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호

단국대 권기홍 총장의 ‘수요자 중심 대학개혁론’

‘왕따’까지 챙기는 ‘담임교수’ 영어는 ‘사교육 토익’으로 대체

  • 조인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ij1999@donga.com

    입력2007-03-09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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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국대 권기홍 총장의 ‘수요자 중심 대학개혁론’
    적어도 외환위기 시절인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만 살펴보면 언론보도에 오르내린 단국대의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았다. ‘부도’라는 말이 붙어다니는가 하면 각종 개발관련 송사(訟事)에도 자주 얽혔다. 다른 사립대학들이 시설투자에 한창 나설 때 ‘어차피 매각할 텐데…’ 하며 크게 손을 대지 않은 탓에 서울 한남동 캠퍼스의 외관이 더 낡아 보인 것도 사실. 단국대 관계자들조차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2005년 학교 설립자인 장충식 재단이사장이 2선으로 물러나고 박석무(朴錫武·65) 현 이사장이 전면에 나섰으며, 영남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을 지낸 권기홍(權奇洪·58)씨가 총장으로 취임했다. 그 후 지리멸렬하던 캠퍼스 이전과 한남동 부지 개발 건이 해결됐고, 한때 2000억원에 달하던 학교 빚도 거의 청산단계에 접어들었다.

    권기홍 총장은 지난해 학교가 안정되자 2007년 9월 수지(용인)캠퍼스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확정하고 이에 맞춰 학내 교수들과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1년여에 걸친 연구 끝에 ‘발전 개혁안’을 만들었다. 지도교수를 마치 고교 담임교사처럼 학생들에게 밀착 마크시키고 이를 교수평가에 반영한다거나, 유명무실하던 유급제도를 부활한 점, 영어과목에 ‘사교육’ 시스템을 도입한 점 등이 얼른 눈에 띄는 제목들이다. 학교측은 첨단시설을 갖춘 새 캠퍼스가 개혁안의 성공적인 실현을 돋보이게 할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학생 포트폴리오 증명서’

    단국대는 오는 3월 신입생 입학식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지만, 개혁안의 휘발성 때문인지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사립대학들에서도 ‘단국대가 이렇게 변한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안팎에서 “그동안 나온 어떤 사립대 개혁안보다 더 파격적” “어지간한 의지로는 실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함께 듣고 있다. 개혁안을 진두지휘한 권기홍 총장을 만났다.



    ▼ 고등학교의 학생부(學生簿) 같은 것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단국대 졸업생에게는 성적증명서 외에 ‘학생 포트폴리오’라는 이름의 증명서가 하나 더 발급됩니다. 채용을 검토하는 기업에서 이것 한 장만 보면 그 학생의 전반적인 잠재력을 다 알 수 있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취업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담당교수가 학생의 특성과 성취도를 적어 평가하게 되죠. 덕분에 학생들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미래를 짜임새 있게 설계할 수 있을 겁니다.

    학생의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잘 관리해주는가가 교수평가와 직결되므로 교수들도 이를 연구활동만큼이나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1990년대부터 대학이 ‘연구하는 교수’에 지나치게 방점을 두다보니 부작용이 많았는데, 이제는 ‘학생 잘 관리하는 교수’에게도 인센티브를 주기로 한 것입니다.”

    동아리 활동 돕는 교수

    학교측의 시안(試案)을 보면 교수가 학생들의 스터디그룹을 짜주고 필요하면 ‘과외선생’(각종 시험을 위한 특강 강사)도 초빙해주게끔 돼 있다. 진학이나 취업 목적에 맞게 필요한 공부 계획표를 짜주고 확인하는 것은 물론 기업에서 요구하는 취미·봉사활동 등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

    예를 들어 사범대생의 경우 교원임용고시에 필요한 한자능력시험을 2학년 중에 패스하도록, 또 2학년 때부터 역시 임용고시에 필요한 통합논술시험에 대비한 공부를 하게끔 정기적으로 만나 학업상황을 점검하도록 돼 있다. 복학생이나 편입생은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심리적인 면에서 수시로 카운슬링하며, 심지어 동아리 가입과 활동에 있어서도 마치 선배처럼 조언하게 했다.

