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수사관 91명이 검사 2000명 대신할 수 있나” (A 부장검사)
“수사는 타이밍…경찰이 사건 뭉개면 증거 썩어 없어져”
“警 토호와 결탁해 사건 무마할지도…암수범죄 늘 것”(B 변호사)
“시뮬레이션도 없이 시작, ‘검찰 힘 빼기’만 골몰”
“이용구 차관 사건, 수사권 조정 실패 전주곡” (D 변호사)
“특가법 어떻게 적용해도 내사 종결할 사건 아냐”
“책임수사관 제도로 검사 수사지휘 대체 가능” (경찰 중간 간부)
“제도적 안전장치에도 수사권 조정 비난…오만한 檢” (전 경찰 고위관계자)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1월 1일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됐다. 위 사례는 현직 검사가 수사권 조정·형사제도 변화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예측한 것이다. 과거 실제 사건이 바탕이다.
지난해 여권은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을 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검찰개혁’의 일환이다. 핵심은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다. 기존에 검찰은 모든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경찰은 이에 ‘복종’했다. 법 개정으로 경찰은 1차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을 행사한다. 범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종결할 수 있다. 검·경 관계는 ‘상호협력’으로 바뀌었다.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도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로 축소됐다. 경찰이 사실상 범죄 수사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검경, ‘지휘·복종’서 ‘상호협력’으로
현실로 다가온 수사권 조정에 문제는 없을까. ‘신동아’의 취재에 응한 전·현직 검사들은 “경찰에 과도한 권한이 쏠려 수사·기소에 허점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과거 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조정 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도 짚었다. 반면 전·현직 경찰 관계자들은 “경찰에 대한 통제 장치가 있다. 검찰 측의 과민반응”이라고 일축했다.검사들은 “경찰이 기소·불기소 결정권을 사실상 장악했다”고 우려했다. 기소에 대한 법리적 검토가 미흡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형사부에서 주로 근무한 현직 A 부장검사는 “과거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해 범죄 혐의를 입증했다. 검사는 이를 바탕으로 범죄 혐의를 법적으로 규명했다”면서 “검·경 역할분담이 형사사법제도 운영의 요체였다. 현장 수사를 전담하던 경찰에 기소·불기소 결정권을 넘긴 것은 비(非)전문가에게 제도 운영을 맡긴 격”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1차 수사권·수사종결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개정 형사소송법(제245조의8)에 따라 검찰은 경찰 수사가 “위법 또는 부당한 때에는 그 이유를 문서로 명시하여 사법경찰관에게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사건 관련 증거물도 90일 동안 검사에게 제출해 검토 받아야 한다.
재수사 요청 조건은 지난해 10월 7일 제정된 대통령령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을 따른다. 검사가 “불송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명백히 새로운 증거 또는 사실을 발견”하거나 경찰 수사에 “증거 등의 허위·위조 또는 변조를 인정할 만한 상당한 정황을 발견”했을 경우다.
익명을 원한 전직 경찰 고위 관계자는 “수사권 조정 후 경찰은 송치·불송치의 판단 근거 자료를 검찰 측에 보낸다. 여기에 문제가 있으면 검찰이 재수사를 요구할 수도 있다”면서 “이런 제도적 안전장치가 있음에도 수사권 조정을 문제 삼는 이유가 뭔가. 형사 시스템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검찰이 경찰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유능한 경찰 인력으로 검사 지휘 대체”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다. [사진공동취재단]
경찰도 수사에 대한 자체적 통제 방안을 내놨다. 경찰청은 지난해 12월 28일 책임수사관 91명을 선발했다. 지원자 2192명 중 추려낸 경위·경감·경정 급 ‘에이스’들이다. 책임수사관은 2021년 1월 4일 출범한 국가수사본부에 배치된다. 국수본 소속 경찰관 3만 명의 수사가 적법·적절한지 체크한다. 검사의 수사 지휘를 대체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현직 경찰 중간간부는 “유능한 인력을 책임수사관으로 임명해 과거 검사의 수사 지휘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들은 경찰의 수사 문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수사 절차의 문제점을 검사보다 더 효율적으로 잡아낼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A 부장검사는 “책임수사관 91명이 검사 2000명을 대신할 수 있겠나. 경찰 자체 인력으로 수사 과정을 통제하는 것은 무리다. 경찰 수뇌부가 인사권을 쥔 책임수사관이 검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 B 변호사도 “과거 검사는 경찰 수사를 지휘하며 자체 수사를 거듭했다. 검찰의 권위를 세우거나 경찰이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억울한 피해자·피의자를 줄이기 위해 경찰·검찰의 이중 통제 장치를 둔 것”이라고 짚었다. 수사권 조정을 두고 그는 “일반 시민이 연관된 사건 대부분을 경찰이 한 번만 수사하게 됐다.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 ‘서비스’의 질이 낮아져 인권침해 가능성만 높아졌다. 일반 시민은 억울하면 경찰에 ‘진정서’나 쓰라고 방치한 격”이라고 꼬집었다.
