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빚내서 집 사라? ‘대출 막차’ 시그널에 집값 급등

[부동산 인사이드] 가계 빚 세계 1위인데 대출 규제 강화 유예

  • 김미리내 비즈워치 기자 pannil@bizwatch.co.kr

    입력2024-07-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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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돌연 유예

    • ‘막차 타자’ 심리에 주담대·거래량↑ 집값 ‘꿈틀’

    • 대한민국,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세계 1위

    • 당국 “가계부채 관리 기조 변화 無, 안정적 관리”

    • 업계 의견 분분, 금리인하 미실현 시 借主 부담 증가 우려도

    6월 13일 서울스카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 [뉴스1]

    6월 13일 서울스카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 [뉴스1]

    정부가 시행 일주일을 앞두고서 대출 한도 규제 강화를 유예했다. 당초 7월부터 적용하기로 한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시행이 돌연 두 달 연기된 것. 이에 따라 3단계 시행은 내년 초에서 내년 하반기로 6개월 더 미뤄졌다.

    스트레스 DSR = DSR + 가산금리

    급격히 늘어나는 가계부채 관리 강화에 나서기로 한 정부 방침과는 반대되는 행보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한편, 부동산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최근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2%대까지 하락한 데다, 대출 한도 축소 전 ‘막차 타기’ 수요가 더해져 거래량이 증가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자칫 ‘빚내서 집 사라’는 신호로 읽힐 수 있음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DSR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로 대출 한도를 정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담대나 신용대출 등 모든 금융부채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의 일정 수준 이하로 맞추도록 한 제도다. 현재 시중은행에서는 이 기준을 40%로 정하고 있다. 갚아야 할 부채 원금과 이자가 연소득의 40%를 넘지 못하도록 대출 한도를 정한 것이다.

    ‌스트레스 DSR은 여기에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산출한다. 향후 예상치 못한 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날 것을 대비한 것이다. 스트레스 DSR 적용은 가산금리를 더하는 만큼 갚아야 할 원리금이 늘어나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다만 정부는 대출 규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어 이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한 바 있다.

    스트레스 DSR 금리는 과거 5년 가운데 가장 높았던 수준의 월별 가계대출 가중평균 금리와 현시점 금리를 비교해 결정한다. 금리 변동기 과다·과소 추정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하한을 1.5%, 상한을 3.0%로 뒀다. 현재는 하한 기준인 1.5%에 가산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올해 2월 은행권 주담대를 대상으로 시행된 스트레스 DSR 1단계는 가산금리 1.5%의 25%만 우선 반영했다. 0.38%의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가 정해진다. 9월 시행될 2단계에선 가산금리의 50%인 0.75%의 가산금리가 붙는다. 내년 하반기로 시행이 미뤄진 3단계가 시행되면 100%가 적용, 1.5%의 가산금리가 반영돼 대출 한도가 정해진다.

    가령 연소득 5000만 원인 사람이 연 4% 이자로 30년 만기 변동형 주담대를 받을 시 본래 3억5000만 원 가까이 대출이 가능했지만 1단계가 적용된 현재는 3억3000만 원대로 대출 한도가 줄었다. 여기에 2단계 적용 시 대출 한도는 3억1000만 원대로 더 줄어들게 된다.

    ‘지금이 가장 싸다’… 주담대↑·집값 상승세

    이에 대출 한도 축소 전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월 4조1000억 원 증가한 주담대 규모는 1단계가 시행된 2월엔 3조7000억 원, 3월엔 200억 원으로 증가 폭이 주춤했다. 하지만 4월 들어 다시 4조1000억 원이 증가했고, 5월엔 5조6000억 원으로 증가 폭이 확대됐다. 올해 늘어난 주담대 대출액만 18조 원에 육박한다.

