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언론을 만들어줬다는 창조설화적 세계관을 드러냈다. SBS에 대해 “내가 ‘모래시계’ 드라마 만들어줘서 키운 방송”이라고 했다. 종편에 대해서도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가 만들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언론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선거 말미 SBS가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을 보도한 후 사과 방송을 내보내자 “내가 집권하면 SBS 8시 뉴스 싹 없애겠다” “SBS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목을 다 잘라야 한다”고 했다. 영남 유세에서는 “종편은 종일 편파방송” “집권하면 종편 2개는 없애버려야 한다”고 했다. 표현 수위만 놓고 보면 군사정권 시대인지 헛갈릴 정도다.
물론, 보수 성향 국민은 언론의 논조에 어느 정도 불만을 갖고 있다. 언제부턴지 우리 언론계에 ‘진보 편향(liberal bias)’이 만연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수 정당 후보의 이런 언론관은 용납하기 어렵다. 적어도 군사정권 시절 언론 탄압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표현 수위만 보면 군사정권 시대
언론관과 관련해, 문재인 후보나 더불어민주당도 거기서 거기였다. 진보정권인 김대중 정권은 세무조사로 언론 탄압 논란을 일으켰다. 노무현 정권도 기자실 대못 논란을 초래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보수 정권은 이렇게 언론을 적대시하진 않았다. 진보정권은 언론 자유를 ‘언론을 손볼 자유’로 여기는 듯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SBS를 향해 이런 무력시위를 한 것으로 비쳤다. 총괄선대본부장을 필두로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방송사에 밀고 들어온 날 이 방송사가 장시간 사과 방송을 했다.SBS는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보도 후 다음 날 무려 5분 30초에 걸쳐 사과 방송을 했는데, 이는 언론 역사에 길이 남을 치욕이었다. 공중파 방송의 무능과 미래권력을 향한 굴종으로 비쳤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SBS는 재허가 심사가 세 차례나 보류되며 방송 폐쇄의 벼랑 끝까지 몰렸다. 이번에 사과 방송이 나간 시점은 그때 SBS의 군기를 단단히 잡던 그 정치세력이 집권을 눈앞에 둔 때였다.
문재인 후보는 다른 공중파 방송사에 대해서도 군기 잡기로 보일 언행을 했다. 올해 초 자신을 지지하는 음식평론가가 KBS에 출연 금지를 당했다는 이유로 대선주자 특집방송에 불참했다. 3월 MBC 100분 토론에서는 “MBC도 심하게 무너졌다”며 적폐 청산의 대상임을 암시했다. 그는 송민순 회고록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 질문은 안 하기로 했죠?”라는 다소 위압적인 말로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선 감정이 고조되기 마련이고 선거 때의 말이 그 사람의 진심이 아닐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판 언론에 보복하지 않는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