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동물萬事

개는 육류 포획 담당, 고양이는 곡식 지킨다

인류 식량확보戰… 개는 공격수, 고양이는 수비수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입력2021-02-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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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의 생존 도와온 개, 고양이

    • 사냥부터 목양까지, 육류 생산 돕는 개

    • 설치류의 곡물창고 습격 막아온 고양이

    • 고양이 덕에 쥐가 옮기는 전염병도 예방

    개와 고양이는 
오랜 기간 사람과 
함께 살아온 동물이다. [GettyImage]

    개와 고양이는 오랜 기간 사람과 함께 살아온 동물이다. [GettyImage]

    펠레, 마라도나, 메시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선수는 대부분 공격수다. 득점의 화려한 순간을 독점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공격수지만 축구에서는 공격만큼이나 수비도 중요하다. 아무리 공격을 잘 하더라도 수비가 허술하다면 경기에서 이기기 어렵다. 

    비근한 예가 2020년 10월 19일 벌어진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의 토트넘 홋스퍼(이하 토트넘)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FC(이하 웨스트햄)의 경기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토트넘의 승리를 점쳤다. 토트넘에는 리그 최고 수준의 득점력을 자랑하는 손흥민과 해리 케인(Harry Kane)이 있다. 웨스트햄이 이 둘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경기 초반은 예상과 같았다. 토트넘은 상대 진영에 맹공을 이어갔다. 경기 시작 불과 45초 만에 토트넘의 득점이 시작됐다. 해리 케인의 도움을 받은 손흥민이 웨스트햄의 골 망을 갈랐다. 해리 케인이 뒤이어 전반전에만 2번 연속 득점에 성공했다. 여유가 생긴 토트넘은 후반 34분 손흥민을 벤치로 불러들였다.
     
    웨스트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손흥민이 빠지자 토트넘의 수비가 무너졌다. 앞서가던 3점은 10여 분 만에 따라잡혔다. 결국 토트넘은 승리 대신 3대 3 무승부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됐다. 수비수들이 열심히 뛰어준 덕에 웨스트햄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손흥민과 해리 케인의 맹공을 3실점으로 틀어막지 못했다면 후반 분전에도 패배했을 것이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축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단 한 골만 더 넣으면 된다. 수비만 견고하면 매 경기 한 골만 기록해도 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동물성단백질 수급 도우미, 개

    인류가 식량을 확보하는 과정도 축구와 닮았다. 식량을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식량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개와 고양이는 ‘식량 확보’라는 경기에서 각각 공격수와 수비수의 역할을 한다. 개와 고양이는 야생을 떠나 인간 세상에 정착한 동물이다. 두 동물의 사이가 나쁘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개와 고양이는 의외로 서로를 존중한다. 상대의 영역을 인정하고 가급적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한다. 

    개와 고양이를 둘러싼 오해는 또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 개와 고양이는 인간 세상에 무임승차한 동물처럼 보인다. 최근 인간 세상에서 두 동물이 하는 일이라고는 귀가한 주인을 맞아 반기는 일이 전부처럼 보인다. 이 중 육체노동이라 보이는 일은 주인을 보고 꼬리를 치거나, 주인에게 살갑게 다가가 자신의 몸을 비비는 정도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개와 고양이는 인류의 역사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개와 고양이는 인류의 식량을 축내는 식객(食客)이 아니었다. 오히려 개와 고양이는 인류의 식탁을 한층 더 윤택(潤澤)하게 만들어준 동료에 가깝다. 

    개는 인류의 식량, 그 중에도 동물성단백질 수급에 큰 역할을 했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 인류는 수렵과 채집에 의존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저녁 식사거리였다. 수렵이나 채집에 실패했다면 그날은 그대로 굶게 된다. 개는 당시 인류의 사냥 도우미였다. 사람보다 후각이 예민하고 발이 빠른 개와 협업을 시작하자 인류의 사냥 성공률은 크게 개선됐다. 

    신석기혁명(Neolithic Revolution)을 계기로 농경과 정착의 시대가 왔다. 인류가 농경과 정착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채택하자 동물성단백질을 얻는 방법도 달라졌다. 신석기 전에는 육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사냥뿐이었다. 신석기 이후 목축이 시작됐다. 인류가 동물을 키워서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 믿고 거대한 맹수와도 맞서

    훈련받은 개는 사냥을 돕거나 인간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GettyImage]

    훈련받은 개는 사냥을 돕거나 인간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GettyImage]

    인류 역사에서 축산업은 식생활의 대전환이었다. 인류는 야생동물을 개량해 소, 양 등의 가축으로 만들었다. 가축을 키워 고기를 얻거나 젖을 채취하는 식으로 단백질 공급 방식을 다양화한 셈이다. 단백질 섭취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축산업은 사냥에 비해 실패 확률이 낮았다. 그만큼 인류는 육류를 더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게 됐다. 

