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일본 나가사키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입력2015-11-20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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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은 한국과 달리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자 비율이 낮다. 하지만 나가사키에선 16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일본의 가톨릭 유적을 만나볼 수 있다. 금교시대 때 섬마을에 숨어 지낸 일본 가톨릭 신자들은 해금 이후 전통 가톨릭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독특한 신앙을 이어왔다.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다비라 천주교 성당. 20세기 초반 활동한 건축의 대가 데쓰가와 요스케의 대표작이다.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유산 뒤에는 무수한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숨어 있다. 등재 초기에는 단일 건축유산을 등재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점차 각 지역의 특성이 부각되는 유산을 등재하거나 여러 유산을 한데 묶어 연속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나타났다.

    일본은 2015년 등재된 메이지 산업유산을 포함해 19곳이 세계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4곳은 자연유산이고 나머지는 문화유산이다. 그중 규슈 지방의 나가사키(長崎)는 2015년 산업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를 비롯해 여러 세계유산을 보유한 지역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나가사키는 서구를 향해 일찍이 문화를 개방한 곳이자, 제2차 세계대전 때 원폭 투하의 비극이 일어난 곳이다.

    이번 호에서는 나가사키 교회군(群)과 기독교 관련 유산(Churches and Christian Sites in Nagasaki)을 중심으로 걷는다. 이 유산은 약 10년에 걸친 준비 끝에 2016년 7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되는 총회에서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나가사키와 가까운 후쿠오카(福岡) 주변도 함께 둘러본다.

    나가사키의 독특한 경관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야수만다케 산 정상의 석조물.

    일본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1549년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에 의해서다. 이후 기독교는 일본 서부 지역에 급속도로 번져나갔고, 포르투갈과 교역하던 항구도시 나가사키가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의 주요 거점이 된다. 하지만 도쿠가와 쇼군 시대 들어 반(反)기독교 정책으로 천주교는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되고, 급기야 1637년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난다. 이때 탄압받던 기독교 유적지가 오늘날까지 잘 보존돼 있다.

    일본 가톨릭 신자는 현재 약 45만 명이라고 한다. 그중 15%에 해당하는 6만3000여 명이 나가사키에 산다. 교회는 나가사키에 130개, 도쿄에 80개, 오사카에 85개가 있다(일본 전체에 1000개). 일본의 주교좌 교구는 3곳으로 도쿄, 오사카, 나가사키다. 전체 인구 대비 가톨릭 신자는 1%, 개신교는 3.8%에 불과하다. 신도(神道) 및 민족종교가 51.8%이고 불교가 34%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일본인은 교회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신사(神社)에 데려가며,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른다’고 할 정도다.

    마지막 실사(實査)를 마치고 최종 결정만을 앞둔 등재 후보지는 2곳의 성곽 유적지, 4곳의 마을 및 집락지, 그리고 8개의 교회 건축으로 총 14곳으로 이뤄진 앙상블이다. 지역 분포를 보자면 나가사키 현의 7개 도시, 구마모토 현의 1개 도시에 걸쳐 있다. 이 가운데 이키쓰키 섬(生月島), 히라도의 성지와 집락(平島の聖地と集落), 다비라 천주교 성당(田平天主堂)을 소개한다.

    이키쓰키 섬은 고래잡이 전통과 가톨릭 은자(Hidden Christians)로 유명한 섬이다. 히라도 성지와 집락은 가수가 마을과 야수만다케 및 나카에 섬을 포함하는데, 금교(禁) 시대에 천주교도가 집단 거주하던 마을이다. 당시 경관이 잘 남아 있다. 특히 토지 이용 흔적이나 석물, 무덤 등이 잘 보존돼 있어 나가사키 지방의 독특한 경관을 확인할 수 있다. 이키쓰키 섬에서 이키쓰키 대교(生月大橋)를 건너면 서쪽의 해안마을 가수가 마을이 나온다.

    가수가 마을

    春日集落

    가수가 마을은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개인 주택이고, 다른 하나는 주택과 연결된 경작지와 묘지, 그리고 이 모두를 잇는 산길이다. 개인 주택에는 ‘난도가미(納神, closet icon)’라는, 장 속에 모시고 몰래 예배 볼 때 사용하는 일종의 성상이 있었다고 한다.

    십자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높은 봉우리 마루오야먀(丸尾山)에도 조그만 돌이 있는데, 이곳에서 신도(神道) 의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언덕 위에서는 바다를 비롯한 주변 경관이 한눈에 보인다. 기독교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집단 무덤지를 발굴해 표시해놓은 것도 볼 수 있다. 에도 시대 때 그린 그림과 비교해보면 경관이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19세기에 금교가 해제된 뒤에도 사람들이 가톨릭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교회를 다시 짓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야수만다케

    히라도 섬 서안에 있는 야수만다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534m다. 중턱에서부터는 차에서 내려 1시간가량 산길을 걸었다. 산길에는 울창한 참나무 숲, 수호신 하쿠산히메진자(白山比賣神社)와 삼도(道)라고 하는 돌로 조성된 멋진 산길, 산 정상의 석조물, 사이젠지로 추정되는 곳 등을 만났다. 정상에 서면 물론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다.

