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집콕’하며 즐기는 ‘남의 집 차례상’ 구경

[김민경 ‘맛 이야기’㊽]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1-02-1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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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해물과 전, 나물 등이 풍성하게 어우러진 차례상. [GettyImage]

    각종 해물과 전, 나물 등이 풍성하게 어우러진 차례상. [GettyImage]

    설날 아침이 밝으면 전날 준비해둔 음식을 곱게 차려 차례를 지낸다. 절을 할 때마다 소원을 빌고, 속마음도 슬쩍 조상께 비춰본다. 철상한 뒤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차례 음식을 든든히 먹고 나면 재빠르게 정리 후 나갈 채비를 한다. 음식도 조금씩 싸고 따뜻하게 옷을 입고 외할머니댁으로 간다. 그곳에 가면 아래위로 나이도 성격도 다양한 사촌이 바글바글하다. 어울려 노는 재미에 더해 외가 차례 음식 맛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아버지 고향은 경상도 중에도 바닷가라 문어와 여러 가지 해물이 상에 많이 오른다. 외가는 같은 경상도지만 내륙이라 나물이 7~9가지나 되고, 전과 더불어 오징어 새우 등을 튀겨 상에 올렸다. 아침에는 찐 생선에 문어를 썰어 먹고, 점심으로는 푸짐한 나물비빔밥에 탕국, 저녁에는 오징어 튀김을 물고 다니며 따뜻하게 보낸 어린 날의 설 기억이 생생하다.


    문어, 돔배기, 조기, 민어, 방어 어우러진 경상도 차례상

    동해와 가까운 경상도 지역 차례상에는 문어가 단골로 오른다. [GettyImage]

    동해와 가까운 경상도 지역 차례상에는 문어가 단골로 오른다. [GettyImage]

    차례상에는 그 지역에서 즐겨 먹는 음식, 그중에도 예로부터 거둔 수확물이나 생산물 등을 정성스레 준비해 올린다. 동해와 가까운 경상도 지역에서는 문어와 ‘돔배기’를 빼놓을 수 없고, 여기에 조기 민어 방어 도미 같은 생선을 푸짐하게 준비한다. 돔배기는 상어 살코기를 토막 내 소금에 짜게 절인 것이다. 문어는 모양 잡아 삶고, 돔배기는 꼬치로 꿰 산적을 만들거나 납작하고 큼직하게 기름에 구워 상에 올린다. 이 외에도 소라나 전복, 군소 같은 것을 삶거나 간장에 조려 올리기도 한다. 전 부치는 재료도 대구, 명태, 가자미 같은 생선이 단골이다. 짭짤한 돔배기와 삶은 문어는 바다에서 먼 안동이나 대구 같은 내륙 차례상에도 올랐다. 물론 굴비처럼 마른 생선과 함께다. 

    같은 바다라도 전라도 지역 차례상에는 두툼한 병어가 등장하고, 꼬막을 푸짐하게 삶아 올리며 필수로 홍어가 있다. 홍어회, 홍어찜, 홍어전 등을 올리며 가오리를 찌거나 간장에 조려 준비하기도 한다. 꼬막은 참꼬막으로 준비해 폭 삶는데 이를 ‘제사꼬막’이라 부른다. 낙지도 단골 차례 음식인데, 설보다는 아무래도 추석에 많이 쓴다. 마른오징어를 불려 통째로 널따랗게 전을 부쳐 올리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너무 맛있어서 꼭 한 번 다시 먹고 싶은 차례상 음식으로 꼽는다.


    강원의 메밀, 제주의 옥돔

    충청도는 차례상에 닭고기를 통째로 찌거나 구워 올리는 경우가 많다. [GettyImage]

    충청도는 차례상에 닭고기를 통째로 찌거나 구워 올리는 경우가 많다. [GettyImage]

    서쪽 바다를 따라 충청도로 올라가면 납작하고 고소한 생선인 서대와 바닷바람에 말라도 살집이 통통한 우럭포가 상에 오른다. 다른 지역에서는 쇠고기를 많이 올리는데, 충청도는 닭고기를 통째로 찌거나 구워 함께 올린다. 내륙 지방 충청도는 물기 있는 생선보다 마른 생선을 쓰고, 나물 종류가 다양하며, 배추나 버섯 같은 채소로 부친 전이 함께 오른다. 

    강원도에서 눈에 띄는 건 역시 감자와 메밀이다. 감자를 갈아서 만든 전, 감자 전분으로 빚은 떡, 메밀 반죽에 고기소를 넣은 것 또는 메밀가루 묻혀 부친 채소전 등이 차례상에 오른다. 동해와 가까운 강원도 지역은 문어 가자미 오징어 같은 것으로 음식을 하는데, 명태를 꾸덕꾸덕하게 말려 통째로 쪄서 올리는 게 특색 있다. 



    제주도는 옥돔을 꼭 준비하고, 전복이나 소라 오분자기 등을 찌거나 조려 올린다. 쇠고기도 있겠지만 돼지고기로 적을 만들어 올리는 경우가 많다. 메밀이 풍성한 지역이라 빙떡을 만들거나, 메밀가루 묻혀 구운 두부와 채소전을 준비하며, 메밀묵으로 만든 메밀채도 올린다. 유명한 제주 고사리도 차례 음식에 빠질 수 없는 재료다. 나물을 하고 전도 부쳐 올린다. 독특한 것은 빵이다. 쌀이 귀했던 시절 떡을 대신하던 여러 가지 빵은 지금도 제주 차례상에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상님, 추석에는 가족과 함께 하게 해주세요”

    경기도에서는 녹두전을 빼놓지 않는다. 고기나 고사리 같은 것을 넣고 두툼하게 구워 올린다. 굴비와 명태, 북어 같이 마른 생선을 많이 활용하고, 서울지역과 더불어 만두를 빚기도 한다. 만두는 사실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해맞이 음식이다. 만두가 전국 각지로 퍼진 데는 피란의 영향이 크다. 

    2021년 설 풍경은 모두에게 낯설다. 가족이 모일 수 없으니 북적이며 음식을 만들지도, 나누어 먹지도 못한다. 랜선 세배를 하며 가정간편식(HMR) 등으로 다양한 지역 차례 음식을 맛보는 것도 재미나겠다. 

    실은 자기 혹은 배우자 고향 음식이 아니면 평생 남의 차례 음식을 맛볼 일이 없다. 문어와 돔배기에 익숙한 나는 이번 연휴에 꼬막 푸짐하게 삶아 홍어 삼합 한입에 진도 홍주 한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 소원이라면 ‘추석에는 가족과 함께 하게 해주세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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