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호

“제국이 세계를 운영한다면 중국보다는 미국이 낫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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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6-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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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좌·우파 공히 미국 너무 모른다

    • 尹, 이제는 베이징·모스크바도 가야

    • 韓 핵무장 포기 받아낸 美가 이익

    • 韓美 핵협의그룹(NCG) 실체 불분명

    • 나라면 핵무장론 레버리지 썼을 것

    • 5년 내 中이 대만 침공 단행할 수도

    • 北이 국지전 펼 가능성 대비해야

    • 군인-운동권-검찰이 권력 잡으니…

    • 트럼피즘과 닮은 듯 다른 ‘개딸’

    6월 7일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조영철 기자]

    6월 7일 ‘신동아’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조영철 기자]

    신기욱(62)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은 스물두 살 때 한국을 떠났다. 이후 세계적 사회학자 반열에 올랐다. 그가 쓴 ‘Ethnic Nationalism in Korea’(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는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다른 나라 언어로 쓰인 우리 사회에 대한 가장 탁월한 저작”으로 꼽힌다. 주 전공은 역사사회학·정치사회학이지만 국제관계에도 정통하다. 미국 및 유럽 유수 언론이 즐겨 인용하는 ‘한반도 전문가’다.

    방한한 그를 6월 7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만났다. 2시간 동안 대화하며 떠올린 단어는 ‘바깥’이다. 마침 그가 1년간 ‘신동아’(2022년 5월호~2023년 4월호)에 연재한 칼럼이 ‘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였다. 내부 시각에 갇힌 한반도론을 확장하자는 취지였다. 그는 터전인 미국도 바깥의 시선으로 본다. 그의 자택은 실리콘밸리의 중심인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 있다. 미국서도 집값이 비싼 지역이다. ‘이너서클’의 논리에 젖어들 법한데 균형감을 유지한다.

    반미(反美)를 주창하는 건 아니다. 당위보다 현실을 살피자는 목소리를 낼 뿐이다. 한국의 좌파는 미국을 악의 본산이자 음모의 주체로 보는 경향이 짙다. 반대로 우파에게 미국은 존숭의 대상이거나 준거점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좌파는 ‘미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고 우파는 성조기와 태극기를 양손에 쥐고 흔든다. 오래 묵은 이분법 사이엔 바늘 하나 넣을 틈도 없어 보인다. 올해로 만 40년째 미국에 살고 있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좌·우파 공히 미국을 너무 모른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다. 미국이 절대 악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세계가 결국 제국에 의해 운영된다면, 나는 그래도 중국보다는 미국이 낫다고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통해 자신들이 가는 길로 한국보고 오라는 게 아닌가. 철저히 이익을 중시하는 국가다.”

    중국과 러시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이 타도의 대상도 아니고 찬양의 대상도 아니라는 뜻 같다.

    “그렇다. 한국이 실리를 취해야 한다. 인도는 ‘비동맹’의 전통이 있어서 그런지 ‘쿼드’(Quad·미국, 호주, 인도, 일본 4개국 안보협의체)에 참여하면서도 미국 쪽으로 확 쏠리지는 않는다. 역사가 있고 큰 나라이기도 하니 미국이 무시하지 못한다.”



    한국에 미국 유학파가 그렇게 많은데도 미국을 모르나.

    “나는 미국에서 교수로 오래 일하면서 학교가 돌아가는 사정을 경험했지만, 유학 온 대학원생 처지에서는 볼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 한국에서 미국을 안다고 하는 사람 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 자칫 섣부른 ‘미국론’을 펼 수 있다. 미국서 안 좋은 경험을 하면 반미가 되고, 좋은 경험을 하면 친미가 되는 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한미일 삼각관계를 공고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방향 설정은 잘했다. 남은 과제는 중국과 러시아를 어떻게 할 것이냐다. 중국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과거 ‘사드 사태’ 때처럼 보복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한다.

    “중국 측과 얘기해 보면, 그때 자기네가 오버했다는 생각도 하더라. 중국 처지에서도 한국이 중요하다. 쉽게 포기하기는 어렵다. 한국이 완전히 미국 쪽으로 가는 걸 원치 않는다. 나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제는 베이징과 모스크바에도 가야 한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쉽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성사시키는 게 외교력이다. 미국·일본과만 함께하고 중국·러시아는 뺀다? 위험하다.”

    한일 정상회담을 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퍼주기 굴욕외교”라는 표현을 쓰면서 “일본의 독도 침탈에 대해서도 한마디 언급을 못 했고, 우리의 외교적·군사적 자주권을 인도태평양전략에 종속시켰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외교 실패가 대일관계다. 어떻게 보면 (윤 대통령이) 국내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 일본과 관계를 개선했다. 높이 평가한다. 3월 말 쯤 일본에 갔을 때 ‘윤 대통령이 어렵게 일본까지 왔는데, 일본 측에서도 반응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다만) 일본은 한국의 정권이 교체되면 또 태도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주저함이 있더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한 행보는 어떻게 평가하나.

