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 특별기고 > 中國이 한국을 ‘봉’으로 보는 이유

황제·관료체제 이은 공산주의 사상교육… 시민의식은 실종

  • 서상문|고려대 한국전쟁 아카이브 연구교수 suhbeing@korea.com

    입력2017-05-18 16:40:0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중국은 현재 ‘타국의 내정을 간섭하지 말라’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정치적 유훈이자 금기를 깨뜨리면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고 있다. 문제는 사드의 한국 배치 반대시위가 중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중국인들의 혐한(嫌韓) 기류가 불붙고 있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한국이 싫고 한국인이 밉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혐한 정서가 불붙는 이유는 뭘까. 양국 국익의 충돌,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의 막후지시, 관제화된 중국 언론의 선전 선동 때문일까.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요인은 없을까.


    중국인들의 혐한 기류를 촉발하는 점화장치는 다양하다. 정통 중국인으로서 갖는 인식과 공산중국인에게 새로 형성된 특성들이다. 예컨대 중국인의 집단의식 속에 넓고 깊게 박혀 있는 ‘중화민족’이라는 뿌리 깊은 민족적 우월의식, 과거 세계 최대의, 최강의 일류국가였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중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데 따른 콤플렉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무시와 폄훼, 오해와 곡해, 선입관과 편견 및 시기심이다. 이것은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시키려고 하는 중공의 기획된 대중 동원보다 더 근본적인 요인이다. 공한증(恐韓症)도 이러한 심리 상태가 응집된 결과다.


    국익 충돌과 중공의 대중 동원이 ‘라이터’라면 중국인에게 내재한, 한국과 한국인을 ‘봉’으로 보는 무시와 시기심이 결합된 의식은 ‘섶’이다. 사드 배치가 아니라도 한중 두 나라 사이에 국익 충돌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이런 의식과 정서는 불쏘시개가 된다. 이를 보면 사드 배치는 일시적 요인이요, 중국인들이 지닌 국민성과 굴절된 한국관은 중국 민족의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사회적, 정치적 DNA 같은 것이다.




    국익 충돌 불쏘시개

    현재의 중국인은 과거 전통 시대 중국인과 무엇이 같고, 어떻게 다른가. 중국은 명청(明淸) 양대를 거치면서 그 이전의 중국인들이 지녔던 강인함, 도덕성, 예의와 염치 등의 특성이 사라지고 새로운 특성이 생겨났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전제국가였다는 데 있다.


    16세기 이전 유럽에서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총명하고, 가장 예의 바른 민족”으로 일컬어졌다. 공자의 인(仁) 사상 아래에서 국가는 하나의 대가정같이 우애 있고 화목했으며, 통치자는 “인애와 자비로 충만”하고, 백성은 성실한 ‘예의 바른 국가’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이었고, 중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중국풍의 유행에 따른 와전이었다. 서세동점 시대 초기부터 중국의 면면을 직접 목도하고 경험한 영국인들의 관찰에 따르면, 중국은 통치자가 폭력적이고, 학대와 압박, 불공정으로 통치한 국가였다.




    황제와 관료의 지배

    폭력의 원천은 황제와 관료지배체제였다. 중국은 황제를 떠받치는 관리들이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관리 지상 국가’였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밝혔듯이 중국이라는 전제국가의 통치 원리는 공포였고, 전제의 목적은 국가의 안정적 지속이었다. 폭력적인 지배하에 중국인의 국민성은 엄청나게 뒤틀렸다. 특히 몽골족을 몰아내고 명조를 건국한 뒤 몽골의 유습을 뿌리 뽑기 위해 살상과 잔혹한 형벌로 통치한 주원장(朱元璋·1328~1398)의 폭압정치 아래 있었던 중국인은 특히 그러했다. 강인함, 도의적 가치 판단 및 생활태도, 예의와 염치, 자존감이 사라지고, 공적인 일에 대한 무신경, 무관심, 냉혹, 냉담 및 냉소적이며 연약하고 비겁한 인간형으로 변해갔다. 이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온갖 만행을 당하고도 분노하는 표정 없이 무덤덤하게 지켜보기만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 광경을 보고 충격에 빠져 결국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중국인의 계몽과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문학가가 된 대문호 루쉰(魯迅)의 일화는 잘 알려진 얘기다.


