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접촉신고는 한국 국민이 북측 인사‧단체 등을 만나기 전 정부에 계획을 신고하는 절차다. 신고로 명명하지만 승인제에 가깝다. 요건에 부합하면 대개 7일 이내에 수리된다. 따라서 현 회장 측의 신고는 7월 첫째 주 중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접촉신고가 수리되면 현 회장 측은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와 접촉해 방북 초청장을 받고, 이를 통일부에 제출해 방북 승인을 신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북이 최종 승인되면 현 회장은 2018년 11월 ‘금강산 관광 시작 20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 참석 이후 5년 만에 금강산을 다시 찾는 셈이다. 또 코로나19로 약 3년간 닫혀 있던 군사분계선을 넘는 첫 남측 인사가 된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뉴스1]
시아버지‧남편 유지 받들어…
업계에선 현 회장의 방북이 남북경협사업 재개의 물꼬가 되리라는 기대가 나온다. 최근 몇 년간 남북관계 경색 및 코로나19로 관련 사업이 사실상 ‘올 스톱’ 상태였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1998년 정주영 창업주의 ‘소 떼 방문’을 시작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개성공단 등 대북사업을 주도하며 관련 업계의 ‘맏형’ 역할을 해왔다.대북사업가 A씨는 “큰 형이 길을 뚫으면 동생들이 편히 가는 것 아니겠나”라며 “대북사업의 맏형 격인 현대그룹이 북한과의 통로를 열면 중소‧영세 대북사업가들도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북사업가 B씨 역시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지금 당장은 추모를 위한 방북이긴 하지만 그간 완전히 닫혀 있던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현 회장이 남북경협사업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것도 기대 근거다. 19일 현 회장은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남북경협사업과 결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제와 포기하면 (남편 정몽헌 회장이 한 일이) 완전히 헛고생 아닌가. 특히 대북 사업은 아버님(정주영 회장) 의지가 강했다”고 말한 바 있다.
현 회장은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전 용문학원 이사장의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경기여고‧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페어리 디킨슨대에서 수학했다. 1976년 정주영 창업주의 5남 정몽헌 회장과 결혼해 전업주부로 지냈다. 2003년 정몽헌 회장이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하자 그해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해 올해 20년을 맞았다. 포브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월스트리트저널 ‘주목할 만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 포춘 ‘가장 영향력 있는 아태지역 여성기업인’ 등에 선정되기도 했다.
남북경협사업이 현 회장에게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3월 30일 현 회장은 대법원으로부터 2014년 우호지분 확보를 위한 과정에서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며 현대그룹 지주사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 원을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고 사모펀드 H&Q코리아로부터 3000억 원을 조달하는 등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 C씨는 “사실상 현재 현대그룹은 엘리베이터 사업으로 먹고 사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며 “현대그룹은 북측 7개 사회간접자본(SOC) 독점사업권을 갖고 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대북사업이 막히기 전까진 그 나름 성과를 내고 있었다. 남북경협사업이 재개되면 축이 하나 더해지는 셈이다. 현 회장‧그룹 모두에 안정성이 더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8년 8월 3일 북한 금강산에서 열린 고 정몽헌 회장 15주기 추모식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및 임직원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현대그룹]
“원래 매년 해온 추모… 조심스레 발 띈 상태”
방북 최종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북측이 현 회장 측에 초청장을 보낼지가 관건으로 여겨진다. 남과 북이 ‘강 대 강’ 대치를 하는 국면 상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해금강호텔 등 금강산 내 현대그룹의 시설을 무단 철거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도 아직 풀리지 않았다.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너무 앞서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정몽헌 회장의 추모비가 금강산에 있다. 추모를 위한 금강산 방문은 원래 매년 해오던 일이었는데, 2018년 이후 남북관계 경색과 코로나19로 인해 하지 못했다. 이번 방북 추진은 코로나 팬데믹이 어느 정도 해소된 상황에 다시금 추모를 하고자 함이다”라고 밝혔다. 남북경협사업에 대해선 “남북경협사업은 정주영‧정몽헌 두 선대회장에 이어 현재 현 회장까지 각별히 생각하는 사업이다. 단순히 현대그룹만의 먹거리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사명감이 있다. 기회만 된다면 적극 추진할 의지가 있다”면서도 “이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남북 당국의 방침과 승인에 따라야 하는 문제다. 지금으로선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접근할 뿐이다. 이번 신고도 그렇게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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