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K-웹툰·웹소설 성공가도? 불법유통 탓 몸살 앓는 작가들

작가 울리는 ‘텍본’을 아시나요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01-0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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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식 경로 990명 본 웹툰, 불법사이트서 10만뷰

    • 조회수 낮으면 연재 조기 종료, 부업으로 생계유지

    • “200원 내기 어려워 불법 이용하나”

    • 불법 사이트가 월 저작권료 9500배 가져가

    ‘2020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가 중 68.2%가 ‘자신의 작품이 불법 유통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GettyImage]

    ‘2020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가 중 68.2%가 ‘자신의 작품이 불법 유통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GettyImage]

    “조회수가 낮으면 연재가 조기 종료되기도 해요. 밥줄이 달린 문제인데 공들여 만든 웹툰이 불법 사이트에서 수십 만 조회수 기록하는 걸 보면 속 터지죠.”
     
    웹툰 작가 미치(필명) 씨의 토로다. 8년차 작가 미치 씨는 2019년 연재한 작품의 지난해 11월 정산금으로 1만7000원을 받았다. 불법 복제물 공유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이 작품 조회수는 80만 회에 이르렀다. 미치 씨는 “한 회당 200원으로 단순계산하면 1억6000만 원이 나온다. 돈도 돈이지만 조회수나 판매부수로 독자 반응을 확인해야 하는 작가 처지에서 힘 빠지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홈’과 OCN ‘경이로운 소문’ 등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2019년 웹툰 사업체 매출액은 6400억 원으로 전년대비 1737억 원 증가했다. 웹소설 시장도 2019년 5000억 원 규모로, 2013년(100억 원)과 비교해 50배 성장했다. 날로 커지는 시장상황과 달리 웹툰‧웹소설 작가는 불법 복제물 공유로 인한 피해로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불법 사이트부터 SNS까지

    지난해 12월 24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창작물 불법 복제 공유 사이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게시됐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12월 24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창작물 불법 복제 공유 사이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게시됐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최근 ‘불법 사이트’가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등장했다. 웹툰 작가 A씨가 연재 중인 웹툰이 불법 사이트에서 유통되는 사실을 고발하면서다. A씨는 자신의 웹툰이 조회수 13만을 기록하고 있는 불법 사이트를 캡처해 첨부했다. A씨는 트위터에 “(정식 사이트) 정산서에는 990명이 봤다고 돼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썼다. 이 트위터 게시글은 1만7000회 공유됐다. 

    다른 작가들도 A씨 글을 리트윗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0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68.2%가 자신의 작품이 불법 사이트를 통해 유통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웹소설 작가도 불법 복제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웹소설 작가 B씨는 2016년 한 웹소설 플랫폼에서 무료 연재를 시작하며 등단했다. 작품이 인기를 끌어 단행본 출판이 결정됐다. B씨는 단행본이 나오기 전 ‘텍본’ 형태로 불법 복제돼 작품이 유통되는 사실을 확인했다. 텍본은 텍스트본의 준말로 소설 등 콘텐츠를 텍스트(txt) 파일 형태로 만든 것을 말한다. 파일 크기가 작아 불법 유통에 용이하다. 



    온라인 콘텐츠 유통 플랫폼은 무단 복사 및 캡처를 막고 있으나 이를 무력화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웹소설‧웹툰을 무단 복제할 수 있다. 현재까지 B씨가 출간한 웹소설 일곱 작품 모두 불법 경로를 통해 퍼 날라졌다. 비공개 카페·블로그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도 복제본이 유통된다. 불법 복제물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링크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B씨는 “블로그·카페를 운영하는 포털 측에 저작권 침해를 신고했지만 비공개 커뮤니티는 사생활 침해 이유로 단속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연재 안 할 땐 부업해야