    인류의 단백질 공급 정책이 축산업 위주로 변하자 일부 사냥개나 집을 지키던 번견은 직업을 바꿨다. 가축을 지키는 목양견이 된 것이다. 개의 넓은 시야와 하루 종일 뛰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은 목양 일에 제격이다. 풀을 뜯는 소나 양 같은 초식동물은 넓은 목초지를 필요로 한다. 목축에 성공하려면 초식동물을 단순히 목초지에 풀어놓기만 해서는 안 된다. 초원에는 풀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르는 초식동물을 노리는 늑대, 곰 같은 맹수도 많다. 

    풀을 뜯던 초식동물이 무리에서 낙오되는 일도 막아야 한다. 혼자 떨어진 가축은 쉽게 포식자의 먹잇감이 된다. 한두 마리를 기를 때라면 사람이 동물을 지킬 수 있다. 안전한 곳에 자리 잡고 가축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보면 된다. 돌봐야 할 동물이 20~30마리가 넘어가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초식동물은 풀을 먹는 양이 많아 계속 자리를 옮겨줘야 한다. 이동 중에는 한 마리, 한 마리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사람의 시야와 운동 능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가축을 지키는 일이니 목양은 수비수가 할 일이라 보기 쉽다. 그렇지만 인류의 식량 생산을 돕는 일을 하는 가축을 공격수, 식량을 지키는 일을 하는 동물을 수비수라고 가정하면 목양은 공격수의 일이다. 목축은 식량을 생산하는 활동이고 개는 목양을 통해 이를 돕기 때문이다. 

    목양은 생각보다 거친 일이다. 개는 목숨을 걸고 목양이라는 임무를 수행한다. 목양견은 맹수가 등장하면 주인의 재산인 가축을 지키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여우, 담비 등 개보다 몸집이 작은 포식자라면 직접 싸워 쫓아낸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맹수가 나타난다면 목청껏 짖는다. 주인에게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다. 주인이 올 때까지 개는 도망가지 않고 야생동물에 맞서 가축을 지킨다. 

    개가 자신보다 강한 대형 포식자와 대치할 수 있는 것은 주인을 믿기 때문이다. 개는 무기를 든 주인(인간)이 모든 맹수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주인이 올 때까지 조금만 더 버티면 가축을 지킬 수 있으니 맹수 앞에 목숨을 내놓고 나선다. 이처럼 충실한 개가 없었다면 인류는 축산업을 계속해 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축의 발뒤꿈치 무는 목양견

    오스트레일리안 캐틀 도그(Australian Cattle Dog)는 목양에 특화된 품종이다. [GettyImage]

    오스트레일리안 캐틀 도그(Australian Cattle Dog)는 목양에 특화된 품종이다. [GettyImage]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자웅을 겨루는 손꼽히는 축산대국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축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목양견이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안 캐틀 도그(Australian Cattle Dog)라고 불리는 목양견이 유명하다. 이 개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자랑한다. 하루 종일 가축 떼 사이를 누빌 수 있을 정도다. 오스트레일리안 캐틀 도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축을 잘 다루는 개로 꼽힌다. 개의 지시를 따르지 않던 가축이라도 오스트레일리안 캐틀 도그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된다. 

    오스트레일리안 캐틀 도그는 혈통부터 특별하다. 이 목양견은 야생의 피가 섞였다. 목양견을 품종 개량하는 과정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야생 들개 딩고(dingo)와 개의 교잡이 이뤄졌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초원은 유럽과는 규모가 다르다. 이주민과 함께 유럽에서 건너온 목양견은 넓은 초원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딩고는 지금으로부터 3000~4000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사람들이 이주하는 과정에서 이주민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륙과 연결되지 않은 거대한 섬인 오스트레일리아는 늑대나 표범 같은 대형 포식자가 없다. 신대륙에서 사람과 떨어져 야생의 본능을 되찾은 딩고는 자연스럽게 최상위 포식자로 등극했다. 딩고의 유전자에는 대륙을 누비며 사냥하던 체력과 야생에서 키운 임기응변이 각인돼 있다. 사람을 잘 따르는 개와 야생 들개의 유전자가 섞이며 최고의 목양견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안 캐틀 도그의 비밀 병기는 가축의 발뒤꿈치를 무는 기술이다. 가축이 목양견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굴면 오스트레일리안 캐틀 도그는 그런 가축들만 골라 발뒤꿈치를 살짝 물거나 무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겁이 많은 가축은 혼비백산하며, 개의 지시에 따르게 된다. 

