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전관예우’는 알고리즘 독재 결과물, 윤리도 법도 비웃는다

[강준만의 회색지대] 민관합동으로 만든 법조공화국④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입력2024-12-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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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관‘예우’가 아니라 전관‘특혜’라고 해야

    • 극단적 이기심과 탐욕은 알고리즘의 산물

    • 공적 영역의 모든 전관예우 동시에 다룰 때

    • 전관예우는 반드시 단죄돼야 할 ‘부정 판결’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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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은 연줄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안 오잖아요, 의뢰인들은 일단 오면은 이 사람이 어디 출신이냐 이거예요. ‘판사냐, 검사냐?’ 묻고 ‘아니다’ 그러면 나가요.”

    법학자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2009)에 인용된 어느 변호사 사무실 직원의 말이다. 판검사 출신, 장관 출신, 헌법재판관 출신, 사법연수원 출신 등이 운영하는 여러 변호사 사무실과 로펌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이 직원은 의뢰인들이 찾아와서 판사 출신인지 검사 출신인지 변호사의 출신을 묻고는, 그 어느 것도 아니라고 하면 바로 나가버리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말했다.

    의뢰인들이 ‘전관’만 찾는 이유

    이는 가장 낮은 단계의 ‘전관(前官) 찾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전관 찾기’엔 의뢰인의 경제 수준에 따라 여러 등급이 있는데, 판검사 출신임을 확인했다면 그다음 단계는 어디까지 올라갔느냐, 즉 퇴직 전의 최종 직위를 확인하는 것이고, 그다음엔 퇴직한 지 얼마나 됐느냐를 따져보는 것이다. 물론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야 신선도가 높다는 이유로 인기가 높다.

    변호사 윤상일은 “돌이켜 보면 20년이 넘도록 변호사로 일해 오면서 의뢰인들로부터 ‘담당 검사를 잘 아느냐’ ‘담당 판사와는 어떤 사이냐’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다”고 했는데, 의뢰인들이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한번 경로가 결정되고 나면 그 관성과 경로의 기득권 파워 때문에 경로를 바꾸기 어렵거나 불가능해지는 현상을 가리켜 경로의존(經路依存·path dependency)이라고 하는데, 처음에 그런 경로를 만든 쪽은 법조계다. 하지만 이후엔 그 경로의 ‘소비자’들이 오히려 ‘생산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이게 바로 경로의존을 없애기 어려운, 경로의존의 최대 딜레마다.

    ‘전관 찾기’는 ‘전관예우(前官禮遇)’를 염두에 두고 이뤄진다. 전관예우란 문자 그대로 풀자면, 전직 관리에 대한 예우를 뜻하지만, 오늘날 그런 의미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뭔가 좀 구리고 음습한 어둠의 단어가 되고 말았다.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전관예우는 ‘전직 판사 또는 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하여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등 특혜를 주는 일’(두산백과) 또는 ‘행정관청, 법원 등의 공공기관이 해당 기관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공직자, 특히 고위직을 지낸 전직 공직자를 전 동료이자 선배로서 예우하고, 그에 따라 전직 공직자가 공공기관의 업무에 계속하여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현상’(위키백과)을 말한다.

    그런 일이나 현상을 전관예우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완곡어법인 셈인데, 10여 년 전 대구 달서구 시민이자 동아일보 독자인 한우민이 ‘독자편지’를 통해 그런 완곡어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는 게 흥미롭다. 그는 “부산저축은행 사태에서 우리 사회가 고질병인 전관예우에 의해 얼마나 심각한 폐해를 입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몸서리치게 확인하였습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하지만 저는 ‘전관예우’를 그런 식으로 쓰면 안 되며 그 대신 ‘전관특혜’나 다른 말로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우란 것은 예를 들어 독립유공자나 애국지사, 그와 비슷한 훌륭한 일을 하신 분에게 그에 마땅한 대우를 해드리는 것, 즉 그분들 또는 그 후손들에게 예를 다해 대우해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전직 관료나 전직 판사에게 불법적인 특혜를 주는 것을 예우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전직 관료에 대한 예우가 어찌 다 같이 예우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점 특히 언론의 책임이 크며 언론인들의 반성을 촉구합니다.”

