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국책사업 부산신항 건설 현장에서 하청업체 비리 적발
연약지반 다지기 부실 공사 의심…안전사고 발생 우려
공익제보자, 자재 빼돌리기 포착하고 영상 촬영 후 신고
피해자인 시공사, “피해사실 몰랐다”며 수사기관에 합의서 제출
검찰 “수사에 한계가 있었다” 약식기소로 마무리
부산신항 건설현장에서 빼돌린 PVD 자재를 가득 실은 트럭. [제보자 제공]
부산신항에서 포착한 비리
부산신항 지반 다지기 공사 현장 작업자들이 빼돌린 자재를 경남 창원시 한 모텔 주차장에 내려놓는 모습. [제보자 제공]
바닷가에서 항만 건설 등 대규모 공사를 할 때는 연약지반을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부터 한다. 지반을 단단하게 조성하지 않으면 각종 시설물이 올라선 뒤 돌발 침하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연약지반을 다질 때는 PVD(Prefabricated Vertical Drain‧조립식 수직 배수재)를 땅에 심어 물을 빼내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부산신항 서(西)컨테이너 부두 2-6단계 구간 PVD 시공은 전남 M사가 맡았다.
PVD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A씨는 지난해 8월 M사 현장 작업자들이 자재를 빼돌리는 현장을 목격했다. 이들은 트럭에 PVD 자재 5개 롤(1개 롤은 250m)을 싣고는 자신들이 묵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한 모텔에 옮겨놓았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모텔과 공사장을 오가며 자재를 빼돌리는 현장을 A씨가 추적, 촬영했다. 며칠 뒤 자재가 모이자 이들은 트럭 가득 자재를 싣고 전남 M사로 가져갔다.
이처럼 자재를 빼돌리면 연약지반 배수 공사가 제대로 이뤄질리 없다. A씨는 현장에서 PVD 시공 실제 기록도 확보했다. 이곳은 PVD를 14m~30m 깊이로 심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2020년 6월 10일부터 8월 23일까지 자료를 보면 PVD를 불과 2m 미만으로 얕게 심은 기록이 수두룩하다. 가장 낮은 심도는 8월 19일 오후 2시 28분의 1.02m. 이날 기록지만 봐도 시공을 시작한 오전 7시 41분부터 오후 2시 28분까지 모두 깊이가 한 자릿수다. 8월 21일 기록지에도 1.09m, 1.53m, 1.94m, 1.95m 등 1m대 기록이 다수 있다. 부실시공으로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부산항만공사와 ㈜한라 측에 A씨 제보 내용을 알려주고 현장의 PVD 설계 내용과 실제 시공 기록지 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양사 모두 시공 기록지 공개를 거부했다. A씨 제보 가운데 자재 빼돌리기에 대해서도 부산항만공사와 ㈜한라는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공사 현장엔 CCTV가 다수 배치돼 있고, 관리인도 상주한다.
검찰, 약식기소…“공익신고 후회”
제보자가 입수한 부산신항 서컨테이너 터미널 연약지반 시공 실측 기록지. 지난해 8월 19일 오후 2시 28분 심도가 1.02m로 기록돼 있다. [제보자 제공]
약식기소는 검사가 피의자에게 벌금형이 적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기소와 동시에 일정액의 벌금형에 처해 달라는 뜻의 약식명령을 함께 청구하는 것을 뜻한다. 피의자가 징역형이나 금고형까지 처해질 수 있는 일반 기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안에서 약식기소가 이뤄진다. 향후 부산신항 부두의 지반침하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 사안인데 피의자를 약식기소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에 순천지청 관계자는 “피해자((주) 한라 등) 측이 합의서를 제출해 수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산신항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피해자는 시공사가 아니라 일반 국민과 국가다. 부실시공은 지반침하로 이어져 시설을 이용하는 노동자 등 국민 안전을 위협한다. 추후 시설 보수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재 빼돌리기는 물론이고 설계를 무시한 시공이 이뤄졌는데도 약식기소에 그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A씨 역시 자신이 왜 힘들게 공익신고를 했는지 후회하고 있다.
2019년에도 부산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엔 PVD 기사 강석원 씨가 에코델타시티 현장의 연약지반 부실시공 증거가 담긴 영상과 파일을 권익위에 제출했다. 전남지방경찰청이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무혐의 처리됐고, 신원이 노출된 강 씨는 현재 직장을 잃고 생계 위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