당을 변모시키면서 벌어진 참극”이며 “친문그룹이 안방에서 적을 맞는 심정일 것”이란 말이 나왔다. 친노·친문계가 당을 장악하기 위해 팬덤을 당내로 끌어들였지만, 이는 그런 수법에 훨씬 능수능란한 이재명에게 꽃길을 열어준 것과 다를 바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이라고 해서 친문의 그런 운명을 피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진중권은 “처음엔 자기들이 이용하려고 선동도 하고 세뇌도 시켰겠지만 일단 선동되고 세뇌당한 대중은 자기 동력을 가지고 자기들의 환상, 자기들의 욕망을 추구한다”며 “이재명이 당대표가 되면 민주당은 영원한 구제불능의 상태가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나치 독재는 일인 독재가 아니라 대중 독재였다”며 “자, 이게 다 여러분 스스로 창조한 천국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세요. 몰락을 (…) 오르가즘을 느끼면서”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개딸에 쫓기는 친문, 11년 전 스스로 판 무덤에 갇혔다”고 했다.

    6월 9일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도 이재명의 팬덤 정치에 대해 “민주당이 4·7 재·보궐선거부터 세 번 연거푸 진 것도 저런 강성 팬덤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며 “강성 팬덤이 자산일 수는 있지만 거기 끌려다니면 망하는 길”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재명의 8월 전당대회 출마에 대해선 “대통령선거 떨어지자마자 이러는 후보는 처음 본다”며 “본인을 위해 안 나오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렇듯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이재명은 페이스북 글에서 “사실에 기초한 토론과 비판, 설득을 넘어 ‘이재명 지지자’의 이름으로 모욕적 언사, 문자폭탄 같은 억압적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모멸감을 주고 의사표현을 억압하면 반감만 더 키운다”며 지지자들의 자제를 요청했다. 이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시늉처럼 보였다. 열혈 친명계 의원인 안민석은 이런 요청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선 패배로 역사의 죄인이 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돌팔매 대신 문자폭탄 정도는 감수하는 것이 도리”라며 “문자가 무섭다면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수박 기득권자’ 외치던 이재명 아닌가

    2022년 6월 22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 위원장은 ‘수박’이란 단어가 분란을 조장하자 “앞으로 ‘수박’, 이런 단어 쓰는 분들 가만 안 놔둘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개딸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뉴시스]

    2022년 6월 22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 위원장은 ‘수박’이란 단어가 분란을 조장하자 “앞으로 ‘수박’, 이런 단어 쓰는 분들 가만 안 놔둘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개딸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뉴시스]

    갈수록 심해지는 당내 분란과 관련해 새 비상대책위원장 우상호는 6월 12일 “앞으로 ‘수박’, 이런 단어 쓰는 분들 가만 안 놔둘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힘만으론 그렇게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재명도 당내 대선후보 경선 기간 “수박 기득권자들”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을 정도로 애용했기에 이재명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수박 타령’은 끝나기 어려운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재명의 속내를 잘 아는 열혈 지지자들이 가만있을 리 만무했다.

    우상호의 ‘수박’ 금지령 직후 민주당 홈페이지 내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수박’이란 단어로 도배됐다. 대부분 우상호를 비난한 것이었다. 한 당원은 “비대위(원장) 시켜놨더니 또 X소리 하고 자빠진 우상호 씨”라며 “XX 떨지 말고 민주당에서 꺼져주길 바람”이라고 썼다. 다른 당원은 ‘이재명을 당대표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수박 척살”이라고 했다.

    이재명을 옹호하는 일에 ‘인간 이재명’이란 책을 흐느끼며 읽었다는 정청래가 빠질 리 만무했다. 그는 6월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팬덤 정치’와의 결별을 주장하는 당내 의원들을 향해 “팬덤은 무죄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정치인이 문제”라며 “팬덤을 욕할 시간에 왜 나는 팬덤이 형성되지 않는가 성찰해 보라”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도 이재명을 응원하는 팬덤이 부러우면 이재명처럼 실력을 연마하고 지지받을 생각을 해야 한다”며 “괜한 시기와 질투심으로 이재명을 응원하는 국민과 당원을 향해 눈 흘기지 마시라”고 했다.

