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스타필드·롯데몰 月 2회 쉬어라? ‘농촌형 운동권’의 헛발질

[민경우 586칼럼⑪] ‘적(敵) vs 아(我)’ 세계관의 유산

  •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 소장 mkw1972@hanmail.net

    입력2021-01-2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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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통법 심연에 있는 文정권의 인간관

    • 절대적 신념으로 정당화되는 규제

    • 운동권 스며든 마오이즘의 흔적

    • 농업사회 진지 구축, 상업 활동 천시

    • 경쟁력 미비해도 정겨운 추억으로 미화

    *586세대 NL(민족해방 계열) 이론가이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무처장 출신인 필자가 문재인 시대에 표하는 유감.

    2018년 12월 18일 문을 연 ‘스타필드 시티위례’의 모습. [신세계 제공]

    2018년 12월 18일 문을 연 ‘스타필드 시티위례’의 모습. [신세계 제공]

    더불어민주당이 스타필드·롯데몰과 같은 복합쇼핑몰도 대형마트처럼 월 2회 문을 닫는 내용이 골자인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전망이다. 또 쿠팡, 마켓컬리, SSG닷컴, B마트 등 온라인 유통 플랫폼의 배송시간과 판매 품목을 규제 대상에 추가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일부 개정안도 발의될 것으로 보인다. 재래상권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쇼핑몰 영업에 제한을 두겠다는 취지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단행된 다양한 법적, 제도적 개혁과 맥을 같이 한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최저임금 인상, (승차 공유 플랫폼) ‘타다’ 규제,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임대차 3법,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등이 모두 같은 선상에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을 두고 수치를 들먹이며 정책의 정합성을 따지는 것은 핵심을 벗어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를 구성하는 어떤 집단은 애초부터 그런 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에서 목표가 1만 원인 이유는 그것이 대외적인 구호로 유용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1만 원이어야 하는 세밀한 이유는 없다. 

    따라서 유통법 개정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권 핵심부가 갖고 있는 사고구조의 심연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인간관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규제의 미궁

    1980~90년대 운동권의 사상 및 정치관은 마르크스주의 혹은 주체사상이었다. 이들 사상은 이념적 순도가 높은 인간관을 갖고 있었다. 1990년대가 되면 더 이상 대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라거나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운동권 대다수는 마르크스주의나 주체사상의 정치적 주장은 누락한 채 그것이 배태한 인간관은 그대로 유지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故)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다.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가 1988년 가석방돼 출소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다양한 글을 남겼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더불어 숲’이 대표작이다. 그의 책에는 품위 있고 유장한 인간관이 담겨 있다. 

    1990년대 운동권은 ‘통혁당의 전사 신영복’이 고뇌한 시대 인식은 무시하고 동화와 같은 그의 인간관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그의 글씨는 소주 ‘처음처럼’에 담기고 인간 신영복은 문재인 대통령과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고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하며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먼저다.’ 이런 생각이 극적으로 부상하게 된 사건이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던 2014년 4월.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이었다. 이상하게 청소년과 관련한 비극적인 사태가 터지면 눈물부터 난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가 무너질 때도 그랬다. 자식 가진 어머니들은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담론은 왜곡되기 시작했다. 그 중 극단적인 주장이 ‘단 한명이라도 살려야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참사 당시 집권하던 대통령을 구속까지 한 상황에서 규명해야할 진실이 더 남아 있다는 주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1월 19일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그간 제기된 17건의 의혹 중 13건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리면서 1년 2개월간의 수사 활동을 끝냈다). 

    나는 30년간 사회운동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열사가 있었고, 이들과 관련해 미심쩍은 의문사가 여럿 있었다. 진실을 규명하다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일단 정리하고 역사의 과제로 남겨뒀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김세진·이재호 분신사건도 그랬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면서도 미래를 위해 과거는 묻어뒀다.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근본적인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존재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어떤가. 노동자 안전 보호는 합리적 수준에서 지향해야 할 가치이지, 절대적 신념에 의해 정당화되는 게 아니다. 유통법 개정안 문제에도 동일하게 접근할 수 있다. 수년 간 대형마트 휴일 영업을 규제하면서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 경험적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적당한 타협과 절충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출발 대신 끝을 알 수 없는 규제의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운동권식 인간·사회관의 맹점

    1980~90년대 운동권식 인간·사회관의 결정적인 맹점은 사회를 ‘적(敵)과 아(我)’ 또는 ‘기득권층과 민중’의 대립으로 본다는 데 있다. 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간호사들을 향해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시겠느냐”면서 보건의료계 편 가르기에 나선 게 대표적 사례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이후 권력 요직을 재편성하면서 법조계에서는 검찰, 군대에서는 육군사관학교, 외교안보 라인에서는 서울대 출신을 의도적으로 분리·배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운동권들이 보기에 기득권의 대척점에는 민중이 있다.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선한 존재로 묘사된다. 운동권들의 정서를 잘 보여줬던 공간이 감옥이다. 필자는 1987년, 1997년, 2003년 등 세 차례 구속돼 총 4년의 징역을 살았다. 교도관들과 많이 싸웠지만 대부분의 경우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선에서 타협하고 화해했다. 그럼에도 교도관들과 끝끝내 정서적으로 충돌했던 지점이 있다. 수형자들에 대한 태도였다. 

