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항체치료제가 ‘게임체인저’ 되기 어려운 까닭

[코로나19 팩트체크]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1-01-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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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벼운 코로나19, 중증으로 진행 안 되게 막는 약

    • 감염 후 일주일 이내 투약해야 제 효과 발휘

    • 해외 언론 “무증상자는 안 쓰고, 중환자한테는 못 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0월 18일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2공장을 방문해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왼쪽)으로부터 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0월 18일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2공장을 방문해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왼쪽)으로부터 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우리 기업이 개발한 코로나19 치료제가 며칠 전 허가 심사에 들어갔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 31일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한 말이다. 정 총리는 이어 “탄탄한 K-방역에 치료제, 백신이 차례로 가세하면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해 12월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슷한 발언을 했다. “국산 코로나19 치료제의 조건부 사용 승인 신청이 내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접수된다. 우리가 코로나19 조기 진단에 성공한 데 이어 조기 치료에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K방역의 또 하나의 쾌거”라는 내용이다.


    셀트리온, 세계 세 번째로 항체치료제 허가 신청

     정세균 국무총리(왼쪽)가 지난해 12월 22일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2공장을 방문해 코로나19 항체치료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왼쪽)가 지난해 12월 22일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2공장을 방문해 코로나19 항체치료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 발언에는 ‘팩트’와 ‘기대’가 섞여 있다. 최근 식약처에 국산 코로나19 치료제 허가 신청이 접수된 건 맞다. 식약처는 지난해 12월 29일 셀트리온이 개발 중인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에 대한 심사를 시작했다고 공표했다. 의약품 사용 허가에 걸리는 시간은 통상 접수일로부터 180일 이상이다. 식약처가 이번엔 코로나19 상황의 긴급성 등을 감안해 40일 내에 결론을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르면 1월 중 렉키로나주 출시 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여기까지가 팩트다. 

    그렇다면 기대 부분은 어떤가. 코로나19 국산 치료제가 시중에 나오면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코로나19 조기치료에도 성공’해 ‘K방역의 또 하나의 쾌거’를 이루게 될까. 현재 식약처가 심사 중인 렉키로나주가 이처럼 코로나19 유행 판도를 단번에 바꾸는 ‘게임체인저’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전문가가 적잖다. 



    이재갑 한림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빠른 속도로 항체치료제를 개발한 데 대해 자부심을 갖는 건 좋다. 하지만 이 약이 현재의 국내외 코로나19 유행 패턴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미국은 우리보다 먼저 코로나19 항체치료제를 허가했지만, 정작 의료 현장에서 이 약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항체치료제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항체치료제는 코로나19 완치자 혈장에서 항체를 분리한 뒤 유전자재조합 등의 방식으로 대량 생산해 만든 약이다. 글로벌제약사 일라이릴리와 미국에 기반을 둔 생명공학회사 리제네론이 각각 코로나19 환자 대상 항체치료제를 개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현재 세계적으로 셀트리온에 앞서 코로나19 항체치료제를 시판한 회사는 이 두 곳뿐이다. 문제는 이들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 병원 공급량의 80%가 냉장고 속에”

    다국적제약사 일라이릴리 연구진이 코로나19 항체치료제 후보물질의 안정성을 시험하고 있다. [일라이릴리 제공]

    다국적제약사 일라이릴리 연구진이 코로나19 항체치료제 후보물질의 안정성을 시험하고 있다. [일라이릴리 제공]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2월 23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통계를 인용해 “정부가 일라이릴리와 리제네론으로부터 53만2000회 분량의 항체치료제를 확보해 이 중 55%를 일선 의료기관에 배포했으나 지금까지 환자에게 투여한 건 공급량의 약 20%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는 “그 약들(항체치료제)이 사용되지 않은 채 전국 각지 병원 냉장고에 들어 있다”는 대목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지난해 12월 27일(현지시간) 사실상 같은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보스턴 매사추세츠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에밀리 루빈은 이 기사에서 “우리 병원이 받은 일라이릴리 항체치료제 275회분 가운데 지금까지 환자에게 쓰인 건 10%에 불과하다. 그보다 적은 양을 받은 리제네론 제품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정은경 질병청장이 지난해 12월 14일 언론 브리핑에서 국산 항체치료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한 내용을 보자. 