    이에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한때 애정하고 존경했던 정청래 의원”이라고 밝히면서 “세상이 변하면 국민들의 생각도 변하고 상황과 조건에 따라 의원의 역할도 변한다”며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생각도 성숙해지고 민심을 대하는 태도도 더 겸손해져야 하는데 참으로 한결같다”라고 에둘러 정청래를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 이탄희 등 초선의원 11명이 6월 14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대선·지선 평가 연속토론회(2차)’에서 스토리닷 대표 유승찬은 ‘민주당, ‘탈 팬덤 해방일지’를 써라’라는 발제를 통해 대선과 지선의 참패 원인 중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팬덤 정치를 들며 “민주당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고까지 비판했다. 팬덤 정치 자체가 민주적 규범의 파괴이며 그로 인해 지지층이 ‘환멸’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팬덤 현상을 놓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시작됐으나 문재인, 이재명을 거치며 점점 정치 훌리건으로 흑화했다”며 “이재명 의원 출근 때 화환이 늘어서 있는 것은 대체 무슨 풍경인지, 이런 문화를 지지층 중도층이 좋아할까”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도 태극기 부대 등과 같은 극단 세력과 결별했는데 민주당은 그 반대로 가고 있으며, 원로 회의나 중진 회의조차 무력화된 상태라고 했다.

    6월 23~24일 이틀간 열린 민주당 워크숍에서 이재명에겐 ‘전대 불출마’ 압박이 가해졌다. 이재명과 한 조에 배정된 홍영표는 조별 토론에서 “이 의원이 출마하면 나도 출마를 고민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면 당내 갈등이 커질 것”이라며 동반 불출마를 요구했다. 전체 토론에서는 설훈이 “이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안 된다”고 말했고, 재선의원을 대표한 정춘숙도 “대선·지선 패배에 책임 있는 분들은 전당대회에 나오면 안 된다”고 했다. 이재명은 6월 27일 권노갑(92)·김원기(85)·임채정(81)·정대철(78)·문희상(77) 등 민주당의 상임고문 다섯 명과 비공개 오찬 회동을 했는데 여기서도 사실상 전대 불출마를 요청받았다.

    당대표 자리를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방탄으로 여긴 이재명에게 전대 불출마는 생사(生死)의 문제로 여겨졌기에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가 믿는 건 오직 팬덤이었다. 이재명은 6월 25일 밤 11시 30분부터 26일 오전 1시 30분까지 트위터를 통해 지지자들과 문답을 나눴고, 이어 7월 2일 오전 1시쯤부터 2시간가량 지지자들과 트위터에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한 지지자의 트위터 글도 리트윗하는 등 이런 메시지에서 팬덤 정치의 동력을 충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댓글 정화, 가짜뉴스 팩트 체크하면서 울 이잼(지지자들이 이 대표를 부르는 애칭)님 기사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지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 해드리고 싶고 지켜드리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당원들의 승리? 개딸들의 승리

    7월 5일 민주당 비대위는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가 확정한 ‘당대표 예비경선(컷오프)의 일반 여론조사 30%’ 안을 수용하지 않고, 기존 ‘중앙위원회 100%’안으로 변경했다. 당에 오래 몸담았던 중앙위원들의 투표로 당대표 후보 3명을 가려 본선을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자 친명계는 “이렇게 되면 이재명 의원이 컷오프될 수 있다”며 반발했다.

    안규백 전준위원장은 “비대위가 전준위와 전혀 교감 없이 (전대 룰을) 결정했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 169명 중 63명이 비대위를 비판하는 연판장에 서명하며 사실상 친명계 편에 섰다. 결국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하루 만에 전준위가 확정한 ‘여론조사 30%’ 안을 받아들이겠다며 수정안을 거둬들였다.

    이에 대해 처럼회와 친명계 의원들은 “당원들의 승리”라고 치켜세웠는데, 괜한 말은 아니었다. 이재명의 극성 지지자들인 개딸들은 “비대위 안은 이재명을 떨어뜨리기 위한 농간”이라고 주장하면서 항의의 뜻으로 민주당 당사 앞에서 수박을 깨는 항의 집회를 열었고, 7월 6일 삭발식을 하겠다고 예고했으니 말이다.