    교도관들이 볼 때 수형자들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인권과 보금자리를 보장하면서도 그들을 대하는 태도의 바탕에는 ‘죗값을 치르게 하고 잘못된 행위를 교정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상식적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수형자 대부분도 이에 동의했다. 반면 운동권 학생들은 수형자들을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로 봤다. 이와 같은 시각에 따르면 수형자는 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닌 셈이다 

    돌이켜 보면 황당한 생각이다.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사람 중에는 사형수나 장기수들이 허다했다. 그들의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은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갓 20대 중·후반 대학생들이 사회구조적 문제 운운하며 그들이 인간적으로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사회를 적과 아로 보고, 적에 대한 감정이 극대화할수록 그 반대로 아는 신비화된다. 그 정점에서 수형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발아했다. 

    이와 같은 인식이 사회적 약자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방식과 방향을 결정했다. 일반적이라면 사회복지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긴급한 부조와 함께 당사자의 노력을 결합시켜야 한다. 또 재정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은 재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그리고 ‘풍족하게’ 시행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를 비롯해 진보좌파의 경제 정책이 적자재정과 과감한 재정투입을 중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존 경제 관료들의 재정건전성 주장을 낡은 이데올로기 심지어 적폐로 몰아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마오이즘의 유산

    크리스마스인 2020년 12월 2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가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크리스마스인 2020년 12월 2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가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문재인 정부 사회경제 정책의 맹점은 경제를 어떻게 성장시킬지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기업의 활동을 제약한다. 타다 규제, 유통법 및 상생법 개정안은 신산업의 출현과 발전을 억지한다. 

    문 대통령이 꺼낸 ‘그린 뉴딜’이나 ‘인공지능(AI) 강국’ 등의 비전은 믿지 않는 게 좋다. 그들은 뼛속까지 문과다. 그들은 통일, 역사 문제에 특별한 감정을 느낄 뿐 과학과 기술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기에 안철수(현 국민의당 대표·전 안철수 연구소 대표)나 이해진(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등이 받던 처우를 기억하면 될 것이다. 

    다시 돌아가 농촌을 기반으로 한 사회이론과 성장담론을 살펴보자. 소농을 기반으로 한 농업사회는 변화와 이동, 성장을 불온시하는 경향이 짙다. 이에 상업 활동을 천시했다. 대신 안정과 영속을 중시하는 사상 체계가 발전하는데, 조선사회를 지탱했던 성리학이 그것이다. 

    농업사회가 변화하는 양상은 크게 두 가지다. 1950~60년대 한국사회가 이와 같은 갈림길에 직면했다. 상공업을 진작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촉발하며 과학기술을 육성해 농업사회를 점진적으로 도시사회로 변모시키는 하나의 길이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도시화라고 부른다. 

    반면 농업사회에 진지를 구축하고 농민들과 동고동락하며 도시를 포위하는 또 다른 전략이 있었다. 이를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추진한 인물이 마오쩌둥이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마오이즘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1960~70년대 서울대 문리대, 상대, 법대의 최고 엘리트들이 마오이즘의 노선에 동조했고, 이는 현재 문재인 정권의 체질에도 녹아 있다. 

    그들은 해체되어야 할 낡은 유물에 성채를 쌓고, 거기에 재정을 투여해 온기와 애정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서울 도심에는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낡고 저개발 상태인 옛 동네에 카페가 들어서고 벽화가 그려졌다. 경쟁력이 뒤쳐지는 전통 재래시장이 정겹고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로 미화됐다.


    농촌 공동체의 현대적 버전

    운동권의 마음의 고향은 농촌 공동체다. 산업화로 농촌 공동체가 해체된 상황에서 그들은 도시 속 소규모 공동체를 새로운 터전으로 삼았다. 이 공동체는 공공임대로 구성된 주거 공동체, 재래시장을 거점으로 한 경제공동체, 마을기업·사회적 기업이 주관하는 카페나 문화 활동으로 이뤄진 생활공동체의 형태를 띠고 있다. 농촌 공동체의 현대적 버전인 셈이다. 

    자, 여기에 여당이 추진하는 유통법 및 상생법 개정안이 있다. 과연 법을 통해 재래시장이 부활할 것이라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운동권의 농촌 판타지가 만든 또 한 번의 거대한 푸닥거리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 1965년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저서 : ‘수학 공부의 재구성’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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