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초점 인터뷰

“청년은 본질보다 현상, 논리보다 직관… ‘눈높이 낮추라’ 하면 안 돼”

신용한 석좌교수의 ‘청년 일자리 해법’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입력2017-05-18 17: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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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도성장 기성세대, 청년 지향점·선호 이해해야
    • 4차 산업혁명…사람 vs 로봇 일자리 구분한 정책 설계
    • 핀테크, AI 등 고부가 서비스업 육성…匠人 우대 문화
    • 일원화된 ‘컨트롤타워’가 정책 통합·조율 필요
    • 대기업-中企 근로자 임금 조정하는 ‘사회적 대타협’
    우리나라 15~29세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말 기준 9.8%.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7.2%) 때보다 높고, 1999년 통계 기준이 변경된 이래 역대 최고치다.

    특히 금융·연금 소득이 거의 없는 청년들에게 일자리에서 나오는 급여소득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 어렵게 취업문을 통과해도 ‘노동의 질’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들도 청년 일자리 문제를 ‘1호 공약’으로 내세웠고, 정부도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으로 10조 원가량을 편성하고 4조 원 안팎의 지방교부금을 추가 배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실 일자리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여러 대기업 중 골라서 취업했던’ 80년대 학번들의 ‘입사 무용담’은 전설이 된 지 오래다.

    이에 대해 신용한 서원대 석좌교수(전 국가청년위원회 위원장)는 “한국의 일자리 문제는 구조적으로 얽힌 복합적 문제”라며 “새 정부는 패러다임 변화에 맞게 일자리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점을 확인하고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 교수는 ‘KTV 공공일자리를 잡아라!’ MC로 활약했고, ‘위기가 오기 전에 플랜B를 준비하라’ ‘청춘 1교시’ 등 취업 관련 서적을 여러 권 낸 현장 일자리 전문가다. 국가청년위원장 시절에는 청년희망펀드, 캠퍼스 푸드트럭 도입을 주도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청년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 전체(15~64세) 고용률은 65~67%대로 미국(69.6%)과 일본(74.1%)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비교적 안정적 추세다. 그러나 정작 청년(15~29세) 고용률은 39~42%로, 전체 고용률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언론에서도 오래전부터 취업과 결혼 등을 포기한 ‘N포 세대’의 절박함에 대해 여러 차례 보도했는데, 실제 실업률 지표를 봐도 그렇다. 전체 실업률은 3.0~3.8%인데 청년 실업률은 8.0~12%로 2.5~3배 정도 높게 지속됐다. 첫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는 비율이 높고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율도 낮다보니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체감 실업률은 훨씬 높은 게 현실이다.”





    일자리에 대한 인식 변화

    대기업 선호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청년취업자의 88.6%는 대기업·중견기업 취업을 선호한다. 그런데 실제 근로자 10명 중 9명(91.4%)은 중소기업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대기업은 직원 10명 중 4명(39.6%)을 경력직 수시채용으로 선발하고 있어 예전에 비해 대기업 취업문은 더욱 좁아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커지고, 고용 유연성도 제한돼 있고, 저임금 근로자가 고임금 근로자로 가는 ‘이동성’도 낮다보니 대기업에 구직자들이 몰린다.”

    막상 대기업에 취업해도 근속 연수는 그리 길지 않은데….
    “맞는 말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노동 숙련도는 높아졌지만, 국내 500대 기업 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10.3년, 30대 그룹 계열사 직원 평균근속연수는 9.4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제는 고용 지속성과 안정성 측면에서도 새로운 ‘일자리 설계’가 필요하다. 일자리를 보는 근본적인 인식 변화 말이다.”


    로봇이 일하는 시대

    일자리를 보는 인식 변화란?
    “청년들이 일자리를 대하는 접근방식과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을 간파해야 한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고도성장 산업시대를 달려온 기성세대 관점으로 청년 일자리를 바라보면 인식의 간극이 크다.”

    고도성장 시대를 산 기성세대들은 청년 취업 현장을 잘 모른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 1995년 인터넷, 2009년 스마트폰 도입으로 청년들은 모바일 미디어 시대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생활화돼 있어 청년층은 ‘본질’보다 ‘현상’을, ‘논리’보다 ‘직관’을 중시한다.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데도 거리낌없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컸고, 두꺼운 대하소설 대신 인터넷을 통해 재밌고 짧은 글을 읽어왔다.

    특히 인터넷에는 자신을 희생하는 근로자 얘기보다는 화려하면서도 인생을 즐기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종사자 얘기가 많다. 그런 글을 보고 자란 청년들에게 가르치려들면 마음을 닫는다. ‘No advice, Only experience sharing’해야 한다. 충고는 하되 스스로 결정하도록. 어느 정치인은 ‘산업단지 입주 기업에는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취업하려는 청년들이 없는데, 산업단지 내 스타벅스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은 서로 하려고 줄을 서 있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 당연하다.”

    일부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바로 그 점이다.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할 게 아니라 그들의 지향점과 선호를 이해한 뒤 일자리 대책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반 발짝’ 앞서 청년들에게 맞는 산업, 일자리를 설계하고 재단해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대비해야 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4차 산업혁명은 두 가지 근본적인 고민을 던진다. 첫째는 첨단기술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만큼 ‘일자리 감소’ 문제다. 드론, 무인자동차 등 IT기술이 사람 역할을 하다보니 필연적으로 대량실업 문제를 일으킨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앞으로 20년간 로봇이 1억3700만 명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예측했고, 선진국에서도 향후 3~4년 내에 71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예측한다. 실제 유명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600명이 1년간 만들던 운동화 50만 켤레를 10명의 사람과 6대의 로봇이 대신하면서 23년 만에 생산 공장을 독일로 철수했다.