    권력이란 게 이런 거였나? 지난 대선 초반 이재명을 따르던 의원은 정성호·김영진·김병욱·김남국·문진석·임종성·이규민(전직) 등 ‘7인회’로 대표되는 7명이 전부였다. 대선을 거치고 국회에 입성, 당대표 도전이 기정사실화한 시점에서 7월 5일 친명계 좌장 정성호 등이 주도한 ‘비상대책위 비판 연판장’엔 하루 만에 민주당 의원 63명이 서명할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당내에선 “친명계가 전당대회 룰도 좌지우지할 만큼 커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격세지감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재명은 7월 9일 새벽 0시 58분부터 2시 45분까지 18개의 답글과 글을 남기고, 여러 지지자의 글을 리트윗하는 등 이른바 ‘트위터 마실’을 즐겼다. 한 지지자가 ‘저희 가족 전부 민주당원 가입할 때 추천인에 이재명 쓰고 입당했다’는 글을 남기자, 이재명은 “참~잘 해떠요(했어요)” “또금만(조금만) 더 해두때여(해주세요)”라며 애교 섞인 글로 답장을 보냈다. 이재명은 7월 11일 새벽 시간대에도 트위터에서 지지자들과 그런 ‘새벽 소통’을 즐겼다. 한 지지자가 “이미 당원 가입을 했는데, 뭘 더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자, 이재명은 “댓글 정화, 커뮤니티 활동”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박지현은 “정치인이 ‘아이돌’도 아닌데 애교를 왜 부리나. (…) 그게(애교) 정치인의 덕목은 ‘절대 아니다’라고 본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한 유튜버가 집을 찾아왔던 테러 이후, 이 의원이 팬덤들에게 ‘박지현을 향한 비난과 억압을 멈춰라’라는 메시지를 냈다. 팬덤들이 거기에 서운함 표하니까, 이 의원이 그날 밤새 팬덤에 애교를 부리면서 화난 사람들을 달래더라. (…) 그 밤에 애교(‘또금만 더 해두때요’)를 왜 부리냐. 그 사람들 달래려고 ‘나 좋아하니까 싫은 소리 한 건 한 번만 봐달라’ 이런 거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이재명의 애교 부리기는 그 나름의 깊은 뜻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도 이재명이 지지자들과 소통하면서 애교를 떨면 떨수록 그들은 이재명에 대한 충성도가 강해지면서 더 과격해지는 모습을 보이곤 했으니 말이다.

    ‘의원 욕하는 플랫폼’ 만들자던 이재명

    2022년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태, 박찬대, 고민정 최고위원, 이재명 대표, 정청래, 서영교 최고위원. [뉴시스]

    2022년 8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태, 박찬대, 고민정 최고위원, 이재명 대표, 정청래, 서영교 최고위원. [뉴시스]

    7월 26일 이재명의 아내 김혜경의 ‘법인카드 불법 유용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4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주변 의문의 죽음이 벌써 네 번째로 오싹하다”고 했지만, 이재명은 담담한 모습을 보이면서 7월 28일 새벽 1시쯤부터 개딸 지지자들과 트위터에서 공개 대화를 했다.

    지지자들은 “이 힘든 걸 성남시장 시절부터 겪은 이 의원님, 너무 죄송하다” “날조 기사들 너무 많이 나와서 화나는데 다들 열심히 (댓글) 정화하고 있어요” “뉴스 댓글 걱정하지 말라잔아(잖아) 가좍(팬)들이 책임 진다잔아(잖아)”라고 했다. 이재명은 이 같은 글을 리트윗(공유)하거나, “20년 넘도록 꾸준하게 당해온 일이라 새롭지도 않다” “실천하는 동지들이 있어 이제 든든하고 행복하다” “고맙잔아(잖아)” 등의 답글을 남겼다.

    7월 30일 이재명은 강원 강릉시에서 열린 영동지역 당원 및 지지자 만남에서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을 특정인한테 엮는다”며 “나라가 무당의 나라가 돼서 그런지”라고 했다. 이어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검찰, 경찰의 강압 수사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게 이재명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참 어처구니없다”며 “저는 염력도 없고 주술도 할 줄 모르고 장풍도 쓸 줄 모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상식적인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 의원이 본인과 연관 의혹이 있는 사건 관계자의 연속적인 죽음을 해명한다며 대한민국을 ‘무당의 나라’라고 표현하는 망언을 했다”며 “제1야당의 유력한 당대표 후보 수준이 이처럼 천박하고 상스럽다는 것에 참담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대한민국 정치 수준을 몇 단계나 끌어내리려는 것인가?”라고 했다. 윤희숙 국민의힘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 관련 수사 중 사람이 죽었는데 무당의 나라? 본인을 안 찍은 국민은 무식해서?”라며 “인간 존중, 사람에 대한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정치인 이재명”이라고 했다.

    이날 이재명이 경북 안동에서 열린 경북 북부·중부지역 당원 및 지지자를 대상으로 한 ‘토크콘서트’에서 한 말은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내용이었다. “당원들이 당에 의사를 표현할 통로가 없다. 그래서 의원들의 번호를 알아내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당에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서 욕하고 싶은 의원을 비난할 수 있게 해 ‘오늘의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의원’ ‘가장 많은 항의 문자를 받은 의원’ 등 (일간·주간·월간 집계를) 해보려고 한다.”

    이에 당 안팎에서 다음과 같은 비판이 빗발쳤다. “자신과 반대의견을 내놓는 소신을 숫자로 겁박하고자 하는 의도”(민주당 의원 박용진), “자칫하면 이는 온라인 인민재판과 같이 흐를 우려”(민주당 의원 강훈식), “강성 지지자들에 편승하고 이용하려는 얄팍한 행태”(민주당 의원 이상민), “자신에게 비판적인 민주당 인사들에게 마구잡이 난사를 하려는 모양”(국민의힘 의원 김기현), “마구 조롱하고 짓밟고 물어뜯는 ‘광란의 플랫폼’을 만든다는 것”(전 국민의힘 의원 전여옥).

