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오바마 시대의 한반도

北核 문제 후순위로 밀릴 것… 1~2년 지나야 제 색깔 나온다

  •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lancer@kida.re.kr

    입력2008-12-04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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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밋빛 전망이 쏟아진다. 부시 행정부 시기 최악으로 치닫기도 했던 북미관계가 빠른 시일 안에 풀려나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가 하면, 미중관계 훈풍과 함께 동북아 정세도 전례 없는 평온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 또한 넘쳐난다. 과연 그럴까? 오바마 리더십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 미칠 영향의 명과 암을 짚는다.
    오바마 시대의 한반도
    “이번 승리가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 자체는 아니다. 이 승리는 그러한 변화를 위한 기회에 지나지 않는다.” 대선 승리가 사실상 확정된 11월4일 저녁(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당선자가 행한 연설의 일부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11월8일 그는 당선자 신분으로 행한 첫 연설에서 “우리는 전세계에 우리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었으며, 무엇이든 실현 가능한 위대한 미합중국의 꿈을 재확인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두 문장은 오바마 당선자가 앞으로 추진할 각종 대외정책의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리더십을 확보하고 행사하는 방법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지지자들은 그의 리더십이 21세기 경영자의 모델이 될 만하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구성원들의 열정을 이끌어내는 능력,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창의성, 사안에 잠재된 위험성을 계산하는 감각, 뛰어난 의사소통 기술, 포용성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은 그의 능력 가운데 실제로 검증된 게 별로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선 직전 만난 한 전직 미국 관료는 “매케인은 당선된다 해도 사상 최고의 대통령 반열에 들지는 못할 테지만, 완전히 실패할 가능성도 없다. 반면 오바마에게는 최고와 최악 두 가지 가능성이 동시에 열려 있다”고 촌평했다.

    두 개의 평가는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 오바마는 매케인뿐 아니라 민주당 다른 인사들에 비해서도 정치경력이 일천하다. 그의 급속한 부상과 대통령 당선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그것과 비교하곤 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반면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편집장을 지낸 정치입문 이전의 경력은 주류사회 구성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1997년 이래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을 세 차례 연임한 후 연방상원에서 국제관계위원을 지낸 그를 정치외교 문제의 문외한으로만 치부하는 것도 무리다.

    분명한 것은 과반수의 미국인이 오바마를 미국을 이끄는 데 더 적합한 리더십을 지닌 인물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즉 그의 리더십에는 오늘날 미국인들이 희망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반영돼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봐야 한다. ‘추악한 정상배(dirty politician)’의 관행에 물들지 않은, 당당한 미국의 위상을 재현해줄 변화의 선도자. 미국의 유권자들이 원한 리더십은 노련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신 독선적인 ‘마에스트로’보다는 참신하면서도 친근한 ‘악장(樂長)’이었던 셈이다.



    지속성과 차별성

    이러한 국민의 바람을 명확히 꿰뚫고 있던 오바마가 선거과정에서 강조한 키워드는 변화와 부흥, 통합으로 요약된다. 그는 미국이 국제질서의 주도국 위치를 포기하거나 국내문제에만 전념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전처럼 일방주의적 사고나 행동에 의해 끌고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른 2007년 7/8월호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내용은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금세기의 다양한 위협에 홀로 대응할 수 없다. 세계 또한 미국 없이는 이를 관리할 수 없을 것이다. … 우리는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솔선수범을 통해 모범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협력적인 태도로 국제적 리더십을 유지한다는 오바마의 세계전략 목표는 크게 다섯 가지 구체적 정책방향을 가늠케 한다. 첫째는 군사력보다는 외교력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할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적(foe)이냐 동지(friend)냐라는 구분, 혹은 특정 정치지도자에 대한 개인적 호오(好惡)에 따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도 거래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김으로써 미국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직접적 군사력의 사용을 가능한 한 자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오바마가 이란과 북한에 대해 보다 격상된 형태(정상협의 등)의 대화 의사를 밝힌 것은 이러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둘째, 새 행정부는 미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테러리스트 집단이나 그 지원국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오히려 단호한 대응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라크전 개전 자체를 비난했고 단계적인 이라크 내 미군 철군을 추진하면서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하겠다고 시사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명분상 다른 국가들이 이론을 제기할 여지가 적고 적대세력을 추가로 양산할 가능성이 적은 여건이라면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오바마가 이란이나 북한이 계속 비확산에 위배되는 핵 개발 활동을 할 경우 강력한 국제제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 역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셋째, 특정국가나 집단에 외교력 혹은 군사력을 실제로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는 가능한 한 부담을 다른 나라와 분담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각종 공약을 통해 세계질서 유지를 위해 미국의 리더십을 보완, 지원해줄 국가로 유럽연합(EU) 국가들을 꼽았고, 이러한 관점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강화를 모색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또한 일본, 한국 등 아시아권 동맹국과의 관계 증진 역시 공약했다.

