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수비대, 이란 경제난…핵심 키워드
“한국의 은행들이 뉴욕(미국)을 겁낸다”
최종건 차관이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
이란혁명수비대에 나포된 한국케미호 [뉴시스]
마무드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이 1월 13일 이란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말이다. 바에지 실장은 “한국 대표단이 이란 중앙은행의 동결된 자금으로 구급차를 구매해 제공하겠다고 해서 이를 거절했다”며 “우리는 한국에 묶여있고 반드시 돌려받아야 하는 돈을 요구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등 한국 대표단이 ‘한국 케미(HANKUK CHEMI)’’호 억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귀국한 가운데, 이란 정부가 협상 내용을 일방적으로 밝힌 것이다. 외교부는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된 한·이란 인도적 지원 워킹그룹 회의에서 이란 측이 먼저 구급차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란이 사실과 다른 일부 내용만 부각해 공개했다면 외교적 무례다. 그러나 외교부도 이란 측을 설득하거나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압박할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우선 이란이 왜 한국 선박을 나포했고 ‘70억 달러’를 고수하는 이유부터 파악해야 한다. 핵심 키워드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이다.
지난 1월 4일 오후 ‘한국 케미’호가 페르시아만에서 이란의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됐다는 소식과 함께 이란이 한국의 은행에 묶인 자국산 석유 수출대금 70억 달러(약 7조5600억 원)를 돌려달라는 보도가 나왔다.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이 말한 그 돈이다.
이란 정부는 우리 선박을 나포하면서 “‘한국 케미’호가 반복적으로 해양 환경규제를 위반했”고 주장했지만 어떠한 증거물도 제시하지 못했다. 미리 선박을 나포할 ‘근거’를 확보하고 혁명수비대가 ‘기획 나포’에 나섰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대목.
혁명수비대(병력 19만 명 추정)는 이란의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는 게 존립 목적이지만 다양한 경제정책에도 관여한다. 소비재부터 사치품인 스포츠카 수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정규군이 아닌 혁명수비대가 나포한 것 자체가 이란의 ‘종합 국익’을 고려한 활동임을 말해준다.
이란의 ‘종합적 국익’을 고려한 조치
또 하나는 이란의 경제난이다. 이란은 2018년 초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 이란 제재 강화 이후 경제사정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2년 사이 6배나 오른 환율을 고려하면 미국의 제재와 한국 정부의 조치로 동결된 70억 달러에 대한 이란의 ‘갈증’을 짐작해 볼 수 있다.1월 12일 필자가 만난 이란 정부 관계자 A씨와의 대화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한국이 동참한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동결 자금 70억 달러는 IBK 기업은행, 우리은행 등 한국의 은행에 분산 예치돼 있다”고 했다. 그는 자국산 석유수출대금이 묶인데 대해 “한국 은행들이 뉴욕(미국의 제재)을 겁내기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또 “돈을 찾기 위해 한국의 가장 유명한 로펌 두 곳과 의논했는데, 미국 눈치 때문인지 송사(訟事)를 맡으려고 하지 않더라”고 했다. 이란이 동결자금을 활용해 코로나19 예방 백신 구입과 의료 물자 구입에 사용하느냐는 물음에는 “그런 노력이 진행 중이다”고 했다. 대화 말미에 A씨는 “한국 선박 나포는 페르시아 바다, 이란 영해에서 (‘한국 케미’호가) 쓰레기를 투척한 문제 때문에 나포된 것으로 안다. 70억 달러 사용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A씨는 지속적으로 70억 달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헛수고만하다가 ‘한국 케미’호 나포 이후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 관심을 ‘70억 달러’로 옮겨 놓은 데는 성공했다는 표정이었다. 이란은 해양 오염 문제로 한국의 선박을 나포했다는 ‘명분’을 댔지만, 결국 이란의 ‘종합적 국익’을 고려한 조치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다.
이란으로서는 서방세계의 제재 속에 코로나19 백신을 구입할 돈을 마련하고, 경제난 타개책을 위해 70억 달러는 ‘생명줄’이다. 이러한 상황 인식 속에 정부는 상대에 효과적인 협상 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구급차를 구매해 주겠다는 말이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기사 전문은 신동아 2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