    폭력과 공포를 체제와 국가권력의 안정적 지속 수단으로 삼은 전제적 성격은 세월이 지나 권력 주체와 정치체제, 지향점이 바뀌었을 뿐,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현재의 공산중국인을 살펴보면 과거 전통 시대 중국인의 특성 중 몇 가지는 이어받았고, 몇 가지는 억압 내지 쇠퇴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신 새로운 정치이념인 공산주의 사상과 마오쩌둥 사상, 그리고 문화로부터 새롭게 형성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개인 성격 면에서도 전통 시대 중국인들의 강인한 기질, 즉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도 강한 특성이 사라지고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면을 보이고 있다. 중공의 폭력과 통제 아래서 70년 가까이 길들다 보니 개인의 자아 확립은커녕 시민으로서의 존재감과 자신감도 사라지고, 억제된 분노, 정치에 대한 무관심 혹은 그 반대의 억눌린 불만 등으로 인한 비굴함이 몸에 배었다. 그래서 일반 중국인들은 평소 중공이라는 절대 강자에게는 대들거나 불만을 분출하지 못하고 있다. 표현을 달리하면, 시민의식과 시민사회가 형성돼 있지 않은 것이다.



    불만을 폭발시키는 비굴함

    이러한 성향을 지닌 공산중국인들은 중공이나 국가에 저항하는 대신 만만한 약소국에 불만을 폭발시키는 비굴함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위 도표에서처럼 전통중국인에게는 A의 요소가 강했는데, 공산중국인에게는 이러한 특성이 사라지고 대신 B의 특성이 강한 모습이 나타났다. A에는 ①강인함 ②도의적 가치판단 및 생활태도 ③예의와 염치 ④자존감이 있고, B에는 ⑤공적인 일에 대한 무신경과 무관심 ⑥냉혹, 냉담 ⑦냉소적이며 이기적이고 ⑧연약하고 비겁한 성향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공산중국인들이 한국과 한국인을 무시하고 깔보는 이유로는 크게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독립적인 별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내적 연관성을 갖는 것들이다.


    첫째,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허구에서 비롯된 민족적 우월의식이다. 민족적 우월의식이라고 해서 인종적으로 우성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민족적 정체성(ethnic identity)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단지 자신들이 만들어낸 정치적 고안물에 불과하고, 중국의 역대 왕조가 전통적으로 이민족 혹은 외국을 모두 속국으로 취급한 역사의 기억에서 기원하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까지만 해도 지금의 황허(黃河) 중하류 일대의 허난(河南), 산시(山西), 산둥(山東) 등 이른바 중원지방에 분포한 나라들을 가리켰을 뿐이다. 이 지역 사람들이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긴 나머지 주변 민족을 모두 오랑캐라는 의미의 ‘사이(四夷)’로 취급하면서 남만(南蠻), 북적(北狄), 서융(西戎), 동이(東夷) 민족 혹은 국가에 대해서는 조공책봉(朝貢冊封) 관계로 엮는 불평등한 외교관계를 강요해왔다.


    오늘날 중국학계에서도 과거 자신들의 선조인 전통중국인들은 타민족에 대해 종족주의와 함께 문화적으로 천시하면서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주변 민족을 보는 그들의 눈은 야만적이며 낙후됐고, 조악하고 거칠었으며, 반은 사람 반은 짐승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멸시에 차 있었다. 심지어 오랑캐를 뜻하는 벌레 ‘충(虫)’자가 있는 만(蠻)자를 붙였듯이 주변 민족을 벌레 취급을 했다.