    이는 국제질서 유지를 위협하는 외교적, 군사적 소요가 발생할 경우 기존의 동맹 및 우방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해결하겠다는 구상을 반영한다. 일방주의를 포기하는 대신 상대방도 대접에 상응하는 기여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부담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기존의 쌍무적 관계 외에 다자협력의 가능성 역시 함께 모색하게 될 것이다.

    넷째, 환경파괴와 에너지 안보 같은 비전통적 안보위협에도 강조점을 두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는 또 세계의 비핵화에 대해서도 이전의 어떤 대통령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많은 국가가 공감하는 협력적 의제를 확대함으로써 미국의 세계질서 주도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는 한편 미국적 도덕성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다.

    다섯째,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은 세계 및 지역 질서에 있어 세력을 균점한 강국들과 과감하고 분명한(tough) 타협 및 협상을 벌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오바마는 선거기간 중 기존 핵무기의 대폭 축소, 폐기를 위해 러시아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중국과도 에너지 안보 및 경제분야에서 협력 폭을 넓혀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한 바 있다. 동시에 그는 떠오르는 중국의 군사력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러시아의 독재정치와 호전성을 지적한 일도 있다. 협력과 갈등이 병존하는 미국과 여타 강대국 사이의 관계나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안보자원이 제약된 시대적 상황은 국제질서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각종 안보 현안을 놓고 주요 국가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 쉽지만, 또 그만큼 극적인 타협도 쉬울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강대국 중심 외교의 그림자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분위기가 중견 혹은 약소국들에 적지 않은 딜레마를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과 같은 ‘줄 서기’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오바마 당선자의 세계전략은 동북아 및 한반도에도 충실히 투영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기회 이상으로 많은 고민을 우리에게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이다. 새 백악관의 세계전략은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더욱 안정적인 질서의 도래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미국 일방주의의 탈피와 대화 중시를 특징으로 하는 대외정책은 중국과 러시아 등 역내 주변국으로부터 환영받을 것이고, 경쟁보다는 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에서도 비핵화의 원활한 진행과 북한의 긍정적 변화, 남북한 관계 발전이 선순환적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그림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외정책의 근간을 ‘의리’보다는 ‘실리’에 둠으로써 국력이나 자원에서 우월한 강대국 중심의 외교가 전개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오바마의 동아시아 정책이 ‘주요 강국들의 협의를 여타 국가들이 추종하는’ 틀을 지향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강대국 간 갈등과 극적 타협이 수시로 반복되는 여건 속에서 미국 대외정책을 섣불리 지지하고 나섰다가 한중, 한러 관계에서 한국만 손해 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대외정책에 대한 소극적 지지가 한미관계에 불이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중적 부담이 생긴다.

    일각에서는 오바마의 대선 공약으로 미루어 미중 협력관계가 강화됨으로써 한국이 한중관계에서 느끼는 부담이 경감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황이 실제로 그렇게 만만할지는 별개 문제다. 오바마 당선자는 공약을 통해, 중국의 경제성장이 미국과 중국에 모두 호혜적인 것이 될 수 있으나 중국은 세계경제의 균형된(balanced)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결국 중국이 전과 같은 단독 고속성장을 희생해 ‘지역 및 세계 경제의 활성화’(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경제회복’)에 기여할 경우, 안보 분야에서 협력적 의제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암시한 것이다.

    물론 중국 입장에서 이러한 제안이 과연 수용 가능할지는 의문스럽다. ‘도광양회(韜光養晦)’ ‘화평굴기(和平起)’로 이어지는 중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결국 고속 경제성장의 지속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기적인 차원에서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미중 간의 심각한 갈등이 오히려 증폭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평양의 고민, 백악관의 고민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도 기회와 고민은 교차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은 미국에 대한 북한의 신뢰를 높임으로써 보다 유연한 비핵화 정책을 유도할 수 있다. 낙관적으로 보자면 북한이 기존의 ‘벼랑 끝 전술’ 및 ‘의제분할 전술(salami tactic)’을 탈피해 포괄적인 타결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의 해소’를 위해 기존 의제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가운데 유화책이 주로 기존 제재의 해제에 맞춰졌다면,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평화체제 및 남북한에 대한 주변국의 조기 교차수교처럼 보다 포괄적인 의제를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 당선자의 핵 비확산에 대한 의지를 고려할 때 북한의 기존 핵을 인정하는 이른바 파키스탄형(型) 해결방식은 선택하기 어려운 대안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북한의 과감한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카드로 탈한반도화 등 한미동맹 역할조정이나 주한미군의 임무변경이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상황 역시 단순한 기우로 치부하기 힘들다.

    북한 입장에서도 오바마의 미국은 부시 행정부 시기보다 오히려 까다로울 수 있다. 미국은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의 안보위협을 해소할 각종 조치가 논의, 실현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핵 이외의 대량살상무기를 협상의제에 올릴 수 있다. 또한 비핵화 과정의 경제지원 등을 통해 북한이 상정한 것보다 훨씬 빠른 변화과정을 유도하려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오바마 시대의 한반도

    미국 재향군인의 날인 11월11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오른쪽)가 시카고의 재향군인기념비에 헌화한 뒤 이라크전에 참가했던 여군 태미 덕워스 씨와 포옹하고 있다. 덕워스씨는 2004년 이라크에서 블랙호크 헬기를 조종하다 추락해 두 다리를 잃었다.

