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개혁인 줄 알았더니 길들이기…여론 반전 이유
헌재는 공수처법 위헌성 판단 의지 없어
공수처 출범 지연작전 아닌 적법투쟁
무색무취 공수처장, 수사 경험 없어 허수아비 될 수도
‘미운 놈 찍어내기’식 法 만드는 與 ‘협박정치’
신임 민정수석 첫 임무는 권력 수사 순화, 文 안전 보장
윤석열 ‘법치주의 수호자’ 이미지 포기하지 않을 것
[지호영 기자]
공수처 출범은 검찰의 기소독점 시대가 막을 내리고 검찰개혁이 가시화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작 문 대통령 ‘대선 1호 공약’ 공수처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의 기류는 심상치 않다. 연말에 진행된 여론조사(서울신문·현대리서치연구소 12월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2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공수처가 검찰을 견제하고 권력자 수사를 엄정하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55%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반면, ‘그렇다’는 답변은 39.4%였다.
앞서 진행된 여론조사(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 한국리서치 공동 11월 30일~12월 2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 95% 신뢰 수준에 ±3.1%)에서도 ‘정부와 여당의 검찰개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되십니까’라는 물음에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되는 등 당초 취지와 달라진 것 같다’는 응답이 55%였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당초 취지에 맞게 진행되는 것 같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019년 공수처 설립 찬성 여론이 한때 80%를 웃돌았고, 검찰개혁에 대한 공감도가 60%를 넘으며 여당이 압도적 지지를 얻은 것과 비교할 때 엄청난 반전이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공수처로?
국민의힘 유상범(55)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창원지검 검사장을 지내고 21대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이다. 그는 2020년 5월 11일 당선인 신분으로 공수처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12월 11일 다시 개정안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12월 2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재의 조속한 결정을 촉구하는 1인 릴레이 시위를 개시한 것도 그다. 제1야당에서 공수처 저지 선봉장인 셈. 1월 12일 유 의원을 만나 공수처와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물었다.-초대 공수처장 청문회를 앞두고 공수처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유는 두 가지다. 집권당의 거짓말과 일방 독주.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에서 야당의 비토권(거부권)을 박탈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1년 동안 공수처의 중립성과 독립성의 근거로 야당의 비토권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는데, 완전히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또 국민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상법, 임대차보호법 개정 과정에서 민주당이 다수의 힘으로 통과시키는 행태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일방 독주가 너무 심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공수처에 대한 신뢰도도 같이 무너졌다.”
-공수처를 포함해 검찰개혁의 의도까지 의심받고 있는데.
“추미애 장관이 지난 1년 내내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윤석열 검찰총장 몰아내기에 몰입했고, 공수처는 검찰개혁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국 사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원전 조기 폐쇄 감사 고발 사건을 수사하는 윤 총장을 찍어내려는 진짜 의도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서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 상황에서 공수처가 출범하면 이 사건들이 모두 공수처로 가게 된다, 그러면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다. 국민들도 정권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아챘다는 의미다.”
-1월 7일 야당 측이 낸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효력 집행정지 사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이 각하했다. 이처럼 법에 호소하는 지연 작전은 오히려 야당의 무기력함만 보여주는 것 아닌가.
“100석을 가진 야당이 180석을 가진 여당의 독주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 여당은 다수결의 논리로 포장한, 사실상 입법독재를 하고 있다. 추미애 장관에게 끊임없이 위법성을 지적했지만 통제가 안 됐다. 어떤 비판을 해도 여당이 문제를 인식하거나 고치겠다는 의지가 없다.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청와대의 지지를 믿고 일방적으로 밀고 가는 구조에서 결국 야당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절차적 정당성을 요구하고 법에 호소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언제쯤 공수처법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나.
“지난해 국정감사 때 헌재소장이 논의할 쟁점이 많아 심의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 답변을 들으면서 헌재가 공수처법의 위헌성을 서둘러 판단할 의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헌재의 책임 방기다. 물론 쟁점이 많다는 것은 법안 중 위헌성을 다툴 부분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수처는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수사기관이다. 수사기관은 본질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조직일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헌법적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삼권분립의 원칙에 맞아야 한다. 공수처법이 만들어질 때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위헌성 논란이 꽤 있었다. 이 정도라면 헌재는 빨리 판단해서 이 기관의 출범에 정당성을 부여하든지, 아니면 아예 출범을 막든지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혼란을 줄일 수 있다. 그것이 헌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데 지금 그 일을 안 하고 있다. 헌재는 주심 재판관이 누구인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공수처 인사위원 추천, 비토권 행사할 것”
-헌법소원이 공수처를 저지할 마지막 카드인가.“하나 더 있다. 공수처장 임명 후 수사처 검사를 선발하는 인사위원회다. 공수처법 9조는 인사위원 7명 중 2명을 야당 교섭단체에서 추천한 인물로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번 공수처법 개정 때 민주당이 미처 이 부분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만약 국민의힘이 인사위원을 추천하지 않으면 인사위를 열 수 없다. 지금은 그 카드를 쓸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시 법을 개정해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물론. 여당은 두 달 이내에 다시 개정안을 들고나올 것이다. 수사처 인사위 개최에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다며 법 개정을 시도하면서 공수처장 임명 과정에서 혼선을 반복할 것이다. 누더기 법이 되는 사이에 공수처의 신뢰도는 계속 추락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공수처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게 있다. 대통령의 의지라고 하니까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차의 정당성은 개의치 않는다.”
