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수익 보장한다” 유혹, 가짜 시스템으로 투자금 ‘꿀꺽’

주식투자 빙자한 신종 투자 사기의 실체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1-02-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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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자금 20배까지 무이자 대출

    • 가짜 주식 프로그램으로 가상 숫자놀음

    • 출금 요청하자 2500만 원 증발

    • 피해자는 사기당한 줄 모르고 투자 실패 자책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개설된 ‘VIP 주식 리딩방’(왼쪽). 개인투자자 김동호(가명) 씨가 투자업체 권유로 설치한 사설 주식 프로그램. [카카오톡 화면 캡처, 
네이버 ‘레버리지·FX마진 가상거래 사기 피해자들의 모임’ 카페 제공]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개설된 ‘VIP 주식 리딩방’(왼쪽). 개인투자자 김동호(가명) 씨가 투자업체 권유로 설치한 사설 주식 프로그램. [카카오톡 화면 캡처, 네이버 ‘레버리지·FX마진 가상거래 사기 피해자들의 모임’ 카페 제공]

    최근 주가 급등 흐름 속에 새로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었다. 이들을 노리고 가짜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만들어 투자금을 편취하는 신종 사기가 성행하고 있다. 

    사기꾼들이 활동하는 주무대는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있는 ‘주식 리딩방’이다. 주식 리딩방은 주식 투자 전문가를 자임하는 이른바 ‘리더’가 실시간으로 특정 종목 주식 매매를 추천하고 매수·매도 타이밍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카카오톡 검색창에 ‘주식 리딩’ 또는 ‘리딩방’ 등의 키워드를 입력하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오픈 채팅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기꾼들은 여기에 ‘무료 VIP방 회원 모집’ 등의 광고물을 계속 올리며 피해자를 물색한다. ‘기본 수익률 15% 보장’ ‘국내 유명 증권사 애널리스트 추천 종목’ ‘매도·매수 타이밍 제시’ ‘평생 VIP방 이용 가능’ 등의 문구를 보고 솔깃해진 투자자가 카카오톡 채팅 등으로 말을 걸면, 그들은 자신이 유명 증권회사 계열사 직원이라고 속이며 자사에 회원으로 가입할 것을 제안한다. 미끼는 최고급 투자 정보 무료 제공이다.

    투자금 20배 무이자 대출 유혹

    사기꾼들이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 주식거래를 할 때 자기 업체에서 개발한 사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사용하라는 것이 전부다.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에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막대한 투자금을 이자 없이 빌려주고 거래수수료 인하 혜택 등도 제공한다고 유혹한다. 

    기자는 범행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알아보고자 카카오톡 주식 리딩방에 들어갔다. 오픈 채팅방 게시글 가운데 ‘VIP 주식 리딩방’ 광고물을 클릭하고 ‘상담 신청’ 메시지를 보냈다. 딱 5분 만에 한 여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이 국내 유명 ‘K증권사’와 제휴한 투자업체 ‘P스탁’ 소속 상담원이라고 밝힌 이 여성은 “VIP 주식 리딩방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우수 투자 종목을 추천해 드릴 뿐 아니라 매도·매수 타이밍까지 무료로 알려드린다”고 유혹했다. 그러면서 “우리 회사 HTS를 사용하면 투자금의 최대 20배까지 레버리지 투자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레버리지 투자는 빚을 지렛대 삼아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투자 기법을 뜻한다. 상담원 설명은 이랬다. 



    “회원님이 50만 원을 투자하면 수익률 10%를 기록해도 5만 원밖에 못 벌잖아요. 그런데 10배 레버리지를 활용하면 저희가 빌려드리는 돈 500만 원을 더해 투자 원금이 550만 원이 되는 거예요. 이때 수익률 10%가 나오면 수익금이 55만 원이 되죠. 원금 50만 원이 순식간에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나는 겁니다.” 

    이 상담원은 “일반 증권사에서 신용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이자율이 연 10%에 달한다. 반면 우리는 레버리지 투자금에 대한 이자를 전혀 받지 않는다”며 “자사 HTS 개발 기념으로 회원을 더 많이 유치하고자 특별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회원님은 지금 제가 보내드리는 링크를 클릭해 HTS를 설치한 뒤 우리가 드리는 정보에 따라 주식 투자를 하시기만 하면 돼요.”

    출금 요청 이튿날 2500만 원 증발

    기자는 이 말까지 듣고 상담을 끝냈다. 30대 김동호(가명) 씨는 달랐다. 그는 기자처럼 ‘VIP 주식 리딩방’에 들어갔다가 자신이 ‘C에셋’ 상담원이라고 주장하는 사기꾼 말에 속아 넘어가 노트북에 사설 HTS를 설치했다. 이후 한동안 해당 시스템을 활용해 레버리지 투자를 이어갔다. 투자금 500만 원의 20배에 달하는 1억 원어치 주식을 사고팔았다. 나흘 만에 100만 원가량 수익을 보는 등 초반엔 잘나갔지만 이후 번번이 손해를 봤다. 6개월 만에 5000만 원 이상을 잃고 말았다. 

