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윤석열 ‘대권 고차방정식’, 제2의 정몽준 되나

  • 김성곤 이데일리 정치부 기자

    skzero@edaily.co.kr

    입력2021-01-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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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기 지지율 1위 질주… 속내 불편한 與野

    • 조국-추미애-문재인, 3차례 전투에서 연승

    • 反문재인 상징성… 7월 이후 정치입문說

    • 고건·반기문과 다른 尹, 지지율 35% 확보가 관건

    • ‘노무현-정몽준’ 모델로 범야권 후보 가능성

    지난해 12월 1일 법원이 검찰총장 직무배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직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는 윤석열 검찰총장. [뉴시스]

    지난해 12월 1일 법원이 검찰총장 직무배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직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는 윤석열 검찰총장. [뉴시스]

    윤석열 검찰총장은 2020년 최고의 뉴스메이커였다. 2019년 7월 검찰총장 취임 직후만 해도 문재인 정권 탄생 일등공신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현 정부의 최대 ‘애물단지’가 됐다. 지난해에는 헌정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국면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진흙탕 공방을 펼쳤고, 문재인 대통령과 관계에서도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역대 정부를 돌이켜봐도 현직 검찰총장이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정면충돌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선출 권력과 임명 권력의 전투는 선출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의 승리로 막을 내려야 정상이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등에 업은 윤 총장은 예상 외로 ‘KO승’을 거뒀다. ‘단기필마’에 불과하던 윤 총장은 추 장관을 내세운 여권 핵심부와의 대리전에서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 특히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드린다”는 문 대통령의 성탄절 연휴 대국민 사과는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었다. 

    이제 ‘추(秋)·윤(尹)갈등’이라는 희대의 싸움을 지켜본 대중의 시선은 차기 대선을 향하고 있다. 밑바닥부터 다져온 윤 총장의 차기 지지율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여야 모두 ‘윤석열’이라는 난감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기 지지율 1위… 속내 불편한 與野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국론이 분열된 조국 사태 이후 윤 총장은 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두고 주목받았다. 이제는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여권의 집중난타와 야권의 인물난이 주는 시너지 효과로 지지율이 치솟았고, 차기 대권구도를 뒤흔들었다. 한국갤럽, 리얼미터 등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지지율 조사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보여줬다. 현역 정치인도 아닌데 20% 안팎의 지지율로 어느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를 위협하면서 ‘빅3’ 구도를 형성했다. 최근 일부 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이고, 보수야권의 대권 후보 중에서는 기존 유력주자를 누르고 부동의 1위를 기록 중이다. 윤 총장의 정치적 부상에 여야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검찰개혁을 내세운 여당의 ‘윤석열 찍어내기’는 역효과만 냈다. 여권이 때릴수록 윤 총장의 정치적 위상은 말 그대로 수직상승했다. 이낙연·이재명을 앞세운 민주당 우위 차기 구도는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윤석열만 없었다면 무난할 줄 알았던 정권 재창출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시점이다. 한마디로 호랑이 새끼를 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야당의 속내는 더 복잡하다. 겉으로는 반(反)문재인 전사(戰士)의 등장에 박수를 보내지만, 이모저모 뜯어보면 실익이 전혀 없다. 윤 총장의 질주와 부상에 지지율 5% 안팎의 ‘도토리 키 재기’식 경쟁을 벌여오던 기존 주자들이 언론의 조명과 여론의 주목을 못 받고 있다. 오히려 대선 직행을 선언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회군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는 윤 총장의 정치적 부상이 가져온 부산물이다.



    反문재인 단일후보 상징성… 7월 정치입문說

    윤 총장을 향한 국민적 관심은 크게 두 가지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언제 정치에 입문할 것인지, 그리고 차기 대권 도전 여부다. 2021년 7월 검찰총장 임기 종료 이후 윤 총장의 구체적 행보 말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윤 총장의 정치입문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다. 검찰총장의 대선 도전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윤 총장이 차기 대권 가도에 뛰어들 경우 판도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선 그의 정치적 의지가 중요하다. 윤 총장은 2020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정치 참여 의사를 묻는 질의에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현직 검찰총장이라는 지위를 고려하면 향후 정치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은 발언이었다. 그의 말대로 차라리 “개 세 마리를 보면서 지내겠다”고 했다면 국민들은 ‘정치 참여 의사가 없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윤 총장은 2020년 10월 29일 대전지검을 방문해 검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정감사장에서 백수가 돼 강아지 세 마리를 보면서 지낼 것이란 이야기를 어떻게 하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검찰총장 징계 국면으로 최악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 ‘백기 투항’ 대신 장기전을 선택하고, 법원의 직무복귀 결정으로 사지(死地)에서 생환한 것도 그의 차기 주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는 분석이다. 

    윤 총장을 둘러싼 상황은 정치입문과 차기 도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윤 총장이 정치에 입문할 경우 기존 정당을 택할지, 아니면 여야를 뛰어넘어 제3지대 세력화에 나설지다. 윤 총장의 최대 정치적 자산은 ‘반(反)문재인 후보’라는 상징성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시작으로 추미애 장관을 거쳐 문 대통령과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홍준표·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등 보수야권 차기 주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치적 성과다. 5% 안팎의 지지율을 보여주는 야권의 차기 인물난 속에서 유독 돋보인다. 윤 총장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여야 모두 유·불리를 따지며 주판알 튕기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노무현-정몽준’ 모델로 범야권 후보 가능성

    2002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을 위해 만난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승리21 후보. [동아DB]

    2002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을 위해 만난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승리21 후보. [동아DB]

    전·현직 검찰총장의 대선 도전은 전례 없는 일이지만 윤 총장은 차기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장외 블루칩’이다. 여권이 지독한 견제를, 야권이 끝없는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다. 다만 역대 대선을 돌이켜보면 제3 후보의 성공사례는 찾기 힘들다. 1992년 대선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2002년 대선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2007년 대선 당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대표적이다. 모두 기성 정치권을 위협하며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용두사미가 됐다. 조직과 세력이 없었기에 대선 흥행의 불쏘시개로 이용당하거나 단일화 과정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다만 이른바 ‘법검갈등’ 국면에서 여권 핵심부의 찍어내기에 맞선 윤 총장의 정치적 맷집이라면 다른 상황 전개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고건 전 국무총리나 지난 대선 당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허무하게 중도낙마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정해지면 윤 총장과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는지를 가리는 이른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이 거론된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결정되자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성공으로 인기 가도를 달리던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했고, 여론조사를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됐다. 이 후보에게 뒤처지던 노 전 대통령은 단일화 바람몰이에 나서 대역전극을 펼쳤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이후 보수야권에서 윤 총장을 능가할 제3의 후보가 나오지 않는다면 ‘윤석열’이라는 이름은 차기 대선의 바다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총장은 뛰어난 정치적 맷집에도 정치권에 세력이 없다는 게 단점”이라면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과 관련돼 있는 만큼 국민의힘이 선뜻 영입에 나서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만 서울시장 보선을 전후로 야권 대통합 과정에서 반(反)문재인 단일 전선을 내세운 보수 빅텐트가 만들어질 경우 정당 내 세력보다는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유리하다”며 “윤 총장이 지지율 35% 안팎의 대세론을 유지한다면 고 전 총리나 반 전 사무총장과 달리 보수 빅텐트 경선에서 팽(烹)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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