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피폭량 논란에 등장한 멸치, 바나나, 전복
與 “불량원전의 가동 연장은 무책임한 정쟁”
野 “원전괴담 유포는 광우병 시즌2”
당연한 사실 음모로 몰아가는 건 원전 수사 물타기
지하수 삼중수소 농도는 무시할 수준…주민 영향 없어
삼중수소는 자연에서도 생성되는 방사성물질
“오늘 내린 눈에도 삼중수소가 들어 있습니다”
2017년 10월 14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신고리 5 · 6호기 공론화 종합토론회에서 발언하는 정용훈 교수. [뉴시스]
1월 7일 포항 MBC가 ‘월성원전 방사능 누출, 추가 오염 우려’, 10일 ‘핵연료 저장수조 근처에 삼중수소 균열 가능성 조사해야’, 11일 ‘감마핵종도 나왔던 월성원전, 지진으로 손상?’이라는 기사를 잇달아 보도한 뒤 원전 안전성 논란이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1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하수에서 방사성물질 삼중수소가 기준치(4만 베크렐 이하)의 17배(71만3000 베크렐/리터, 베크렐(Bq)=방사성물질이 방사능을 방출하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단위, 1Bq은 방사성물질이 1초당 1번 붕괴하는 양) 넘게 검출된 것은 충격적”이라며 “이번 조사로 시설 노후화에 따른 월성원전 폐쇄는 불가피했음이 다시 확인됐다. 일부에서 조기폐쇄를 정쟁화하며 불량원전의 가동 연장을 주장한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정쟁이었다”고 야당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감사원이 국민 안전과 관련된 감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충격적”이라면서 “감사원의 감사의 초점이 무엇이었는지 의아스럽다”고 감사원을 정조준했다.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은 12일 “바나나 6개, 멸치 1g 수준의 삼중수소를 괴담으로 유포하여 원전수사에 물타기 하려는 저급한 술수를 멈추어야 한다”면서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덮으려는 ‘원전괴담 가짜뉴스’ ‘원전수사 물타기’ ‘광우병 시즌2’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13일 최인호 대변인은 “(삼중수소 검출량이) 멸치 1g 먹는 수준이란 표현은 국민 안전을 완전히 무시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공방을 이어갔다.
주차된 차에 주차위반 딱지 떼는 셈
난데없는 ‘멸치 논쟁’의 시작점은 정용훈(47)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의 페이스북이다. 정 교수는 7일 첫 보도가 나간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월성 주변 지역 주민의 삼중수소로 인한 1년간 피폭량(0.3~0.6마이크로시버트, Sv는 인체에 피폭되는 방사선 양을 나타내는 측정단위)은 바나나 3~6개, 멸치 1g 내외”라고 했다. 이어 “월성원전에서 삼중수소가 많이 발생하는 것, 월성원전 경계가 주변 마을보다 삼중수소 농도가 높은 것, 원전 내부에는 경계보다 (삼중수소 농도가) 높은 곳이 있을 수 있는 것, 원전 주변에서 위험에 전혀 영향 없는 범위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는 것, 우리 주변에도 삼중수소가 있는 것, 내 몸에도 삼중수소가 있는 것처럼 당연한 것을 음모로 몰아가며 월성과 경주 주민의 건강 문제로 확대하는 것은 월성원전 수사에 대한 물타기”라고 주장했다.야당에서 이 글을 인용한 뒤 ‘멸치 1g 교수’ ‘학자적 양심이 없는 사람’ ‘원전 마피아’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정용훈 교수에게 직접 팩트체크를 했다.
- ‘월성원전 방사능 누출’ 보도를 ‘괴담’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주민들에게서 측정되는 삼중수소 농도와 피폭량이 극히 미미해 무시할 수준이며 증가 경향이 없는 상황에서 주민 건강의 위협 우려를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재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상태임을 제대로 알려주고 그 다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마치 주민들이 현재 위험에 빠져 있고 미래에 더 큰 위험에 빠질 것처럼 몰아가서는 안 된다. 측정된 수치가 이야기하는 바를 그대로 전해야 한다. 또한 아직 배출되지 않은 것에 대해 배출 지점의 관리기준과 비교해서 기준치 초과라고 한 것은 기준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71만3000베크렐이 검출됐다고 보도된 곳은 발전소 주변 지역이 아닌 원전 건물 내 특정 지점, 특 터빈건물 하부 지하 배수관로다. 한수원 측은 이곳이 발전소 지하 가장 낮은 부분에 위치해 각종 구조물 하부로 유입수를 모으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마치 차고에 주차된 차에 대해 교통위반 딱지를 끊는 것과 같다. 게다가 13일 기자회견에서 여당 의원들이 삼중수소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그 위험성을 이야기했는데 엄연히 삼중수소는 자연에서도 생성되는 방사성물질이다.”
