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호무역주의 확산…‘신속 통관’ 혜택으로 경쟁력 갖춰야
- 1년간 수출 기업 총력 지원, ‘逆직구’로 활로 모색
- 관세청은 ‘Korea Customs Service’…“서비스 해야죠”
- CCTV 대신 드론 띄워 감시…‘2020 관세청 발전전략’
- ‘사드 보복’으로 면세점 타격…“추가 지원책 강구”
천홍욱(56) 관세청장은 라운드 테이블이 가슴 높이까지 오는 ‘스탠딩 회의 테이블’에서 회의를 하고 업무를 본다고 말했다. 기자도 서서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 손깍지를 끼어 보니 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스탠딩 인터뷰’를 하면 집중이 잘돼 인터뷰를 짧게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했다. 스탠딩 테이블이 아니더라도, 단정한 옷매무새에 군더더기 없는 답변에서 그의 ‘깔끔한’ 성격을 알 수 있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천 관세청장(행시 27회)은 32년간 줄곧 관세청에서만 근무한 정통 관세공무원이다. 통관, 조사, 심사 등 다양한 관세청 업무 중에서 주로 통관 업무를 담당했고, 세계적으로 수출되는 우리나라 통관 시스템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 행시 동기 얘기가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소재가 될 거 같았다.
기업인들의 어려움
▼1983년 행시 27회 합격자 100명 중 20여 명이 장·차관을 지내는 등 단연 두각을 나타냈는데요.“동기 중에는 저와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등 현재 8명 (현직에) 남았습니다. 저는 사무관 시절부터 줄곧 관세청에서만 근무했고요.”
▼왜 관세청이었나요.
“국세청은 주로 세금을 걷지만 관세청은 수출입 기관을 지원하고 국경 최전선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등 다양한 일을 하잖아요. 우리나라는 무역수출로 번영해야 하는데, 수출입 최전선인 관세청 일이 좋았거든요.”
▼취임 1주년이 됐습니다.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한 업무는 뭔가요.
“1년간 수출 기업 지원에 발 벗고 나섰어요. 세계적인 교역 부진에 대응해 수출 활성화, 중소기업 지원 등 정부시책을 뒷받침하는 관세행정과 수출지원 대책을 폈고, ‘역직구’(逆직접구매·해외 소비자가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직접 구입하는 쇼핑) 수출통관 인증제를 도입하는 등 수출 확대를 위해 총력 지원했습니다. 기업인들의 어려운 점을 듣고는 외국 관세청장을 만나 협의했고, 때로는 전담팀을 보내 문제 해결에 나섰죠. 관세청은 영어로 ‘Korea Customs Service’이거든요. 인·허가권을 쥐고 군림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나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서비스’하는 일이죠.”
▼기업인들의 어려운 점은 뭔가요.
“간담회를 해보면 주로 수출과 통관 관련 어려움을 말해요. 수출국의 수출품목 분류가 우리나라와 맞지 않다거나, 통관 절차 간소화와 물류비용 절감 대책 등을 요구하죠. 수출국 관련 문제는 현지 주재 관세관이나 본청 대책팀을 파견해 문제를 해결했고, 통관절차나 물류비용은 각종 시스템을 만들어 도와주고 있어요.”
천 관세청장은 “시스템을 말하니 ‘유니패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며 유니패스의 수출 성과에 대해 설명했다. ‘유니패스(UNI-PASS)’는 관세행정의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한국형 전자통관 시스템. 기업이나 개인이 물품을 수출입할 때 거치는 물품신고, 세관검사, 세금납부 등 각종 관세행정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한다. 여기에 외교부와 KOICA 등 정부기관과 민간전문가, 시스템 개발업체 등과 공동으로 수출 플랫폼을 구축한 ‘유니패스 수출상단’은 3월 에티오피아와 150억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는 등 지금까지 4000억 원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현재 탄자니아, 스리랑카, 니카라과 등과도 수출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급증한 ‘역직구’ 대비책
▼국제적 경기 둔화와 신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어려운 대외 여건 속에서 ‘역직구’는 성장세인데요.“그렇습니다. 전체 수출액은 2014년 5726억 달러에서 2016년 4954억 달러로 줄었지만, 전자상거래 수출(역직구)은 같은 기간 4500만 달러에서 2억6900만 달러로 급증했어요. 해외 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해 우리 상품을 쉽게 사도록 수출신고 항목을 27개(일반수출품 신고항목은 57개)로 축소하고 품목분류(HS) 코드도 10단위에서 6단위로 간소화했어요. 또한 일정금액 이하 역직구 물품은 원산지증명 없이 FTA(자유무역협정) 특혜를 적용받아 통관할 수 있도록 협의 중입니다. 중국과는 700달러 이하 물품에 대해 특혜를 인정받도록 추진하고 있고요. 여기에 대(對)중국 역직구 물품만 대상으로 하던 ‘역직구 수출통관 인증제’를 동남아시아 국가로 확대해 현재 50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어요.”
▼해외 배송 물류업체들은….
“역직구가 늘어난 만큼 해외배송도 늘어나죠. 따라서 해외배송 시점에 주문·배송 정보로 편리하게 일괄 수출신고를 할 수 있도록 기존 ‘역직구 수출신고 플랫폼’(판매·운송내역을 신고 항목으로 일관 변환해 수출 신고하는 시스템)을 물류업체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전자상거래가 늘수록 마약이나 총기류, 불량 먹을거리 등이 국경을 오갈 가능성도 커질 거 같은데요.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11월 25일)’나 중국의 광군절(光棍節, 11월 1일) 같은 쇼핑 할인기간에는 업무 폭증도 예상되는데요.