    “물론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어쨌든 ‘위안부 합의’를 깬 건 한국이다. (식민 지배의) 원죄는 일본에 있지만, ‘위안부 합의’도 현실적으로 (2015년 합의) 그 이상도 어렵다. 일본 처지에서는 ‘한국을 믿을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드는 거다. 우리가 볼 때는 아쉽지만 어쩌겠나. 100% 만족할 수는 없으니 그렇게 해서 가야지.”

    ‘사실상의 핵 공유’는 레토릭

    신기욱 소장은 ‘워싱턴 선언’을 계기로 나온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에 대해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신기욱 소장은 ‘워싱턴 선언’을 계기로 나온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에 대해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월 26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핵 자산과 전략자산 운용에 대해 정례적으로 논하는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을 신설키로 했다.

    핵협의그룹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한미 간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핵협의그룹의 실체가 불분명하다. 상징적 의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뭘 하겠나. 결국은 미국 주도다. 핵 협의를 하겠다면서 한국이 핵무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거니까 실리로 따지면 미국이 더 이익을 봤다.”

    정부는 ‘사실상 핵 공유’라고 표현했는데.

    “미국은 절대 핵 공유를 하지 않는다. ‘나토식 핵 공유’라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미국이 핵을 공유하는 개념은 아니다. 결정권은 미국이 갖고 있다. ‘사실상의 핵 공유’는 (정부 측의) 대국민 레토릭(rhetoric)이다.”

    이와 관련해 에드거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 보좌관은 4월 27일(현지 시간) 워싱턴 특파원 대상 간담회에서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상의 핵 공유’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핵무장론이 이만큼 강한 적이 있나 싶다. 과거에는 진보가 핵무장에 비판적이었는데,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서는 야당 쪽에서 핵무장 가능성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두 가지 이유라고 본다. 하나는 북핵 위협이 여전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과연 미국을 믿을 수 있느냐는 정서 때문이다. 야당 쪽 논리는 미국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핵을 포기하는 건 바보가 아니냐는 것이겠지. 현실적으로 핵무장은 어렵다. 다만 내가 외교 당국자라면 (핵무장론을) 레버리지로 써서 미국과 딜(deal)을 했을 것이다.”

    이미 핵협의그룹 창설을 위해 써버렸으니 더 쓸 수 없는 카드 아닌가.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썼다. 윤 대통령의 방미 과정을 보면, 상징적인 면에서는 잘했는데 실리 면에서는 아쉽다. 핵 문제도 그렇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서도 그렇고 우리가 얻은 게 없다. 물론 외교에서는 정상 간의 ‘케미’가 중요한데,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노래도 하고 의회 연설도 하면서 이미지를 개선한 효과는 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샤이(shy)했는데, 윤 대통령은 그에 비하면 훨씬 친화력이 좋다.”

    5월 24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 수십만 발을 이송할 것이라는 보도가 실렸다. 정부는 부인했는데, 미국이 요청하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해야 한다고 보나.

    “직접 군사 지원보다는 경제 지원 등을 하는 게 맞다. 미국에 선을 그으면 된다. 미국도 국익을 우선하듯, 한국도 국익 차원에서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해야 한다. 미국이 하라고 무조건 다 할 건 아니다.”

    민주주의의 모험

    신기욱 소장은 최근 두 번째 한국어 저서인 ‘민주주의의 모험: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는 법’을 냈다. [인물과사상사]

    신기욱 소장은 최근 두 번째 한국어 저서인 ‘민주주의의 모험: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는 법’을 냈다. [인물과사상사]

    그는 최근 두 번째 한국어 저서인 ‘민주주의의 모험: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는 법’(인물과사상사)을 냈다. 앞서 소개한 ‘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 연재가 뼈대다. 책에는 ‘중국은 미국을 추월하지 못한다’는 제목의 챕터가 있다. 연재 당시에는 ‘우리 세대에는 중국이 미국 넘지 못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미·중 경쟁의 무게추가 이미 기울었다는 얘기다.

    중국이 미국을 제칠 수 없다고 단언한 근거가 뭔가.

