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안철수 나비효과, 중도연합 정계개편 도화선 되나

[막 오른 경부大戰 ⑥]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1-01-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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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野 ‘기득권·수구·분열’ vs 與 ‘혁신·진보·통합’

    • 安 ‘보수 지지받는 중도’ 모델로 명분 선점

    • 이기면 ‘중도 지지받는 보수’ 유승민·원희룡 부각

    • 법의 지배·투명성·견제와 균형 자유주의 가치 주목

    • “시장의 룰” 尹, “계층 간 이동” 金의 조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마한 가운데, 안 대표가 선전하면 국민의힘 내에서 원희룡 제주지사와 유승민 전 의원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왼쪽부터).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마한 가운데, 안 대표가 선전하면 국민의힘 내에서 원희룡 제주지사와 유승민 전 의원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왼쪽부터).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재보선)만 놓고 보면 지금은 ‘안철수의 시간’이다. 안철수(59)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20일 전격적으로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1야당의 허를 찔렀다. 선거의 8할은 구도다. 안 대표는 경쟁자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이 ‘결단’이라는 프레임을 선점하면서 구도를 ‘안철수냐 아니냐’로 재편했다. 고비 때마다 타이밍을 놓쳐 정치 초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던 그가 반전 드라마를 썼다. 

    국민의힘은 조연으로 밀렸다. 잠룡들의 스텝도 꼬이고 말았다. 오세훈(60) 전 서울시장은 1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안 대표의 (국민의힘) 입당이나 합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는 서울시장 출마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자신은 변수이고 상대가 상수임을 스스로 고백해 버린 이상한 ‘조건부 출사표’다.

    ‘자기 배신’ 원치 않는 중도

    2016년 이후 국민의힘(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을 휘감은 이미지는 기득권·수구·꼰대·분열·탄핵이다. 대신 더불어민주당이 혁신·진보·젊음·통합·촛불의 이미지를 차지했다. 낙인이 찍힌 보수야당이 어떤 식으로도 이기기 힘든 구도다. 이 와중에 보수야당이 내세운 지도자가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다. 황 전 대표가 이끈 보수야당은 ‘자유 우파’라는 자폐적(自閉的) 프레임에 갇혀 스스로 지지기반을 좁히고 말았다. 스윙보터인 중도 처지에서는 이쪽(민주당)도 싫지만 저쪽(국민의힘)은 더 싫다고 말할 수밖에 없던 거다. 

    선거 캠페인에 기민한 여권 전략가들은 ‘야당 심판’이라는 전무후무한 프레임을 꺼내 들며 무기력한 보수야당을 간단히 제압했다. 황 전 대표가 탄핵당한 정부의 2인자였다는 점도 여권의 선거 전략에 힘을 실어준 요소다. 

    안 대표는 이와 같은 구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축에 속한다. 야권으로 분류되지만 과거 권력(이명박·박근혜 정권)에 속한 적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공동대표를 지냈지만 당내 권력투쟁에서 친문(親文) 세력에 밀려 스스로 뛰쳐나왔다. 지난 대선 때는 보수색이 강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의 단일화 대신 독자적으로 선거를 완주했다. 당시 야권에는 안 대표가 정무적 판단에 미숙하고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때 행보가 안 대표의 중도 색채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투표는 지지하는 세력에 대한 ‘지지의 표출’이자 반드시 떨어뜨리고 싶은 세력에 대한 ‘불신임의 표시’다. 유권자는 누군가를 반대하기 위해 ‘이길 수 있는 후보’에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따라서 선거의 마지막 퍼즐은 확장성이다. 후보의 확장성을 가늠하려면 다자 간 여론조사보다는 양자 간 가상 대결을 핵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 2002년 대선 당시 여당 내 ‘이인제 대세론’에 눌려 있던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강세를 띠는 것으로 나타나자 ‘대안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고건 전 총리와의 가상 대결에서 박근혜 전 대표보다 강세를 보여 확장성을 증명했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 의뢰로 1월 2∼3일 서울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안 대표는 여당 유력 후보인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의 가상 대결에서 47.4%대 37.0%로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오세훈 전 시장과 박 장관과의 가상 대결에서는 43.9%(오) 대 38.7%(박)로 격차가 줄었다. 나경원 전 의원과 박 장관의 가상 대결은 39.8%(나), 40.1%(박)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보수의 지지를 받는 중도

    야권 빅3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중도(안철수), 중도보수(오세훈), 보수(나경원)로 나뉜다. 오 전 시장은 2019년 2월 27일 열린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 당시 낙선했지만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50.2%를 득표해 37.7%를 얻은 황교안 후보를 크게 앞섰다. 황 전 대표에 비하면 중도 확장성이 컸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 바깥 인사인 안 대표와 비교하면 과거 권력과의 거리는 당연히 가깝다. 나 전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황 전 대표와 호흡을 맞춰 ‘대여(對與) 강경 투쟁’을 주도하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발언하는 등 보수색이 짙어졌다. 

    4·7 재보선의 성패는 여당 지지를 거둬들인 유권자의 선택이 가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유권자 지형이 진보 우위로 재편된 터라 과거처럼 보수 결집에 의존하면 야권에는 자충수다. 민주당은 정의당과의 연대 없이도 지난해 4·15 총선에서 180석을 거머쥐었다. 총선 직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 상황을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한국 사회의 주류(主流)가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됐다”고 썼다. 진 전 교수의 분석대로라면 과거에는 소수인 진보가 중도와의 연대를 꾀했지만 이제는 보수가 중도에 구애 전략을 펴야 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복잡한 속내가 읽힌다. 당 핵심 관계자는 “현재 중도층 상당수는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다. 지금이야 문 정부의 실정 탓에 지지를 철회했지만 과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자기 배신’까지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국민의힘 빅2(오세훈, 나경원)를 찍으면 ‘자기 배신’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큰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포털 다음을 창업한 이재웅 전 쏘카 대표를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이 때문이다. 

