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900년 이어온 匠人의 손길 문경 도자기

흙과 물 어우러진 하늘재 가마터, 투박한 막사발의 현묘한 불춤

  • 글: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empal.com

    입력2005-03-24 1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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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0년 이어온 匠人의 손길 문경 도자기
    문경은 옛날부터 경상도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높고 우람한 산이 유달리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문수봉(1162m), 대미산(1145m), 포암산(961m), 조령산(1025m), 백화산(1063m), 희양산(998m), 대야산(930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길게 뻗어내린 탓이다. 그런데도 궁벽하거나 외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일찍이 삼국시대에 큰 고갯길이 열린 뒤로 늘 수많은 사람과 물산이 이곳을 거쳐 외부로 드나들었다.

    백두대간의 길목, 문경

    지금도 문경에는 유서 깊은 옛길이 여럿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새재와 하늘재. 잘 알려진 대로 새재(鳥嶺)는 조선시대의 경부고속도로나 다름없었던 영남대로의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다. 하늘재는 새재보다 훨씬 더 오래된 교통로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고갯길로도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아달라왕 3년(156)에 북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계립령을 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계립령이 바로 지금의 하늘재다.

    아주 오래된 고개 하늘재는 백두대간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험산을 넘어가는 준령(峻嶺)은 아니다. 이웃집에 놀러가듯 편안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고갯길이다. 주요 교통로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린 오늘날에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 제격이다.

    그 고갯마루 근처에 자리잡은 관음마을도 하늘재만큼이나 편안하다. 이곳을 처음 찾은 사람에게도 마을의 풍경과 정취가 낯설지 않다. 백두대간의 육중한 산자락에 등을 기댔는데도, 마을 터는 경사가 완만하고 햇살이 풍부하다. 그래서 언제나 아늑하고 따사롭다. 마치 명당에 자리잡은 절집 같다. 관음(觀音)이라는 마을 이름이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에서 따온 것임을 감안하면, 아마도 오랜 옛적에 대찰(大刹)이 있었던 곳인지도 모른다.



    관음리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돌부처가 있다. 필자가 10여년 전 관음리를 처음 찾아간 것도 순전히 그 돌부처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 이미 돌부처는 형용(形容)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모돼 있었다. 그 뒤로도 푸근한 마을 정취와 하늘재의 호젓한 분위기에 이끌려 여러 차례 일부러 관음마을을 찾았다.

    조선 백자 가마에 대한 기억

    그러면서도 돌부처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옛 가마가 이 마을에 존재하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가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필자는 1990년대 초반에 꼬박 3년 동안 월간 ‘샘이깊은물’의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필자가 입사하기 3년 전쯤인 1987년 11월에 발간된 과월호를 뒤적거리다가 우연찮게 ‘조선 백자 가마가 하나 남아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샘이깊은물’의 발행인이던 고(故) 한창기씨가 글을 쓰고, 사진편집위원 강운구씨가 사진을 찍은 화보기사였다.

    당시에는 관심 있게 기사를 읽었지만, 막상 거기 나오는 조선 백자 가마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필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통 도자기에 대해서는 청맹과니나 다름없다. 그러니 희미하게나마 여태까지 기억되는 것도 그 가마의 위치가 문경 어디쯤이라는 사실뿐이다.

    얼마전 ‘신동아’ 4월호 취재를 위해 문경시청 문화관광과 직원의 안내로 그 가마가 있는 곳을 다시 찾아갔다. 가마는 지금처럼 대로변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지 않다면 한동안 찾아 헤매기 십상인 산중턱에 숨어 있었다.