    애플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대만의 ‘폭스콘’은 이미 6만 명의 직원을 로봇으로 대체했다. 이제는 기업이 막대한 투자를 해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12년 2.3% 경제성장을 하면서 43만7000명의 고용이 이뤄졌지만, 2017년에는 2.6% 성장해도 신규 일자리는 26만 개 느는 데 그친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2030년까지 460조 원의 경제유발효과와 80만 개 신규 일자리 창출을 예측했지만 현실은 장담하기 어렵다.”



    ‘알리페이’ 쓰는 중국 관광객

    두 번째 고민은 뭔가.
    “‘선진국과의 산업경쟁력 격차’ 문제다. 선진국이 주도한 4차 산업혁명과 우리의 산업경쟁력을 비교하면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산업연구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20개 기술의 국제경쟁력에서 유럽연합(EU)은 91.4점, 일본은 85.7점, 한국은 79.6점이었다. 따라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IT인프라, 네트워크, 교육수준 등 우리의 강점을 극대화하면서 규제개혁을 통해 소프트웨어 등 경쟁력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사람 일자리, 로봇 일자리를 명확히 구분해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수혜자와 피해자가 극명하게 나뉠 수 있겠다. 사회갈등과 양극화 문제가 심화할 수도 있겠는데….
    “그래서 정책 당국의 정책 통합과 조정이 필수적이다. 독일은 2010년부터 ‘Industry 4.0(제조업의 완전한 자동생산체계를 구축하고 전체 생산과정을 최적화하는 산업정책)’을 확립했고, 일본은 총리가 위원장인 ‘성장전략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우리도 기재부의 ‘4차산업혁명 전략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의 ‘지능정보사회 중장기종합대책’ 등 부처별로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는데, 일원화된 컨트롤타워를 두고 정책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크게 세 가지다. 산업, 노동시장, 교육 구조적 요인을 잘 분석해야 맞춤형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 우선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우리 경제를 견인한 뿌리산업이었지만, 경쟁력과 생산성, 수익성이 떨어졌다. 신규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도 ‘제조업 일자리 창출지수’는 서비스업의 5분의 1 수준이다. 제조업 강국 독일도 산업생산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6%를 웃돌고, 미국은 82%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58% 정도다. 일자리 미래 구조를 설계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부가가치 산업구조로 바꿔야 할 거 같은데….
    “그렇다. 양질의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해야 한다. 금융서비스, 핀테크, 크라우드펀딩, 인공지능(AI), ICT와 IoT(사물인터넷) 결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모바일 헬스케어, 복합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 미래 먹을거리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 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 중국 관광객들은 한국에서 쇼핑하면서 ‘알리페이’ 같은 자국 지급결제 서비스를 이용한다. 관광진흥법과 핀테크 관련 법률 개정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의 경우 입법과 정책 지원에 타이밍이 중요하다. 정부와 국회, 기업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구조 전환이 가능하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요인은 뭔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공무원, 대기업 편중 현상을 심화시킨다. 평균임금만 보면 대기업 정규직이 100이라면 대기업 비정규직은 65, 중소기업 정규직 52, 중소기업 비정규직 35 정도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3배가량 나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눈높이만 높아져 힘든 일을 안 한다’고 나무랄 수 있을까. 대▼중소기업 임금격차를 해소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임금격차 해소가 가능할까.
    “국민 세금으로 임금격차를 보전하는 단편적 방법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보다는 경제주체 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이 대기업의 70% 수준이 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대기업 사원 임금을 동결하고, 이를 통해 절감된 재원을 ‘상생위원회’ 결정에 따라 사용한다는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하다.”


    勞使政 대타협

    사측은 그렇다고 쳐도, 대기업 근로자들과 노조의 대타협도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 노동시장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확보한 사측은 물론, 대기업 근로자 약 150만 명이 속한 양대 노조(한국노총, 민주노총)가 주도하는 노측도 임금피크제나 파견법 시행에서 양보가 필요하다. 2015년 말 어렵게 합의를 도출했다가 깨진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을 다시 이끌어 내야 한다. 노동 현장의 이중성과 경직성을 해결하고 일자리 기회를 부여하는 통 큰 대화와 타협 노력에 나서야 한다”.

    교육 구조적 요인은 뭔가.
    “우리나라 고교 졸업생 10명 중 7명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일자리는 한정돼 있어 ‘눈높이 미스매칭’이 일어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대학 진학률은 41%다. 일본이 37%, 독일 28%, 미국 21%다. 독일의 경우 직업학교 졸업 후 중소기업에 취직해도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장인(匠人)’ 대우를 받는다. 정부와 기업이 학벌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고졸 숙련 전문가가 대접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가능성도 보인다.”

    가능성이 있다면….
    “고교 졸업자 취업률은 2009년 16.7%에서 지난해 50%로 급상승했다. 마이스터고 등 특성화 고교 정책이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취업 후진학, 일학습병행제도 등도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결국 일자리 문제는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나서야 할 문제인 거 같다.
    “그렇다. 새 정부는 미래 먹을거리, 일거리의 길목을 선점하기 위해 선도산업을 설계하는 데 집중하고, 국민 대화합과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국민들도 직무능력 중심의 채용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산업·노동·교육 구조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산업시대 형성된 고정관념을 버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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