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정치 상황에서 탄생한 공수처
국민과 野 견제로 ‘비교적 중립적인’ 처장 취임
국가가 외면한 ‘사법 피해자’ 구제 길 열려
‘사법무결점주의’ 신화 혁파의 출발점
무소불위 권력 제어할 보루 구실해야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월 2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공수처 현판 제막식을 갖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분열된 정치 상황에서 탄생한 공수처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이날 김 공수처장은 “수사와 기소라는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 주권자인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결정인지 항상 되돌아보겠다”고 말했다. [뉴스1]
현 정부에서 일어난 ‘분열의 정치’가 정점에 달한 것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이다. 야당 측 극한반대를 뚫고 우여곡절 끝에, 공수처는 1월 21일 초대 김진욱 공수처장 취임과 함께 출범했다.
그동안 공수처에 관해 별 말이 다 들려왔다. 공수처장을 열성 ‘문빠’ 중에서 고르고 있는데, 그 대상이 누구누구라고 했다. 살펴보니 하나 같이 정치 편향이 대단히 심한 사람이었다. 또 서울 서초동 법조가에서는 공수처 검사로 내정된 듯 행동하는 변호사가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권의 사냥꾼 노릇을 해 출세 발판을 마련하려는 야심에 가득 찬 이들이었다. 이런 사정들로 미루어 공수처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야당 반대가 워낙 극심했다. 그리고 점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가 하강곡선을 그렸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은 그나마 공수처 출범이 시급하다는 인식 하에 대한변협회장이 추천한 무색의 김진욱 변호사에게 공수처장을 맡기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안다. 지금 김진욱 공수처장에 대해 여권에서 오히려 불안해하는 기미가 적지 않다. 제2의 윤석열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은 정치적으로 비교적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공수처장으로 낙착된 것은 야당과 국민 우려가 반영된 그나마 다행스런 결과이다. 다만 여권이 차장과 검사, 수사관 임명 등에 힘을 발휘해 공수처장을 무력화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이를 이겨내고 공수처를 공평무사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 만한 포부와 비전을 갖고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야당에서도 김진욱 공수처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 동의한 이상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에 정한 인사위원회에 법 소정의 위원을 추천해 공수처가 중립성을 가급적 확보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야당이 편협한 시각에서 계속 정부 정책에 반대만 해서는 국민이 현 정부 대안세력으로 인정해줄 수가 없다.
국가가 외면했던 사법 피해자들
사실 공수처는 25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시민사회에서 설치를 강력히 요구해오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도 이것이 논의됐고, 설립에 한 때 서광이 비친 적이 있다. 당시 유시민 선생이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는 길에, 초대 처장은 필자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로 제안하고 노 대통령이 이에 수긍했다는 말을 어느 유력 정치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적이 있다. 올바른 사법개혁 실현을 위해 오랜 기간 연구해온 나는 공수처 같은 기관이 꼭 필요하다고 계속 주장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부가 하는 일 다수가 파당적이고 분열적이어서, 혹시 이번에 야당 측에서 주장하는 그런 우려가 맞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을 가졌다.여기서 공수처가 왜 필요한지 설명해보자.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 2, 3호에서는 공수처 수사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자, 그 가족, 또 고위공직자범죄에 관해 상세히 규정했다. 이 법률 성립 경위에 비춰보면, 공수처 수사 대상은 주로 판‧검사 나아가 경찰간부가 될 것이다.
한국의 법원, 검찰은 지금까지 특권의 성역이었다. 어느 나라건 법조인이 그 사회의 기둥 대접을 받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은 좀 특이하다. 왜 한국에서 이렇게 유난스럽게 판사 검사 지위가 특권층으로 변질됐을까.
판사나 검사는 엄청난 시련과 고통의 과정을 거쳐 선발된 초인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그들의 잘못을 어느 누구도 추궁할 수 없는 존재라는 믿음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그래서 검사가 하는 수사나 판사가 하는 재판은 신성불가침의 것이었다. 이에는 절대 오류가 없다. 사법시험이 왕조시대 과거 구실을 한 것이 이런 불가해한 현상의 주된 원인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런 현상에 내가 ‘사법무흠결주의’ ‘사법무결점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여러 사람이 이 말을 사용하는데, 용어가 주는 강인한 어감이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이것은 물론 현실과는 괴리된 것이다. 현실에서는 수사 오류, 재판 오류가 많이 발생했다. 인간적인 한계에서 초래된 것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부패 같은 의도적인 오류도 있었다. ‘사법무결점주의’ 신화라는 나무 밑에서 독버섯이 피어난 셈이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명백한 부정을 겪고 민원을 넣거나 고소‧고발을 해도 거의 소용없었다. 징계절차도 대부분 무용했다.
많은 사람은 제도권에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거리로 내몰렸다. 전국에서 “내가 사법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요!”하고 외치며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이러한 사법피해자를 어느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국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음을 깨달으며 정신적으로도 황폐해졌다. 그들 존재로 인해서 생긴 어둠은 실로 우리 사회의 제일 큰 치부였다.