    이 제도를 주도적으로 연구한 과학교육과 신동희 교수는 “수능시험이 변별력이 없어지고 수험생들의 선택과목 폭이 넓어지는 바람에 심지어 과학시험을 안 보고 이공계로 오는 학생들도 있다”며 “포트폴리오 제도가 도입되면 이렇듯 천차만별의 배경을 가진 신입생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 지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한 학생관리는 앞으로 단국대에 도입될 ‘전공교육인증제’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교수평가, 교육환경개선 정도 등 다양한 항목을 종합평가해 35개 전공 중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획득한 전공에 대해서는 그만한 혜택을 주기로 했다. ‘교수평가’에는 포트폴리오 작성 외에도 정기적인 ‘교수-학생 발전토론회’가 비중 있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는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방식과 학교생활에 대한 건의사항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유도하고, 교수가 강의에 반영하도록 돼 있다.

    ▼ 전공교육인증은 일종의 내부 평가네요. 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게 학교 발전에 더 유리한 것 아닌가요.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몇 명이고 신식 강의실은 몇 개 있고 하는 식의 고답적인 기준을 적용해 외부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각 대학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횡단면 평가랄까요. 그때까지 쭈욱 해온 과정을 평가해야 하는데 어떤 면만 딱 끊어서 보니까 평가가 제대로 안 된다는 거죠.

    얼마 전에 어느 공신력 있는 평가기관에서 우리 학교 특수대학원에 전임교원 수가 적다며 충원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학부로서는 드물게 특수교육학과가 있거든요. 그래서 학부에 전임교원들이 다 있어요. 이분들이 당연히 대학원 강의도 하고요. 근데 순전히 대학원 소속 교원이 적다고 점수를 깎으니 이게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일입니까.

    전공교육인증은 시간을 두고 성취도를 관찰하는 ‘맥락적 평가’ 방식을 채택합니다. ‘맥락 평가’라는 말이 생소하지만 선진국 유수 대학에선 대부분 이런 평가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경쟁에서 이긴 전공이 자연스럽게 단국대의 ‘특성화 육성 전공’이 되는 거죠. 특성화 전공부터 먼저 지정해놓고 그에 따른 준비를 못한 상당수 학교가 몇 년 새 실패하는 사례를 목격한 것도 좋은 공부가 됐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미리부터 ‘특성화’하는 것은 앞으로는 교양과목밖에 없습니다.”

    시안에는 전공교육인증제와 결부한 ‘투 트랙 교육’ 시스템도 눈길을 끈다. ‘보편적 교육’과 ‘상위권 교육’을 분리하겠다는 것. 쉽게 말하면 ‘우열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수생들은 따로 모아 ‘특별과외’를 해준다고 보면 된다.

    ‘전공교육인증제’로 내부 경쟁 유도

    ▼ 인증 라벨을 받으면 어떤 ‘당근’이 주어집니까.

    “우선 5~6개 전공분야가 수년 내에 특성화하리라 봅니다. 이렇게 되면 우수한 외부 전문가를 교원으로 스카우트하게 도와줍니다. 이른바 특임교수 제도인데요, 일반 교수의 몇 배에 달하는 수억원대 연봉과 풍부한 연구비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이런 특임교수들이 연구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게 되기 때문에 기존 교수님들은 학생교육에 집중해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학교측은 교원확충 등에 드는 비용이 향후 10년간 5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캠퍼스 이전을 통해 부채를 해소한 만큼, 지금까지 부담하던 금융비용을 학교에 재투자할 수 있고, 이전 캠퍼스 미개발 부지에 대한 부대사업 시행, 인텔리전트 빌딩 신축에 따른 관리비용 절감 등을 통해서도 상당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발전기금’(기부금)은 1000억원 미만으로 책정하고 있어 적어도 재정적인 면에서는 ‘실현 가능한 목표’라는 게 권 총장의 설명이다. 문득 권 총장이 노동부 장관 시절 “농림부가 농민을 대변하듯, 노동부는 정부 내에서 노동자 편을 대변해야 한다”고 말해 기업인들로부터 ‘노조 편향적’이라는 말을 들은 일이 떠올랐다.