    도대체 왜 그랬을까? 자신의 발언이 뜨거운 논란이 되리라는 걸 몰랐을까? 그랬을 리 없다. 논란이 되더라도 피가 끓는 흥분을 좋아하는 강성 지지층의 열렬하고 화끈한 환영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게다. 몸에 밴 버릇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SNS 대통령’으로서 이른바 ‘좌표 찍고, 벌떼 공격’ 전술에 능했으니 말이다.

    “그 많던 친문들이 씨가 말라버린 것 같다.”

    8월 초순, 민주당 전당대회가 이재명과 친명계 독주로 치러지면서 당내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말이었다. 당 안팎에서는 “이 의원과 친명, 강성 지지자들인 개딸까지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사실상 문재인 정권을 이끌다시피 했던 친문 팬덤은 과연 독립적이고 주체적이었던가. ‘그렇다’고 답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과장된 표현일망정 그 많던 친문이 “씨가 말라버린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는데, ‘독립’과 ‘주체’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8·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명 진영은 선출직 최고위원(5명)도 최대한 친명계 주자로 채우기 위해 “특정 친명계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 안 된다”는 분산 투표 캠페인을 펼치고 있었다. 친명계의 그런 탐욕이 놀랍다기보다는 친문이 그런 ‘친명계 싹쓸이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씨가 말라버렸다는 게 놀라웠다. ‘“이재명 탈당하라”던 그 당 맞나… 친문도 ‘李 호위무사’ 됐다’는 제목의 ‘중앙일보’(8월 16일) 기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런 놀라움을 표현했다. “2년여 전까지만 해도 ‘당원권 정지’ 상태에 놓여 있던 이 후보가 ‘압도적 1위’ 조짐을 보이는 데 대해, 당내에선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평가가 나온다.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된 것처럼 당내 세력지도의 변화가 급격하다는 의미다.”

    민주당 DNA는 ‘내로남불’과 기회주의인가

    당내 세력지도의 변화보다는 그 많던 친문 지지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상전벽해가 더 놀라웠다. “우리 이니 마음대로 해”라거나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까지 외치던 친문은 다 어디로 갔기에 문재인의 흔적마저 지워가면서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기 위한 온갖 무리수가 저질러져도 아무런 말이 없는 건지 기이하기까지 했다. 혹 민주당의 DNA는 ‘내로남불’과 더불어 ‘기회주의’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8월 26일 민주당은 온갖 무리수 끝에 ‘이재명 방탄’ 당헌 개정을 완료했다. 24일 당 중앙위에서 부결된 안건을 이틀 만에 다시 소집한 중앙위에서 기어이 통과시킨 것이다. 이 당헌 개정은 당내에서도 내용과 절차에 모두 문제가 있다며 반발이 거셌다. 애초엔 ‘기소 시 당직자 직무 정지’ 조항을 고쳐서 이재명이 기소돼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부 반발이 커지자 해당 조항은 그대로 두되, 그 아래 조항을 고쳐 기소가 ‘정치 보복’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당대표가 위원장인 당무위 의결로 구제받을 길을 열어줬다. 이재명이 당대표 당선 뒤 이렇게 당헌을 고치면 민망하니 그 전에 비대위가 해치운 것이다.

    8·28 전당대회는 ‘이재명의, 이재명에 위한, 이재명을 위한’ 전당대회로 끝맺고 말았다. 당대표로 선출된 이재명의 득표율은 77.77%! 최고위원으론 정청래·고민정·박찬대·서영교·장경태가 선출됐는데, 친문계로 분류되는 고민정을 제외하곤 친명계의 싹쓸이가 이루어진 결과였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25.20%를 최종 득표해 1위를 차지한 정청래는 다음 날 최고위회의에서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당원과 지지자들은 ‘내부 총질 중지, 총구는 밖으로, 이재명 당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라’라고 분명히 명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임 대표 이재명은 8월 31일 당원들에게 당사를 일부 개방하고, 당직자 업무 전화번호도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당원과 함께하는 민주당’이 되자는 취지라고 했지만 당내에선 “결국 민주당이 이재명의 극렬 지지층인 개딸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그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 민주당과 동맹 세력은 강경 일변도로 치달음으로써 사실상 ‘윤석열 퇴진’을 위한 전시체제 구축에 올인하게 된다. 윤석열은 그런 체제를 돕겠다는 뜻은 아니었겠지만 이런저런 과오를 연이어 저질러 지지율에서 내리막길 미끄럼을 탐으로써 야권의 강성 세력에 ‘대통령 탄핵’ 또는 ‘대통령 퇴진’이라는 부푼 꿈을 안겨주게 된다.

    * ‘신동아’ 8월호 ‘만독불침’ 이재명의 ‘정치팬덤’ 관리술④로 이어집니다.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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