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체스판’에 우리 ‘장기판’도 올려 협상해야
‘원하는 게 뭐냐’ 묻고 필요한 것 받아야
러-우 전쟁, ‘힘’에 의한 국제질서 재편 상징
김정은, ‘핵·경제 병진’ 정당성 과시하려 파병
미군의 한국 내 지출 방위비 대부분 부담중
‘국가 이성’ 발휘해 ‘오물 풍선’ 악순환 끊어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지호영 기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재등장과 북한군 러시아 파병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의회를 장악한 야당이 국가 이익 확보를 위한 대외정책에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에게 ‘수권 준비가 돼 있음’을 어필할 정치적 기회라는 것이다.
송 전 장관은 “‘트럼프 2.0’ 시대에는 소극적 태도에 머물 게 아니라 ‘윈윈 협상’으로 국익을 키워나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월 13일에 서울 남산 기슭 그의 연구실에서 2시간 가까이 나눈 대담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트럼프, 단기에 성과 내려 신속하게 움직일 것”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 안과 밖의 관측통 대부분이 박빙 승부를 예견했지만, 결과는 트럼프의 압승이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 고물가와 치솟은 부동산 가격, 소득격차로 다수 시민이 고통받는 미국 현실과 관련 있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불만을 현 (바이든) 정부 반대 투표로 표출한 것이다. 트럼프가 거칠기는 하지만 ‘한다면 한다’는 인식이 미국인 사이에 존재한다. 대외적 측면으로 보면, 트럼프의 재등장은 미국이 세계 지도자 역할에 종언을 고한 것과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세계 경찰 구실도 해왔지만, 국제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자 구실도 했다. 그런데 ‘미국 우선’을 외치는 트럼프가 2016년에 이어 이번에 다시 집권한 것은 미국이 ‘세계 지도자, 세계 경찰’로서 역할을 더는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송 전 장관은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는 언제나 ‘아메리카 퍼스트’였다”며 “바이든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칩스법 등 글러브를 낀 주먹으로 ‘미국 우선’을 추구했다면, 트럼프는 ‘방위비 많이 내라’ ‘미국 물건 많이 사라’ ‘미국에 투자하라’는 식의 맨주먹을 휘두르며 ‘미국 우선’을 추구하는 스타일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2023) 미국에 일자리를 가장 많이 만든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2기를 어떻게 전망하나.
“1기 때는 관료와 군인, 언론과 학계 등 여러 기존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트럼프가 자기 뜻을 맘대로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2기 때는 조직적으로 움직여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 할 것이다. 미국은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다음에 다가올 선거전에 돌입한다. 2년 뒤 중간선거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곧바로 레임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경우 임기가 4년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단기에 성과를 내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일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11월 5일 대선 승리 1주일 만에 비서실장,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국방장관, 국토안보장관, 중앙정보국장, 법무장관, 유엔 대사, 중동 특사 등 핵심 고위급 인사를 초고속으로 인선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트럼프가 거칠게 무섭게 나온다고 해서 겁먹고 쫓기듯 협상할 필요는 없다. 중국 시진핑 주석처럼 긴 호흡으로 상대를 압박하지 못하는 게 트럼프에게는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인, 특히 재개발사업가 출신인 트럼프는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구체적으로 눈에 띄는 거래를 좋아한다. 그는 ‘Plain Talk(분명하고 솔직한 화법)’로 일하는 사람이다. 자신감을 갖고 (트럼프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묻고, 우리가 감당할 수준이면 요구를 들어주고,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트럼프에게) 당당하게 요구해서 받아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송 전 장관은 “트럼프와 ‘딜’할 때는 거래의 폭을 좁은 테이블로 국한하지 말고 협상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거시적이고 광폭적인 안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가 짜놓은 체스판에서만 왔다 갔다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짠 장기판도 협상 테이블에 함께 올려놓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확보하려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체스판에서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장기판에서 만회해 전체적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협상 결과를 도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미·중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중국을 보는 시각은 견제는 하되 함께 살아야 한다는 온건 입장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강경 입장으로 나뉜다. 트럼프는 후자 입장을 가진 이들을 중용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중 압박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실도 있지만 득도 있다.”
어떤 점이 득이고, 어떤 점이 실인가.
“미국이 대중 관세를 높이면 우리의 중간재가 중국에서 완성재로 만들어져 미국으로 수출되던 물량은 줄겠지만, 대미 직접 완성재 수출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정부 역할이다. 정부가 재계, 기업인과 긴밀히 소통해 전체 국익이 늘도록 조정하고 관리해야 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조정 능력이 바로 통치 능력이다. 지금이 바로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우리끼리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송 전 장관은 “미국이 관세를 올리려는 것은 자국 제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한 것인 만큼, 경쟁력 있는 미국 제품은 우리가 더 사고, 우리가 경쟁력 있는 제품을 미국이 더 많이 사도록 협상해야 한다”며 “전체적으로 대한민국과 미국의 이익 균형을 맞춰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도록 협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주제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로 돌렸다.