    최근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가 2%대까지 떨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하반기 미국발 금리인하 기대감이 시장에 선반영된 데다, 금융당국이 고정금리 대출 비중 확대 지침을 내리면서 대출 유인을 높이려 시중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있어서다. 여기에 당초 7월로 예정됐던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전 대출을 하려는 ‘막차 타기’ 수요까지 더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꿈틀대는 부동산시장과도 맞물린다. 부동산R114가 동일 단지·동일 주택형을 기준으로 아파트 실거래 최고가를 기록한 2021년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를 비교한 결과, 실거래가가 기존 고점 대비 88% 수준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 서초 등 고급 주택 밀집 지역의 경우 100% 가까운 회복률을 보였고, 용산은 10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량도 크게 늘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2000건 안팎 수준이던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3월부터 3개월 연속 4000건대를 기록했다. 7월 들어서는 5000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거래량 증가는 집값 상승 반등 신호로 여겨진다. 서울 전셋값이 1년 이상 오르고 있고, 공사비 인상에 분양가·집값 모두 상승 추세다. 내년 입주 물량 감소가 예고되면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불안감도 매수 유입을 자극한 것으로 추정된다. 차후 집값 상승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이른바 ‘지금이 가장 싸다’는 심리로 번지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주담대 금리가 2%대까지 낮아진 상황에서 대출 한도 축소까지 유예되면서 대출 수요가 올라가고 있다”며 “주택거래 활성화, 금리인하와 더불어 집값 상승이 겹치다 보니 코로나 시국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수요가 몰리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가계부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려 도입한 제도를 미룬 것을 지금이 ‘빚내서 집 사라’라는 시그널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 “업계에서는 조금씩 살아나는 부동산 경기에 찬물을 부을까 우려해 사전 협의도 없이 급히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집값 상승 부추겨”

    대출 수요가 늘면서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 유예가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기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는 2022년 기준 전세보증금 포함 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최근 상황도 다르지 않다. 5월 국제금융협회(IIF)가 공개한 세계 부채 보고서는 한국의 올해 1분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8.9%라고 분석했다. 이는 조사대상 34개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1분기 105.5%로 정점을 기록했다. 이때와 비교하면 다소 낮아진 수치지만 통화·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목표 1차 저지선이 100%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가계부채는 여전히 위험수위에 닿아 있는 셈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트레스 DSR 2단계 연기는 당초 가계부채 축소 정책 기조와는 아예 반대로 가는 꼴”이라며 “정부가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겨 가계부채가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변함이 없다”면서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GDP 성장률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업권·유형별 가계부채 증가 추이도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라며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빌리고 처음부터 나눠 갚는 대출 관행이 확립될 수 있게 금융권과 함께 제도개선 등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레스 DSR의 가계부채 억제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향후 적용 범위 확대와 스트레스 금리의 단계적 확대로 억제 효과가 확대될 것”이라며 “특히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스트레스 금리가 상승하는 효과로 금리 하락에 따른 대출 한도 확대를 제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금리인하 미실현 시 借主 부담 ↑

    반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트레스 DSR의 애초 목적은 대출을 조금 더 깐깐하게 하는 데 있다”면서 “시행한다고 해서 부동산시장 침체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미룬다고 시장에 불이 붙는 등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띄우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직접적 의도를 갖고 했다기보다 내수경기 침체 상황에서 대출 규제가 추가로 경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DSR 규제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DSR로 규제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건설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스트레스 DSR과 같은 대출 규제 확대는 부동산 경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면서 “대출 규제는 무주택 국민의 자가 마련을 늦추고 현금을 가진 부유층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어 규제로 대출을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시장 움직임이 하반기 ‘금리인하 기대감’을 전제로 형성된 만큼 기대처럼 금리가 인하되지 않을 경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는 수출과 내수경기 격차를 비롯해 매우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정한다”면서 “주택 가격 상승 요인이 뚜렷할 경우 가계부채 급증 우려 때문에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히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리인하가 실물경기 부양보다 주거비 부담을 높일 것이란 판단이 나온다면 즉각적 기준금리 인하가 어려울 수 있다”면서 “이 경우 하반기 시장이 예상과는 다를 수 있고, 금리인하 기대감을 전제로 대출을 받은 차주들 역시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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