‘사법의 독립’ 만큼 중요한 ‘사법의 책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공식 출범한 1월 2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공수처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세계 법학계에서는 ‘사법의 독립’ 못잖게 ‘사법의 책임’을 중시한다. 양자가 두 개의 지주를 이뤄 ‘공정한 재판’을 실현한다고 여긴다. 맞는 말 아닌가. ‘사법의 독립’만을 강조해 검사가 제 의견대로 수사하고, 판사가 자기 원칙에만 충실해 재판한다고 어찌 항상 올바르고 공정한 결론을 낼 수 있겠는가. 독립을 지나치게 강조해 판사와 검사 재량만 내세우면 ‘사법 부패’로도 연결되지 않겠는가. 판사나 검사도 우리 같은 인간인 이상, 이것은 매우 당연한 상식이다. 견제되고 통제되지 않는 권한이 쉽게 남용된다는 것은 인류가 오랜 역사에서 터득한 불변의 진리다.
그럼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기회만 있으면 ‘재판의 독립’을 주장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의 중립’, ‘권력에서 독립된 수사’가 제일인 양 설파했다. 윤 총장은 다행히 요즘 들어서는 공정한 수사라는 개념을 입에 올리고 있다. 물론 이 두 사람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전임자들도 전부 마찬가지였다. 사법 권력의 주류는 이렇게 세계 법학의 대세에서 벗어나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가치관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마치 갈라파고스 제도에 갇힌 존재들 같았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무엇인가? 공정한 수사와 재판 실현은 외면한, 끝없는 사법 권력의 확장이었다. ‘사법 독재’가 이뤄졌다고도 할 수 있다. 걸핏하면 정치적 쟁점이 수사 또는 재판 대상이 되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도 이를 도와 ‘정치의 사법화’가 간단없이 이뤄졌다. 이렇게 해서 법원과 검찰은 우리 사회의 견제되지 않은 권력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반면 국민의 사법신뢰도는 밑바닥으로 추락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그래서 ‘사법의 책임’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법원, 검찰이 누리는 독특한 지위를 돌아볼 때 특단의 대책이 요구됐다. 그 하나가 바로 공수처 설립이다.
사법개혁 없이는 미래 없다
나는 사법개혁을 골수에서부터 외치는 자다. 사법개혁을 하지 않으면 우리 국가에 장래가 없다고 믿는다. 사법개혁은 그러나 검찰개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경찰, 검찰, 법원을 뭉뚱그려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게끔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세 기관의 내면적 관계가 밀접해, 하나만 도려내 개혁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검찰 하나만 잡아 권한을 대폭 축소시킨다고, 사법과정상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겠는가? 더욱이 지금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경찰에 거의 아무런 견제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채 검찰 권한을 빼앗아 안겨줬다. 그 결과 경찰은 걸음을 떼기도 힘들어 보이는 거대공룡이 됐다. 나아가 검찰 수사권을 아예 박탈해버리는 법률안을 2월까지 만들어 6월까지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한다.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세계에 없는 전대미문의 일이다.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과 실행에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 바로 말하면, 검찰이 정권에 대한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런 것에다 어찌 사법개혁이나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어쩌면 15년도 더 전에 초대 공수처장이 됐을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김진욱 공수처장 취임과 공수처 발족을 축하하며 아무쪼록 그가 공수처를 올바르고 공의롭게 운영해나가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을 달성하며,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선발에서 권력의 압력을 물리치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공수처의 활약으로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검은 구름인 ‘사법무결점주의’를 완화하고, ‘사법의 책임’이 실현돼, 공정한 수사와 공정한 재판이 고착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아울러 공수처는 다른 구실도 수행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권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며 사법질서를 심히 교란하고 있다. 정당한 수사와 재판에 개입해 삿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그들의 시도를 공수처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 그들의 행동이 정히 민주주의 이념과 헌법 정신을 능멸하기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면, 그들의 행동에 반드시 단호하게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국가 장래를 위해, 국민을 위해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사법의 근본을 반드시 유지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것이 김진욱 초대공수처장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다. 시대는 때때로 시대정신을 구현하려고 헌신하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덧: 국민 권리보장을 위하여 일선에서 땀 흘리며 헌신하는 대부분의 판사, 검사, 경찰관이 이 글에 마음이 상하지 않기를 바란다.
■ 허, 참
겨울의 심장을 녹이면
새 봄이 온다기에
끝으로 다가갈수록
끝이 더 무섭기만 하여
늙어 스러져가는 몸에
꼭 하나의 봄을 더 넣고 싶어
그것을 찾아 나섰다
깊은 산 속 계곡 얼음 밑 들추어보고
차갑게 식은 들판 볏짚가리를 흩뜨려보고
하이얀 호수 이 구석 저 구석을 다 들여다보았다
심장은 어디에도 없다
초조해졌다
퉁명스런 햇살에게 물어도 대답이 없고
새침한 바람은 달아나기 바쁘다
쭈그린 어깨로
투벅투벅 돌아오는데
참새가 표로롱 지나가며 한 마디 쏜다
보소, 나잇값 좀 하소
겨울은 외롭다. 서럽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코로나까지 덮친 올 겨울은 더욱 잔인하다. 전깃줄에 앉은 새들도 겨울의 날카로움을 느낀다. 풀씨도 적어지고, 마실 물은 얼어 붙어버렸다. 그래도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 겨울은 곧 지나갈 것이므로…. [신평 제공]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법학박사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등 역임
● 한국문인협회 회원
● 2018년 대한민국 법률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