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2088년에는 1경7780조 적자
한국 연금보험료 세계 최저 수준
文 정부 개혁안 실현 가능성 제로
공적연금 전체적으로 부실 심각
4대 공적연금 통합 않으면 국민 부담 더 커져
보험료율 20%까지 올려야 소득대체율 40% 가능
기초연금도 장기적으로는 폐지해야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연금 관련 연구를 주로 해왔다. [동아DB]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의 어조는 차분했다. 윤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연금 전문가다. 그는 2002~2018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국민연금재정추계는 5년에 한 번씩 시행된다. 2002년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국민연금재정추계에 참여한 셈이다. 이외에도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재정추계에도 힘을 보탰다.
그는 2018년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이하 4차 재정추계)에 참여했을 때부터 줄곧 국민연금을 “지금보다 덜 받고 더 내는 구조”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저출산·고령화로 연금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줄어들고 연금 수급자는 늘어나고 있어서다.
현행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은 9%, 소득대체율은 44%(2028년 가입자부터는 40%)다. 매달 소득의 9%를 40년간 납부하면 65세부터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44%를 돌려받을 수 있다. 2018년 그는 “국민연금제도 보험료율을 차츰 올리며 소득대체율은 4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4차 재정추계 내용을 바탕으로 4가지 연금 개혁안을 내놨다. 1안은 현행 유지, 2안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기초연금 2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안이다.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 인구 중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되는 일종의 사회보장 연금이다. 3안과 4안은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동시에 올리는 방안이다. 3안은 소득대체율 45%에 보험료율은 12%로 인상, 4안은 소득대체율 50%에 보험료율을 13%로 올린다.
믿을 수 없는 정부 공표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 [동아DB]
“없다. 1, 2안은 사실상 현상 유지라 개혁안이라 볼 수 없다. 3안과 4안은 당초 계획보다 보험료를 훨씬 많이 올려야 한다.”
-정부는 보험료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 설명했다.
“기금이 고갈되고 난 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43년부터 적자 전환된다. 2057년에는 적립금이 전부 소진된다. 소진 이후에 보험료율이 크게 오르게 된다. 정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4차 재정추계 공표 결과에 넣지는 않았다.
-정확히 얼마나 오르게 되나?
“3안의 경우 적립금 소진 이후에는 보험료율을 36.6%로 올려야 소득대체율 45%를 지킬 수 있다. 4안은 보험료율을 40.7%까지 올려야 한다.”
-연금을 빨리 손보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적자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구조다. 이는 4차 재정추계에서 적립금이 얼마나 빨리 소모되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재정추계에 따르면 2042년에 국민연금 적립금이 1774조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하고 2043년부터 적자가 시작된다. 이후 적립금을 소모해 가며 연금을 지급하게 된다. 연금 고갈 시점인 2057년에는 적립금을 전부 소모한 상태다.”
적립금 고갈되면 악몽 시작된다
-15년간 1774조 원이면 연금 유지에만 1년에 100조 원 넘게 돈이 들어간단 말인가?“1774조는 적립금이다. 국민연금에는 보험료와 연금운용 수익이 있다. 매해 30조 원가량의 보험료에 연금 운용수익까지 합해야 연금 유지에 쓴 돈이 나온다. 15년간(2043~2057) 국민연금 운영에만 3000조 원가량이 들 것으로 보인다.”
-적립금 고갈 이후 시점부터는 미지의 세계다. 고령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적자 폭은 점차 더 커질 것 같은데.
“그렇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2088년에는 누적적자가 1경7000조 원이 넘는다. 재정추계에서는 이렇게까지 먼 미래를 다루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연금제도를 지금 고치지 않는다면 국가재정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왜 재정추계에서는 먼 미래를 다루지 않나?
“명목상으로는 추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연구자의 시선으로 보면 연금제도의 실상이 드러나지 않게 가려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은 연금 재정추계를 할 때 100년, 캐나다는 150년 뒤의 미래까지 상정한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인구구조의 변화를 보려면 이처럼 먼 미래까지 추계에 넣는 편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고집 센 한국 연금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사실상 포기 의사를 밝힌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 [뉴스1]
“정책을 입안하는 집권 세대가 무책임했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보험료율 인상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했다.”
정부는 현재 국민연금 개혁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2020년 6월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개혁에 관해) 정부가 추가로 내놓을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도 이렇게 보험료율이 낮나?
“아니다.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국가 대부분이 한국의 국민연금보다 보험료율이 높다. 핀란드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24.4%, 일본은 18.3%다. 중국은 16%다.”
-소득대체율은?
“대체로 한국과 비슷한 40%대다. 이처럼 안정적으로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연금제도의 보험료율을 고쳐야 한다. 독일은 △출산율 △평균수명 △경제성장률의 변동에 따라 매해 보험료율을 정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핀란드도 비슷한 방식으로 보험료율을 조정한다. 일본은 5년에 한 번씩 연금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고친다.”
윤 회장은 “2020년 12월 중순 일본 측 연금 전문가와 화상통화를 했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한국의 연금은 적은 비용을 받고 많은 돈을 지급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물었는지도 모르지만 마치 한국의 비상식적인 연금제도를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며 웃었다.
-한국도 지금부터 정기적으로 보험료율을 높이면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한 제도가 될까?