-누출, 유출, 배출, 오염 용어가 뒤섞여 쓰이고 있다. 각각 다른 개념인가.
“누출과 유출은 모르는 사이에 환경으로 나가는 것이고, 배출은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환경에 영향이 없는 수준에서 내보내는 것이다. 오염은 광범위하게 쓰이므로 정의할 수는 없으나 기술적으로는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한 기준을 초과한 방사성물질이 존재할 때 오염이라고 한다.”
-한쪽에선 ‘방사능 누출’ ‘유출 가능성 알고도 관리 소홀’이라고 비판하고 한수원 측은 사장이 직접 나서서 “월성원전 부지에서 삼중수소 유출이 없었다”고 밝혔다.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같은 상황을 다르게 설명하는 것인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도 배출 시 정해진 양과 농도를 초과한 것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유출은 없었다고 본다. 문제 삼은 3호기의 고인 물도 회수처리 후 희석하여 정해진 농도 조건을 충분히 만족하도록 해서 배출했다. 결과적으로 물속에 있던 71만 베크렐의 삼중수소는 환경으로 배출한 것이며, 누출이나 유출로 볼 수 없다.”
-지하수 오염으로 당장 인근 주민들이 오염된 물을 먹는 것으로 보도됐는데 사실인가.
“월성원전 주변인 봉길지역의 지하수 삼중수소 농도가 8~9Bq/ℓ로서 무시할 만한 농도다. 주민들의 소변시료 분석 결과로도 피폭량이 미미한 수준(0.6 마이크로시버트 이하, 최근에는 0.34 마이크로 시버트, 0.1 마이크로시버트가 바나나 1개 섭취 시 피폭량)을 유지하고 있어 주민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봐야 한다.”
배출되지 않은 것에 배출기준 적용은 잘못
-월성원전 내부 관로에서 발견된 물을 조금만 먹어도 위험하다는 것조차 사실이 아니라고 했는데.“발전소 내부에서 처리 후 안전하게 배출한 물이지만 우리가 이 물을 먹을 이유도 먹을 방법도 없다. 하지만 만약 그 물 1리터를 마신다고 가정하면 어떤 영향이 있을지 가늠해볼 수는 있다. 리터당 70만 베크렐 수준이니 1리터를 마시면 70만 베크렐의 삼중수소를 섭취하게 된다. 비교를 위해 보통 80g짜리 전복 한 마리를 먹으면 방사성 폴로늄에 의해 피폭되는 양이 삼중수소 200만 베크렐 정도를 섭취할 때의 피폭량과 같다. 물 1리터를 마실 때보다 전복 한 마리를 먹을 때의 피폭량이 3배 가까이 많은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전복을 먹으면서 피폭량을 걱정하나. 물이든 전복이든 어느 하나가 위험하면 둘 다 위험한 것이고, 어느 하나라도 괜찮으면 둘 다 괜찮은 것이다. 현재 방사성물질의 배출 관리기준(리터당 4만 베크렐)은 너무하다 싶을 만큼 엄격하다. 만약 전복 한 마리 수준의 200만 베크렐 삼중수소가 들어 있는 물 1리터를 배출하면 기준을 50배를 초과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기준을 만족했다면 위험과는 관계가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좋겠다.”
-월성 1호기 설비 문제를 검토하다가 방사성물질 유출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상 점검은 아니었고 전체 점검 중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유입수의 농도에 비해 높은 물이 발견된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측이 이런 사실을 은폐했나.