    “군사력과 경제력도 살펴야 하지만, 중국의 엘리트가 미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간 중국 출신의 성공한 비즈니스맨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공개적으로는 아니지만 이렇게 얘기한다. ‘시진핑이 있는 한 중국에 미래는 없다’고. 실제로 부를 축적한 중국의 상류층이 내가 사는 팰로앨토 등에 집을 많이 샀다. 이들을 미국에서는 ‘리치 만다린(Rich Mandarins)’이라고 한다. 자녀들도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 유사시를 대비하는 것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서 반중 정서가 도드라지는 건 어떻게 보나.

    “반중 정서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공히 나타난다. 다만 한국의 특징은 20·30세대에서 반중 정서가 강하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란 세대라 그런지 티베트, 신장, 홍콩 문제 등에서 보이는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반감이 큰 것 같다. ‘중국 악마화’는 문제가 있지만,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에 문제의식을 갖는 건 좋다고 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년 안에 대만에 군사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중국이 설마 대만을 침공하겠나’ 하는 인식이 있는 게 사실인데.

    “이번에 한국에 오기 전에 대만에 들렀다. 대만에도 두 그룹이 있더라. 한 그룹은 마치 우리가 북한과 대치하면서도 잘 살아왔듯이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는 쪽이다. 다른 한 그룹은 내년 1월 열리는 총통 선거가 중요하다고 본다. 민진당이 재집권하면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는 거다. 푸틴을 두고도 설마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겠나 했지만 결국 단행했다. 푸틴이나 시진핑은 역사적 레거시(legacy)를 남기고 싶어 한다.”

    시진핑의 캐릭터가 전쟁 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뜻인가.

    “시진핑은 국제적으로 비판 여론이 큰데도 ‘홍콩의 중국화’를 밀어붙였다. 또 고려할 변수는 중국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깨졌다는 점이다. 견제와 균형이 있으면 시진핑이 원한다 해도 (대만 침공을) 막을 수 있는데, 그 시스템이 다 무너졌다.”

    중국이 대만 침공을 강행하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미국이 지원하는 대만 편에 서야 할지, 중국과 관계를 고려해 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할지 딜레마가 생긴다.

    “중국이 대만에 들어가면 북한이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국지전 정도는 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래서 현 정부가 미국·일본과 관계를 다지는 이유에 그런 배경도 있다고 본다. 신냉전 구도로 가는 건 막아야겠지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고 북한이 무력행사에 나서면 (동아시아에) 두 개의 전선이 형성된다. 그럴 경우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대만에 군사를 보낼 건 아니겠지만, 일단 미국·일본과 함께 가야 한다.”

    그의 또 다른 관심사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랏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인용하면서 상호존중과 권력의 절제가 민주주의의 규범이라고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그가 “한국은 불행하게도 과거 민주화운동을 한 세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고 지적한 이유다.

    군인-운동권-검찰

    운동권 세력이 다수주의와 민주주의를 혼동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해 왔다. 정권을 잃은 민주당은 여전히 다수주의 행태를 보인다.

    “두 달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와 인터뷰하다가 내가 ‘룰링 파티(ruling party)’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당연히 여당이라 생각하고 썼는데, 기자는 야당으로 알아들었더라. (한국에서)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한 거다. 정권이 교체됐지만 민주당이 입법부를 장악해 다수결로 밀어붙이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식이니 그게(다수주의가) 맞다.”

    운동권 세력이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다는 진단이 제법 오래됐다. 운동권적 습성이 잘 사라지지 않는다면 세력 교체밖에 답이 없지 않나.

    “586이 60대 전후니까 자연 소멸되겠지. 처음엔 군인이 권력을 잡았고, 다음은 운동권이 잡았다. 다소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검찰이 잡았다. 한국에서 가장 배타적 결속력이 강한 집단들이다. 군인이 가장 오래갔고, 운동권은 그에 비해 짧았다. 검찰은 더 짧겠지. 운동권은 군사정권과 싸워야 해서 조직 자체가 권위주의적이었다. 물론 운동권을 군사정권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배타성이 (권력 운용 과정에서) 나타났다. 아직 한국에서 리버럴리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같다. 군인-운동권-검찰은 조직을 중시하지만 자유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하다.”

    민주적 정신과 규범을 강조했다. 정작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를 만나지 않는 등 야당과 대립 전선을 형성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야 한다. 물론 이 대표가 사법 처리 과정에 있지만 아직 혐의가 확정된 건 아니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고 야당 대표는 계속 싸움만 하는데, 둘 다 관용과 절제의 정신이 없는 것이다. 둘 다 문제다. 한국에 와서 어제 누구를 만났더니 ‘대한민국이 피크(peak·정점)를 지나는 게 아니냐’고 하더라. 일본이 1990년대에 피크를 지나 쭉 가라앉고 있는데, 일본은 그래도 과거에 거의 미국을 추월할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 서서히 침체했다. 한국은 (침체 과정이) 더 심하지 않을까.”

