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계기로 귀농‧귀촌 관심 증가
고되어도 포기할 수 없는 논농사의 매력
시골 정착 성패 가르는 키워드는 ‘이웃과의 관계’
목공일 배워 귀촌하면 마을에도 이득
인터넷 발달이 바꿔놓은 현대 시골 풍경
건강한 땀 흘린 보답으로 얻은 노년 건강
지난해 8월 4일 경기 파주시 적성면 한 농장에서 귀농 교육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체험 활동을 하고 있다. [귀농귀촌종합센터·지역아카데미 제공]
경북 경주에서 농사를 짓고 산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1993년 법관사회 정풍(整風)을 주장한 일로 현행 헌법상 처음으로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그것이 너무 지나친 처사였다는 동정론이 일며 법관으로 다시 임명한다는 말이 있어 기다렸다. 하지만 무용한 일에 매이는 것 같은 심정이 들어 1994년 1월 추운 날, 어린 자식 둘 손을 잡고 경주에 내려왔다. 변호사 일을 해 얻은 수입으로 조금씩 농토를 마련해 집을 짓고 농사일을 시작했다. 다시는 경주 바깥으로 발을 내딛지 않고, 흙 속에 바람 속에 나머지 삶을 묻어버리겠다고 모질게 마음먹었다. 사람들 짐작과 달리, 나는 밭농사는 물론 논농사도 지었다. 농협조합원이기도 하고, 법제도상 ‘농업인’으로 엄연히 등록돼 있다.
‘농촌 살이’의 빛나는 순간
예비 귀농귀촌인들이 충북 단양에서 농사 체험을 하고 있다. [단양군 제공]
그래도 논농사에는 멋이 있다. 햇볕을 받아 고르게 잘 자라는 벼 사이로 들어가 피를 뽑을 때 발밑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신기하게도 잠자리나 나비 같은 곤충이 아무 겁 없이 내 몸에 앉는다. 앞에 있는 들쥐도 나를 흘끔흘끔 쳐다볼 뿐 도망갈 생각을 않는다. 그야말로 무아일체의 빛나는 풍경 속에 박혀 그림의 일부가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부동산 문제에 파묻혀 있다. 꼭 ‘똘똘한 아파트’ 한 채를 사야겠다는 욕심이 광풍을 일으키며 아파트 가격을 상승시키고, 그런 기회를 잡지 못한 이는 수심에 쌓였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비대면 작업 증가를 도시탈출 기회로 삼아, 자연을 접하기 쉬운 교외지대로 주거를 옮기는 이가 무척 많아졌다.
우리도 오래 전부터 ‘귀농’이니 ‘귀촌’이니 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있었다. 다른 여러 이유가 작용했겠으나, 어느 정도 식견을 갖고 농사일을 하면 가족 생계가 담보되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인터넷 보편화 또한 변화를 초래한 핵심이 아닌가 한다.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는 이를 위해 선배로서 몇 가지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작업이나 살림에 필요한 도구를 잘 다루는 것이다. 농사일 하러 시골에 와놓고 그 일을 남에게 맡길 수는 없다. 생활하며 발생하는 자질구레한 일을 대부분 자신이 해야 한다. 시골에 오기 전 목공일을 얼마간이라도 배워오면 엄청난 효용을 발휘한다. 작은 기술을 발휘해 동네 어르신 불편을 조금 덜어주면 큰 인심도 얻을 수 있다. 물론 자기 생활도 훨씬 나아진다.
귀농을 꿈꾸는 이를 위한 조언
스마트팜 제품 생산기업 ‘다운’의 왕겨살포로봇이 오리 사육장 내부에 왕겨를 뿌려주는 모습.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제공]
낫, 호미 같은 것은 용법이 간단해 얼마 안 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사람 피부가 얼마나 약한가. 날카로운 것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벗겨지고 잘린다. 경운기 같이 덩치 큰 농기구는 위험성이 더 크다.
또 농사일에서 생산성을 높이려면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금 전국 농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제초제는 맹독성이다. 월남전 때 사용된 고엽제가 바로 제초제다. 월남에서 돌아온 군인 상당수가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제초제를 담았던 분무기를 씻다 손에 묻어도 몸 안을 타고 들어가 장기를 녹여버린다고 하니 무시무시한 일이다. 이처럼 농사일은 목가적인 즐거움으로만 가득 찬 게 아니다. 항상 몸을 다치게 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주의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겪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어디서 살 것인가’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너무 이상에 흐르지 말 것을 권한다. 촌일수록 텃세가 심해 까딱 잘못하면 발을 붙이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사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관계’다. 이웃과 관계를 돈독하게 할 자신이 없으면 그곳에 가서는 안 된다. 사전답사를 하면서 지역 인적 구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어떤 마을에 들어서면 왠지 마음이 푸근하고 정감가는 곳이 있다. 그런 곳은 인심이 후하기 마련이다.