    언론이 전관예우라는 단어를 쓰는 건 비판의 소지가 있을망정 언론이 전관예우 비판에 적극적이라는 건 인정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흥미롭기도 하고 씁쓸한 것은 아무리 비판을 해대도 전관예우는 사라지거나 약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여기엔 그런 의례적 비판 정도로는 무너질 수 없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속전속결이라는 알고리즘의 결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1단지를 재건축한 신축 아파트  단지 모습. [뉴시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1단지를 재건축한 신축 아파트 단지 모습. [뉴시스]

    생뚱맞게 여겨지겠지만, 잠시 아파트 이야기를 해보자. 2013년 한국 아파트의 가장 큰 문제를 ‘단지화’로 진단한 두 권의 중요한 책이 출간됐다. 서울시립대 교수 박철수의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와 명지대 교수 박인석의 ‘아파트 한국사회: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이다. 역대 정부들은 매년 초 “올해는 몇만 채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발표를 해왔는데, 이에 대해 박철수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런데 정말 정부가 공급한 것인가요? 실제로는 주공이나 아파트 건설업체들이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이었고, 정부는 마치 자신들이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건설업체에 아파트 안에 공원, 놀이터 등 부대 복리시설을 만들게 정해놓으면 복지 공간을 정부 돈을 들이지 않고 공급하는 셈이니 정부로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이 모든 시설은 아파트 단지 입주자들의 부담이다. 당연히 주민들은 높은 담을 두르고 타인의 출입을 막았다. 그래서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철저하게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주택 부족, 공공시설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랬다지만, 서울을 대한민국으로 간주한 ‘서울패권주의 발상’이 아니었다면 그런 필요성도 그리 높진 않았을 것이다. “올해는 몇만 채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발표는 늘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져 왔음을 상기해 보라. 언론은 자주 아파트 단지의 이기주의를 비판하지만, 단지 주민들의 입장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박철수와 박인석의 다음과 같은 견해에 동의하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 돈 들여 만든 편의시설이나 공간을 남들이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일이 감시할 수 없으니 담장을 두르고 들고 나는 곳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아파트단지에 사는 사람들을 야박하다고 탓할 게 못 된다. 제 집 마당에 누구나 들어온다면 좋다고 할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비용 부담의 구조와 공간적 절연의 문제를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박철수)

    “아파트 단지 담장은 프라이버시 보호나 방범을 위한 것이 아니다. 소중한 내 사유재산을 남들이 무단으로 사용하여 내 생활을 교란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나온 안전장치인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이것을 이기주의라고 탓해야 하는가. 탓해야 할 것은 오히려 녹지와 공원이 태부족 상태인 도시 환경 아닐까. 온 골목이 불법 주차장이 되도록 방치하고 그 상태에서도 아무 대책 없이 계속 건축을 허가하고 자가용 차량 판매를 지속하는 사회 체제를 탓해야 하는 것 아닌가.”(박인석)

    그렇다. 우리는 지금 역대 정부들이 해온 ‘손 안 대고 코 푸는 것’의 사회적 비용을 뒤늦게 치르고 있다. 역대 정부들은 눈에 보이는 업적을 군사작전 하듯이 속전속결로 해치워 보여주기 위해 공동체 의식, 시민들 간의 신뢰와 협력, 나눔과 돌봄의 문화 등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 아니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무형 인프라를 희생시키는 일을 해온 셈이다. 주택난이 매우 심각했던 상황에서 그걸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렵지만, 가해자가 감춰지는 이런 부정적 결과는 애초에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른바 ‘알고리즘 독재’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자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부 아파트 주민들의 극단적 이기심과 탐욕은 바로 그런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전관예우를 낳은 알고리즘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고위공직에 최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후불제 유인책이 아니었을까. 금전적 보상으론 어떤 민간기업보다 더 나은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줄 순 없지만, 퇴직 후 전관예우를 통해 보상할 테니 참고 견뎌달라는 암묵적 약속이 적어도 입법·사법·행정 엘리트들 사이엔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관예우가 전 분야에 걸쳐 언론의 반복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당당하게 저질러질 수 있었을까.

