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의원은 소장그룹의 핵심 인사 중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과 큰 인연은 없었지만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거치면서 최측근으로 떠올랐다. 그는 대선 때 입에 ‘칼을 물고’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의 전신)의 네거티브 공세를 막아냈다. 신뢰감을 주는 마스크로 네거티브 공세에 적절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다.
박 의원이 이 대통령과 본격적인 연을 맺은 것은 2006년 서울시장후보 한나라당 경선 때로 오세훈 전 의원(현 서울시장)을 후보로 만들기 위해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대통령을 찾으면서다. 박 의원을 비롯한 소장파의 요구를 이 대통령은 흔쾌하게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이면서 서울시장 입후보를 원하던 홍준표 의원을 ‘버리고’ 소장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박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이 한때 이끌던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 소속 의원 대부분을 이 대통령 지지로 돌려세우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이 대통령의 이미지를 중도보수, 실용주의로 견인하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선 작업에도 관여했는데, 이명박 정부 집권 5년 동안 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리라는 전망이다.
박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재오 의원이 몸담았던 민중당에서도 활동했다.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는 데는 권철현 의원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1980년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오른쪽 눈을 크게 다쳤다. 그럼에도 얼굴을 찡그리는 법이 없다. ‘화 다스리기’ 강의를 해도 될 만큼 흥분하는 일이 없다. 그래선지 동료 의원들은 “박 의원에게선 향기가 난다”고 얘기한다. 물론 향기는 향수가 아니라 매너에서 나온 것이다.
박 의원의 보좌진은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를 어려워한다. 그는 보좌진이 큰 실수를 저질러도 꾸짖는 법이 없다. 다만 웃으면서 은연중에 ‘다음엔 잘하라’고 부담을 줄 뿐이다. ‘상처 주지 않는 게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그는 믿는다.
박 의원은 뉴라이트 계열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친분이 두텁다. 박 이사장의 추천으로 1993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에 위촉됐는데, 김영삼 대통령이 발표한 ‘세계화 구상과 전략’의 최종 집필자가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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