    “남북한 모두 조공 바친 나라”

    중국이 강역과 국력 면에서 자국과 대등하거나 혹은 우위에 있는 국가들이 존재함을 인정한 것은 개방형 세계국가 체제인 당(唐)나라 시대였다. 서역, 남방 등의 여러 주변국과 폭넓게 접촉하고 난 뒤였다. 그러나 중국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호혜평등에 기초한 근대적 개념의 외교 관념은 없었다. 그들은 중국 황제가 영국이라는 강국에 견선포리(堅船砲利·강력한 함정과 포탄)로 수모를 당하기 전, 전통적으로 이웃 국가에 대해 천자(天子)가 은혜를 베풀어준다는 의식으로 조공을 강요해왔을 뿐, 주변국들을 대등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예 총리각국통상사무아문(總理各國通商事務衙門)이 최초로 만들어진 1861년 3월 이전까지는 외교 업무를 전담하는 ‘외교부’ 같은 정부 기구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둘째, 중국인들에게는 한국이 과거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아온 속국이었다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생각은 어제오늘 형성된 게 아니라 오랫동안 존재해온 지속성과 역사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중국인의 보편적 한국관이라고 봐도 된다.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생각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인식은 각급 학교의 교과서(특히 역사 교과서)나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 지식인들의 코멘트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 교육되면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중공 기관지인 환추(環球)시보에서 “북한이나 남한이나 다 우리에게 조공을 바친 나라였다. 옛날에도 우리에게 조공이나 바치던 것들인데,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과 미국에 그 주도권을 내어준 것일 뿐”이라고 보도한 것이 좋은 예다.


    모화(慕華)와 소중화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한국이 과거 왕조시대에 상층의 국가이념과 정치철학에서부터 하층 민중의 삶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사상, 정치제도, 문화 및 문물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추종해온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은 한국이 중국의 아류였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배울 것도 없고, 새로운 것도 없다는 선입관으로 이행된다. 한국이 중국과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공맹(孔孟)의 맹종자로서 중국보다 더 중국화돼 있고, 중국보다 더 보수화돼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통시대 양국이 공히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유교가 그렇다. 조선에서는 성리학이 사상의 패자가 돼 중국보다 더 도그마(dogma·절대적 권위를 갖는 철학 명제나 종교 진리)돼 있어, 다른 가치와 사유가 공존할 사회적, 사상적 공간을 완전히 없애버렸다는 것이 중국 지식계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그래서 옛날의 조선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모두 중국의 아류이기 때문에 중국과는 절대로 대등한 관계가 될 수 없다고 인식한다.


    셋째, 한국인은 만만히 취급해도 후환이 없을 것이라는 대국연(大國然)하는 오만이다. 한국인은 지금까지 중국에 제대로 대든 적이 없기 때문에 민족의식과 투쟁 의지가 강인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의도적 왜곡과 날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인 부분도 없지 않다. 즉 고구려가 중국과 대등하게 싸운 사실은 모두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싸움으로 왜곡해 자국 역사(동북공정)로 만들면서 고대 한국의 역사를 왜소화해버린 것이다. 동시에 중국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결사항전하는 베트남 민족과 달리 한국은 미국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다.