    고급 인력 유치를 위한 후불제 유인책

    이걸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판검사의 ‘박봉’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매일경제의 최근(2024. 6. 24) 기사가 재미있다. 이 기사는 “한때 ‘법조계 입신양명’의 대표로 꼽혔던 판사직이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 법조인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약 10년 전만 해도 신임 판사 10명 중 8명이 스카이 학부 출신으로 채워졌지만, 최근에는 절반가량을 ‘비(非)스카이(카이스트·포항공대·경찰대 제외)’ 출신이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가, 특히 자녀 교육비와 부동산 등이 빠르게 치솟으면서 판사 월급으로는 경제적 안정을 갖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사회적 명예보다 높은 연봉 등 보상체계를 더 중요시하는 데 따른 변화다. 판사가 되려면 수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필요로 하는 법조일원화 제도가 도입된 이후 스카이 출신의 법원 이탈이 더 심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조 경력을 채우기 위해 스카이 출신 대다수는 로스쿨 졸업 직후 대형 법무법인에 취업해 억대 연봉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다시 판사로 진로를 바꾸면 월급이 기존 대비 절반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사는 “전직 판사 또는 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전관예우가 사라진 것도 판사 인기를 줄이는 데 한몫했다”고 했는데, 이건 좀 더 두고 지켜보기로 하자. 전관예우의 소멸을 말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기 때문이다. 전관예우 현상을 진단할 수 있는 더 좋은 지표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인력 스카우트 내용일 텐데, 최고 수준의 전관을 영입하는 김앤장의 관행엔 아무런 변화가 없지 않은가.

    ‘박봉’과 더불어 자주 거론되는 다른 이유는 열악한 근무조건이다. 절대 다수의 일반적인 판검사가 얼마나 과로로 혹사당하는지 그걸 제대로 아는 게 필요하다. 우선 24년간 판사로 일한 정인진이 ‘이상한 재판의 나라에서: 우리 사법의 우울한 풍경’(2021)에서 밝힌 증언을 청취해 보자.

    “법관들은 과중하다 못해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린다. 이 과중한 업무량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원인이다. 법관의 경력 중에서도 가장 고생스러운 때는 고등법원의 배석판사 노릇을 할 때인데, 대부분의 고등법원 판사들은 고등법원 재직 기간 중 한번이나 두 번쯤 몸에 심각한 고장이 난다. 그래서 서울고등법원의 별명은 서울고생법원 또는 서울고등학교다.”

    검사들은 어떤가. 야당은 검사가 무슨 악마나 되는 것처럼 정략적인 비난을 밥 먹듯이 해대지만, 대다수 검사들은 민생의 현장에서 악전고투(惡戰苦鬪)하듯이 살아간다. 세 명의 검사가 함께 쓴 ‘여자 사람 검사: 드라마가 아닌 현실 검사로 살아가기’(2021)는 그런 ‘악전고투’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방대한 업무량, 끊임없는 야근에 특근, 2년마다 주거지 변동, 결정의 중요성에서 오는 압박, 여론의 질타. 내 인권을 챙길 틈은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검사들이 인권을 포기할 때, 그 가족들의 인권도 함께 포기되어야 했다.”(박민희)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생에 검사가 되어 이렇게 욕을 먹으면서 공노비처럼 전국을 기약 없이 떠돌며 하염없이 일하고 있는 것인지 막막해지면…”(김은수) “검사들에게도 직업병이 있다. 과중한 업무와 야근으로 인한 거북목 증후군, 수근관 증후군,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는 기본이다.”(서아람)

    전관예우를 비판하는 언론은 자주 “전관예우 풍토가 가장 심한 곳은 단연 법조계”라고 주장한다. 법조계의 전관예우가 뉴스거리로서 보도 가치가 높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아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주장이지만, 훨씬 더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전관예우가 저질러지는 곳은 행정 분야다.

