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롯데도 제쳤다”… 우리는 김범석이 만든 쿠팡과 함께 산다

‘곧 망한다’ 놀림받다가 테크놀로지로 ‘유통 빅3’ 등극

  • reporterImage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23-06-29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쿠팡이 걸어온 13년 가시밭길

    • 1분기 영업익 1362억 원, 3분기 연속 흑자

    • 경쟁업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성장

    • ‘로켓배송’ ‘와우멤버십’ 삶 속 깊숙이

    • 올해 연간 흑자 달성 가시화

    [Gettyimage, 쿠팡]

    [Gettyimage, 쿠팡]

    ‘저러다 곧 망하는 거 아냐?’

    쿠팡을 향한 업계의 시선은 10년 넘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창업 이래 계속돼온 적자 랠리가 있었다. 5000억 원대에 머무르던 적자 규모가 처음 1조 원을 넘긴 2018년 실적 발표 당시 “쿠팡이 돈을 불에 태우고 있는 듯하다”며 기업 존폐를 우려하던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이런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쿠팡은 13년 동안 대한민국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기존 문법을 파괴하는 쪽으로 달려왔다.

    쿠팡은 ‘고객감동’을 핵심 가치로 설정하고 철저히 사용자 편의에 집중했다. 이커머스의 핵심 전략인 온라인 최저가는 기본, 느리고 불편한 배송 서비스에 혁신을 꾀했다. 2014년 쿠팡은 전국망을 갖춘 탄탄한 택배회사 이용을 거부하고, 자체 물류창고를 세운 뒤 정규직 배송직원을 채용했다. 주문 상품을 24시간 내 문 앞까지 배송해 주는 데서 나아가 배송 완료 시간을 오전 7시로 당겼다. 매월 2900원(지금은 4990원)만 내면 무료 배송, 무료 반품, 30일 이내 환불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소비자의 발을 묶었다. 이외에도 ‘로켓프레시’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등 신규 서비스를 발 빠르게 선보이며 혁신을 거듭했다.

    쿠팡은 2021년 3월 1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선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쿠팡]

    쿠팡은 2021년 3월 1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선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쿠팡]

    쿠팡은 2021년 3월,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설립 초기부터 염원하던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의 꿈을 이뤘다. 상장 당시 공모가는 35달러, 종가는 49.25달러였으며, 기업가치는 100조 원으로 평가됐다. 창사 이래 탈출구가 없어 보이던 적자 문제도 해결했다. 상장 이듬해인 2022년 3,4분기 영업이익은 각 7742만 달러, 8340만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1억677만 달러(약 1362억 원)를 달성해 3분기 연속 흑자라는 역사를 새롭게 썼다.

    김범석 의장은 5월 10일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상품 가격을 올리거나 고객 혜택을 축소하는 고객 경험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 마진 개선을 달성했다”며 1분기 흑자 달성에 의미를 부여했다.



    초창기엔 ‘소셜커머스 빅3’

    현재 쿠팡은 국내 유통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유통 빅3’로 올라섰다. 지난해 매출만 놓고 보면 쿠팡은 26조5917억 원을 기록했다. 신세계그룹 유통 부문 9개사(이마트·백화점·이커머스·홈쇼핑 등)의 합산 매출은 30조4602억 원으로 쿠팡에 약 4조 원 앞섰다. 반면 롯데그룹 유통 부문 6개사(롯데마트·백화점·이커머스·홈쇼핑 등)의 합산 매출은 15조70억 원으로 쿠팡에 10조 원가량 뒤처졌다. 쿠팡이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지 않는 이커머스 회사인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성과다.

    설립 초기 쿠팡은 이커머스 회사가 아니었다. 2010년 8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출신 김범석 의장은 자본금 30억 원으로 직원 7명과 소셜커머스 회사 ‘쿠팡’을 설립했다. 그즈음 음식점, 미용실, 마사지숍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된 가격의 쿠폰을 대량 판매하는 소셜커머스 회사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소셜커머스로 등록된 회사 수가 300여 개에 이르렀다. 쿠팡 역시 ‘쿠폰이 팡팡 터진다’는 뜻이 담긴 사명처럼 직원들이 발로 뛰며 계약한 핫 딜 쿠폰을 대량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영위했다. 쿠팡은 톱스타들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등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며 ‘티몬’ ‘위메프’와 함께 3강 구도를 형성했다.