-이제 공수처장 임명 단계에 왔는데, 여전히 공수처법이 위헌이라고 생각하나.
“애초 공수처는 탄생해서는 안 되는 기구다. 검찰개혁의 명분으로 공수처를 도입했지만 아주 잘못된 처방이었다. 팔이 부러졌는데 다리를 수술한 것과 마찬가지다. 공수처 모델이 중국의 감찰위원회다. 당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직속기구다. 공수처는 대통령의 지휘도 안 받는다고 말하지만, 공수처장이 특정 정파성을 띠는 순간 독립성과 중립성은 흔들린다. 공수처장은 행정부에 속해 있으면서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구조로 가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입법·사법·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다 보니 공수처장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 대통령이 임명했다면 임명권자가 책임지는 게 책임행정이자 법치주의의 기본이다. 그런데 임명은 해놓고 공수처장이 하는 모든 행위는 대통령과는 관계없다, 책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공수처장 뒤에서 누군가가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정권이 바뀌면 그 공수처를 이용해 또 상대방을 탄압하는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정권이 바뀌면…”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후보는 정치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김 후보자와는 사법연수원 동기(21기)지만 가깝게 지낸 사이가 아니어서 개인적 성향은 잘 모른다. 초대 공수처장이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나 고위 법관, 검사 출신 중에서 나올 걸로 봤는데 예상 밖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판사 생활 3년 하고 변호사, 헌법재판연구관을 하면서 특별히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자존심이 강한 분이라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래서 판단하기 참 어렵다. 인사청문회도 공수처 운영에 대한 소신과 방법을 듣고 약속을 받는 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김 후보자는 공수처가 권력의 하수인, 권력의 사찰기구로 비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그럴수록 정치적으로 매도당하는 상황을 피하려 할 것이다.”
-‘식물 공수처’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후보에 대한 다른 평가로 ‘대세 추종형’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권력이 요구하는 바를 웬만하면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오히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공수처장이 누구를 차장으로 제청하느냐, 어떤 사람들을 수사처 검사로 임명하느냐다. 그에 따라 공수처의 운영 방향이 대체로 드러날 것이다. 공수처장이 수사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허수아비 노릇만 하고 차장과 일부 검사가 공수처를 좌지우지할 가능성도 높다. 수사는 생물과 같아서 어떻게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천양지차로 나올 수 있다.”
野 ‘고발정치’ vs 與 ‘협박정치’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민의힘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아들 병역 관련 의혹,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추진 등으로 추 장관에 대한 ‘묻지 마 고발’을 하는 것은 검찰을 끌어들여 보복 수사를 하겠다는 잔인한 정쟁‘이라고 비난했는데.“고발정치가 아니라 적법투쟁이다. 대화, 토론, 타협이 실종된 의회에서 야당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적법투쟁밖에 없지 않나. 오히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의 ‘검사 퇴직 후 1년간 출마 불가법’,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집행정지 신청을 금지하는 일명 ‘윤석열 방지법’, 김용민 의원의 ‘검찰청 폐지, 공소청 신설법’ 등이 즉흥적으로 발의되고 있다. 나는 이것을 ‘협박정치’라고 본다. 윤석열 총장을 협박해서 ‘당신이 이런 식으로 계속 수사하면 우리는 입법으로 검찰을 무릎 꿇게 하겠다, 당신 하나 조용히 물러나면 되는데 자꾸 버티니까 검찰 조직이 망가진다’는 협박이다. 하지만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가 된 이상 의원면직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게 민주당의 판단 착오다.”
-검찰 출신 민정수석은 과거 체제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던 문 대통령이 4년 만에 검찰 출신 신현수 민정수석을 임명했다.
“신현수 민정수석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민정비서관을, 이 정권에서 국정기조실장을 지냈다. 추 장관식의 탄압과 일방 독주가 정권에 어마어마한 부담이 된다는 걸 깨닫고 신임 수석은 검찰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외양을 취할 거다. 그리고 대통령 의중과 이 정권의 요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정권의 요구는 뭘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순화, 대통령 퇴임 후 안전 보장이다. 이 두 가지 기조로 끌고 가려 할 텐데 윤석열 총장으로서는 이와 관련해 오랜 시간 갈등을 겪었고 원칙대로 가겠다고 천명했다. 여기서 만일 윤 총장이 순치된 모습을 보이면 법치주의 수호자,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는 투사 이미지를 잃게 된다. 청와대가 원하는 결과는 얻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