    관음리의 조선 백자 가마는 완만한 산자락에 엎드려 있다. 그 옆에는 디딜방아와 작업장으로 쓰이던 움집이 있고, 가마가 자리잡은 축대의 아래쪽에는 허름한 살림집도 한 채 남아 있다. 외벽의 흙을 말끔하게 다시 바르고, 커다란 돌로 축대를 튼실히 쌓고, 양철지붕을 새뜻한 초가지붕으로 바꾼 것 말고 가마는 그 화보기사 속의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필자의 짧은 식견과 낮은 안목으로는 그 가마가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 가마에 대해서는, 전통문화와 골동품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탁월한 심미안(審美眼)을 가졌던 고 한창기씨의 기사를 일부 인용하는 게 더 나을 성싶다. 그 기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900년 이어온 匠人의 손길 문경 도자기

    문경도자기전시관의 벽면을 장식한 조형물. 문경의 가마터에서 발견된 도편과 현역 사기장들이 제작한 전통 도자기 문양을 한자리에 붙인 것이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구경을 하고 왔어요. 이 나라에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고들 생각해온 조선시대 사기막 가마를 보고 왔어요’. (1987년) 10월 중순에 나눈 점심 자리에서 문화재위원 예용해씨가 그리 설명했다.”

    민속학자이자 문화재 전문위원이었던 예용해씨(작고)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한창기씨 역시도 “깜짝 놀랐다”고 토로했다. 곧장 관음리로 달려간 그를 안내한 이는 김정옥(현재 66세)씨였다.

    오늘날 김씨는 문경읍 진안리에 자리잡은 영남요의 주인이자 도예명장이며, 사기장(沙器匠) 가운데 유일하게 중요 무형문화재(제105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고의 도예가로 손꼽힌다. 그런 김씨가 한창기씨 일행의 길잡이로 나선 것은, 그 가마가 160년 전쯤 김씨의 5대조가 처음 만든 이래로 대대손손 사용해온 망뎅이 가마였기 때문이다.

    단숨에 관음리로 달려간 한씨가 본 것은 단순한 가마가 아니었다. ‘앞에 가서 보아도 곁으로 비켜서서 보아도 암팡져 보였을’ 뿐만 아니라, 가마 자체가 ‘구성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조형 덩어리’였다.

    해묵은 가마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이 망뎅이 가마가 오늘날 문경 도자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매력이기 때문이다. 원래 망뎅이 가마는 문경지방에서만 쓰던 게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가마다. 가마의 구조가 독특해서 1000℃ 이상의 고열에도 끄떡없을 뿐만 아니라 불길의 흐름을 부드럽게 해준다고 한다.

    망뎅이(망댕이)는 내화성이 강한 진흙을 20∼25cm 길이로 빚어 길쭉한 전통 팽이 모양으로 만든 흙뭉치를 말한다. 이것을 거꾸로 촘촘히 박아 반구형(半球形)의 가마 칸을 만든다. 그리고 내벽은 진흙물로 매흙질(흙벽을 매끈하게 바르는 일)을 하고, 외벽에는 짚을 섞은 진흙을 두껍게 바른다. 이 외벽의 흙이 비바람에 씻겨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마 위에 초가지붕을 얹는다. 대체로 망뎅이 가마는 경사 15。 가량의 비탈에 대여섯 개의 흙무덤 봉분 같은 것이 나란히 연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불꽃에 따라 독특한 색깔 연출

    관음리 묵심도요의 이학천(45)씨는 망뎅이 가마와 내화벽돌 가마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화벽돌로 만든 가마라 해도 장작을 땐다면 전통가마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망뎅이 가마에 비해 단열효과는 훨씬 떨어지죠. 사람의 손으로 만든 망뎅이의 내부에는 미세한 공기구멍이 무수히 많은 반면, 기계로 찍어낸 벽돌 내부에는 공기구멍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공기구멍이 많은 망뎅이는 같은 두께의 벽돌에 비해 두 배 이상이나 단열효과가 좋습니다.

    게다가 끝이 뭉툭한 망뎅이가 촘촘히 박혀 돔 형태를 이루면 볼록거울처럼 열을 반사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릇을 구울 때 불때는 시간은 물론 땔감도 꽤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죠. 또한 불꽃의 변화무쌍한 움직임과 온도에 따라서 독특한 색깔과 문양이 만들어진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현재 문경지방의 전통 망뎅이 가마가 이 ‘조선 백자 가마’뿐인 것만은 아니다. 문경도자기협회에 가입한 20여명의 장인들 모두 망뎅이 가마에다 적송(赤松) 장작으로 불을 때서 도자기를 굽는다고 한다.