    犯上 vs 天命

    이러한 인식은 중국인 자신의 주관적 발상인데, 철저하게 힘의 논리가 중심이 된다. 청대(淸代) 중엽 이전까지만 해도 이민족이 중국을 침입해오면 중국인들은 ‘윗사람에게 대든다(犯上)’고 여기는 것이 당연시 됐다. 그런데 몽골족과 만주족처럼 이민족이 중국의 통치자가 됐을 때는 그것을 ‘천명(天命·Mandate of Heaven)’으로 인식했다. 예컨대 만주인이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흥기해 명조의 변경을 넘보려고 했을 때 “윗사람에게 대든다”고 괘씸하게 여긴 명조는 군대를 보내 토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토벌은 실패로 끝났고, 만주인들이 중국 관내로 들어와 전 중국의 주인이 된 후로 ‘윗사람에게 대든 행위’는 ‘천명’으로 인식됐다. 즉 ‘하늘이 위임했고 하늘을 대신해 통치’한다고 둘러댐으로써 오랑캐의 통치를 받은 굴욕을 합리화한 것이다. 이처럼 국가권력을 쥔 힘 있는 통치자가 천자(天子)가 되는 정치 시스템은 이중 잣대의 자기합리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오랜 기간 강자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했지만, 약자에 대해서는 거들먹거리고 군림해온 명청대 중국인의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는 동시에 자신감 결여, 오랜 공산주의사상의 세뇌교육을 통해 체제에 길든 결과로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저항의식, 예의, 염치, 자존감이 거세된 공산중국인의 특성이기도 하다.


    21세기에 중국이 G2로 굴기함에 따라 그동안 세계 최대 강국이었다는 자부심을 실증시켜주기는 했지만, 현실은 미국이라는 힘센 강국에 막혀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의지가 제한당하는 데서 오는 불만과 짜증을 미국에 순종하는 한국에 퍼붓는 꼴이다. 한국과 한국인이 중국에 고분고분할 거라고 보고 만만히 취급하는 관성이기도 하다. 이번에 사드 사태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듯 사드가 미국이 만든 무기이며, 미국이 한국에 배치하고자 하는 것임에도 중국 내에는 중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 기업이나 제품에 대해서는 불매운동을 하자는 소리 한 마디 나오지 않는 것이 그 증명이다.


    넷째, 미국과 중국이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을 추종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 혹은 적대감이다. 오늘날 중국인은 자신들의 운명이나 국가 의지가 타자에 의해 제지되거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상대는 미국뿐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중국을 최대의 위협 세력으로 보고, 중국 주변 국가들을 동원해 봉쇄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전문용어로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다.




    한국은 ‘미국 꼭두각시’ 각인

    여기에 각기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으로 엮여 있는 일본과 한국은 물론  대만,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 등이 모두 미국의 대중국 봉쇄 라인에 줄지어 서 있다.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중국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파키스탄, 북한 정도다. 그런데 중국인들에게는 이 중에서도 유독 한국만이 동북아에서 중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미국의 주구(走狗)나 꼭두각시로 교육받아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다.


    지금까지 한국을 미국의 봉쇄망에서 헐겁게 한발 빠져나오게 만들려는 순망치한(脣亡齒寒), 이이제이(以夷制夷) 같은 한미 간 ‘이격 정책’은 역대 중국지도부가 구사해온 전략이다. 한반도가 무너지면 중국이 위태로우니 남북한 분단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두 개의 한민족으로 서로를 견제케 하고, 한반도 전체로는 일본과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도 필요 이상 압력을 가하지 않았고, 한국에 대해서는 짧은 시간 안에 대외관계의 급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까지 격상시키는 등 여러 해 동안, 특히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 적잖게 공을 들였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중국을 봉쇄하는 대열에 동참해 사드를 받아들이고 있으니 미국 편에 서서 호가호위하는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이 스리랑카, 네팔, 시킴처럼 작고 국력이 미미한 나라라면 아예 시비도 걸지 않겠지만, 나라는 작아도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미묘한 콤플렉스가 있는 데다, 싸우는 시어머니(미국)보다 말리는 시누이(한국)가 더 미운 감정이 드는 것이다.