    정보 소통능력 키우려면…

    ▼ 대학을 전면 경쟁 논리로 운영하면 교수들이 힘들어할 텐데, 교수는 ‘노동자’로 보지 않는 모양이죠.

    “그 반대입니다(웃음). 평가를 못 받는 전공에 페널티를 주는 게 아니고 잘하는 전공에 인센티브를 주는 포지티브 평가 시스템이기 때문에 선(先)순환구조가 생겨날 것으로 봅니다. 요즘 ‘CEO형 총장’에 대해 말이 많은데, 저는 대학경영을 기업경영자적 시각으로만 보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교수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성공한 대학이 하나도 없어요. 적어도 총장쯤 되면 이분들께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교수들을 얼마나 상전처럼 모시면서 동기부여를 하느냐에 이 개혁안의 성패가 달렸습니다.

    단국대 권기홍 총장의 ‘수요자 중심 대학개혁론’

    지난해 12월 촬영한 단국대 수지캠퍼스의 항공사진. 한남동 현 캠퍼스의 8배 크기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제가 장관 할 때는 퇴근하면서 어느 국장에게 어떤 이슈에 대해 ‘내일 아침까지 정리해서 보고 좀 해주세요’라고 지나가듯 이야기하면 다음날 출근시간까지 책상에 200쪽짜리 심층 보고서가 놓여 있어요. 저는 한두 장 정도를 기대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처럼 안정된 대학은 어떠냐면, 제가 부총장께 뭘 ‘지시’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협조와 설득을 통해 자발적으로 저를 돕게 만드는 거죠.”

    권 총장은 예전과 달리 고교생의 82%가 대학에 진학하는, ‘전국민의 대학생화’ 현실을 감안할 때 교양과목 강화는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강조했다. 지식의 라이프사이클이 비약적으로 짧아진 요즘, 정보의 절대량보다는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기본 소통능력이 더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교양과목 강화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영어교육의 전면개편 외에도 학생들이 악기와 사교 체육 하나씩 필수적으로 마스터하도록 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특목고나 외국의 보딩스쿨(사립 기숙학교)을 벤치마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교양과목 강화의 지향점이라면.

    “이런 말을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공식적인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진 않았지만, 한마디로 우리 학교 학생들을 ‘최고의 신랑감’ ‘최고의 신붓감’으로 만들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적절한 자리에서 적절한 어휘선택을 통해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게 우선입니다. 나아가서는 음악이나 그림 이야기가 나와도 한두 마디는 거들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합니다. 명절 때 ‘아버님 싸셨네요’ 같은 고스톱 용어말고도 대화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교양인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노동부 장관 시절 노르웨이 왕실로부터 노벨상 수상자 축하파티에 한국 대표로 초대받은 적이 있습니다. 잔잔한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남자들이 무려 3시간30분 동안 옆에 앉은 외국 부인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도록 시간을 줍디다. 음악이건 강아지 이야기건 닥치는 대로 해야 했지요. 갈수록 이런 경향이 세계표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Freshmen English’→‘교양 토익’

    교양영어 과목이 없어지는 대신 내놓고 토익 과목을 개설키로 한 것도 이례적이다. ‘학문하는 자세’ 같은 고풍스러운 제목을 단 2~3쪽짜리 강독 지문이 들어있던 ‘Freshmen English’는 없어지고 취업이나 국가고시에 필요한 영어시험대비 강좌를 열겠다는 것이다. 강의 프로그램 제작을 아예 사교육 기관인 이익훈어학원에 일임키로 한 것은 더 파격적이다.

    ▼ 그래도 상아탑인데, ‘지나치게 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시선은 없습니까.