    문경도자기협회 회장이기도 한 김정옥씨는 “전통 망뎅이 가마만 사용하는데다 한 사람의 장인이 성형하고 문양을 넣고 구워내는 일까지 도자기의 모든 제작 과정을 직접 해낸다는 점이 문경 도자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이곳의 장인들은 전통에 매우 충실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누대(累代)로 가업을 잇는 장인들이 유달리 많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김정옥씨의 경우만 해도 아들 경식씨가 영남요에서 8대째 가업을 잇고 있으며, 묵심도요 이학천씨 집안도 7대째 이어지는 도예가문이다. 이처럼 도자기의 전통이 탄탄한 문경에는 현재 전국적으로 6명뿐이라는 우리나라의 도예명장 가운데 3명이 살고 있다. 영남요의 김정옥씨와 묵심도요의 이학천씨, 그리고 문경요의 천한봉(72)씨가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이처럼 든든한 문경 도자기의 토대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다. 유구한 역사를 통해 다져진 것이다.

    오늘날까지 문경에서 발견된 가마터는 모두 80여개소에 이른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문경시 동로면 노은리와 간송리 일대에서 발견된 12세기의 청자 가마터다. 그밖에도 가은읍 완장리에서는 14∼15세기 무렵의 청자 가마터, 동로면 생달리에서는 16세기의 분청사기 가마터, 가은읍 완장리와 문경읍 용연·갈평리 일대에서는 16∼17세기 가마터, 문경읍 관음리와 가은읍 완장리 일대에서는 19∼20세기의 가마터가 발견되기도 했다.

    900년 이어온 匠人의 손길 문경 도자기

    문경도자기전시관의 체험장에서는 전문 도우미의 지도를 받으면서 도자기 제작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문경의 도자기 역사가 고려 초기의 청자에서부터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900여년이나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한 고장의 도자기 역사가 이토록 유구한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900여년의 전통

    그렇다면 문경지방이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손꼽히는 도자기 생산지로서 명성이 높은 까닭은 무엇일까. 좋은 도자기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좋은 흙과 물과 땔감이 풍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경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중 도자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흙이다. 백두대간이 길게 뻗은 문경지방에는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사토(沙土) 광맥이 잘 발달해 있어 좋은 흙을 구하기가 쉽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땔감을 구하기 쉽다는 점이다. 전통 장작가마에 불을 한번 지피려면 스물다섯짐 가량의 장작이 든다고 한다. 가마에 불을 때는 일은 잦고 마을 주변은 온통 민둥산뿐이던 옛날에는 땔감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문경지방에서는 땔감 구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물론 간벌(間伐)을 해야 할 정도로 숲이 울창하고 한해 동안 많아야 대여섯번 밖에 불을 때지 않는 요즘은 땔감 구하기가 별로 어렵진 않다.

    좋은 물 또한 사토나 땔감 못지않게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문경지방은 높은 산이 많아서 수비(水飛; 도자기의 원료인 흙을 잘게 부순 다음 물에 풀어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하는 데 필요한 계류와 석간수가 풍부하다.

    그러나 이처럼 천혜의 자연조건 속에서 아무리 잘 만든 도자기라도 판로가 여의치 않으면 모든 게 허사가 되고 만다. 문경은 산악지대이면서도 일찍부터 교통로가 발달해서 도자기를 운송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즉 배를 타고 곧장 한양까지 갈 수 있는 남한강의 황강나루와 하진나루, 그리고 낙동강 본류와 내성천이 합류하는 삼강나루가 모두 하룻길에 있었다. 게다가 영남대로의 주요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서 등짐장수들이 들고나기도 편리했다.

    조선시대의 도자기는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도자기를 만드는 관요(官窯) 제품과 일반 백성들의 생활자기를 생산하는 민요(民窯) 제품으로 나뉜다. 관요는 서울과 가까운 광주나 이천 등지에 있었고, 민요는 문경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었다.

    그래서 문경의 민요에서는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막사발, 대접, 접시, 종지, 병, 제기 등의 청화백자를 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주종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특별히 한 가지에만 집착하거나 얽매이지는 않는다. 수요에 따라 청화백자에 주력하거나 분청사기를 많이 제작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900년 이어온 匠人의 손길 문경 도자기

    불을 잘 조절해야만 제대로 된 작품을 건질 수 있기 때문에 장인들은 꼬박 10시간 이상 가마 곁을 떠나지 못한다.