트럼프 대중 압박, 失도 있고 得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행사하는 영향력이 떨어졌다는 방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에 미국이 전 세계에서 차지한 경제 비중은 40% 이상이었다. 지금은 30% 이하 수준으로 내려왔다. 그만큼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축소된 것이다. 경제력뿐 아니라 외교력, 군사력도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 겉보기에 파워풀해 보이는 트럼프가 꺼내 든 카드가 결국 ‘관세’ 정도 아닌가. 다른 수단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관세’를 들고나온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집권하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트럼프가 취임 직후 휴전 협상에 적극 나설 가능성은 있다. ‘규칙’에 기반한 세계질서가 유지될 때는 미국의 뜻이 곧 현실이 됐지만 현재는 ‘힘’에 의해 국제사회가 움직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하기 어려운 전쟁이고,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협상안을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단기간에 결론짓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이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반도 안보와 직결되는 전쟁이 됐다.
“북한이 러시아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기술을 이전받아 군사력을 강화하려 한다거나, 북·러조약으로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자동 개입 길을 열어 한반도에서 북한이 우위에 서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나는 그 두 가지 외에 핵심적인 다른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시급한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면서 김정은이 집권 초부터 공언해 온 핵·경제 병진 노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중·러 삼각 협력에 있어 북한의 위상 강화다.”
트럼프, 한미일 3국 협력 계승할 것
핵·경제 병진 노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러시아에 북한군을 파병했다?
“김정은이 내세운 대표 정책이 ‘핵·경제 병진 노선’이었다. 일단 핵부터 만들고 미국과 협상을 잘해 제재를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하노이 노딜’로 그게 잘 안됐다. 김정은의 ‘시그니처 폴리시’(핵·경제 병진)가 좌절되면 정통성과 통치 기반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같은 상황에 김정은이 러시아 파병을 결정했다. 김정은은 최고 ‘보검’이라는 핵을 갖고 있어 남북 대치 상황에서도 포탄을 러시아에 보내고 군대까지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안팎으로 보여주고, 군부를 위시한 내부 설득도 했을 것이다. 또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석유와 식량 등 막대한 경제적 실리를 얻어내 자신이 공언한 핵·경제 병진이 옳았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 할 것이다.”
송 전 장관은 “러시아에 파병한 북한군은 우크라이나가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 영토(쿠르스크)를 벗어나 우크라이나 내부로 침공하는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방인 러시아 영토가 침공당해 도운 것일 뿐 침략전쟁에 참여한 게 아니라는 명분도 내세우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중·러 관계에 미묘한 변화를 노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북·러 밀착으로 북·중 관계가 껄끄러워졌을 것이라는 것은 표면만 보는 시각일 수 있다.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퇴하면 어떤 일이 생기겠나.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의 연대를 사실상 주도하는 중국의 세계 전략 구도에 심각한 악영향이 올 수 있다. 그렇기에 이미 서방으로부터 고립된 북한이 나서서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중국도 내심 환영할 만한 일이 된다. 내가 보기에 김정은은 이 문제(러시아 파병)를 당연히 중국과 필요한 수준의 교감은 했을 것이다. 최소한 물밑 소통은 충분히 했을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 파병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 모두에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할 것이다.”
북한군 파병으로 유사시 한반도 문제에 러시아가 개입하게 될 것이란 우려는 어떻게 보나.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함께 끼고 있는 이른바 ‘유라시아 국가’다. 그런데 지금은 유럽 쪽의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한동안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쪽 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북·러 밀착이 우리에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한러 관계에 있어 서로가 돌아올 수 없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도록 끝까지 관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3국 협력 구축에 공을 들였다. 트럼프 취임 후에도 한미일 3국 협력 체제는 지속될 수 있다고 보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트럼프는 한미일 3국 협력을 환영할 거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트럼프 대외정책의 핵심 기조는 ‘Risk, Commitment, Cost의 축소’에 있다. 앞 글자를 따서 R·C·C라고 요약할 수 있다. 즉 위험, 공약, 비용을 줄이는 게 트럼프 대외정책의 기본이다. 미군이 해외 나가서 죽는 위험부담이 큰 전쟁에는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대만, 한반도 어디든 자기들이 지켜주겠다는 ‘공약’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널 지켜주겠다’고 공약하는 순간 거기에 따른 부담이 생기는데 그런 공약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 공약을 지키는 데 드는 비용도 안보의 수혜국이 짊어지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일 3자 협력은 미국 입장에서는 R·C·C를 줄일 수 있는 좋은 체제다. 미국은 뒤에 서 있고 한국과 일본이 방위비를 올리고 군사력을 키우면서 함께 미국과 손잡고 대중 견제 전선을 이루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그대로 부합한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미국이 RCC 축소의 기조에 맞게 동맹이 안보의 자립도를 키우기를 원할 것이다. ‘자기 문제는 가급적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규모와 기능에 대해서도 한국 스스로가 넓은 사고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트럼프는 대만에 연간 국방비 예산을 현재 200억 달러 수준에서 800억 달러까지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1기 때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을 요구한 바 있다. 2기 들어 더 많은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있는데….