    “영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시장을 놓고보면 사교육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공교육이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어물쩍 흉내만 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과감하게 나간 겁니다. 솔직히 보수적인 선생님들의 반론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외로 굉장히 협조적이어서 놀랐습니다. 영어교육이나 문학과목에서 차별화하는 것이 교수님들의 임무이고, 수험·실용영어는 일종의 아웃소싱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죠. 최소한 기업에서 원하는 영어 능력을 키우는 데는 그쪽이 훨씬 전문가들 아닙니까.

    교양필수 32학점 중에 영어가 8학점인데, 말하기 읽기 쓰기는 물론 ‘듣기와 발음’도 별도 과목으로 분리했습니다. 지난해 시범적으로 이익훈 겸임교수가 1년간 강의한 것을 비롯해 4~8과목을 이 학원과 연계된 토익강좌로 개설했는데, 첫 학기에 1000명이 듣다가 두 번째 학기에는 수강생이 2000명으로 크게 늘더군요. 대학이 토익 학원은 아니지만, 시간 들여 학원 가서 과외받게 하느니 학교에서 같은 무대를 만들어주자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일부 수강생들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받아본 결과 토익점수 상승에 효과가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기술’과 시험 적응력이 점수 상승에 변수로 작용하기에 학기 내내 수강한 ‘교양 토익’의 도움이 컸다는 것. 단국대는 앞으로도 이익훈어학원과 연계한 다양한 토익 강좌를 정규 학기 커리큘럼으로 제공하는 대신, 일정 점수를 얻지 못한 학생은 유급시키기로 했다.

    신현기 교수(교무처장)는 “몇몇 사립대도 토익 점수 몇 점 이상을 졸업 필수요건으로 정했지만 ‘원칙적’이라는 문구를 붙여놓고는 토익이 안 되면 다른 특기로 대체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저점을 다소 낮추더라도 토익 점수가 모자라면 예외없이 유급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용한문’ 과목도 비슷한 방식을 차용했다. ‘명심보감’ ‘논어’ 등을 섞어놓은 강독교재는 없어지는 대신 대기업에서 요구하는 ‘한자능력시험 3급’ 시험에 철저히 대비하는 교재와 학습방법을 도입한다.

    한남동 캠퍼스 8배 크기

    악기연주와 미술, 체육은 실습교육 위주로 평가하기로 했다. 가령 골프 과목을 보면 학기 내내 골프연습장에 다니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게 할 방침이다. 캠퍼스 이전에 따라 학생 전용 골프장과 합주실을 비롯한 다양한 예체능 시설이 갖춰지는 상황도 고려됐다.

    앞서 언급한 ‘포트폴리오’와도 연결되는 ‘봉사활동’ 과목은 전공과의 연계성을 최대한 유도하기로 했다. 봉사활동 경력 역시 취업은 물론 해외유학을 갈 때도 의미 있는 가점(加點)으로 작용하는 게 최근 추세다. 예전처럼 ‘교회에서 불우이웃돕기 활동에 참여했음’ 식으로는 안 되고 언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근거자료까지 남겨야 하기 때문에 이왕 하는 봉사활동이라도 학교에서 체계를 잡아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 구상된 방안이다.

    안순철 교수(기획조정실장)는 “음대생들은 각종 복지시설에서 위문공연을, 법대생들은 교수와 팀을 이뤄 저소득층 생활법률상담을, 예술조형대생들은 복지시설 소식지 디자인이나 홈페이지 구축을, 사범대생들은 소외계층 자녀 학습지도 등을 하도록 할 방침이다. 봉사활동에 관련 기관을 이어주는 것은 교수들의 몫으로 돌렸다”고 설명했다.

    단국대는 오는 6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캠퍼스보다 8.3배나 더 큰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수지캠퍼스(35만7000평)로 옮기기로 확정했다. 유휴공간이나 기숙사를 빼고 학교건물 면적만 보더라도 2배 이상 커진다. 2007년 2학기부터 단국대의 본교는 수지캠퍼스가 되고, 한남동에는 최소한의 특수대학원 및 행정사무소만 남을 예정이다. 10년 전만 해도 ‘인(in) 서울 대학’에서 ‘지방대학’으로 위상이 낮아진다며 학생들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교육의 질 향상을 기대하며 오히려 학부모와 학생들이 더 이전을 반기고 있다고 한다.

