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소 끌고 여자는 베 짠다는 ‘견우직녀(牽牛織女)’
이젠 지식정보 통한 인류사적 전환…미투 운동은 필연
성추행 당한 교수가 승소하고도 학교 복귀 못하는 세상
한국 주류 사회에 만연한 성착취‧차별 관행 방증
용기 있게 문제제기한 장혜영, 찬사 받아야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일로 사임한 뒤인 1월 28일,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운데)가 국회에서 ‘성평등 조직문화개선대책 태스크 포스’가 마련한 1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급기야 국내 대표적인 진보정당인 정의당에서 김종철 전 대표가 같은 당 여성 국회의원을 성추행한 일로 사임했다. 피해자 장혜영 의원은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직시해야 하고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장 의원은 남성과 여성의 지위에 관한 심오하고 본질적인 담론의 장을 마련해줬다. 그리고 이 사건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미투 운동을 거치며 이 분야에 관한 의식이 상당히 숙성됐음을 보여준다.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본 미투 운동
2018년 11월 10일 서울 다시세운광장 앞에서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회원 등이 성차별과 성폭력 종식을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장 의원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나는 40여 년 전에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라는 책에서 설파된 논리를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그 틀에 따라 나름의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남성과 여성은 기본 체격과 체력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육체적 노동력의 차이가 생긴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이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 구분, 사회적 대우 차이로 바로 연결됐다. 더욱이 여성은 종족 보존을 위한 출산 과정을 전담했기에 외부 활동은 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농경사회로 바뀌고도 상황은 여전했다. 거의 모든 작업에 사람 힘이 필수적으로 소요되니 노동력이 더 큰 남성이 우위를 점했다. 남자는 소 끌어 밭 갈고, 여자는 집에서 베를 짠다는 ‘견우직녀(牽牛織女)’ 성역할 구분이 확고했다. 그러나 기계문명의 발달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됐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며 이 경향은 가속화했다. 컴퓨터 등 정교한 기계가 많이 등장하자 기계 작동에 소요되는 물리적 노동력이 저감됐다. 노동력을 평가할 때 육체적 물리적 힘의 세기보다 지식과 정보 수준이 중시되는 세상이 됐다. 이것은 인류 문명의 거대하고 기본적인 변화다. 이제 여성도 남성 못지않은 역할수행, 노동력 창출을 사회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남녀 지위에 관한 구도가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투 운동은 이런 인류사의 맥락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생겨났다. 또 앞으로 남녀의 성역할 배분상 진정한 평등이 실현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미투 운동 발목 잡는 국내 환경
성균관대 재직 중 동료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왼쪽 세 번째)가 2018년 3월 6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앞에서 성추행 가해자 해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그런데 미투 운동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적잖다. 나아가 반(反)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공언하는 남성이 많이 생겨났다. 그들은 한국사회의 페미니즘 경향에 대해 완고한 저항을 시도한다. 정치적 견해로 갈린 진보나 보수 못잖게, 페미니즘을 경계로도 심하게 의견이 엇갈린다. 어느 쪽을 두둔하기에 앞서, 남녀 지위에 관한 인류사의 거대한 변환을 인식의 기초로 하지 않는 주장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최근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의 미투 관련 기사가 눈길을 끈다. 그는 2014년 학과 MT 행사에서 동료교수에 의해 강제추행과 성희롱을 당했고, 미투를 폭로한 이듬해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는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소송 4건에서 모두 이겼고, 지난해 10월 재임용 탈락을 부당해고로 판단한 1심 판결이 나왔지만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몇 가지 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남 전 교수가 말했듯 그는 재판 결과만 두고 본다면 행운의 1%에 들어간다. 미투 사건에서 피해자가 구제받는 경우가 아직은 대단히 적어서다.
한국 사회는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에 아주 척박한 토양이다. 대단히 엄격한 처벌을 가하는 명예훼손법제, 그리고 아시아적 전제사회의 유풍인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사회 체계 등으로 남성이 권력적 지위에서 여성에게 행하는 성적 일탈행동이 파묻히기 십상이었다.