    “(이 약을) 경증 단계, 즉 코로나19 발병 초기 환자에 투여할 경우 (병세가) 중증으로 진행해 사망에 이르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증화 우려가 큰 고위험군에게 조기 투여 시 중증화와 사망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핵심 단어를 꼽으면 ‘경증’과 ‘초기’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지 얼마 안 됐고 증상도 가벼운 환자에게 투여해야 항체치료제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우주 교수는 “코로나19 환자 체내에서 바이러스가 활발하게 증식하는 기간은 감염 후 일주일 정도까지이기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체내에서 바이러스가 사라진다. 코로나19 감염 후 나타나는 중증 폐렴 등 각종 장기 손상은 사이토카인 폭풍의 결과이므로, 항체치료제를 써도 치료되지 않는다. 각종 논문을 보면 항체치료제가 코로나19 중환자의 사망률을 낮추는 데는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지난해 12월 22일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2공장에서 한 연구원이 코로나19 항체치료제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2일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2공장에서 한 연구원이 코로나19 항체치료제를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그렇다면 경증 초기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항체치료제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현재 개발된 항체치료제가 모두 정맥 주사제로, 전문 의료진의 도움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데다 가격이 비싼 점이 문제라고 말한다. 미국 정부는 10월 일라이릴리의 항체치료제 30만 회분을 3억7500만 달러에 구매했다고 발표했다. 1회 접종 가격이 1250달러(136만 원)에 달한다. 코로나19 경증 환자 가운데 80% 이상이 별다른 치료 없이 완치되는 상황에서 감염 초기 코로나19 환자 다수에게 이 약을 사용하기엔 부담이 크다. 

    셀트리온은 자사 항체치료제가 식약처 허가를 받을 경우 국내에는 원가로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바이오약품의 특성상 가격이 크게 낮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11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원가라고 하면 한 40만 원 정도 되는 건가”라는 진행자 질문을 받고 “그 근방쯤 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게임체인저’ 구실을 했고 지금도 널리 쓰이는 독감치료제 타미플루의 경우 환자가 직접 구매해 복용할 수 있는 경구용 제제다. 또 5일치 약가가 약 1만7000원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경우 환자 부담액은 5000원 수준이다.

    “식약처의 과학적 판단 기다려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입원 치료를 끝내고 백악관으로 돌아와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투약한 항체치료제를 ‘기적의 치료제’라고 극찬했다.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입원 치료를 끝내고 백악관으로 돌아와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투약한 항체치료제를 ‘기적의 치료제’라고 극찬했다. [워싱턴=AP/뉴시스]

    다시 한 번 항체치료제에 대한 정은경 청장 설명을 떠올려보자. “중증화 우려가 큰 고위험군에게 조기 투여할 경우 중증화와 사망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전문가들은 국산 항체치료제가 개발된다 해도 바로 이런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코로나19 항체치료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건 10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이후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군 병원에 입원해 리제네론이 개발하고 있던 항체치료제를 투여받았고, 회복한 뒤 이 약을 “기적의 치료제”라고 극찬했다. 따지고 보면 70세 이상의 고령자로 비만 체형인데다 기저질환도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증화 우려가 큰 고위험군’에 속한다. 또 ‘열이 오르고 코가 막히고 기침이 좀 나는’ 정도의 경증 상태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조기에 항체치료제 투여를 결정할 수 있었다. 

    이제 관건은 셀트리온 항체치료제가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한 약과 같은 수준의 치료 효과를 낼 것인지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11월 5일 대한감염학회와 대한항균요법학회가 공동주최한 추계학술대회에서 경증 코로나19 환자 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차 임상시험 결과를 구두 발표했다. 이 임상시험에서 안전상 문제가 보고되지 않았고, 약물 투여군의 증상 회복 평균 시간은 위약군 대비 44% 짧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당시 셀트리온은 “1상 환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결과를 확정적으로 받아들이기엔 한계가 있다”며 “2상 시험에서 기준을 충족하는 결과를 도출해내겠다”고 밝혔다. 

    아직 셀트리온의 추가 임상시험 결과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12월 29일 식약처에 항체치료제 품목 허가를 신청하며 코로나19 경증 또는 중등증 환자 327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2상 결과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세부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셀트리온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치료제에 국민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 식약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허가 심사 과정에서) 국가기관의 객관적이고 엄정한 검증 및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이 부분을 강조한다. 김우주 교수는 “현재까지 셀트리온은 코로나19 항체치료제와 관련해 세부 데이터를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임상시험 대상자 수도 일반적인 신약 개발 과정과 비교하면 매우 적다. 이런 상황에서 장밋빛 전망만 쏟아지는 게 걱정스럽다”며 “식약처가 과학적 관점에서 내용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향후 백신 허가 등의 과정에서도 식약처 결과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갑 교수는 “국산 항체치료제의 안전성 및 효능이 확인돼 의료 현장에서 고위험군 초기 코로나19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게 되면 중환자 치료병상 부족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금은 이렇게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려는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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