    사실 30여 년 전부터 기획된 단국대 이전에는 정치적 배경도 작용했다. 학교측은 1980년대부터 당시의 신도시 격인 ‘강남’으로 캠퍼스를 이전할 계획을 세워놓고 1974년 지금의 국가정보원 자리인 서울 서초구 내곡동 땅 24만평을 사들였다. 그러나 내곡동 부지 일부의 그린벨트 해제가 지연되면서 이전작업을 진행하지 못하던 중에 1991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로부터 평당 10만원, 총 214억원에 부지를 수용당하게 된다.

    안순철 교수는 “그때만 해도 정권에서 그렇게 요구하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88올림픽이 끝나고 1990년엔가 현대 정주영 회장이 장충식 당시 이사장에게 ‘1000억원을 줄테니 팔라’고 했으나 거절했다는 땅이니 학교로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었다”고 회고한다.

    단국대는 그 ‘대체재’로 지금의 수지 캠퍼스 부지를 구입하고 1997년 이전계획을 마련했다. 그러나 한남동 캠퍼스를 매입한 극동건설 세경진흥 기산건설 동신 등 건설·시행사들이 외환위기 이후 줄줄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캠퍼스 조성 비용 확보 등에 난항을 겪게 된다. 이후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2005년 8월 법적 문제와 한남동 캠퍼스 재매각 건이 완료됐다.

    대학도 학군시대?

    캠퍼스 이전에 대한 권 총장의 기대는 컸다.

    ▼ 그래도 아직 주류 대학들이 강북에 있지 않습니까. 수지캠퍼스로 옮겨가도 우수한 학생들이 계속 들어올까요.

    “우려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와서 솔직히 저희도 매우 놀랐습니다. 신입생 모집요강에 ‘캠퍼스 이전’을 확정고시하고 학생을 모집한 2007학년도 정시모집 수시합격생 수능점수 평균이 모든 모집단위에서 지난해보다 높았습니다. 난이도와 상관없는 1000점 만점 표준점수를 쓰는데, 적게는 8점부터, 영문과나 공학부 같은 인기학과는 30~40점이 오른 거죠.

    2학기 수시모집에서 합격한 학생들의 고교 반 석차 백분율을 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역시 모든 모집단위에서 성적이 1.3~3배로 높아졌습니다. 2006학년도에 정치·행정학부는 20.35%였으나 2007학년도에는 7.70%로, 수학교육과는 12.44%에서 4.57%로 높아졌습니다. 정치학부 신입생의 고교석차가 학급 35명 중 지난해에는 7등 정도였으나 올해는 2~3등을 했다는 얘기죠.”

    2006, 2007학년도 단국대 신입생 성적 비교
    모집단위 수시 2학기석차백분율(%) 정시 합격자 점수(수능반영 종합점수)
    2006 2007 2006 2007
    영문학과 18.598.51 604.6 637.3
    정치·행정학부 20.357.70 618.2 631.6
    언론·영상학부 17.588.30 630.1 649.2
    정보·컴퓨터공학부24.1816.00546.6 555.3
    공학부 20.5114.26533.1 560.2
    수학교육과 12.444.57 - -
    *자료 : 단국대 입학관리처

    *2007학년도는 모집요강에 ‘캠퍼스 이전’을 확정고시 했음. 백분율이 낮을수록 상위권 석차라는 의미임. 수학교육과 정시는 2006학년도와 2007학년도 전형방법이 달라 제외했음.


    ▼ 그 원인이 뭐라고 봅니까.

    “교육환경 개선, 편리한 교통 접근성 등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예전 캠퍼스들은 ‘리모델링’이나 부분 재건축한 데 불과해요. 우리처럼 수도권 금싸라기땅에 완전히 신축한 곳은 없지 않습니까. 정문에서 7m만 나가면 죽전지구 아파트와 닿습니다. 어찌 보면 ‘대학도 학군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지도 모르겠어요.