    4·7 재보선이 내년 3월 9일 치러질 대선의 전초전(前哨戰)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전국 단위 선거의 축소판 구실을 한다. 안철수, 오세훈, 나경원이 펼치는 ‘야권 단일화 삼국지’와 여야 후보 간 본선 결과는 곧 전개될 대선 정국의 바로미터다. 국내 대표적 선거 전략가인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안철수발(發) 나비효과의 영향권이 야권 전반을 아우른다고 본다. 그의 설명이다. 

    “안 대표가 박영선 장관과의 가상 대결에서 강세를 보인 것은 중도가 지지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 10여 년간 오 전 시장과 나 전 의원은 보수색이 매우 강화된 것이다. 즉 오세훈, 나경원 두 사람은 ‘보수의 지지를 받는 보수 후보’다. 안 대표가 경선과 본선을 이기면 ‘보수의 지지를 받는 중도 후보’가 된다. 그러면 국민의힘 내에서도 ‘보수의 지지를 받는 보수 후보’보다 ‘중도의 지지를 받는 보수 후보’가 유리해진다. 대표적으로 원희룡 제주지사와 유승민 전 의원이 있다. 2016년 이후 보수정당은 보수색을 너무 강화해 선거를 치러 완패했다. (대선 주자 중에는) 국민의힘 바깥에 있는 홍준표 의원이 확장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거 아닌가. 이에 중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를 서울시장 선거에서 점검해 볼 수 있다.”

    안철수·김동연·윤석열을 잇는 고리

    차기 대선에서 제3지대 세력화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윤석열 검찰총장(위쪽)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아래쪽)이 주목받는다. [동아DB]

    차기 대선에서 제3지대 세력화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윤석열 검찰총장(위쪽)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아래쪽)이 주목받는다. [동아DB]

    물론 점검해 보려면 안 대표가 야권 단일후보가 돼야 한다. 하지만 하나의 시나리오로 검토할 가치는 있다. 그간 국민의힘 당내 선거(당 대표, 원내대표 선거 등)는 ‘친박 vs 비박’ 혹은 ‘친황 vs 반황’의 대결로 전개됐다. 어떤 형태이건 ‘야당 심판’이라는 여권 프레임에 속수무책이다. 이것이 원희룡·유승민의 중도보수 블록과 홍준표(복당할 경우)·황교안의 강경 보수 블록 간 경쟁으로 재편되면 구도는 달라진다. ‘누가 민주당 표를 최대한 잠식할 수 있는 후보인가’를 놓고 전면 경쟁이 펼쳐질 테니 말이다. 

    4·7 재보선 이후 정국의 또 다른 변수는 제3지대 세력화 여부다. 최근 학계에서는 자유주의 중도연합에 주목하는 눈이 많다. ‘반(反)민주당·비(非)국민의힘’ 깃발 아래 모이되, 자유주의가 이들을 잇는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가치연합에 근거한 제3지대다. 독재나 전제정치, 자의적 통치에 반대하면서 개인의 권리, 권력기관 간 상호 견제 등을 강조하는 관점에서 자유주의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구체화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안 대표는 정치 입문 초창기인 2013년 자신의 노선으로 ‘진보적 자유주의’를 제시한 바 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정치학)는 예기치 않은 안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이 4·7 재보선 이후 정계 개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집권 말기에 이르러 중도를 상실한 여당과 애당초 중도를 멀리한 야당이 모두 그의 과녁에 놓인다. 

    그는 “여권 주류인 민주화운동 세력은 자유주의적 감수성이 다소 약한 편”이라고 했다. 무슨 말일까. 일사불란을 강조하고 당내 이견에 징계(금태섭 전 의원)를 시도하는 당에서는 견제와 균형, 다양성의 가치가 작동하기 어렵다. 집권 경험이 있는 보수야당이 대안일까. 안 교수는 “국민의힘은 최소한 ‘김종인·유승민스럽게’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바깥에서) 중도가 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가 부연했다. 

    “그간 한국을 지배해 온 게 천민 보수다. 안철수·김동연 같은 인물은 천민 보수와 달리 개인의 권리, 투명성, 견제와 균형, 법치 등 자유주의적 감수성을 갖고 있다. 김동연은 여야를 모두 넘나들 수 있는 인물인데, 여당이라면 민주화운동 세력과 다른 자유주의 중도 블록에 속할 수 있다. 윤석열의 경우 (부정적 의미에서) 기존 검찰주의자들의 관행을 그대로 갖고 있지만 자의적 권력에 분노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법의 지배(rule of law)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

    ‘계층 이동 사다리’와 ‘시장의 rule’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보수야당은 민주화 이후에도 시장 만능주의와 낙수효과, 권위주의에 기대왔다. 그러다 보니 이념 고립을 자초했고, 자율과 개방의 세례를 받은 젊은 세대와 불화했다. 반면 자유주의는 시장의 건강한 질서를 위해 경제주체 간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노선을 정립하면 ‘시장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말과 ‘약자와의 동행’(김종인)이라는 말이 배치되지 않는다. 또 “계층 이동 사다리가 단절됐다”(김동연)는 말과 “시장의 룰이 깨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진다”(윤석열)는 말이 이어질 수 있다. 

    안병진 교수는 “(안철수·김동연·윤석열을 아우르는) 제3지대 자유주의 중도연합은 가능하다. 안 대표가 좌표를 잘 잡고 윤 총장이 결단을 하면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면서 “윤 총장의 강점은 ‘초당적’ 기질인데, 이는 국민의힘보다는 제3지대에 적합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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