    한국처럼 시험 성적으로 ‘인간 등급제’를 실시하는 나라에선 시험 성적은 ‘공정’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올 3월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사 밑이 판·검사지…수학을 포기한 바보들인데”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게 무슨 뜻일까. 전공의의 분노와 파업은 자신들이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사실상 ‘착취’당하는 것에 대한 후불제 보상의 기본 구조마저 일거에 바꾸려는 윤석열 정부의 ‘무대뽀’ 방식 때문이었겠지만, 대입 성적에 대한 그런 인식이나 자부심도 잠재적으로나마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거의 불가능하게끔 이런저런 규제를 엄격하게 가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행정 분야의 전관예우는 그대로 방치하면서 법조계만 건드린다,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과거의 사법고시 합격자들에겐 ‘고시의 지존은 사법고시’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행정고시 출신들만 전관예우 혜택을 누리는 걸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행정 분야의 전관예우도 원천 봉쇄한다면, 시장의 경제적 보상 원리에 따라 우수 인재들이 과학계를 버리고 의사가 되려는 것처럼, 우수 인재들의 행정·법조로부터의 대탈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명예마저 돈으로 환원되는 사회인지라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서 전관예우를 그대로 두자는 건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줄기차게 반복돼 온 전관예우 관련 대(對)국민 사기극을 중단하고 현실적인 개선책을 모색해 보겠다는 진실성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동시에 법조계의 전관예우만 따로 떼어내 논의하는 방식을 버리고, 공적 영역의 모든 전관예우를 동시에 다룰 때에 공정하고 설득력 있는 해법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20여 년간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2000년대 전반의 전관예우

    참여연대가 2000년에서 2004년 8월까지 퇴직한 판검사 5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퇴직 판사의 90%, 퇴직 검사의 75%가 최종 근무지에서 변호사를 개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관예우를 의식한 결과로 평가됐다.

    2004년 10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박찬은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부장판사제 폐지 등을 건의함’이라는 글에서 전관예우 관행을 강하게 비판해 언론의 주목과 더불어 용기 있는 내부고발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우리나라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이 거액의 변호사비를 주고 담당 검사·판사와 연고가 있는 학교 선후배, 연수원 동기인 변호사를 선임한 뒤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강요해 담당 검사나 판사를 난처한 처지에 빠지게 한다”며, “이것이 결과적으로 법조 불신의 큰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2021년 10월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2021년 10월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박찬은 이어 “퇴직 뒤 변호사로 개업한 고위직 법조인들이 후배 검사나 판사들에게 전화해 일반 사건에 비해 관대한 형을 이끌어내는 행태가 없어지지 않는 한 법조인이 존경과 신뢰를 받기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관예우’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검사나 변호사, 교수 중에 판사를 임관하는 법조 일원화가 하루빨리 이뤄지고 법관들이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전관예우 관행은 비단 법조계뿐만 아니라 관계와 공기업에까지 널리 확산돼 있었다. 매년 정기적으로 전관예우 통계가 나오는 행사가 있는데, 그건 바로 국정감사다. 2004년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나온 행정 분야 전관예우의 몇 가지 통계를 살펴보자.

    2001년 이후 재정경제부의 4급 이상 퇴직 간부 41명 가운데 63.4%에 달하는 26명이 산하기관의 감사나 기관장 등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밝혀졌다. 예금보험공사의 팀장급(1-3급) 직원 95명 중 절반인 47명이 정부 출신이었으며, 이 중 29명이 재경부 출신이었다. 또 2002년 이후 2004년 9월까지 퇴직한 감사원 4급 이상 간부 34명 중 41.2%인 14명이 피감기관의 감사나 임원이 됐다.

    금융기관 임원 자리는 금융감독원 퇴직자들의 몫이었다. 2002년 이후 금융감독원을 퇴직한 89명중 42명이 금융기관의 감사·이사 등이 됐다. 대부분 퇴직 당일이나 다음 날, 또는 같은 달에 재취업했다. 공직자윤리법은 2급 이상인 금감원 직원에 한해 퇴직 전 3년 내 소속한 부서 업무와 관련된 사기업일 경우만 2년간 취업을 제한했는데, 팀장급인 3급으로 근무하다가 승진 전에 금융기관으로 자리를 옮겼거나 2급 이상 직원도 행정자치부의 승인을 얻어 금융기관 임원으로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문화일보(2004. 10. 2)는 ‘금감원이 금융기관 임원양성소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정부 부처들이 낙하산 인사의 관행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퇴직 선배를 민간 기업으로 보내 노후생활을 보장해 주고 자기네 부처는 인사적체를 해소할 수 있다. 전직 공무원을 채용한 민간회사는 이들을 정부 상대의 로비 창구로 활용하게 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먹이사슬 관계다. 하지만 소집단 구성원들끼리의 공적 시스템을 활용한 사익(私益) 추구 행위는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을 훼손할 뿐 아니라, 심한 경우 해당 기관의 부실화마저 초래한다.”