검사 시절 지방에서 여러 차례 근무한 B 변호사는 “지방에서 일부 경찰관이 ‘토호(土豪)’와 결탁해 사건을 무마해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의적 ‘암수범죄’(暗數犯罪·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한 범죄) 사건이 증가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일수록 토호의 영향력이 강하다. 검사보다 경찰관에게 쉽사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검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말이 아니다. 일부 검사가 중앙의 ‘살아 있는 권력’에 굴종한 ‘흑역사’도 있다. 다만 검사는 정기 인사로 전국을 떠도는 ‘떠돌이’다. 지역 유지와 결탁할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반면 지방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현지 출신으로 한 지역에서 오래 근무한다. 고향·학교 선후배일 가능성이 높은 유지에게 약할 수밖에 없다.”
수사권 조정은 법정 내 법리 공방에도 영향을 끼친다. 형사소송법 제312조(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조서 등) 개정으로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법적 증거능력이 바뀌었다. 원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는 경찰 신문조서와 달리 법정에서 즉각 증거로 채택됐다. 형소법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 피고인·변호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 법관이 법정에서 피의자 신문조서의 당부(當否)를 하나하나 따져야 하는 것이다.
“진술 번복에 실체적 진실 매장될까 걱정”
지난해 9월 21일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개혁 전략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직접 수사기관이 아닌, 공소를 유지하는 ‘공소관’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신문조서의 법적 능력 변화도 검찰의 수사 기능 축소와 닿아 있다. ‘공판 중심주의’(재판부가 공판에서 확인한 증거자료로 얻은 심증으로 판결하는 원칙)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현직 C 부장검사는 “공판 중심주의라는 가치도 중요하지만 검찰 신문조서의 법적 능력을 제한한 것은 문제다. 강력사건의 경우, 피고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가 많다. 자칫 실체적 진실이 매장될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C 부장검사는 법정에서 피고가 진술을 번복해 혼란을 야기한 실제 사례를 꼽았다.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이다. 2002년 한 중견기업 회장의 부인이 여대생을 청부 살인한 사건이다. 실제 여대생을 살해한 범인(공범)은 검찰 피의자신문 과정에서 주범(회장 부인)의 살인 교사 사실을 인정했다. 이를 알아챈 주범은 공범을 압박·회유했다. 공범은 재판정에서 “우발적 살인이었다”고 진술을 번복했으나 검찰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우위가 인정됐다.
그는 “일부 부유층, 권력층은 비싼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사건 관계자를 매수할 가능성도 있다. 이들이 재판을 교란하면 일반 시민만 피해를 본다. 새 시스템이 제대로 된 시뮬레이션도 없이 ‘검찰 힘 빼기’에만 골몰해 마련됐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B 변호사의 우려도 비슷했다. 그는 “지금도 피의자·피해자 변호사가 경찰을 압박해 사건 처리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적잖다”며 “수사 단계와 재판 과정에서 형사 시스템이 혼란에 빠지면 누가 이득을 보나. 일감이 늘고 운신의 폭이 넓어진 변호사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미 수사권 조정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의혹’ 사건이 실례(實例)로 꼽힌다.
이 차관은 지난해 11월 초, 자신이 타고 있던 택시 운전기사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이 차관은 술에 취해 택시에서 잠들었다가 기사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깨우자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0)에 따라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 폭행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처벌한다. 2015년 6월 법 개정에 따라 ‘운전자가 여객의 승하차를 위해 일시 정차한 경우’도 운전 중이라고 판단돼 특가법 적용 대상이다.
당시 수사를 맡은 서울 서초경찰서는 사건을 내사(內査) 단계에서 종결했다.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이 아닌 ‘단순 폭행’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 운행이 종료된 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현 정부 고위공직자 출신 법조인을 ‘봐주기 수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차관은 진보 성향 법관 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2017년 8월~2020년 4월 법무부 법무실장을 지냈다.
“무엇을 위한 검찰개혁인가”
이에 대해 검찰 중간간부 출신 D 변호사는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본 ‘덮어주기’ 수사의 전형이다. 수사권 조정의 실패와 파국을 보여준 전주곡”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검찰엔 ‘원죄(原罪)’가 있다. 과거 살아 있는 권력의 의중에 따라 사건을 과잉 수사하거나 반대로 덮어주기도 했다.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검찰개혁의 미명하에 권력을 쥔 경찰의 현실을 보라. 이 차관 사건을 섣불리 내사 종결했다. 특가법을 어떻게 적용해도 내사 단계에서 접을 사건은 아닌데 말이다. 무엇을 위한 수사권 조정이고 검찰개혁인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