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스웨덴 사민당엔 있고 한국 민주당엔 없는 것

[최병천, 겹눈으로 보다] 한국 진보정치 현대화 열쇠 찾기④

  •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입력2023-07-1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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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념적 유연성, 경제학적 마인드

    • 성장과 평등 동시 달성한 비결

    • ‘혁명 이론’ → ‘민주적 개혁’

    • 연대임금제와 적극적 노동시장

    • 낮은 법인세와 긴축재정 유지

    • 복지국가는 의도 아닌 ‘결과물’

    2022년 11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 쿵스트레드고르덴(왕의 정원) 인근 도로에서 직장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고 있다. 동아DB, [Gettyimage]

    2022년 11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 쿵스트레드고르덴(왕의 정원) 인근 도로에서 직장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고 있다. 동아DB, [Gettyimage]

    오늘날 스웨덴은 복지국가의 상징이 됐다. 2020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자신이 사회주의자이며, 미국도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사회민주당(사민당)이 주도했다. 사민당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도해 1889년에 창당됐다. 스웨덴 정치사(史) 100년 중 사민당이 약 80년, 보수연합당이 약 20년 집권했다.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2%. 스웨덴은 65%다. 전 세계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50%가 넘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50~65%다. 노동조합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웨덴의 1인당 소득이 적은 것도 아니다. 2021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5만9000달러다. 참고로 독일 5만1000달러, 영국 4만5000달러, 프랑스 4만3000달러, 이탈리아 3만5000달러다. 1인당 GDP 기준으로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가장 잘사는 나라에 속한다. 그뿐만 아니라 스웨덴은 평등, 사회복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인권 측면에서도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19세기 유럽의 가난한 농업국가였던 스웨덴은 어떻게 이런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소련, 독일, 스웨덴의 차이점

    여기서는 스웨덴식 복지국가와 관련해 ①1920년대, 마르크스주의의 현대적 재해석 ②1930년대, 케인스 이전의 케인스주의 정책 ③1950년대, 렌-마이드너 모델 채택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은 ‘민주화 이전’에 탄생했다. 당시 사회주의 이론은 ①산업노동자 계급의 정당 ②자본주의 타도(=사회화) ③민주주의 쟁취(=보통선거권)의 3가지로 집약된다.



    문제는 ‘자본주의 타도’와 ‘민주주의 확대’가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타도는 ‘한 방에’ 이뤄진다. 민주주의는 ‘점진적’ 속성을 갖는다. 한 방의 급진주의와 점진주의 사이의 모순이기도 하고, 경제노선과 정치노선 사이의 모순이기도 했다.

    이 경우, 문제 해결 방법은 세 가지다. ①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식 해법이다. 민주주의를 폐기하는 것이다. ②사회주의론 폐기다. 1959년 독일 사민당은 고데스베르크 강령 개정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폐기한다. 그 이전까지 정치적 무능을 반복한다. ③1920년대 스웨덴 사민당의 해법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점진적’ 방법을 개발한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점진적인 개혁. 이 작업을 한 사람이 스웨덴 사민당 활동가 닐스 칼레비(1892~1926)다. 칼레비 이론의 개요를 살펴보자.

    첫째, 당시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문제점의 핵심을 ‘공황에 의한 파국’으로 봤다. 칼레비 생각은 달랐다. 노동자 계급에 대한 ‘지배’로 봤다. 자본가의 부당한 지배의 약화가 주요 미션이 된다. 둘째, 시장과 개인의 선택권을 강조했다. 시장의 구매력을 보통선거권과 함께 권위주의(전체주의) 체제에 맞서는 양 날개로 봤다. 셋째, 사회화와 소유권에 대한 독창적 해석이다.

    당시 사회화에 대한 일반적 해석은 ‘국유화’였다. 칼레비 생각은 달랐다. 칼레비는 소유권을 단일한 덩어리가 아닌, ‘권리의 묶음’으로 봤다. 소유권을 법률적 관계에 불과하다고 봤다. 예컨대, 오늘날 전세와 월세를 생각해보자. 전세와 월세 세입자의 권리를 집주인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 이 경우 소유권은 처분권, 점유권, 이용권, 수익권 등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소유권을 한 덩어리로 보는 게 아니라 인수분해하는 셈이다. 이를 ‘소유권 분할론’이라고 한다.

    “소유권의 변동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 소유권의 변동이란 사회성원들 상호 간 권리의 [법률적] 이전에 지나지 않는다. 소유권의 변동에서 본질적인 부분은 형식이 아니라 실제 내용이다.”

    “8시간 노동법, 노동자안전보호법, 산업재해보상법 등이 소유권의 변동, 즉 생산수단의 사용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소유주’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이전시키는 조치가 아니고 다른 무엇이란 말인가?” (강조는 인용자)

    이케아는 스웨덴의 대표적 대기업이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인근의 이케아 매장에서 시민들이 쇼핑하고 있다. [동아DB]

    이케아는 스웨덴의 대표적 대기업이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인근의 이케아 매장에서 시민들이 쇼핑하고 있다. [동아DB]

    근본적이고 민주적이며 점진적인

    소유권을 단일한 덩어리가 아니라 ‘권리의 묶음’으로 해석할 경우, 자본주의는 ‘개혁적 입법’을 통해 운용을 개선할 수 있게 된다. ‘혁명 이론’을 폐기하고 ‘민주적 개혁’의 누적을 통해서도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가 가능해진다.