요컨대 경제적인 것보다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 지금 시골에는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정착할 수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발품을 팔면 엄청나게 좋은 조건을 찾을 수 있다. 꼭 농토를 살 필요도 없다. 싸게 빌릴 수 있는 좋은 땅이 널려 있다. 다만 집은 많은 비용을 들여 고쳐야 하니 가급적 구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결국 내가 어떤 지역에서 인간적 품위를 지키며 주위와 조화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를 따져 그럴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 그곳에서 살 결정을 하는 것이다. 고향 쪽으로 가면 대체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사람들이 ‘시골 살이’를 선택하는 이유
태양광 대신 LED 조명을 이용해 채소를 키우는 스마트팜 풍경. [박해윤 기자]
농촌에 사는 것에 여러 장점이 있으나, 단점도 존재한다. 좋은 병원을 찾기 어려울 수 있고, 자녀 교육문제도 걸린다. 늙어서 살 곳을 고를 때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시장이 가까워야 하고, 병원에 쉽게 갈 수 있어야 한다. 내 경우에는 시가지가 형성된 동(洞) 지역에 살아 불편함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읍면지역으로 들어가면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다. 병원 문제는 정부에서 좀 더 신경을 쓰면 좋아질 수 있다. 시골 교육환경개선도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구절벽’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는 차원에서 국가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마땅하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나,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각 개인의 선택과 결단의 문제다. 확실한 것은, 최근 시골 살이가 점점 더 매력적인 것이 돼간다는 점이다. 땀 흘려 일하고, 노동의 결과가 쉽게 눈앞에 나타나며, 생명을 가꾸는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내가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조수 구실을 하는구나 하는 벅찬 감정에 젖을 때가 많다.
끝으로 내 이야기를 해보자. 시골에서 살며 나는 별로 불편한 게 없다. ‘인터넷 세상’ 덕을 톡톡히 본다. 집필활동을 하는데 시골이나 서울이나 다른 게 별로 없다. 읽고 싶은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착착 바로 온다. 인터넷을 통해 매일 외신을 접하니, 웬만한 언론인 못지않게 세계 최신 정보가 머리에 들어온다. 덩달아 영어 실력도 향상된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말이다. 영어는 왕조시대에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수단이던 한문 같은 구실을 한다. 이 외국어 구사능력 덕분에 나는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 상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고, 2008년 아시아 각국 헌법학자를 규합해 ‘아시아헌법포럼’을 창설할 수도 있었다. 너무 자기자랑이 심한 것 같아 미안하다.
자연의 넉넉한 품안에서
농사와 건강에 관해 조금 말해보자. 농사일을 시작해 30분 정도 지나면 몸에 열기가 찬다. 1시간 정도 지나면 한 번씩 숨이 가빠온다. 헉헉거리며 더 일을 하다 보면 몸이 땀에 흥건하게 젖는다. 이것을 매일 한다고 생각해보라. 몸에 좋지 않겠는가. 더욱이 일 자체가 분명한 결과로 연결되니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된다.얼마 전 대학 동기들과 북한산 등반을 간 적이 있다. 나는 그냥 사부작사부작 걸어갔다. 어느 동기가 내 옆에 와서 숨소리를 듣더니 “야, 신 교수 너는 어떻게 숨찬 기색 한 번 내지 않고 쉽게 올라오니!”하고 감탄했다. 농사일로 건강이 좋아진 증거가 틀림없다. 몸에 걱정을 안은 이들은 농촌에 와서 매일 일을 하면 건강회복에 아주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 자랑했는가? 거듭 미안한 일이다.
이렇게 수십 년을 시골에서 살았다. 이제 삶의 종착역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까마득하다. 일찍이 판사로 있으며 엄혹한 체제하에서 민주화 인사, 노동운동 인사에게 가급적 관용을 베풀어 석방시켰다. 그 여파로 적지 않은 검사가 사적인 원한을 갖고 내게 온갖 인신비방을 했다.
사법부 정풍을 주장한 일로 대법원이 나를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았다. 내 사생활에 관한 허위사실을 조작해 법조출입기자 등에게 광범위하게 유포한 일도 있다. 그 일을 선두에 서서 한 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판사였다.
내가 로스쿨 교수로 있으며 로스쿨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을 출판하면서 다른 교수들과 긴장의 칼끝에 서기도 했다. 새삼 내 모든 인격이 난도질당했다. 얼마 전 면식이 없는 어느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뒤늦게 그 책을 읽고, 내 진정을 알고는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리고 이 정부 성립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진보귀족의 이기적, 위선적인 행태를 비판하자 그나마 나를 이해해주던 이들마저 매몰차게 나를 떠나버렸다.
이렇게 나는 삶에서 번번이 가다가 넘어지곤 했다. 비통한 심정으로 일어나 다시 걸었다. 흉중에 품은 뜻을 실현할 기회가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음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골살이는 이 모든 감정의 굴곡을 펴게 했다. 나는 자연의 품 안에 조용히 안기며 내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살아오며 고통과 행복의 순간이 있었다. 그런 자잘한 일들이 뭉쳐져 내 삶을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나서서 무슨 일을 하려는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고요하다. 거친 풍파가 찢어놓은 겉모습과 다르게, 실은 내 삶 길목 곳곳에 축복의 손길이 미쳤음을 요즘 부쩍 많이 느낀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게 과분한 대우였음을 깨닫는다. 미안하면서도 오직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 작은 길
산 속으로 난 작은 길
맨발로 걸어갔지요
고운 마사토 사뿐히 밟으며
한 없이 이어진 길
길가 풀꽃이
살랑살랑 웃어주면
발에 난 생채기가 금방 아물었지요
한 번씩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곤 했어도
밝음과 어둠은 내내
오락가락했어도
그 길 구석구석 숨겨진
축복의 물 마실 수 있었어요
어느 날 바람 불어
떨어진 이파리들 길 위에 흩뜨려놓고
풀씨들 뿌리내리면
길은 없어지고
나도 사라지겠지요
경주 고분들이 겨울 황혼에 넋이 빠져 있다. 자주 고분 사이로 저녁 산책을 잡는다. 집에서 나서면 10분이 채 안 돼 갈 수 있다. 인적이 드물다. 가끔 망자와 생자의 구분이 흐릿해지는 느낌이 온다. [신평 제공]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법학박사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등 역임
● 한국문인협회 회원
● 2018년 대한민국 법률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