    웹툰 작가 수입은 대개 한 회당 일정 금액을 보장하는 MG(Minimum Guarantee‧최소 수익 배분)와 연재가 끝난 작품 저작권 수익으로 구성된다. 불법 복제물 유통은 MG와 저작권 수익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일정 조회수가 나오지 않으면 연재가 조기 종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7년 1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웹툰 불법 복제로 인한 누적 피해액을 1조8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웹툰 작가 미치 씨는 “신인 작가는 주 1회 MG로 50만 원을 받는다. 월 200만 원 버는 셈인데 보조작가 인건비·작업실 임대료·세금 등 유지비용을 고려하면 100만 원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런데 불법 복제로 조회수가 빠져나가 연재가 중단되면 고정 수입조차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료 결제 판매액이 줄어들면 저작권 수익도 감소한다. 5년차 웹툰 작가 박모(28) 씨는 “작가 대부분은 연재하지 않는 기간에 미술 강의나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신고해도 피의자 특정 어려워 기소중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불법 복제물이 쉽게 공유된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불법 복제물이 쉽게 공유된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018년 5월 한국 최대 웹툰 불법 복제 사이트 ‘밤토끼’ 운영자 허모 씨가 붙잡혔다. 2017년 12월 기준 페이지뷰가 1억3700만 회다. 이후 정부합동단속을 통해 불법 사이트 19곳을 폐쇄했지만 이름만 바꾼 ‘밤토끼’들이 기승을 부린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불법 저작권 침해정보 시정요구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적발돼 시정 요구된 저작권 불법 침해 사이트는 4999개다. 접속이 차단된 불법 사이트는 도메인 주소만 바꿔 다시 운영된다. 

    웹툰·웹소설 작가가 불법 유통 경로를 찾아 경찰에 신고해도 피의자 처벌로 이어지긴 힘들다. 해외 서버를 이용해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서버를 이용하더라도 자신의 명의가 아닌 아이디를 사용해 불법 복제물을 유통하는 경우가 많다. 웹소설 작가 B씨는 저작권법 위반 사례 15건에 대해 고소를 진행했지만 모두 기소중지로 결론 났다. 피의자를 구체화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문체부 저작권보호과 관계자는 “경찰청은 큰 사건 위주로 수사하다 보니 개인 신고 건에 대한 처리가 늦어진다. 저작권 관련 문제를 겪는 웹툰·웹소설 작가는 한국저작권보호원 카피112(불법복제물신고)를 이용해 달라. 불법 사이트 접속 차단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2021년 관련 법 개정안을 내놓을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단속은 한계… 구독경제 정착이 해법

    작가들은 불법 복제물을 유통한 이들뿐 아니라 이용자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2020 웹툰 작가 실태 조사에 따르면 불법 유통 문제를 개선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유통 시 처벌 강화(59.8%) 응답에 이어 이용자 처벌 강화(16.9%)가 뒤를 이었다. 웹툰 작가 박씨는 “음악이나 영화는 공식 루트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 편에 200원에 불과한 웹툰을 공짜로 보려는 이들을 처벌해 소비자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종갑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상 불법 복제물 제작·유통에 관여한 자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지만 이용자까지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다. 불법 복제 유통 사이트를 단속하는 방법이 사실상 전부다”라고 말했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불법 사이트 접속 차단이 신속하게 이뤄져도 불법 사이트는 플랜B, 플랜C까지 갖고 있다. 해외 서버로 불법 사이트를 운영하면 처벌도 힘들고 범죄수익 배상도 쉽지 않다”면서 구독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음악, 영화는 월 일정 금액을 내고 무제한 이용하는 스트리밍 업체가 자리잡으며 불법 복제 문제가 해결됐다. 소비자는 한 건 당 결제보다 구독 방식에 심리적 부담감을 덜 느낀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웹툰·웹소설 역시 구독경제 플랫폼이 마련되면 불법 복제물을 찾는 이용자가 줄어들 것이다. 다만 인기 작품과 비인기 작품 수익 간극이 더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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