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 현장 풍경. [농부시장 마르쉐@]
장은 11시부터 시작되나 ‘마르쉐의 수퍼스타’라 불리는 몇몇 인기 판매자 앞에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줄을 선다. 저렇게 앳된 사람도 손수 요리를 하나 싶은 예쁜 청년부터, 머리에 하얗게 눈꽃이 내려앉은 노부부까지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서 있다. 농부들은 하늘거리는 줄기가 달린 어린 당근, 노란 주키니호박, 고수를 비롯한 각종 허브, 초록색 대가 싱싱하게 붙은 마늘, 다양한 색깔 감자 등 여러 가지 작물을 갖고 나온다. 이 시장의 진짜 매력은 얼굴을 아는 농부가 키운 채소를 사면서, 그간의 이야기까지 함께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좀 더 성의 있게 대하는 일
에세이 ‘그 밥은 어디서 왔을까’ 표지.
공 작가는 앞 책에서 말했다. ‘내가 부추를 먹으면, 나는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울음소리와 산밭의 어둠과 바람과 비와 달과 별의 소곤거림까지를 먹게 되는 것임을 촌아이들은 콩 만할 때부터 알게 되는 것이다.’ 그의 부추만큼은 아닐지라도,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사온 노란호박 한 덩이는 분명 마음에 한 줄 이야기를 긋고 뱃속으로 사라진다.
에세이 ‘백석의 맛’ 표지(왼쪽). 에세이 ‘100년 전 우리가 먹은 음식’ 표지.
‘흰밥과 가재미(가자미)와 나는/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중략)/흰밥과 가재미와 나는/우리들이 같이 있으면/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전문을 읽으면 쓸쓸한 밥상에 놓인 세 존재의 외로움과 다정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서양화가 서산(西山) 구본웅은 김에 대한 글을 남겼다.
‘나는 김을 즐긴다. (중략) 묵은 김 덕에 생색나고 밥은 향기롭다. (중략) 김이야말로 우리의 조선김이 좋으니 뻣뻣하고 꺼덕차고 맛도 향기도 없는 왜김에다 댈 것이 아니다. (중략) 이 감미, 이 향기가 김이 김다운 본색이다.’
분명 김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다. 맛이든 기분이든 마음에 들어오는 음식을 만나면 이 정도의 인사와 감상을 우리도 서슴없이 해보면 좋겠다.
백석의 인생과 맛 이야기는 ‘백석의 맛’이라는 책에 아주 쉽고 상세히 정리돼 있다. ‘100년 전 우리가 먹은 음식’에는 구본웅의 김 이야기를 비롯해 채만식, 이효석, 김유정, 현진건 등 여러 문인과 예술가의 음식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에세이 ‘음식의 위로’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