    소셜커머스 회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쿠폰 이외 것들도 팔기 시작했다. 매번 오프라인 매장을 돌며 저렴한 가격에 일정 규모 이상의 쿠폰을 계약하는 일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 2011년부터 소셜커머스 회사들은 일반 쇼핑 상품을 대량 계약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쿠팡 역시 유통업계 상품기획자들을 대거 채용하며 이커머스로의 전환을 꾀했다. 마케팅에도 상당한 비용을 쏟은 덕에 쿠팡은 2013년 연매출 478억 원을 기록하며 피보팅(Pivoting·비전은 유지하면서 사업 방향과 전략을 바꾸는 것)에 성공했다.

    회사는 성장하고 있었지만 냉정하게 말해 쿠팡만의 차별성은 없었다. 당시 온라인 판매 시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생겨난 오픈마켓인 인터파크, 옥션, G마켓, 11번가 등이 장악하고 있었다. 오픈마켓에서 다양한 생활용품, 패션잡화, 식품 등을 구매해 온 소비자들이 쿠팡과 같은 후발 주자를 선택할 요인이라고는 저렴하게 ‘핫 딜’로 뜨는 제품군뿐이었다.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려면 제 살을 깎을 수밖에 없다. 쿠팡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했다. 유통기한이 길어 재고를 장시간 쌓아둘 수 있으면서, 정기적인 소비가 기대되는 제품군인 기저귀, 분유, 물티슈, 생수 등을 저가에 대량 매입해 업계 최저 가격에 배송하기로 했다. 쿠팡은 2013년 6월 경기 문발동에 1만1000㎡의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1000여 유아용품을 서울 지역에 한해 당일 배송하는 ‘베이비팡’을 열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자체 물류센터’ ‘당일 배송’이라는 혁신 서비스를 갖춘 이커머스 쿠팡이 태동한 순간이었다.

    ‘로켓배송’이 선사한 신세계

    반년여 서비스 이후 쿠팡은 해당 서비스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보고, 고객감동을 위해 더 빠른 배송 서비스 구축에 나섰다. 그러려면 확보한 제품을 쌓아둘 더 큰 물류센터와 더 많은 배송기사가 필요했다. 쿠팡은 2014년 2월 파주시 봉암리에 1만5500㎡의 물류센터를 임차했다. 3월에는 배송기사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회사가 매입한 택배트럭에 물건을 실어, 주문한 지 하루 만에 배송(오전 주문 시 오후 도착, 오후 주문 시 다음 날 새벽 도착)하는 ‘로켓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 택배는 주문 후 영업일 기준 3~4일이 걸리고, 불친절하며, 배송 과정에서 박스가 손상되는 등의 불편함이 있었다. 로켓배송은 달랐다. 쿠팡 로고를 새긴 유니폼을 입은 ‘쿠팡맨’(지금은 쿠친)이 택배를 비교적 안전하게, 그것도 주문한 지 하루 만에 가져다줬다. 소비자들은 호평했고, 쿠팡은 ‘열일’했다. 서비스 출시 두 달 뒤 쿠팡은 배송 지역을 서울, 김포, 용인으로 넓혔다. 1년 뒤 2015년에는 경기를 비롯해 광주, 부산 등 5대 광역시로 뻗어나갔다. 물류센터도 경기, 인천, 대구 등 7곳에 총 12만5672㎡ 규모로 확대됐다. 1년 사이 10배 이상 성장한 셈. “로켓배송을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쓴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소비자들은 배송 신세계를 즐겼다.

    누가 봐도 로켓배송은 돈 되는 사업구조가 아니었다. 오프라인 제품 가격보다 10~20% 싼 제품을, 자사 정규직 배송기사들이, 하루 만에 배송해 제품 마진을 남기기 어려운 건 당연지사. 손해를 메울 서비스가 필요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는 매월 일정 금액을 내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가 트렌드였다. 국내에도 세탁물, 반찬, 이유식, 꽃 등 다양한 구독 서비스가 출시돼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었다.

    쿠팡은 2018년 10월, 매달 2900원을 내면 로켓배송 무료 이용, 30일 이내 무료 반품할 수 있는 ‘로켓와우 멤버십 서비스’(이하 와우 멤버십)를 선보였다. 쿠팡에서 물건을 많이 사는 소비자에게 2900원은 고려할 만한 요소가 아니었다. 와우 멤버십 출시 1주일 만에 가입자 수는 15만 명을 기록했고, 두 달 뒤에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쿠팡은 이어 2018년 출시한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밤 12시 이전 주문 시 오전 7시 이전 배송)인 ‘로켓프레시’도 와우 멤버십에 포함하며 가입자 확대에 총력을 기울였다.