“지난해 7월 인천에 연면적 3만5885㎡ 규모의 ‘특송물류센터’ 문을 열었어요. 자동분류기와 검사장, 디지털 X-레이 판독기를 갖췄고, 통합판독실과 종합상황실도 마련했죠. X-레이 판독기 검사를 마치면 각국 택배사들이 찍어놓은 바코드로 인식해 각 택배회사 반출구로 분류됩니다.”
“내가 퇴임하고 없더라도…”
▼역직구도 중요하지만 FTA를 통한 수출 확대는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데요.2016년 기준 FTA 발효국과의 수출은 3504억 달러인데, 이는 전체 수출(4955억 달러)의 70.7%에 해당합니다. 우리 수출의 기둥인 만큼 수출 확대를 위해 FTA를 활용하는 것은 필수죠. 현재 5600여 개 기업에 대해 ‘YES FTA 기동대’를 운영해 1 대 1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고, 한중(韓中) 세관 간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 서류증명서가 없어도 FTA 특혜 통관이 가능해졌어요. 5월 25일 ‘FTA 무역인재 Job-Dream 페스티벌’을 통해 FTA 전문인력과 기업 간 일자리 연계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 등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비관세장벽에 대한 우려도 큰데요.
“맞는 말입니다. 비관세장벽을 넘는 ‘장대(pole)’는 ‘AEO’입니다. 세계 65개국이 도입한 AEO 제도는 우리 기업이 상대국에서도 신속통관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상호인정약정(MRA)을 체결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4월 현재 중국, 미국, 인도 등 14개국과 AEO MRA를 체결한 최다 체결국가죠. AEO 공인을 받은 기업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MRA 체결국에서도 우선 통관, 수입검사율 축소 등 관세행정상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AEO 공인을 받아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장대’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천 청장이 말한 AEO는 ‘Authorized Economic Operator’의 약자다. 관세 당국이 기업의 안전관리 상태, 법규 준수 여부 등을 심사해 ‘잘한다’고 판단되면 AEO 공인을 하는데, AEO 공인 기업에는 신속통관 등 관세행정 혜택을 제공한다.
▼32년간 근무했는데, 관세청의 미래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요.
“사실 청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마침 2020년은 관세청 개청 50주년이 되는 해여서 관세행정에 대한 미래 장기발전 전략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20년이 되면 관세청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고, 장기 발전전략에 대해 토론하면서 청사진을 담은 ‘2020 관세행정 미래 발전전략’을 만들었어요. 현재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장기 전략을 수정도 해가며 실행하고 있습니다. 내가 퇴임하고 없더라도 차근차근 실행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관세청이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우범(虞犯) 여행자’ 감시 시스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 어떻게 할 건가, 무역량과 여행객은 급증하는데 세관 직원은 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이런 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며 그 해답을 찾아갔어요. 예를 들어 공무원이 증원되지 않는데 일은 많아진다면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거죠. CCTV 대신 드론을 띄워 드넓은 공항과 여객터미널을 밀착 감시하거나,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전에 밀수 같은 불법·부정 무역을 적발하는 방식 말입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마약·총기류 밀반입을 막을 수도 있죠. 국경 최일선에서 국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전략인 셈이죠.”
▼무역절차가 간소화되고 외환거래 규제가 완화되면서 무역금융범죄 규모는 대형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는 신용장 거래를 악용해 25억 원을 편취한 무역금융범죄 사범이 검거됐는데요.
“말씀한 사건은 1억5000만 원어치 중국산 저가 샌들을 27억 원에 수출하는 것처럼 조작해 25억 원 상당을 편취한 사건이죠. 국내 은행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았고요. 그보다 앞서 제품가격을 120배 부풀려 수출신고하고 조작된 신고서를 근거로 은행으로부터 3조2000억 원대 사기대출을 벌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매년 5조 원가량의 불법 외환거래를 적발해왔고, 이번 사건 범인도 광주본부세관과 검찰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검거할 수 있었어요. 지난 2월에 ‘외화분야 2020 미래발전전략’을 마련하고 전담팀을 구성했고, ‘무역금융범죄 정보센터(T/F)’를 신설해 사전 방지체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대비할 겁니다.”
▼면세점 문제는 어떤가요. 중국의 사드 보복과 관련해 관광업계는 물론 국내 면세점도 타격받고 있는데요.
“중국에서 한국관광상품 판매가 금지된 3월 15일 기준 주간단위 매출액을 비교하면, 4월 초(4월 3~9일) 매출액은 1160억 원으로 3월 초(3월 6~12일)에 비해 24.4% 줄었어요. 특히 중국인 관광객의 매출액은 4월 초 1160억 원으로 3월 초 대비 39.2% 대폭 감소했고요. 여기에 2016년 관세법령 개정으로 면세점 특허수수료율이 기존 매출액의 0.05%에서 0.1~1%로 대폭 인상되면서 면세업계의 자금 부담은 가중됐습니다. 따라서 올해 매출액에 부과하는 특허수수료를 1년 범위 내에서 납기연장을 해주거나 분할 납부하도록 허용할 계획입니다. 면세업계 매출액 변동 추이를 모니터링하면서 면세업계 추가 지원대책도 강구할 예정이고요.”
▼10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개장하는데요.
할 게 많아요(웃음). 여행자 1억 명 시대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신고한 뒤 무인 시스템을 통해 바로 나갈 수 있는 휴대품 전자신고제를 도입해 시범운영하고, ‘통관정보 알리미’ 앱과 세금납부 안내 해피콜도 제공하려 해요. ‘우범(虞犯) 여행자’만 감시하는 스마트 폐쇄회로(CC)TV와 GPS 기반 ‘우범 수하물 추적 시스템’을 구현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감시체계도 구축할 겁니다.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