“아쉽게도 국민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은 지났다. 7~8년 전만 해도 지속적으로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연금의 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지금의 한국은 고령화가 더 진행돼 단 번에 보험료율을 크게 올리는 동시에 소득대체율도 줄여야 한다”
국민연금 외에 공적연금도 부실
-고령화가 세계적 현상인 만큼 다른 나라도 소득대체율을 줄이고 있나?“세계적인 추세는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함께 올리는 방식이다. 이들은 충분히 보험료를 높여놓았으니 소득대체율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일단 보험료율이 너무 낮다. 기금 고갈 이후의 연금 운영 방안에 대해서도 정해진 것이 없다. 섣불리 소득대체율을 올렸다가는 국민연금의 적립금 고갈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매달 걷어가는 연금을 세금처럼 보는 사람이 많아 반발이 클 것 같다.
“내는 돈은 늘고 받는 돈은 줄어드니 좋아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반발을 줄이려면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과 통합하며 보험료만 먼저 올리는 방법이 있다.”
-공무원 · 군인 · 사학연금 같은 다른 공적연금은 국민연금에 비해 상황이 낫나?
“그렇지 않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이미 적자다. 이 둘은 국민연금과 달리 소득대체율을 법으로 보장받는다. 적자가 나면 국고를 열어 메워준다는 의미다. 국가가 갚아야 할 돈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연금충당부채’라고 한다. 2019년에만 두 연금의 충당부채가 944조2000억 원이었다. 사학연금은 아직 기금 고갈 상태는 아니지만 국민연금보다 일찍 기금이 고갈될 가능성이 높다.”
기획재정부가 2020년 9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사학연금은 2029년에 적자로 전환된다. 2049년에는 기금이 고갈된다. 기획재정부는 보고서를 통해 ‘사회연금 및 보험 부분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적연금도 고쳐야 할 이유가 있나?
“공적연금의 부실은 장기적으로 국가재정에 부담을 끼친다. 국민연금 개편과 함께 고치는 편이 좋다.”
연금보험료 20%까지 올려야
-적자인 공적연금과 굳이 통합 해야 하나?“4개 연금의 기금을 섞어 통합 관리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각 연금이 기금은 따로 관리하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통일하자는 이야기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나머지 공적연금은 소득대체율이 50% 이상이다. 대신 보험료율도 18~15% 정도로 국민연금에 비해 높다. 이를 기준으로 각 연금의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조정한다. 국민연금의 보험료는 공적연금 수준으로 높이고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과 동일하게 낮추는 방식이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65세가 넘으면 낸 돈을 돌려받지만 공적연금 가입자들은 수급 금액이 대폭 줄어드니 좋아할 것 같지 않다.
“연금 개편 이전부터 보험료를 내고 있었던 공무원, 군인, 사립학교 교직원에 한해 소득대체율 손해분을 일부 보상해 줄 수 있다. 공무원연금의 소득대체율이 50%라고 가정하면 44%는 국민연금과 똑같이 지급하고 남은 6%는 확정기여 방식으로 돌려주면 된다. 확정기여 방식도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이 반영되므로 금융회사 연금 상품보다는 수익률이 높을 것이다.”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15%까지 올리면 충분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연금제도가 있는 국가의 평균 보험료율이 소득의 20% 정도다. 대다수의 국가가 소득대체율 40%대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도 보험료율을 20%까지는 올려야 한다. 동시에 소득대체율도 40%로 낮추는 편이 좋다고 본다. 추후 인구구조의 변화와 경제성장률 등의 변수를 확인하며 보험료율을 조정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돈을 내고 돌려받는 일종의 보험 형태다. 한편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연금도 있다. 2014년 탄생한 기초연금이 주인공. 만 65세 이상이며 소득 하위 70% 이하라면 누구나 기초연금 혜택을 받는다. 최대 지급액은 월 20만 원이다.
-저출산·고령화 때문에 기초연금도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기초연금이 필요 없는 국가다. 연금과 기초생활수급자 제도만으로도 저소득층 노인을 도울 수 있다. 외려 기초연금 때문에 받아야 할 복지 급여를 못 받는 사례도 있다. 차라리 저소득층 노인을 국민연금에 가입시키고 일자리를 주는 편이 낫다.”
-2017년 ‘OECD 주요국가 노인 빈곤율’ 통계에서 전체 노인 중 44%가 빈곤층(중위소득 50% 미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주요 국가 중 한국이 1위를 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령층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 아닌가?
“통계에 맹점이 있다. OECD의 노인 빈곤율은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다. 즉 현금성 자산만 재산으로 취급한다. 부동산 등 즉시 현금화하기 어려운 재산은 통계에서 빠졌다. 이 기준이라면 서울시 강남 인근 20억 원대 아파트에 살며,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받는 노인도 빈곤층이 될 수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18년 3월 발표한 ‘다양한 노인빈곤지표 산정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등 종합 자산을 고려하면 빈곤층은 100명 중 21명에 불과하다. 노인인구 중 66.3%는 가구당 평균 자산(4억4543만 원)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기초연금은 불필요한 제도
-북유럽 복지국가에는 기초연금제도가 있다. 한국에도 필요한 것 아닌가?“기초연금 제도로 유명한 국가가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다. 이 중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기초연금을 폐지했다. 핀란드는 1990년대까지 노년층의 94%에 기초연금을 지급했으나 2005년 이후 대상자를 노년층의 45%로 줄였다. 사실상 복지국가에서도 기초연금을 폐지하는 상황이다.”
-기초연금 제도를 고쳐서 쓸 방법은 없나?
“지금의 기초연금은 미래세대에 부담만 되는 짐이다. 노년층 70%를 지원하는 것이므로 소득재분배 효과도 크지 않다. 기초연금의 궁극적 목적이 노년 빈곤층을 돕는 것이라면 빈곤층인 노인에게만 생계형 급여를 지급하는 편이 낫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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