    2000원 인상에도 200만 명 증가

    쿠팡은 배송에만 집중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업 가능성이 있는 신규 서비스를 출시했다. 2019년 5월에는 음식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를 선보였다. 초기 가입자 유도를 위해 최소 주문 금액이 없고, 배달료 무료, 30분 이내 로켓 배달을 내세워 주목을 받았다. 기존 배달 사업자들이 진출하지 않은 고급 요리 전문점이나 맛집과 연계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해 가입자 수를 늘려나갔다. 2021년 1월에는 OTT 서비스 ‘쿠팡플레이’를 출시했다. ‘SNL코리아’ ‘토트넘 홋스퍼 FC 중계’ ‘내셔널 풋볼 리그 중계’ 등 특정 시청자들을 공략한 콘텐츠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와우 멤버십 가입자들에게는 쿠팡플레이를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쿠팡은 2022년 6월 와우 멤버십 가격을 2900원에서 4990원으로 올렸다. 72%가량의 파격적인 인상에도 소비자들은 “그래도 싸다”는 반응을 보였다. 월 2000원, 연간 2만4000원을 더 내야 했지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즈음 쿠팡은 와우 멤버십 서비스를 강화해 소비자 혜택을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2022년 7월 손흥민이 출전하는 ‘토트넘 홋스퍼 FC’를 초청해 쿠팡플레이로 중계하고, 8월에는 7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공개했다. 실제로 “쿠팡플레이 이용하려고 와우 멤버십에 가입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양질의 콘텐츠 공급으로 와우 멤버십 가입자 수를 더 늘리겠다는 쿠팡의 전략은 제대로 통했다. 멤버십 가입자 수는 2021년 말 기준 900만 명에서 2022년 말 1100만 명으로 22.2%가량 증가했다.

    과감한 멤버십 요금 인상으로 실적도 대폭 개선됐다. 와우 멤버십 가격을 인상한 2022년 6월부터 3개월간에 해당하는 3분기 영업이익은 7742만 달러(당시 1037억 원)를 기록해 처음으로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 여기에 쿠팡은 올해 6월부터 와우 멤버십 가입자에게 쿠팡이츠 매 주문 시 10% 할인 서비스도 추가했다. 쇼핑과 콘텐츠 시청, 음식 배달까지 다 되는 이커머스 유니버스를 구축한 것이다.

    한국의 아마존, 궤도에 오르다

    대구 풀필먼트 센터 내 자동화 분류 로봇. [쿠팡]

    대구 풀필먼트 센터 내 자동화 분류 로봇. [쿠팡]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으로 불려왔다. 실제로 쿠팡은 아마존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이커머스의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김범석 의장에게 2015년 10억 달러, 2018년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쿠팡은 직접 배송을 시작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6조2000억 원을 투자해 전국 30여 곳에 물류센터를 구축해 이커머스 1강 체제를 굳혔다. 조 단위 적자가 발생했지만 김 의장은 “계획된 적자”라며 개의치 않고 풀필먼트(배송 종합 시스템 센터) 확대에 집중했다.

    쿠팡의 성공 요인으로 ‘혁신’이 첫손에 꼽힌다. 소셜커머스 빅3로 불리던 기업 가운데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며 혁신을 추구한 곳은 쿠팡이 유일했다. 현재 쿠팡은 자체 기술력으로 검색, 출고, 배송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한 유일한 기업이 됐다. 쿠팡의 성공 법칙을 다룬 책 ‘다이브 딥’의 박선희 저자는 “쿠팡은 여러 가지 도발적 방식으로 테크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기존 업체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통해 성장해 왔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 ‘수평적 조직문화’가 거론된다. 2010년 즈음 설립된 스타트업들은 대체로 대표와 직원들이 호칭 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업무까지 수평적으로 실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쿠팡 프로덕트 오너(PO) 출신 문석현 데이터경영연구소 소장은 책 ‘쿠팡, 우리가 혁신하는 이유’에서 “범(김범석 의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직원에게 ‘제발 위에서 시켜서 한다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그거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본인 스스로 납득을 하고 일하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는 쿠팡을 ‘자신의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과감하게 추진하는 직원들로 이뤄진 조직’이라고 분석했다.

    쿠팡은 올해 연간 흑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26조5917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영업손실 1447억 원을 기록해 흑자 달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업계에선 연간 흑자 달성은 무난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은 지난해 흑자 달성 이전부터 영업 현금 흐름 측면에서 긍정적인 지표를 보여왔다”며 “‘볼륨을 키우고 내실을 다지겠다’는 쿠팡의 전략이 어느 정도의 ‘수치’로 드러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정혜연 차장

    정혜연 차장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최태원-노소영 한국판 세기의 이혼소송, 판결만 남았다

    지금, 서울 민심② “국민의힘이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종부세 줄여줬잖 ...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