    대화를 통해서도 비핵화가 원활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면 오히려 공화당 행정부보다 과감한 강압수단을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 시설의 정밀타격(surgical strike)에 대한 조용하지만 치밀한 검토가 오히려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현실화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비핵화 속도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의견편차를 보일 경우 새로운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 대내외적 여건을 고려할 때 오바마 행정부 정책 우선순위의 맨 앞에는 국내경제의 회생이 놓일 수밖에 없고, 대외정책은 후순위로 밀려날 공산이 크다. 대외정책 중에서도 부시 행정부의 실책으로 지적되는 이라크에서의 단계적 철군이나 이란과의 대화가 북한 비핵화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북미 간 대화를 가속화하려는 북한의 구상과 비핵화 문제를 중기적 해결과제로 설정하는 미국의 정책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 차원에서도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은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일단 ‘21세기 전략동맹’의 개념에 대해 미묘한 온도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양국이 수차례 약속한 21세기 전략동맹에서 한국측이 중점을 두는 것은 결국 ‘21세기’일 것이다. 과거 50여 년과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미국의 대한(對韓) 안보공약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하며, 이를 담보하기 위해 미국과의 협력대상을 한반도 내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 혹은 세계 차원으로 확장한다는 것이 한국의 구상이라 할 수 있다.

    고조되는 ‘균등 기여’ 요구

    반면 미국 측에서는 ‘전략’이란 단어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 전략동맹은 곧 북한 군사위협 일변도의 동맹으로부터의 탈피이며, 동맹의 무게중심이 한반도에서 지역 및 세계로 이동함을 의미한다. 오바마가 선거유세 과정에서 이미 탈한반도 동맹으로의 변환을 시사한 사실은 국제질서 유지에 있어 미국의 부담 경감이라는 전략과 맞물려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이런 점에서 해외파병 등 지역 혹은 국제적 수준의 기여 요구는 늘어나는 반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실질적 안보공약은 상징적 수사에 머물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21세기 전략동맹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부담의 형평성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면 미국 안보공약을 제도적으로 압박하는 기존 연합지휘관계의 지속기간을 늘이자는 주장, 즉 전시작전권 전환 재협상의 여지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동맹의 비용분담 문제에서도 오바마 행정부는 역대 어느 미국 행정부보다도 단호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국내정치적 효과, 의회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동맹국과 우방에 철저한 부담분담을 요구할 것이다. 특히 여타 동맹국에 비해 비용분담 기여가 낮은 것으로 평가돼온 한국에 대해서는 ‘균등한 기여’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비용분담 문제를 철저히 안보공약과 연계하는 전략이 등장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대한(對韓) 안보공약은 비용분담에 대한 한국의 성의나 그 이행 여부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발 빠른 사고와 신중한 행동

    오바마 당선 이후 새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관해 다양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돼왔다. 유의해야 할 것은 출범 1~2년 사이의 초기 정책과 중기 이후의 정책방향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국내 언론과 분석가들이 오바마의 승리를 ‘흑인 대통령 당선’에 초점을 맞춰 해석했다. 이전과는 다른 파격과 변화의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오바마의 승리는 오히려 ‘가장 민주당적인 사고를 지닌 후보의 당선’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전에 민주당이 추진해온 정책방향과 미국이 당면한 제반 여건의 제약, 선거과정에서 오바마 후보가 민주당의 단합을 위해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공약을 통합해왔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오바마 당선자의 공약은 치밀한 논리적 일관성을 지니는 부분도 있지만 상호 인과관계나 연계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적지 않다. 21세기에 맞는 군사력 ‘재건축(rebuild)’을 지향하고 군사력 자체보다는 외교력의 중요성을 부각하면서도, 육군과 해병대 등 지상전력의 증강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동 안정화를 표방하면서도 이슬람과 미국의 충돌원인이 된 이스라엘 편향정책에 대한 수정 비전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과연 그가 지향하는 중동의 평화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오바마 시대의 한반도
    차두현

    1962년 경남 진해 출생

    연세대 정외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총리실 주한미군대책기획단 자문위원, 국방부 자문위원, SPI 정책 연구위원, 청와대 위기정보상황팀장

    現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


    결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사전에 준비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진행형에 가깝다. 꾸준한 재검토와 수정을 거쳐 1~2년 후에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한국으로서는 그 과정 동안 새 행정부와의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다양한 대화채널을 구축하는 노력을 시도해야 한다. 기존의 현안이나 약속에 지나치게 집착해 이를 섣불리 의제로 제안했다가 자칫 더 큰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 발 빠른 사고와 협력태세를 구축하면서도 성과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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