    지난 6년간 퇴직한 교육부 출신 관료 중 82명이 사립대에 법인이사(27명), 교수(26명), 직원(14명), 총·학장(7명) 등으로 취업했으며, 이들 중 12명은 퇴직 바로 다음 날 사립대로 출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부터 2004년 9월까지 퇴직한 문화관광부 4급 이상 공무원 47명 가운데 34%인 16명이 문화부 산하 단체로 자리를 옮겼다.

    전관예우는 “윤리도 법도 모두 비웃는 요술 단어”

    전관예우는 비단 법조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2023년 7월 31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퇴직 간부들의 ‘전관특혜’ 의혹에 대해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동아DB]

    전관예우는 비단 법조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2023년 7월 31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퇴직 간부들의 ‘전관특혜’ 의혹에 대해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동아DB]

    2000년대 후반은 좀 달라졌을까. 달라지긴 했는데, 악화됐다! 2005년 10월 6일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전관예우 관행이 집중 거론됐다. 2005년 상반기 서울 지역 동서남북 4개 지법의 구속사건을 개업한 지 3년이 안 된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싹쓸이’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서울 북부지법의 경우 상위 랭킹 10명 중 7명이 ‘전관’으로 집계되는 등 ‘전관예우’ 관행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9월 4일 노회찬이 전국 지방법원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6년 6월까지 3년간 전국 18개 지방법원별 구속사건 수임 순위 10위 내 개인 변호사 436명 중 판검사 출신 전관은 305명으로 70%에 달했다. 수원지법의 경우 3년간 10위 안에 든 개인 변호사 18명 전원이 전관 출신이었고, 서울서부지법이 24명 중 23명(96%), 서울북부지법이 22명 중 20명(91%)으로 뒤를 이었다. 법원별 3년간 연속 수임 순위 10위 내에 든 전국의 개인 변호사 28명 중 27명이 전관 변호사였다. 수임 순위 10위 내 전관 변호사 305명 중 287명(94%)은 퇴임 후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10월 16일 열린 서울고·지법 국정감사에선 대형 로펌으로 옮긴 전직 판검사들의 연봉이 6억~3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문화일보는 사설을 통해 “로펌이 현직 때의 수십 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막대한 보수를 내주며 이들을 영입한 동기 내지 목적은 ‘활용도’일 것이다. 일컬어 ‘전관(前官) 프리미엄’이다. 4년 전 퇴임한 검찰총장 출신의 연봉이 올해 법복을 벗은 부장검사 출신의 3분 1에도 못 미치고, 대법관 출신의 보수가 영입 4년 만에 반감(半減)한다는 추세는 ‘퇴임 후 1~2년’이 피크라는 전관 프리미엄의 한 단면이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부산대 교수 조환규는 “우리 시대 최고의 요술 단어는 ‘전관예우’가 아닐까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범접하기조차 어려운 이 단어에 숨어 있는 마법은 신묘하기 짝이 없다. 전직 상사와의 술자리에서 안주 한 점 더 얹어주는 정도의 친절이 ‘전관예우’라면 이해가 된다. 소송의 당사자들이 사활적 이해를 다투는 과정에서 이유 없이 한쪽을 슬며시 편들어 주는 행위가 어떻게 예우라는 표현으로 미화될 수 있는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그것은 부정한 사욕에 눈멀어 진실의 저울을 비트는 범죄행위로서 반드시 단죄돼야 할 ‘부정 판결’로 표현돼야 한다.”

    물론 행정 분야의 전관예우도 부정행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무뎌진 우리 모두의 감각이다. 정(情), 인간관계 또는 처세의 문제로 가볍게 여기고 넘어가려는 마음가짐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다. 자신도 막상 변호사를 찾을 때엔 ‘담당 검사를 잘 아느냐’ ‘담당 판사와는 어떤 사이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자신을 부정행위의 가담자나 공범으로 여기고 싶지 않은 자기 보호 욕구 때문인가.

    역사의 오랜 때가 묻은 관행에 참여하는 개인의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앞서 지적한 ‘고급 인력 유치를 위한 후불제 유인책’은 역사적 이해를 위한 설명일 뿐 그게 정당화의 논거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전반적으로 바닥을 기고 있는 법조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문제와 무관치 않을 것이기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려는 강한 문제의식, 그리고 인내와 끈기일 게다. (다음호에 계속)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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