    2019년 초 그에게 연락해 ‘집권 3년차 문재인 정부에 건네는 제언’을 주제로 글을 청탁했다. 그렇게 ‘신동아’에 실린 글에서 그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 기간 내내 과거와 싸우면서 포퓰리즘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면 사회 분열과 대립만 커지고 경제는 파탄 날 것”이라고 썼다. 이후 포퓰리즘의 부상을 경고하는 글을 몇 차례 더 보내왔다. 얀 베르너 뮐러가 쓴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를 빌려 21세기 포퓰리즘의 특징을 반(反)엘리트주의와 반(反)다원주의로 규정했다.

    문빠, 개딸, 박사모, 태극기부대 등이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했다. 이 중 최근 영향력이 큰 집단이 ‘개딸’이다. 포퓰리즘의 대표 사례인 ‘트럼피즘’과 비교하면 어떤가.

    “트럼피즘은 그 나름대로 ‘아메리칸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등 이념적인 바탕이 있다. 세련되지도 않고 내가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 이념적 바탕은 상당히 넓다. 트럼피즘이 등장한 맥락과 배경이 있고, 이를 포착해 정치적으로 구현한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다. 그래서 나는 ‘트럼프가 사라져도 트럼피즘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스탈린 이후에 리틀 스탈린이 나왔듯 트럼프가 없어도 리틀 트럼프가 나타날 수 있다. 과연 ‘개딸’에 트럼피즘에 필적하는 이념적 바탕이 있을까. 외려 소수의 과격한 팬덤처럼 보인다. 트럼피즘과는 다르다.”

    기소된 트럼프가 대선에 나올 수 있을까.

    “스탠퍼드대 동료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와도 얘기했지만, 나는 트럼프와 바이든의 ‘리턴 매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내년 대선까지 트럼프에 대한 사법 절차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중도층을 끌어오는 데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공화당 내에는 여전히 트럼피즘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 공화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리턴 매치’ 결과는 어떻게 전망하나.

    “모르겠다. 2020년 초만 해도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재선한다고 봤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없었으면 트럼프가 바이든을 쉽게 이겼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바이든이 트럼프를 가까스로 이겼다. 내년 선거도 박빙 구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면 한국으로서는 외교 전략을 재설정할 필요성이 생기지 않겠나.

    “그렇다. 내가 그런 이야기도 했다. 한국에서 쓸데없이 트럼프를 자극하는 말을 쓰지 말라고. 뒤끝이 긴 사람이니까.(웃음) 론 디샌티스(플로리다 주지사)가 거론되지만, 아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트럼프에 비해 약하다고 한다. 공화당에 트럼프에 대항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

    미국에 남은 이유

    그는 워싱턴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아이오와대와 UCLA에서 교수로 일했다. 화려한 이력이지만, 미국서 몇 년 일하다 한국 대학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기도 하다. 미국 문화가 더 익숙했을 성장 환경 같지도 않다. 경기 부천시 출신이고 인천에 있는 부평고를 다녔으며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왜 미국을 택했나. 그리고 왜 미국에 남았나.

    “처음에는 독일로 유학 가려 했다. 당시만 해도 반미 정서가 조금 있었고, 카를 마르크스나 막스 베버 모두 독일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다 아버지가 ‘그래도 미국을 가야 한다’ 해서 미국을 택했다. 졸업하면 한국에 돌아오려 했는데, 미국 친구들이 잡 마켓(job market)에 나가기에 나도 시험 삼아 지원했다가 아이오와대에 자리를 잡았다. 2년쯤 있다가 UCLA에서 한국학센터를 만든다고 해서 옮겼다. 테뉴어(Tenure·종신보장)도 받았다. 애가 셋인데, 애들도 크니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에 가려면 그때쯤 가야 했으니까. 그러다 스탠퍼드대에서 한국학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는데 관심이 있느냐고 해서 인터뷰를 했고 임용 제안을 받았다. 결국 스탠퍼드대로 갔고 후에 아시아태평양 연구소도 맡으면서 미국에 남았다.”

    박사 논문 주제는 ‘일제시대의 농민운동’인데, 석사 때는 연구 관심사가 달랐더라.

    “내가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다. 통계 기법을 활용해 73개국의 정치체제와 경제발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석사 논문을 썼다. 쓰고 나니 스스로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원하는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고 생각해 역사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훨씬 힘든 길을 택한 셈이다. 논문에 써야 하는 영어도 더 어렵고, 읽을 자료는 훨씬 많았으니. 그래도 잘 바꿨다고 생각한다.”

    만약 통계를 활용하는 연구자로 계속 나아갔다면 한국학을 할 기회는….

    “없었겠지.”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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