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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기 변호사의 골프생각

커누스티의 추억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 일러스트·김영민

커누스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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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커누스티 챔피언코스는 홀마다 별명이 붙어 있다. 10번홀의 별명은 ‘남아메리카(South America)’다. 별명에 얽힌 뒷이야기에 대해, 이곳에서 네 번째로 열린 1968년 브리티시 오픈의 우승자 게리 플레이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인코스 10번홀에서는 허리가 빠지는 줄 알았다. 자그마치 거리가 452야드나 되는 파4홀. 이 홀의 별명이 ‘남아메리카’인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캐디에게 물어보았다. 그 대답이 걸작이었다. 옛날 이곳에서 캐디로 일하던 이가 외국에 가서 골프를 전도할 계획으로 사표를 냈다고 한다. 송별회장에서 술을 마신 채 기념으로 마지막 플레이를 했는데, 10번홀에서 그만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는 것. 잠에서 깬 그는 그곳이 자신의 목적지인 남아메리카로 착각하고 야단법석을 떨었단다. 그래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는 옛 이야기다.”

7월23일 0시40분, 위성을 타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내 집 거실 TV에 도착한 가르시아는 문제의 10번홀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아일랜드의 영웅 파드리그 해링턴은 12번홀 499야드 파4홀에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아르헨티나의 안드레 로메로는 12번홀에서 더블보기를 했지만 파3 13번홀과 ‘안경(Spectacles)’이라는 별명이 붙은 14번홀 514야드에서 모두 버디를 기록했다.

특히 로메로는 전반 아홉 홀 중에 보기 없이 버디 3개만을 주워 담아 33타를 기록한 다음 후반에 들어와서 마의 10번홀과 ‘둑(Dyke)’이라는 별명이 붙은 11번홀 383야드 파4홀에서도 연속 버디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러키 슬랩(Lucky Slap)’이라는 별명의 15번홀 472야드 파5홀에서 또다시 버디를 잡음으로써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그런 다음에는 ‘배리 개울’로 불리는 16번홀 248야드 파3홀의 티그라운드에 올라섰다. 커누스티의 16번홀에 관해, 1975년에 이곳에서 다섯 번째로 열린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한 톰 왓슨은 이렇게 회상한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쇼트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쇼트홀은 어디인지 순위를 매기는 일은 분명 난센스이지만, 커누스티의 16번홀이 그중 하나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별명만 봐도 알 수 있듯 아웃코스에서 진로를 방해하던 조그만 개울이 중간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이 16번홀에서부터 노골적으로 플레이를 방해하기 시작하는 구조가 끔찍하게 싫었다. 공략 루트도 좁은데다 그린 주위는 개울로 둘러싸인 248야드의 쇼트홀이 어떤 모습일지 한번 상상해보라.”

로메로가 티샷한 볼은 홀 오른쪽에 안착했는데, 로메로는 이것을 원퍼트로 홀아웃함으로써 또다시 버디를 기록하며 마침내 8언더파로 단독 선두로 뛰쳐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로메로는 자신의 눈부신 플레이에 스스로도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섬(Island)’이라는 별명이 붙은 17번홀 461야드 파4홀의 디그라운드로 이동했다.

그 사이 파드리그 해링턴은 14번홀에서 이글을 잡음으로써 9언더파로 단독 선두가 됐다. 이렇게 로메로와 해링턴이 선전하는 사이 사흘 내내 선두를 질주해온 가르시아는 ‘사우스워드호(Southward Ho)’라는 별명이 붙은 12번홀에서 위기를 맞았으나 간신히 파로 마무리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오는 법. 가르시아는 이어지는 13번홀 168야드 파3홀에서 멋지게 버디를 함으로써 해링턴에게 바싹 다가선 다음 해링턴이 이글을 기록했던 14번홀에 이르렀다.

그 순간 필자는 가르시아가 이 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면 우승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가르시아는, 이곳에서 세 번째로 열린 1953년 브리티시 오픈의 우승자인 벤 호겐처럼 이번 대회 기간 줄곧 티샷을 할 때 드라이버를 사용하지 않고 아이언으로 티샷을 날림으로써 페어웨이를 지키려는 전략을 철저히 실행해왔다. 그런 모습이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르시아는 침착하게 게임을 풀어 나갔다.

그런데 그가 세컨샷한 볼은 길쭉하게 생긴 그린의 뒤쪽 끝까지 굴러가서 겨우 멈추어 섰다. 이글은 도저히 불가능하고 버디를 할 수 있도록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가르시아로서는 이 홀이 우승의 기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그가 첫 퍼트한 볼은 약 2m 정도 홀을 지나갔고, 버디를 노린 그가 두 번째로 퍼트한 볼은 홀을 살짝 비켜섰다. 그 모습을 보며 필자는 우승의 향방이 해링턴과 로메로의 승부에 달려 있다고 섣부르게 판단했다. 그 순간 카메라는 17번 홀에서 세컨샷을 준비하는 로메로의 모습을 비췄다.

커누스티의 17번홀은 배리 개울 때문에 페어웨이가 3등분돼 있다. 그럼에도 이 홀은 얼른 봐서는 편평해 보인다. 트러블이 어디에 있는지도 쉽게 보인다. 티그라운드에 서면, 개울이 우선 그린에서 약 144야드 떨어진 페어웨이 오른쪽에서 흘러들어와 그린에서 약 177야드 떨어진 페어웨이 중간지점을 거쳐 왼쪽으로 페어웨이를 비스듬하게 가로질러 흐른 다음, 페어웨이 왼쪽 부분을 따라 티그라운드 쪽으로 흘러오다가 티그라운드 바로 앞을 가로질러 다시 페어웨이 오른쪽을 따라 티그라운드에서 약 162야드 지점까지 그린 쪽으로 흘러간 뒤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흘러나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또한 페어웨이 양쪽이 러프 지역인 것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골퍼들은 티샷을 할 때 개울 물이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만들어놓은 페어웨이의 오른쪽 부분을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지역에는 제멋대로인 러프가 있어서 결코 방심할 수 없다.

로메로의 안이함, 해링턴의 당당함

로메로도 그곳을 겨냥해 티샷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티샷은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러프로 들어가고 말았다. 더욱이 로메로의 세컨샷은 예기치 않게 OB가 났다. 아이언을 사용했는데도 OB가 난 것이다. 로메로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우드를 잡고 세컨온을 시켰으나 더블보기를 범함으로써 순식간에 3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로메로는 18번홀 499야드 파4홀에서 보기를 범해 6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로메로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동안 필자는 그가 우승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6번홀에서 버디를 함으로써 선두로 치고 올라왔을 때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자신의 선전을 의아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나, 17번홀에서 더블보기를 기록한 뒤 18번홀에서 세컨샷을 할 때에 신중하지 않은 듯한 태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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