“방위비 분담금은 한미 양국이 분담의 구조와 협상 방식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 정부는 미국에 대해 ‘한국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근거 계산이 불분명하니 청구 내역을 명확히 하자’고 한 다음, ‘일정 기간 내(예를 들어 트럼프 재임 4년 안에) 한국 내에서 발생하는 미군 소요 비용 100%를 한국이 부담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대신 내역은 서로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연간 방위비 분담을 50억 달러니 100억 달러니 하면서 마치 한국을 현금 자동인출기(트럼프는 ‘money machine’ 이라고 표현)취급하려는 것은 단호하게 잘라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미군 병력과 장비의 한반도 지역 배치와 훈련 비용 등도 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하는데, 이건 마치 미국 스스로가 미군을 용병으로 간주하는 만큼이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발상이 될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을 ‘실비 정산’으로 바꾸자는 것인가?
“그렇다. 지금까지는 은행 계좌로 한꺼번에 이체해 줬는데, 앞으로는 견적서를 보고 거기에 맞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프로토콜을 바꾸는 것이다. 액수 문제가 아니라 동맹도 개인 친구 사이처럼 서로 계산이 분명해야 건강한 관계가 유지된다. 또 우리가 일본보다 방위비 분담금을 적게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일본과 비슷하게 내고 있다. 일본은 민간 소유의 토지를 정부가 유상 임차해 미군에 제공하고 임차료를 방위비 분담에 계상한다. 우리는 정부가 민간의 토지를 수용해서 미군에 제공하면서 방위비 분담 실적에 산입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인다.”
핵무장 당위론과 현실론 사이에서 타협안 찾아야
송 전 장관은 “트럼프가 당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해 한국의 조선산업을 언급하며 ‘협력하자’고 했다는데, 미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운영(MRO)을 방위비 분담에 연계시킬지, 또는 다른 방식의 협력을 원할지 봐야 한다. 서로 도움이 되도록 끌고 가되, 어떤 경우에도 이를 계기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 해줄 테니, 저것 달라는 식의 조건부 협상을 할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의 평화적인 원자력에너지 이용을 확대하고 자립도를 올리기 위해 핵발전소용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을 이번 기회에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나왔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기존의 내부 노선을 커밍아웃한 것이다. 핵·경제 병진이 안 되니, 남한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적국을 상대하려면 핵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핵 개발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도 체제의 정통성과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는 김일성 이래 주장해 온 ‘통일 혁명’ 노선이 안팎으로 먹히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고 출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핵무장 여론이 높다.
“당위론으로 보면 맞는 얘기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당장 핵무장하면 득보다 실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당위론과 현실론 사이에서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
어떤 타협안이 가능한가.
“단계적으로 자체 핵무장을 추진하는 것이다. 국가 안위의 위기가 감지되면 단시간 내에 핵무기 개발이 가능한 수준까지 핵잠재력을 우선 확보하는 것이다. 앉은 채로는 곧바로 뛸 수 없다. 뛰려면 일어서서 한두 걸음 내디딘 뒤에야 뛸 수 있는 것처럼 달릴 준비를 해두자는 것이다. 핵무기에 관한 한 우리는 현재 앉은뱅이 상태다. 미국과의 원자력협정에서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최소한 설 수 있는 수준까지는 가 있어야 한다. 일본과 독일이 지금 그 상태다. NPT를 탈퇴하고 국제제재를 각오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제재를 받지 않는 범위까지 최대한 핵잠재력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지금 남북 간에는 대북 전단과 오물 풍선이 오가고,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을 통해 심리전이 한창이다.
“저급한 북한과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인 한국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 경제는 남북 군사 대치에 따른 안보 불안으로 늘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시달려 왔다. 거기에다 보기 흉하고 위험하게 보이기도 하는 이전투구까지 하고 있으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겠나. 비록 헌법재판소에서 대북 전단을 보내는 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인정했지만, 지금은 ‘국가 이성’을 발휘해야 할 때다.”
국가 이성?
“프랑스 말로 ‘레종 데타(Raison d’Etat)’로 ‘국가 이성’, 또는 ‘국가 이유’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삼권분립의 제약을 넘어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통치 차원의 행위를 뜻한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원수다. 비록 헌재가 표현의 자유를 인정했더라도 국가 안보와 국민 삶에 위협이 되는 행위라면 ‘국가 이성’을 발휘해 자제시키는 조치가 필요하다. 북한은 대북 전단을 정치적 오물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들도 실제 오물을 보내 맞대응한다는 논리다. 또 대북 확성기 방송에도 같은 논리로 대응한다. 자칫 우발적 충돌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국가 이성을 발휘해 좀 더 높은 차원에서 남북 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신동아 12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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