    교육 수요층의 중심이 이미 강남으로 내려와 있습니다. 수지캠퍼스가 사실상 분당권이라 강남은 물론 판교 분당 수지 죽전 등지에서는 통학시간이 전과 비슷하거나 더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캠퍼스 반경 5km 내에만 105만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주변에 신도시와 택지지구가 계속 들어설 예정입니다. 버스회사들과 협의 중인데 ‘광화문 시발, 단국대 종점’으로 한 직행버스를 상당수 추가 배치하기로 했고요, 이렇게 되면 광화문에서도 40~50분이면 올 수 있을 겁니다. 2009년에 신분당선이 개통되면 강남역에서 학교와 가까운 죽전역까지 8정거장이에요. 환승시간을 감안해도 25분이면 충분하겠죠.”

    ▼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시설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택지지구 내에 있는 점을 감안해 여느 대학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첨단 웰빙 시설이 들어섭니다. 개발면적이 전체 캠퍼스 부지의 30%밖에 안 돼 나머지는 숲과 녹지로 둘러싸이게 되고요. 그 사이로 조깅 트랙이 만들어집니다. 쾌적도를 높이기 위해 주차장은 가능한 한 건물 변두리에 설치합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들은 주차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우리는 아예 학생 전용 주차장도 만들었습니다.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나 보는 고급 우레탄 트랙을 갖춘 대형 운동장과 골프연습장, 수영장과 피트니스 시설들로 채워진 ‘스포츠 콤플렉스’도 국내 대학 최초로 선보입니다. 학생증을 겸한 스마트카드 하나만 있으면 간편하게 드나들 수 있죠. 앞서 말씀드린 악기교육도 일정 부분은 신설되는 야외 음악당에서 소화할까 합니다.

    캠퍼스 어디서나 무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차세대 인터넷 고속도로라 불리는 ‘슈퍼 초고속’ 인터넷접속 시스템도 들여옵니다. 현재 가정과 기업에서 가장 빠른 서비스 속도로 100메가바이트를 쓰는데, 저희는 이보다 10배 빠른 10기가바이트입니다. 가히 ‘네트워크 시티’로 불릴 만하죠.

    이 밖에 금호건설에서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기숙사를 짓습니다. 방학 때는 영어캠프 기숙사로 전환해서 쓰게 되고요. 이 정도면 신청 학생들은 다 수용할 수 있습니다. 캠퍼스에 생태공원, 폭포도 만들어놓고 헬스클럽도 맘대로 이용할 수 있으니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은 마치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기분이 들 겁니다.”

    단국대는 ‘신도시 대학’이라는 특성을 살려 지역주민들이 영어, 스포츠, 음악, 도예 등을 배우는 평생교육원도 세우기로 했다. 치과대학 병원 분원도 곧 들어선다. 9월에 열 이전 개교행사의 첫 테이프는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KBS 열린음악회’가 될 전망. 이 같은 지역 밀착사업은 ‘미래 학부모’에 대한 마케팅 활동과도 닿아 있다.

    권 총장은 개혁안과 캠퍼스 이전, 지역주민 친밀화 등의 소재를 통해 개교 70주년을 맞는 2017년까지 국내 ‘빅 5’ 사립대학에 진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어디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원하는 국립대학 몇 개, 그리고 기존의 입지가 워낙 탄탄한 사립대 서너 개를 빼고는 충분히 붙어볼 만합니다. 특히 분당, 용인 등 경기 남부권에서 계획 중인 우수학생 유치전략이 성공을 거둔다면 목표달성 연도는 좀더 빨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서울 소재 대학이 서울 바깥으로 이전하는 건 단국대가 건국 이래 처음이다. 송도, 아산, 강원도 등지로 제2캠퍼스 신축 내지 이전을 기획 중인 다른 대학들도 단국대의 ‘1차 시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단국대가 야심차게 기획한 이런저런 ‘안’이 계획대로 실행된다면 상당한 파급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언제나 답은 ‘얼마나 제대로 실행했는가’에 있다. 권기홍 총장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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