    근본적이되 민주적이면서도 점진적인, 자본주의 극복 논리의 개발이 칼레비가 수행한 이론 작업의 핵심이었다. 그의 이론 작업은 1920년대 진행됐다. 당시 청년 활동가들은 칼레비 이론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 이후 스웨덴 모델의 ‘이론적 기초’로 작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칼레비의 이론 작업을 통해 사민당은 ‘운동권식 사고방식’과 단절한다. 현실과 이론의 괴리를 메우게 된다.

    둘째, 1929년 대공황 이후, ‘케인스 이전의 케인스주의’ 정책의 채택이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1881~1977)다.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유럽과 스웨덴에서는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우파나 좌파나 일반적으로 건전재정 이론을 생각했다. 건전재정이란, 당해 연도에 지출하는 세금은 당해 연도에 걷은 만큼 쓰는 경우를 의미한다.

    비그포르스는 1920년대 유럽에서 떠돌던 케인스의 팸플릿을 접했다. 케인스는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협상을 비판한 책 ‘평화의 경제적 귀결’을 통해 유럽에서 셀럽이 됐다. 비그포르스는 케인스 이론을 접하며 공황이 발생할 때의 실업 문제 해법을 공부했다. 핵심은 정부가 적자재정을 감수하고 공공사업을 통해 ‘유효수요’를 일으켜 실업을 해결하는 것이다. 비그포르스는 실업 문제 해법을 스웨덴 사민당 기관지 ‘티덴(Tiden)’에 연재해 당 활동가들과 공유했다.

    1929년 대공황이 터졌다. 1932년 스웨덴에서 총선이 열렸다. 비그포르스의 제안은 사민당에 의해 총선 공약으로 수용됐다. 이때 처음으로 라디오 토론이 도입됐다. 사민당을 대표해 비그포르스가 출연했다. 1932년 총선에서 스웨덴 사민당은 40%가 넘는 득표율로 압승했다. 사민당은 처음으로 다수파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1976년까지 44년간 민주적 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케인스의 대표 저서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일반이론)’은 1936년 출간됐다. 즉 1932년 총선 당시 스웨덴 사민당의 정책은 ‘케인스 이전의 케인스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스웨덴 사민당은 ‘세계 최초로’ 케인스주의 정책을 채택한 정당이다.

    셋째, 스웨덴 사민당은 1956년에 ‘렌-마이드너 모델’이라고 하는 경제 모델을 채택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쯤 사민당은 경기침체를 걱정했다. 실제로는 경기과열이 발생했다. 사민당은 ‘케인스주의적 수요 관리’ 정책으로 접근하려 했다. 케인스주의적 수요 관리 정책이란 경기 과열인 경우 수요 억제, 경기침체인 경우 확장재정을 통해 수요를 확대하는 것이다. 수요 관리 정책을 쓸 경우, 대표적인 방법은 긴축재정과 더불어 ‘임금 억제’가 있다.

    스웨덴 노총(LO)은 1891년 사민당 활동가들이 주도해 만들어졌다. 초기에 LO 조직원은 모두 사민당원이었을 정도로 둘 사이 관계는 돈독했다. LO경제연구소는 경기과열 시 임금 억제 정책을 사용할 경우 사민당과 LO가 갈등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LO경제연구소의 고스타 렌(1913~1996)과 루돌프 마이드너(1914~2005)는 대안적 경제모델을 구상했다. 핵심은 ①연대임금제 ②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패키지다.

    스웨덴式 복지국가의 진짜 교훈

    먼저 연대임금제다. 예를 들면, A기업의 지불 능력은 110만 원이다. B기업의 지불 능력은 90만 원이다. 이 경우, 둘 다 100만 원만 지급하라는 것이다. A기업 처지에서는 10만 원이 남게 된다. B기업 처지에서는 두 가지 상황이다. 하나는, 열심히 노력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망하는 경우다.

    생산성을 끌어올릴 경우, ‘혁신’을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 망하는 회사인 경우, 자본은 망하게 놔두고 노동만 건져준다. 이때 적용되는 정책이 ‘적극적 노동시장’이다. 실업보험과 직업 재훈련, 취업 알선을 제공한다. 이처럼 연대임금제와 적극적 노동시장의 정책 패키지를 제안자의 이름을 따서 ‘렌-마이드너 모델’이라고 한다.

    LO경제연구소가 렌-마이드너 모델을 통해 추구한 목적은 ①공급 측 산업구조 고도화 ②노동자의 평등 ③대기업의 촉진 ④기업의 경쟁력 강화 ⑤물가안정에 있었다. 이러한 정책 취지를 살리기 위해 스웨덴 사민당은 긴축재정을 하고, 투자 촉진을 위해 낮은 법인세를 유지했다.

    스웨덴 노총(LO)은 렌-마이드너 모델을 골자로 하는 정책을 대의원 대회에서 정식 채택했다. 이후 사민당은 1956년 정식으로 LO의 제안을 수용했다. 렌-마이드너 모델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법은 두 축이다. 하나는, 중앙 노총과 중앙 경총의 임금협상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정책 지원이다. 사민당 정부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낮은 법인세, 긴축재정을 유지했다.

    한국 진보에 스웨덴식 복지국가는 ‘복지비 지출이 많은’ 사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스웨덴의 복지비 지출이 많은 것 자체는 사실이다. 물론 복지비 수준만큼 세금도 많이 걷는다. 그런데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진짜 핵심은 이념적 유연성과 경제학적 마인드다. 사민당이 처음부터 복지국가를 의도한 것도 아니다. 복지국가는 하다 보니 만들어진 ‘결과물’일 뿐이다. 한국 진보는 이념적으로 유연하고, 유능한 경제 정당이 돼야 한다.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진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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