    6·25전쟁 이후 대량으로 보급된 플라스틱과 양은 그릇에 밀려 도자기를 구워서는 생계조차 꾸리기 막막했던 시절에는 심지어 요강이나 화분, 꽃병, 오지그릇 등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근래에는 대부분의 장인들이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제작한다. 특히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이도다완(井戶茶碗)을 재현하는 일에 힘을 쏟는 장인들이 적지 않다. 이도다완은 오늘날 일본인이 국보로 떠받들며 최고의 다기(茶器)로 평가하는 조선의 막사발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높게 평가했던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이도다완을 ‘미의 극치’라고 평가했다.

    원래 우리나라의 막사발은 이름 그대로 막 쓰는 사발이었다. 밥그릇으로도 쓰고, 국그릇으로 쓰고, 물이나 막걸리를 마실 때도 사용했다. 그러다 금이 가거나 일부가 깨져나간 것은 개밥그릇으로도 쓰였다. 이처럼 원래 생김새와 용도가 매우 투박하고 거친 막사발의 은근한 매력에 깊이 빠진 일본인들 중에는 문경까지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호소카와 전 일본 총리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그는 문경의 영남요를 직접 찾아와 김정옥 명장으로부터 막사발 제작기법을 배워가기도 했다. 수백년 동안이나 끊겼던 이도다완의 생산기법을 찾아내 재현한 곳이 바로 문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값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싼 것도 몇십만원에 팔리고, 명장들의 작품 가운데에는 10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것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대한민국 유일의 문화재 사기장인 김정옥씨도, 일본 언론에서 ‘아시아 제일의 도예가’라고 극찬했던 천한봉씨도, 그리고 탁월한 재능과 솜씨로 최연소 도예명장이 된 이학천씨도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도다완이야말로 가장 만들기 어려운 그릇입니다. 흙의 배합, 굽 깎기, 기물의 형태, 규격, 무게, 굽 부분의 매화피(梅花皮), 색깔, 감촉, 그릇의 균열 등 수많은 조건들이 딱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작품을 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배우고 익혀서 이도다완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게 평생의 소원입니다.”

    도자기 체험장 1만명 인파

    한때 문경은 우리나라 굴지의 탄광도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석탄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섬으로써 이 지역 탄광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석탄산업이 붕괴하자 지역경제도 급속히 침체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끝에 관광산업과 도자기산업의 진흥을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문경새재도립공원 내에 KBS 사극촬영장을 유치한 것도, 새재 입구의 국도변에 문경도자기전시관을 세운 것도 그런 사업의 일환이다. 특히 도자기전시관은 문경 도자기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있을 뿐 아니라, 누구나 직접 전통 도자기를 만들어볼 수 있어서 관광객들로부터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3월 개장한 이 도자기 체험장을 이용한 관광객의 수는 1년 만에 무려 1만여명을 넘었다고 한다. 체험장에는 40여평의 작업실과 전통물레 40개, 반죽을 미는 밀대와 문양을 새기는 칼 등 전통 도자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들이 두루 갖춰져 있다. 게다가 2명의 전문 도우미들이 제작과정을 자세히 일러주거나 도와주기 때문에 초보자들도 손쉽고 재미있게 전통 도자기를 만들어볼 수 있다. 체험자들이 손수 만든 그릇, 화병 등은 체험장측에서 유약을 발라 전통 망뎅이 가마에 구워서 집으로 배달해준다. 도자기 체험 참가비는 1인당 1만원이다.

    해마다 5월경에는 한국전통찻사발축제도 열린다. 이 축제기간에는 전국 찻사발 공모전, 도자기 국제 교류전, 전국 도예명장 작품 전시전, 전통 망뎅이 가마 불지피기 체험, 전통 도자기 체험 등 도자기와 관련된 체험행사와 전시회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올해 전통찻사발축제는 4월30일부터 5월8일까지 9일 동안 문경도자기전시관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막 돋아나기 시작한 연둣빛 신록이 아름다운 그쯤에는 하늘재 옛길도 걸어보고 찻사발축제도 둘러볼 겸 해서 한번 더 문경에 내려가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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