    산 정상에는 근대에 새로 짓기는 했지만 이 산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신도 신사(神社)가 있다. 삼도와 에도시대에 지은 도리이(鳥居)도 남아 있다. 신사 뒤로는 조그만 탑과 석조물, 신사 등이 있었는데 그곳이 사이젠지로 추정된다고 한다.

    16세기에 선교사가 쓴 편지에 따르면 사이젠지를 중심으로 산악불교가 성행해 이 일대에 큰 영향을 미쳤고, 선교사들을 적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교시대에 전통적인 종교관과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교지 등이 융합되면서 야수만다케는 신성한 산으로 숭배받게 된다. 숨어 살던 기독교인들은 가수가 마을에서 야수만다케의 정상으로 가는 길을 만들며 신앙을 지켜나갔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히라도섬 서안 일대의 ‘가쿠레기리스탄(れキリスタン, 금교가 해제된 이후에도 가톨릭교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들만의 가톨릭을 믿는 그룹)’들이 야수만다케 정상의 돌들을 참배하고, 기도문 ‘야수만다케사마(安岳)’ 등을 부른다고 한다.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구시다 신사에서는 신사참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본인을 많이 볼 수 있다.

    다비라 천주교 성당

    田平天主堂

    다비라 섬은 히라도 섬과 히라도 대교로 연결돼 있다. 천주교 성당은 섬의 서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다. 붉은 벽돌로 마감한 천주교 성당의 뜻밖의 경관이 순례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918년 완공된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당대 나가사키에서 활동하던 성당 건축의 대가 데쓰가와 요스케(川助)가 설계 및 시공했다. 이 성당은 그의 걸작 중 하나로도 꼽힌다. 한편 성당이 자리한 곳에서 1622년 이탈리아 선교사 카밀로 콘스탄초가 순교했다고 한다. 성당 정면 중앙에는 팔각형 돔 형태의 지붕을 한 종탑이 있다. 내부는 3랑식 평면에 3층 구조의 목조로 돼 있다. 외벽의 조적은 다채로운 영국식 벽돌쌓기로, 서양 건축의 모듈을 일본 건축에 적용하느라 일본 목수들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당시에는 상량식을 이틀에 걸쳐 했는데, 첫날에는 남성을, 둘째 날에는 여성을 초대하고 신사에서 상량식을 집전하는 일본 전통과는 달리 가톨릭 신부가 상량식을 주도했다고 한다. 건립 당시 데쓰가와는 두 개의 성당 공사 역시 진행했는데, 다비라에 사무소를 두고 바다를 건너다니며 공사를 감독했다고 한다. 이 2개의 성당, 에가미 성당(江上會堂)과 가시라가시마 성당(頭ケ島會堂)도 이번 세계유산 신청 목록에 들어 있다.

    후쿠오카의 일본 근대 전통주택

    지난 10월 나가사키를 찾은 것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연례 운영위원회 총회 참석차 후쿠오카에 갔다가 나가사키에도 들른 것이다. 후쿠오카에서는 ‘가시마 혼칸(鹿島本館)’이라는 일본 전통 료칸(旅館)에서 묵었는데, 이 료칸은 후쿠오카시로서는 처음으로 등록유형문화재로 인정된 일본 근대 전통주택이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멋진 스키야 건축으로 아주 잘 보존돼 있었다. 스키야 건축이란 격조 높은 문예 아취를 추구하는 양식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스키야 양식의 저택으로는 교토의 가쓰라리규(桂離宮)를 들 수 있다.

    숙소 근처에는 구시다 신자(櫛田神社)라고 하는 신사와 하카다 후루사토관(博多ふるさと館)이라고 하는 향토관이 있었다. 향토관은 지역 전통 양식의 건물로 공예나 인형 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757년 창건됐다는 구시다 신사의 본전은 위용이 넘쳤다. 신사참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본인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조인숙

    1954년 서울 출생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성균관대 석·박사(건축학)

    서울시 북촌보존 한옥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現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 역사건축구조 국제학술위원회 부회장, 국제건축사연맹 문화정체성-건축유산위원회 국제공동위원장


    회의는 후쿠오카 아카렌가 문화관(福岡市赤煉瓦文化館)에서 진행됐다. 아카렌가는 붉은 벽돌이라는 뜻이다. 문화관은 메이지(明治) 시대 서양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1969년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고 한다. 도쿄 철도역사, 서울의 한국은행 본관 등을 설계한 다쓰노 긴코와 가타오카 야스시가 설계해 1909년 준공됐다. 중앙에 돔을 얹은 조그만 탑과 천장이 있는 지붕, 붉은 벽돌과 화강암 띠로 두른 외벽이 화려하다. 이 양식은 다쓰노가 런던에서 유학하던 19세기 말 영국에서 유행한 앤 여왕 양식(The Queen Anne style)을 응용한 것으로, ‘다쓰노식’이라고 불린다.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다비라 천주교 성당의 외관.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1 야수만다케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2 다비라 천주교 성당의 내부.

    3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 757년에 창건됐다.

    4 가시마 혼칸은 후쿠오카에서 처음으로 등록유형문화재로 인정된 일본 근대 전통주택이다. 현재는 료칸으로 활용된다.

    5 가시마 혼칸의 내부 정원.

    6 후쿠오카의 아카렌가 문화관. 메이지 시대 서양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1 야수만다케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2 전통 천주교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가톨릭을 믿는 가쿠레 기리스탄을 그린 그림.

    3 가수가 마을의 경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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