    다섯째, 넓은 시장을 무기로 한국을 경제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자만과 허세다. 이러한 발상은 한국이 중국의 경제제재에 맞대응할 경우 중국도 손실이 작지 않다는 사실을 애써 망각한 자기기만, 자아도취일 뿐이다. 지난 3월 중국은 환추시보를 통해 “중국의 대외 경제협력이 대부분 윈윈(win-win)하는 구조여서 경제제재를 통해 마음대로 화풀이를 할 수는 없다”면서도 “한국은 특수한 사례인데, 수출 흑자의 40%가 중국에서 나오며, 중국 내에서 한국 제품이 인기가 있는 것은 상당 부분이 중한 양국의 정치적 우호 분위기 속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한국이 지금 이렇게 (사드 배치로) 단호하게 나오는 이상, 이제 그 결과물을 다시 토해내야 할 것”이라고 공갈을 쳤다. 하지만 중국에 한국은 5대 무역국이고, 한국의 먹을거리 시장을 잠식한 중국농산물과 공산품의 양 또한 결코 적지 않고, 중국을 찾는 한국관광객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江山易改, 本性難移

    위 내용은 타국민과 변별되는 특징이어서 현대 공산중국인의 국민성(national character)이랄 수 있다. 타민족과 현저하게 다르거나 특징으로 변별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국민성이라고 불러도 좋지만, 한 국가의 국민성을 규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전체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사고의 패턴, 가치관, 행위상의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은 고정불변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작게는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달리 표출되기도 하고, 크게는 역사,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변적이기도 하다. 동시에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이며 모호해 객관적으로 제시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국민성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도 아니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공간적으로 해당 민족이 생존하는 지리적 환경, 시간적으로 역사적 배경을 축으로 사회·정치적 체제 및 그 문화가 더해져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대해(大海)에 살면서 부지불식간에 교육되고 동화되면서 타민족과 비교되는 중국인으로서의 독특한 성향, 지향과 경향이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굉장히 불편한 이러한 특성들은 한중 양국관계를 위해 바뀌는 게 바람직하지만, 과연 이 특성이 쉬이 바뀔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약 바뀔 수 있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중국말에 ‘강산은 쉽게 바뀌어도 본성은 변하기 어렵다(江山易改, 本性難移)’는 말이 있듯 이러한 특성은 단기간에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사회주의,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 사상이라는 유일한 절대적 가치, 하나의 정치적 정향(定向)이 배타적으로 존재하고 지배하는 현 중국에서는 공산중국인으로서의 민족적 특질이 쉽게 변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개인의 개성, 변화, 다양성을 용인하는 사회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제도와 문화가 사회주의사상으로 획일화돼 있고, 하나의 당이 국가와 인민을 전일적으로 통제하며, 국가는 개인에 우선하고 개인은 국가의 일부로 간주되는 공산주의체제에서 개인은 오로지 당과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세뇌돼왔다.




    민주화 다원화 여건 조성

    이번 사드 사태에서처럼 중국인 대부분이 중국 정부의 관제 시위에 동원되면서도 이렇다 할 반론 한마디 제기하지 못하는 비민주적, 몰개성적 상황은 이러한 세뇌의 종착역이다.


    하지만 본성은 쉽게 변하지는 않아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산중국인의 국민성이 바뀔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필요가 없다. 변화의 속도를 더하고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공산중국인의 특성이 개선, 변화되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공산중국인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로 그들 중 다수를 세계 보편적인 가치로 사고하게 하고, 그 가치를 지향하는 장으로 불러들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장기적인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구촌의 환경 및 생태계, 인권, 평화유지, 전쟁 방지, 핵무기 소멸, 독재정권의 도태 및 민주주의 확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 및 제도적 보호, 사상과 가치의 다양성 존중, 문화적 상대성 긍정 및 공존 지향 등이 공산중국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나 의제의 주류가 되도록 부단히 접촉하고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다.


    개방, 교육, 정보의 유통을 통해 공산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 가치가 세계성과 보편성을 함양케 하고, 그로부터 민도가 제고되도록 외부 다른 사회와의 교류를 지속시키고 확대시켜야 한다. 이러한 소통만이 민족적 종차(種差)를 줄여 보편적 세계시민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한마디로 중국 사회가 민주화, 다원화되도록 여건 조성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