좀 더 자세히 언급하면, 한국의 명예훼손법제는 세계적 시각에서 볼 때 너무 엄격하다. 명예훼손행위에 대한 형사법적 처벌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미국 등 여러 나라 법제를 말할 것도 없다. ‘유엔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ICCPR)은 가장 심각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고려될 수 있는 것이고, 더욱이 징역형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우리는 징역형도 과할 수 있다. 어디 거기에 그치는가. 심지어 진실한 사실을 발설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게 돼있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법제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검찰과 법원의 법적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다. 우리 사회는 군사문화의 잔재인지 혹은 다양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선적 문화배경 탓인지, 내부고발자(공익제보자)에 대해 뿌리 깊은 편견과 선입견을 보인다. 나아가 쉽게 적대감을 표출한다. 더욱이 법원과 검찰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계급과 서열로 갈라지며 상급자가 하급자를 촘촘하게 지배하는 관료사회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엄격한 조직문화에 젖은 판사와 검사에 의해 지금까지 법원과 검찰에서는 공익제보자에 대해 심히 불리한 취급을 했다. 대표적인 처사가 공익제보자에게 입증책임을 사실상 부과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투’를 하는 사람에게 언제 어디서 그런 성폭력이 행해졌느냐를 입증할 책임을 부담시킨다.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명예훼손에 걸려 오히려 유죄가 될 수 있다. 사진이나 녹음 등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발설자가 진실과는 상반되는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남 전 교수 사건에서 짚어야 할 두 번째 문제는 한국 대학사회에 내려오는 성착취, 성차별 관행이 아직 제대로 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 전 교수는 시간강사와 연구원을 거쳐, 초빙교수, 대우 전임교수 등으로 그 대학에 근무했다. 그 기간이 무려 12년이었다. 이런 사람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성추행, 성희롱을 당할 수 있는 게 대학 사회의 현실이다.
많은 이가 대학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다. 대학에는 최고 지성을 가진 교수도 많이 있으나, 폐쇄적 사회에서 특권적 지위가 보장된 탓에 최악의 야만성이 길러진 교수도 더러 있다. 이런 교수들이 학회참석 등으로 중국이나 동남아 같은 곳으로 가서 어떤 짓을 하는지 보라. 눈이 벌게져 성매매를 하려고 덤벼든다. 술에 취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여자를 찾는 모습은 한 편의 지옥도다.
이런 불량한 교수가 여학생 그 중에서도 석‧박사 과정 여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 12년간 대학에 몸담은 동료 여성을 공공연히 성추행하는 이가 자신과 수직적 관계에 있는 어린 여성에게 못할 짓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성착취 어둠 밝히는 횃불
때로는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일부 종교인과 그 신도들 사이에서 성착취 비밀이 세상에 노출되기도 한다. 교육계나 종교계에서 상부와 하부 관계는 수직적이다. 상부는 하부를 심리적으로 지배하기 쉽고, 권력을 가진 상부는 힘이 약한 하부를 자의(恣意‧제멋대로)적으로 조종하고 싶은 유혹의 충동에 넘어가곤 한다. 교육부에서 어느 한 대학을 선정해, 교수와 그가 지도하는 여성 연구자 관계에 관해 전수조사라도 한 번 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깜짝 놀랄 일이 적지 않게 나타날 것이다. 20년 교수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확신을 갖고 하는 말이다. 딸을 대학원에 보내는 어버이들은 내 말에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장혜영 의원은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공개적인 책임을 묻기로 마음먹은 것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려운 결단을 내린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이번 일이 하나의 커다란 횃불이 되어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 성착취의 어둠을 더욱 잘 밝혀나가게 되기를 바란다.
■ 빛을 찾아서
세상은 빤히 들여다볼수록
애써 더 모른 척 하는구나
뿌연 산은 그대로 산이고
흐린 하늘도 언제나 하늘이다
어느 겨울날 창가에 앉아 내다보는
황사로 덮인 풍경
왜 이리도 무정한가
쌓인 회한은 사포(砂布)가 되어
생살을 벅벅 문지르니
아프고 쓰라림이 이어지는데
저 멀리 허공에 떠 있는
시선 잃은 얼굴들
인연의 끈 끊어진지 오래건만
미안함의 무게가 여전히 버겁다
마음속 깊이 들어찬
업장(業障)의 긴 그림자들
기꺼이 끌어안고
빛의 출구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걸어간다
고목 그루터기에 둥지를 튼 상황버섯이 힘겨운 겨울날들을 난다. 몇 십 년 세월을 이렇게 견디며 보냈다. 그런 사이에 버섯은 썩은 나무둥치의 일부가 된다. 이끼는 여전히 푸르게 살아 있다. 누구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신평 제공]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법학박사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등 역임
● 한국문인협회 회원
● 2018년 대한민국 법률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