“2019년 4월 터빈갤러리 일부에서 고농도의 삼중수소가 고인 물을 발견하고 한수원이 원안위 지역사무소와 원자력안전기술원 등에 보고했기에 은폐라고 할 수 없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이 방사성물질에 피폭됐을 때 유전적, 생물학적으로 미치는 위험도를 잠재적 위험성으로 표현했는데.
“방사성물질의 농도와 피폭량 및 그 영향은 측정 가능한 수치다. 잠재적이라는 표현으로 뭔가 더 있을 것이라 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소변 시료에서 최고농도의 삼중수소가 검출된 사람 기준으로 앞으로 그 사람이 그 농도를 유지하도록 삼중수소를 지속적으로 섭취했을 경우 받을 피폭량이 연간 0.6마이크로시버트, 바나나 6개 수준이라는 것이다. 장기적인 영향을 모두 고려한 것이 0.6인데 마치 뭐가 더 있을 것처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한 소장은 관리기준의 18배가 되는 방사성물질 검출은 국가 안전체계상 엄청나게 중요한 뉴스라고도 했다.
“기준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배출되지 않은 것에 배출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고인 물을 회수하여 처리 후 배출했기 때문에 배출기준은 최종 배출할 때 농도(한수원 측은 약 13.2 베크렐로 배출하고 있다고 밝힘)를 기준으로 비교해야 한다.”
‘학자적 양심’과 ‘과학적 사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12일 월성을 직접 찾아가 일각의 방사능 우려에 대해 팩트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원칙대로 대응하라”고 했는데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정 사장의 발언이라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주민에게 위험이 가고 있는가(주변 삼중수소 농도와 주민 피폭량), 한수원이 정해진 양과 농도로 배출 기준을 지키고 있는가 등의 사실을 기반으로 대응하라는 의미일 것으로 추정한다.”
-일각에서 정용훈 교수에 대해 원자력 분야 전문가이긴 하지만 ‘이쪽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했다. 동의하나.
“동의해도 웃기고 동의하지 않아도 웃긴 이야기 같다. 굳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원자력 발전소 설계와 안전이 전문분야다.”
-월성원전 인근 거주 주민이 방송에서 삼중수소량이 바나나 수준이라고 설명한 정 교수에 대해 “학자적 양심이 없다”고 비난했다.
“비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방사성물질과 방사선의 영향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아 벌어지는 일이다. 멸치를 먹으면 그 속의 폴로늄에 의해, 바나나를 먹으면 그 속의 칼륨과 탄소 등에 의해 피폭이 일어나고 1g 내외의 멸치나, 6개 내외의 바나나면 현재 월성 주민이 삼중수소로 받고 있는 피폭량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들으면 ‘아무 문제없이 먹는 멸치나 바나나를 어떻게 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와 비교할 수 있나?’라는 반응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쳐 가야 하는 단계라고 본다. 삼중수소는 자연에서도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 강수로 내리는 삼중수소의 양이 월성원전에서 배출하는 삼중수소의 양에 육박한다. 삼중수소는 원전에서만 나온다거나, 미량만으로도 치명적이라거나, 혹은 장기적인 노출은 더 위험하다는 것 등은 모두 오해에서 비롯했다. 사실이 아니다. 현재 주민들에게 발견되는 삼중수소의 영향이 치명적이며 건강상 영향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관계가 변해야 다른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량원전 되돌리려는 원전마피아의 결탁?
-여당 대표는 월성원전을 ‘불량원전’이라며, 국민 생명을 볼모로 7년 전부터 방사능 유출이 의심된 원전 폐쇄를 되돌리려는 데 ‘원전마피아’와의 결탁이 있다고 했다. 당신도 원전마피아인가.“원자력 발전 기술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안전하고 저렴한 전기를 공급하고, 수출에 기여한 원자력계의 한 사람으로서 이 대표가 원자력에 연관된 모두를 마피아라고 지칭한다면 맞다. 그러나 오늘의 원자력을 위해서 노력한 모든 사람의 헌신과 열정을 이 대표가 싸잡아 비난하여 심한 모멸감을 줬다는 것은 알았으면 한다. 여당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범죄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갑자기 폭설이 내린 12일 오후 정용훈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소양강 댐에 물이 가득 차면 2조9000억 베크렐 내외의 삼중수소가 들어 있습니다. 방류하면 서울로 갑니다. 오늘 내린 눈에도 삼중수소가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