    모든 가축의 발을 물 필요는 없다. 지시를 불이행하는 몇 마리만 혼내 주면 된다. 이를 본 다른 가축들은 알아서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이 같은 발뒤꿈치(Heel) 물기 기술 때문에 이 개는 오스트레일리안 힐러(Australian heeler) 또는 블루 힐러(Blue heeler)라고 불리기도 한다.

    쥐의 곡물창고 약탈 막는 고양이

    개는 사냥꾼을 따라 사냥터에 동행하거나, 소나 양을 치는 목동을 도우며 인류의 단백질 공급에 일조했다. 개 덕분에 사람들은 붉은 고기(red meat)를 한결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고양이는 개와 역할이 달랐다. 고양이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 확보한 곡물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일을 맡았다. 통상 축구경기에서 수비수보다 공격수가 눈에 띈다. 득점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점수를 지키는 수비수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빛을 보기 어렵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고양이가 하는 일은 개의 사냥이나 목양에 비해 빛이 나지 않는다. 생산이 아닌 현상 유지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지키는 대상도 고기가 아닌 비교적 풍부한 곡물이다. 

    2005년 작고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의 손이 닿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경영학에서 그의 영향은 지대하다. 그는 1954년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라는 책을 통해 ‘목표관리’(이하 MBO·Management By Objectives)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MBO는 관리자(manager)가 근로자와 목표에 대해 합의한 뒤, 그 목표 달성 방식은 해당 근로자에게 일임하는 경영 기법이다. 지금도 수많은 기업이 직원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MBO를 사용한다.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 MBO를 도입하면, 고양이는 직원이 되고, 사람은 관리자가 된다. 관리자인 사람과 직원인 고양이가 합의한 목표는 ‘창고의 곡식이 쥐의 침입으로 축나지 않도록 창고 근처의 설치류를 모두 소탕하라’는 것이었다. 쥐는 야행성이라 인간이 잠든 사이를 틈타 곡물을 노린다. 고양이는 자신이 부여받은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인간의 곡물창고를 노리는 동물을 단죄해 왔다. 

    인류가 그동안 먹었던 붉은 고기는 목동과 목양견의 공동 생산물이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소비한 곡물도 사람과 고양이의 협업 성과다. 사람은 농사를 지어 곡물을 생산하고 고양이는 작은 동물의 곡물 약탈을 막는다. 고양이도 개에 못지않게 인류의 식량 확보에 기여한 셈이다.

    전염병 막는 데도 고양이가 일조해

    고양이는 전염병을 옮기는 쥐를 잡아 인류의 방역에도 힘썼다. [GettyImage]

    고양이는 전염병을 옮기는 쥐를 잡아 인류의 방역에도 힘썼다. [GettyImage]

    사람들의 창고를 노리는 설치류는 체구가 상당히 작고 숫자가 많다. 작고 날쌘 쥐를 잡기 위해서는 큰 체구가 외려 불편하다. 고양이는 작지만 유연하고 날랜 몸을 이용해 쥐를 빠르게 잡아낸다. 

    그러나 고양이의 습성 때문에 세운 공에 비해 대우를 못 받는 측면도 있다. 고양이는 사냥 업적을 과시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주인 눈에 잘 띄는 현관문 앞이나 창가 근처에 쥐나 작은 새의 사체를 전시하기도 한다. 고양이를 풀어놓고 키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을 일이다. 문제는 주인이 고양이의 전시를 즐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개가 혼자 사냥을 나가 꿩·토끼·사슴 같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동물을 잡아 현관문 앞에 늘어놓았다면 주인의 태도는 전혀 다를 것이다. 주인은 개를 크게 칭찬하고 개는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그날 저녁 밥그릇에 특식을 받을지도 모른다. 

    반면 고양이가 잡은 설치류의 사체는 사람이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쥐는 크기가 작은 데다 전염병을 옮길 수도 있어 먹어서는 안 된다. 주인이 보기에 작은 동물의 사체는 징그럽고, 더럽고, 불결한 존재다. 주인이 치워야 할 쓰레기만 늘어난 셈이다. 

    주인의 박한 평가와는 달리 고양이가 쥐를 죽이는 일은 인류의 생존율을 올리는 데 일조한다. 설치류는 전염병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14세기 유럽에서 약 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을 옮긴 것도 쥐였다. 고양이는 창고지기로 일하면서 덤으로 쥐를 매개로 하는 악성 전염병의 유행을 억제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쥐에게는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넘치는 천국과도 같다. 사람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는 설치류에게는 뷔페식당이나 마찬가지다. 공짜 뷔페가 열리는 인간 세상은 온갖 설치류를 모았다. 고양이가 없었다면 쥐의 개체수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단이 없었을 것이다. 고양이는 식량 창고를 지키는 초병(哨兵)인 동시에 물론 쥐를 매개로 하는 전염병 창궐의 보루(堡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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