    “상담원에게 연락해 ‘업체 추천대로 투자하다 손해를 봤다.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어요. 그쪽에서는 ‘수익을 내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하더군요. 그러면서 ‘지금은 투자 손실이 너무 커져 레버리지 대출금을 회수할 수밖에 없으니 레버리지를 유지하려면 보증금 명목으로 돈을 더 보내라’고 했어요.” 

    김씨는 손실 상태에서 주식 투자를 멈추자니 그동안 들인 돈이 아깝게 느껴졌다. 손실을 만회하고자 신용대출을 받아 200만 원을 추가로 C에셋에 보내고, 20배 레버리지를 활용해 4000만 원으로 투자를 재개했다. 이번엔 손실 보전을 넘어 2500만 원가량 이득을 봤다. 김씨는 돈을 찾고자 C에셋에 출금을 요청했다. 그때부터 갑자기 C에셋 HTS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접속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이튿날에는 아예 접속이 차단됐고 김씨와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던 상담원과의 연락도 두절됐다. 김씨는 “그제야 내가 사기당한 사실을 깨달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김씨가 이용한 HTS는 증권사 시스템을 본떠 사기꾼들이 자체 제작한 ‘가짜’일 공산이 크다. 화면에 주식거래가 이뤄지는 것처럼 표시될 뿐, 실제 매매는 이뤄지지 않는 방식이다. 피해자가 해당 HTS에서 입금한 투자금은 자동으로 사기꾼들 대포통장에 들어간다. 

    투자 사기업체 내부 사정에 밝은 A씨는 “이런 범죄에 사용하는 대포통장은 보통 대포통장 유통 조직원에게서 확보한다. 누군가의 명의로 개설된 계좌, 그와 연결된 체크카드, 일회용 비밀번호카드(OTP), 공인인증서와 비밀번호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 등을 퀵서비스로 전달받는다. 구매 비용은 대략 200만 원 내외이고, 현금 거래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가짜 주식 프로그램으로 가상 숫자놀음

    레버리지 주식투자를 빙자한 신종 사기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금융기관 지급정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동아DB]

    레버리지 주식투자를 빙자한 신종 사기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금융기관 지급정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동아DB]

    1월 5일 경남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는 이런 방식으로 사기를 벌인 일당 51명을 검거해 1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2017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서울·부산과 경남 창원 등에 사무실을 두고 회원 3883명을 모집해 726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가짜 HTS는 피해자가 투자 종목 대부분에서 손실을 보는 것처럼 보여주도록 프로그래밍됐다고 밝혔다. 피해자 대부분은 이때 손실을 만회하고자 돈을 더 입금하는 경향을 보이고, 결국 피해액이 커진다고 한다. 

    범죄 구조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사기꾼들은 주식에 관심 있지만 관련 지식은 부족한 이른바 ‘주린이(주식+어린이)’에게 투자 정보를 주겠다고 접근한다. 이후 유명 증권사와 제휴해 개발한 것이라고 속여 가짜 HTS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만든다. 이 시스템을 통해 주식 투자금을 보내면 HTS에 개설된 투자자의 거래 계좌에 최대 20배에 이르는 레버리지 투자금을 넣어준다. 이때부터 피해자는 자기가 ‘주식 거래’를 한다고 생각하고 HTS를 이용하지만, 실상은 모두 가짜다. 

    현재 관련 사건 피해자의 형사소송을 돕고 있는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변호사)는 “이 사건을 ‘레버리지 투자 사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기꾼들이 투자자를 회원으로 끌어모으고자 ‘주식 투자’를 내세울 뿐이다. 회원 가입을 하면 계좌에 찍히는 막대한 레버리지 투자금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의 숫자놀음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 주식 프로그램과 유사한 화면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개발자로 활동하는 김상길 씨는 2019년 투자사기 범죄자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가짜 HTS 제작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당시 두 사람이 찾아와 4000만 원을 줄 테니 주가를 임의로 조작할 수 있는 사설 주식 거래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 남성들은 “개발 후 프로그램 운영 및 관리를 맡아주면 매달 3000만 원 이상을 추가 지급하겠다”고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어쩐지 불법적인 일에 연루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요청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신종 사기 수법 발달, 지급정지 범위 넓혀야

    자본시장법 제373조에 따르면 한국거래소 허가를 받지 않은 채로 금융투자상품시장을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다. 사기꾼들이 회원을 모집해 사설 HTS를 사용하게 한 부분은 자본시장법 위반, 사기 등의 죄목으로 처벌할 수 있다. 대포통장 이용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정작 현장에서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있는 ‘레버리지·FX마진 가상거래 사기 피해자들의 모임’ 카페 개설자인 최정미 씨는 “사기 범죄에 사용됐다고 신고한 대포통장이 관련 수사 진행 중에도 계속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며 “투자 사기 사건을 근절하려면 경찰이 전담수사팀을 만들어 대대적인 단속을 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호선 교수는 “지금은 피해를 본 회원들이 업체와 조직원들을 상대로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며 “송금 내역 등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해 형사고소하고 손실 보전을 위한 민사소송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피해자들은 투자사기 조직원들이 피해자가 입금한 돈을 대포통장에서 인출·은닉하는 걸 막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행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예금 지급정지 대상으로 피싱 범죄만 규정한다. 최정미 씨는 “신종 사기 수법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만큼 지급정지 범위를 넓혀 피해를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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